108. 초원은 영원히 우리를 기억하리라(5)
왕릉 내부는 예상보다도 훨씬 넓고, 또 넓었다.
지하에 매장된 무덤의 크기가 얼마나 넓은고 하니.
테르친 도시 전체 면적에 맞먹는 규모였다.
- 크워어어어-!
그리고 그런 만큼, 왕릉 내부에 들어찬 언데드들의 수도 어마 무시하고.
쿠콰앙-!
폭음과 함께 수십 구의 시체가 떠올랐다.
신성력을 두른 스텔라의 강권.
특유의 호쾌한 타격을 보니, 누가 가르쳤는지는 말 안 해도 충분히 알만했다.
- 키이이이-!
그렇지만 신성력이 있다 한들, 밀려드는 언데드를 막기에는 역부족인 법.
스걱-!
“어?”
“‘어?’는 무슨, 등 뒤는 제대로 보셔야지.”
스텔라의 등 뒤로 달려드는 미라를 베어낸 뒤 그렇게 말했다.
파스스스…!
망령화한데다가, 의지조차 남아있지 않는 혼.
이대로 왕릉에 남겨두는 것보단, 서둘러 환원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퍼석-!
수정검이 닿자, 영혼이 빠져나간 육신이 그 자리에서 부스러졌다.
가루가 된 채 흩날리는 언데드의 시신.
그것을 확인한 난 곧바로 소환문을 생성해, 스켈레톤들을 불러냈다.
“원래 이런 데는 은밀하게 다니는 거 아니었어요?”
왼손으로 목을 감싼 스텔라가 그렇게 말하자, 난 피식하고 코웃음 쳤다.
“이제 와서 그러려고 해 봤자, 이미 늦었어요.”
그렇게 말한 난 윌 오 위스프를 띄워, 광량을 최대로 올렸다.
파아앗-!
위스프의 빛이 닿는 저 끝까지 들어친 수많은 언데드들.
빛이 퍼져나가는 동시에, 사방에서 언데드들의 괴성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 크워어어어어-!
- 캬아아아악!
“밀집대형. 충동 대비.”
내 명령을 받은 스켈레톤들이 곧바로 앞으로 나서 방패를 세웠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말라비틀어진 시체들이 사방에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퉁-!
스켈레톤의 방패가 1차 충돌을 막아내고, 빈 공간에서 창날이 솟았다.
콰득-!
교화소에서 벤을 죽일 때 사용했던 단창.
거기서 감명을 받아, 스켈레톤의 무장으로 채용해 본 것이었다.
“우와….”
그것을 본 스텔라가 기가 질린 듯 말했다.
“너무 많은 거 같은데, 이걸 다 뚫고 가야 한다구요?”
“당연하죠.”
그 말과 함께, 난 곧바로 마기를 끌어모았다.
“레이븐.”
계약문을 작동시키는 순간, 데스나이트의 검이 방진을 비집고 들어오는 언데드들을 갈랐다.
퍼석-!
아니, 갈랐다기보단 부쉈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 크워억?!
속절없이 무너지는 자신의 몸에 언데드들이 괴상한 소리를 냈다.
부패하지 않은 채 말라비틀어진 미이라.
그것을 확인한 난 생각했다.
‘고위 언데드는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침입자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 거겠지.’
망자의 의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무뎌지는 법.
의지의 마모는 혼의 기억을 좀먹고, 종국에는 그가 누구였는지조차 알 수 없게 만들어버린다.
이들은 그렇게 마모된 혼들의 말로.
자신이 누군지조차 알 수 없게 되었음에도, 이 언데드들은 계속해서 이 무덤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역사에서 잊힐지언정, 그들의 충성만은 변치 않을지니.
그 굳건한 모습을 괄목한 내 입에선….
“아오, 진짜 미치겠네. X팔.”
참다, 참다 못 참고 욕지거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쫌 지나가자, 이 육포들아! 나 허락받고 들어왔다고!”
그러는 동시에, 계약문을 열어 새로 만들어낸 데스나이트를 불러냈다.
고오오오…!
대성당 지하에서 확보한 이름 모를 데스나이트.
신성력에 마모되어 의지는 미약했지만, 그의 혼은 단장급 기사에 필적하는 자질을 지니고 있었다.
“기선 제압한다. 출력 최대로 올려서 때려 박아!”
- 명령대로.
- ……!
키이이잉-!
두 기사의 검이 보조를 맞춰, 밀려드는 미이라들을 향해 쏟아졌다.
쿠콰콰쾅-!
직선으로 쏘아지는 마력광과 함께, 경로를 메꾼 미이라들의 몸이 먼지처럼 바스라졌다.
- 캬아아악!
괴성과 함께 날아간 미이라들이 주춤한 순간.
난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외쳤다.
“방패병 진입! 경로 확보해!”
두 데스나이트가 만들어낸 빈틈.
난 그곳을 향해 손을 뻗어, 중무장한 스켈레톤들을 밀어 넣었다.
- 크워어어억-!
워실드를 든 스텔레톤이 그들을 밀치며 길을 만들었다.
- 키이이!
후열에 있던 스켈레톤들이 그 자리에 멈춰서 대방패를 얽어내어 벽을 형성했다.
“집 지키는 놈들이 많다는 건 알겠는데, 이쪽도 쪽수로는 그리 밀리지 않거든?”
그렇게 말하는 것과 동시에, 대열을 갖춘 스켈레톤들이 미이라들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 크워! 크워어억?!
무질서하게 달려드는 단순한 공격과는 달리, 이쪽은 무장과 병진을 갖춘 군대다.
수 또한 만 명 가까이 모였으니, 이젠 나 혼자 정규전을 치를 수도 있을 정도.
사령술을 몸에 받아들인 지 1년.
그 짧은 시간 동안 이뤄낸 어마어마한 성장이었다.
“뛰어요!”
스켈레톤들이 만들어낸 직선 경로를 따라 내달렸다.
“계속 달리면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통로가 있을 겁니다.”
밴시로 확인한 내부구조를 떠올리며 말했다.
“잠금장치로 잠겨 있을 테니, 우선 그 문을 열 방법을…!”
그렇게 말하며 스텔라가 있는 곳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뭐야, 어디 갔어?”
내가 돌아본 곳에, 스텔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쿠르르르르…!
그러나 그 순간.
달리던 길 끝에 있는 문이 천천히 열리고, 그곳에서 스텔라가 날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쪽으로!”
저건 또 무슨 일인가.
기계장치로 잠겨 있는 문일 텐데.
그걸 그냥 열어버리다니?
- 크워어어억-!
뒤에서 들려오는 괴성을 보니, 더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쿵-!
곧바로 몸을 날려 문 안으로 들어간 순간, 기계장치가 작동하며 두꺼운 철문이 그대로 닫혀버렸다.
- 크워어어어-!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미이라들의 괴성.
적어도 이 안쪽이 침범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갈 때 또 개고생하겠구만.’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린을 부르던가 해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파아앗-!
위스프가 불을 밝히자, 한쪽에 선 스텔라가 보란 듯 팔짱을 끼고 있었다.
“어때요. 제 덕에 살았죠?”
그렇게 말한 스텔라의 등 뒤에는, 문의 작동장치로 보이는 기계장치들이 있었다.
“…열쇠도 없이 저걸 작동시킨 겁니까? 어떻게?”
그렇게 묻자 스텔라는 태연자약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참회실에 감금될 때마다 자물쇠를 풀고 나갔거든요.”
“…….”
“어릴 때부터 그랬어서, 이젠 웬만한 건 다 풀어요.”
그렇게 말한 스텔라는 길을 안내하라는 듯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거짓말을 칠 거면 좀 그럴듯하게 치던가.’
수녀원 몇 번 탈출한 경험으로 왕릉 잠금장치를 푼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아무리 200년 전 장치라지만, 웬만한 기술자들도 풀기 힘들 텐데.’
끊임없이 연구하고 연습한 기술.
하지만 이해는 가지 않았다.
신성교단의 수녀가, 잠금장치를 해제하는 기술을 배울 이유가 없었으니까.
‘실리적인 이유는 아니다. 오히려 집착에 가까운….’
그렇게 생각하던 내 시선이 스텔라의 손에 닿았다.
지하 왕릉에 들어온 순간.
그때부터 계속, 그녀는 자신의 목 언저리를 만지고 있었다.
‘잠긴 문을 열고자 하는 심리. 목을 건드리는 습관.’
그 모습에 기시감을 느끼는 것도 잠시.
‘고아원의 아이들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트라우마다.’
미리암이 보호하는 아이들의 면면을 떠올리자, 대충 어떤 상황인지 짐작이 갔다.
성 미리암 고아원을 제 집처럼 드나들고, 개리슨을 후견인으로 둔 수녀.
‘교화소 출신이었군.’
그렇게 생각한 내 눈매가 좁아졌다.
“…안 갈 거예요?”
게슴츠레 뜬 내 눈을 슬쩍 피하며 스텔라가 말했다.
‘뭐, 캐물어봤자 나올 것도 없지.’
그렇게 생각한 난 어깨를 으쓱이며 앞장섰다.
“아, 그런데.”
“응?”
하층으로 내려가는 통로 안.
갑자기 생각이 닿은 듯, 스텔라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아린 양 말인데, 정말 괜찮은 거 맞아요?”
“괜찮냐니, 뭐가요?”
내가 되묻자, 스텔라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말했다.
“사막 한가운데에 혼자 있잖아요. 삭량은 남아있겠지만, 역시….”
“아아,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스텔라의 말뜻을 이해한 난 별일 없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그 녀석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그렇게 말한 난, 계단을 내려가며 다음 말을 속으로 삼켰다.
‘일부러 문 앞에 남겨둔 거니까.’
***
“이건 또 무슨 일이란 말인가.”
동이 터오는 사막.
테레인 백작과 그의 기사들은 황당한 표정을 한 채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았다.
“허, 이거 참….”
대륙 동부와 남부 전체를 호령하던 대제국, 아이신기오르.
그 대제국의 마지막 황제가 잠들어있는 왕릉.
“단서가 될 거란 짐작은 했다만, 이렇게까지 잘 풀릴 줄이야….”
그 왕릉으로 통하는 문이 열려있었다.
백작위를 계승 받고 20년.
그 오랜 세월 동안 끊임없이 시도해도 열리지 않던 문이!
“크하하하하하-!”
만면에 웃음을 띤 테레인이 박장대소했다.
이걸로 되었다.
이미 기사들은 전부 모였고, 클라인 공자는 이 안으로 들어간 상황.
“들어가시겠습니까?”
“아니, 그럴 필요는 없지.”
기사 중 한 명의 질문에 테레인 백작의 웃음이 짙어졌다.
“이 유적을 연 장본인이 이미 안에 들어갔는데, 우리가 뒤늦게 들어가 봐야 뭐가 되겠나?”
즐거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말 그대로, 최적의 순간 이곳을 발견한 셈이었으니까.
“우린 이 입구 앞에서, 클라인 공자가 나오길 기다리면 된다.”
사막은 대륙의 법도, 교단의 경전도 닿지 않는 땅.
클라인 공자가 가져온 재물을 갈취하고, 공자를 죽이면…!
“푸하-!”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
왕릉 입구를 둘러싼 기사들의 한 가운데에서, 뭔가가 솟아올랐다.
“뭐지!?”
“매복인가? 아니면…!”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기사들이 검을 빼든 것도 잠시.
“어, 아저씨들은 누구세요?”
모래더미에서 튀어나온 어린 소녀의 모습을 보자, 그들의 경계심은 남김없이 사라졌다.
“이 소녀는 뭐지?”
“낙엽 놈들의 보고서에 있었다. 공자의 하녀라는데.”
그렇게 말한 한 기사가 말에서 내려 소녀에게로 다가갔다.
“이이…. 모래 범벅이야.”
그러는 사이, 모래더미에서 올라온 소녀는 하녀복을 툭툭 털며 울상을 짓고 있었다.
‘사막 한가운데에서 하녀복이라.’
‘제정신이 아니로군.’
사막의 변화무쌍한 날씨에, 이 소녀가 살아있는 것이 기적일 정도였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사막을 건널 생각을 하다니.
클라인 공자가 너무나도 멍청해 보였다.
“어떻게 할까요, 백작님?”
소녀의 앞에 다가간 기사가 테레인 백작에게 물었다.
물어볼 것도 없지.
백작은 말없이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의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쯧, 애를 죽이면 꿈자리가 사나운데.”
하필 먼저 다가간 탓에 귀찮은 일을 맡았다.
그렇게 생각한 기사는 별다른 감정 없이 검을 휘둘렀다.
“원망 마라. 클라인 공자도 곧 뒤따라갈 테니.”
그 말을 마지막으로, 기사는 소녀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고.
스걱-!
절삭음과 함께, 소녀의 목이 하늘을 날았다.
“좋아. 남은 인원이 없는지 확인하고, 우린 야영 준비를….”
혹시나 다른 동행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테레인 백작이 지시를 내리던 그 순간.
“어, 어어어…?”
소녀를 벤 기사의 목소리에, 백작의 고개가 다시 돌아갔고.
“무, 뭐라……!”
테레인 백작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듯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아~! 아저씨들이 도련님이 말한 그 사람들이구나?”
소녀의 천진난만한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소리가 난 곳은 소녀의 목.
하늘 위에 멈춰선 여자아이의 목이, 방긋 웃으며 자신들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배, 백작님! 저건…!”
목의 절단면에서 뿜어나온 것은 피가 아닌 검은 그림자.
이윽고 새하얀 모랫바닥이, 그곳에서 나온 그림자에 잠식되고 있었다.
“전 기사단 전투준비-!”
상황을 파악한 테레인 백작이 곧바로 검을 뽑았다.
“마력을 최대로 올려라! 저 괴물을 당장 없애버려!”
백작의 명령과 함께 수많은 기사들이 소녀를 향해 돌진해갔다.
“히히!”
그런 기사들을 향해, 소녀는 활짝 웃는 얼굴로 외쳤다.
“잘 먹겠습니다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