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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107화 (107/209)

107. 초원은 영원히 우리를 기억하리라(4)

“사냥에 나서기 전에 길이나 닦아놓으라고 보내 놨건만.”

보고서를 읽은 테레인 백작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호언장담하던 낙엽은 보기 좋게 실패했고, 자신은 기사 한 명을 잃었지.

거기까진 괜찮다.

그 콧대 높던 살인귀 놈들을 엿 먹인 셈이기도 하고.

“이제 제 주인을 물고 도망치려고 하다니.”

그렇지만 이 상황은 뭐란 말인가?

수족으로 부리던 용병들이 되려 배신이라니?

“재밌군. 아주 재밌어….”

한 세대를 걸쳐 조련한 부족이었다.

전대 족장을 죽여 옛 제국의 후손이라는 같잖은 전통을 끊고.

재물을 목줄로 삼아 자신의 수족으로 만든 자들이었다.

“백작님. 기사들이 모두 준비되었습니다.”

“음.”

밀려오는 불쾌감을 뒤로 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 밖에 위치한 연무장으로 가자, 기사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백작님.”

“못 본 사이에 얼굴들이 좋아졌군.”

사막 지형에 걸맞게 개조된 제국기사의 갑옷.

판금 부분은 최소한으로 줄고, 천과 가죽이 그 자리를 대체한 모양이었다.

“투멘 녀석 소식은 들었습니다.”

“상대는 마력도 없었다던데. 그놈도 갈 때까지 갔군요.”

클라인 공자에게 손목을 잃은 기사.

그를 향해 악담을 퍼붓자 테레인 백작은 웃는 낯으로 그들을 진정시켰다.

“사령술과 검술을 동시에 사용하는 상대다. 혹시라도 방심하지는 말도록.”

“하하하!”

“그거야 당연하지요!”

호탕하게 웃는 기사들을 대동한 채, 테레인 백작이 말에 올랐다.

히- 히힝-!

말의 울음소리와 함께 백작과 기사들이 성 밖으로 향했다.

성문을 나서자마자 펼쳐진 사막.

제국은 이 황량한 땅을 돌보지 않는다.

그렇기에 탈리크 백작가와 그 기사들 역시 제국을 돌보지 않는다.

제국에 속하되, 제국에 충성하지는 않는다.

라인란트같은 제국의 3대 공작가가 으레 그러하듯이 말이다.

“한창 무료하던 차에, 새 일거리가 생겼다!”

사막을 내달리는 테레인 백작이 외치자, 기사들의 얼굴에 웃음이 만개했다.

권력욕? 명예?

그런 시시콜콜한 것을 원하는 이들은 진작에 이 땅을 떠난 지 오래다.

테르친의 기사들이 원하는 것은 피를 끓게 하는 전투와 황금.

그리고 클라인 공자는, 그 모든 것들을 충족시켜줄 수 있을 터였다.

***

하루 만에 돌아온 동부 사막 중심부.

어제 힘껏 파 놓은 문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모래에 파묻혀 있었다.

- 알지?

- 키이이…….

스켈레톤들에게 공사를 맡긴 후, 점점 윤곽을 드러내는 왕릉의 문을 눈에 담았다.

저, 저, 스켈레톤들 좀 봐라.

해골인데도 표정이 썩는 게 눈에 보이네.

뭐, 뭘 봐.

꼬우면 네크로맨서 하던가.

“부르르르르르….”

내가 그렇게 작업에 한창인 동안.

짐가방에 든 옷이란 옷은 죄다 껴입은 스텔라가 추워 죽겠다는 듯 몸을 떨고 있었다.

“낮에 늘어지지 말라고 밤에 왔더니, 이젠 달달 떠는 소리에요?”

사막의 날씨는 중간이 없다.

낮에는 찬란한 태양과 그 열을 가득 품은 모래가 사람을 양옆으로 지져대더니.

밤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얼굴색을 바꾼 채, 한겨울과 같은 추위를 선사했으니까.

“뭐 춥지도 않구만.”

그렇지만 이전과는 달리, 내 목소리는 한껏 밝아져 있었다.

푹푹 찌는 낮과는 달리, 한밤중의 사막은 내게 있어선 너무나도 쾌적했으니까.

“이게 안 춥다니, 공자님 사실 언데드인 거 아니에요?”

“귀족 모독죄로 고발합니다.”

추워하는 와중에도 멈추지 않는 스텔라의 개소리를 넘겼다.

아키몬드 혐의로 교화소에 갇힌 것도 빡치는데, 이젠 언데드 취급이냐?

“고향이 워낙에 추워야지 말이죠.”

그렇게 말하며 밤하늘 한구석을 바라보았다.

북부 대장벽에서 한 달 동안 살아봐라.

그 얼어붙은 땅에서 나고 자란 인간인데, 이 정도 추위는 애들 장난이지.

- 키이이!

그러는 사이, 작업을 전부 마친 스켈레톤들이 하나둘씩 사라졌다.

“우와! 도련님 저거 봐요!”

낮에 보았던 것처럼,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검은 석판.

그렇지만 아린의 목소리에 그곳을 본 내 입에서도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허, 이거 진짜….”

무늬 없는 검은 석판이 빛나고 있었다.

달빛에 반응하여 나타나는 은은한 빛.

그 빛이 그리고 있는 것은 하늘을 수놓는 수많은 별들의 움직임이었다.

“신기하네요. 이런 기술이 있다니.”

“제국이나 교단과는 달리, 아이신기오르는 달과 별을 숭배했으니까요.”

한평생을 떠돌아다니는 초원의 유목민들.

그런 그들이었기에, 밤하늘의 달과 별들은 더욱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길 잃은 자들을 인도하는 하늘의 이정표.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사막의 밤을 밝히는 자애로운 달빛.

파아앗-!

설명을 계속하던 중, 문에 새겨진 문양이 빛을 더했다.

“이건?”

“제가 있다는 걸 눈치챈 겁니다. 슬슬 준비해요.”

그렇게 말한 난 석판으로 다가가, 품속에서 유리병을 꺼냈다.

주르륵-

병에 담긴 것은 푸른 다리 부족의 족장, 티무르의 피.

옛 제국인의 피를 벽에 흘리자, 한곳으로 뭉친 핏방울이 문틈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 열어라.

마기를 담아 망자의 목소리를 냈다.

내가 흘려보낸 피는 죽은 자의 피가 아닌, 살아있는 생명을 머금은 피.

만일 내가 티무르를 죽여 그 피를 뿌렸다면, 이 문은 영원히 열리지 않았을 터였다.

쿠르르르르…!

예상대로, 티무르의 피를 감지한 유적의 문이 천천히 양옆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이 녀석을 쓰는 게 얼마 만인지.”

그렇게 말하며, 난 검집에서 천천히 검을 뽑았다.

스르릉-!

내가 뽑은 것은 노르드빈트가 아닌, 수정검.

달빛을 머금은 채 빛나는 투명한 검신은, 마치 보석으로 벼린 검을 보는 듯했다.

“유리로 만든 검이라니….”

“뭐, 감탄은 나중에 하시고.”

그렇게 말한 난 스텔라를 향해 입을 열었다.

“문이 열렸다고 해도, 이 안이 안전한 건 절대 아닙니다.”

지하로 통하는 시커먼 통로를 보았다.

멜디르 제국에 의해 멸망한 제국의 왕릉.

- 아아아아-!

밴시를 소환해 안으로 들여보내자, 곧바로 반응이 왔다.

왕릉의 규모는 웬만한 소도시 이상.

그 중심부에, 그들이 있었다.

‘쯧, 좋게좋게 갈 생각은 없구만.’

그들을 감지하는 것과 동시에 밴시가 사라졌다.

공격을 받은 것이다.

왕의 무덤은 도굴을 방지하기 위해 함정과 기관들을 설치하기 마련.

이 무덤 역시, 수많은 함정들이 멀쩡하게 남아서 칼날을 번득이고 있을 것이다.

파츳-!

그렇게 생각하며 난 수인을 맺어 언데드들을 불렀다.

- 크으으….

- 컹! 컹!

나 대신 길을 앞설 스켈레톤과 탐색을 위한 그레이브 하운드.

“그리고, 이런 때를 대비해 준비해 둔 이 녀석까지.”

츠츠츠츠…!

마기를 머금은 소환진이 빛났다.

희미한 푸른 빛은 룬을 타고 그 밝기를 더해, 이윽고 주먹만한 크기의 광구로 변해있었다.

우웅-!

길 잃은 망자를 안내하는 혼의 등불.

윌 오 위스프(Will-O’-Wisp).

“어, 뭐야. 이건 필요 없어요?”

그렇게 말한 스텔라는 아직 불이 붙지 않은 횃불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그거 들면 한 손이 비잖아요. 이런 폐쇄된 공간에선 그것만으로도 치명적이고.”

숙련된 네크로맨서가 만능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명마법을 유지하는데도 마력을 쓰는 마법사들과는 다르게, 이쪽은 소환만 해 두면 장땡이거든.

“왕릉 안에 뭐가 있을지 모릅니다. 함부로 행동하지 마세요.”

언데드들의 진형을 맞춘 난 마지막으로 그렇게 말했다.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그러는 사이.

내 말에 답한 스텔라는 자신의 손에 장갑을 끼웠다.

철컥!

이전에 잠깐 보았던, 미리암이 사용하던 전투용 건틀렛.

그것을 낀 스텔라는 손을 풀면서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언데드를 앞에 둔 신성교단의 성직자.

드디어 본연의 임무를 할 때가 온 듯, 그녀의 눈은 의욕과 사명감으로 불타고 있었다.

“전 두 명의 대행자에게 사사 받은 수녀입니다. 보호하실 필요는….”

“아니, 그거 말고요.”

그렇게 스텔라의 말을 끊었다.

“에?”

“예?”

서로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던 중.

질문을 확인하듯, 스텔라가 내게 물었다.

“‘위험하니까, 내 옆에 딱 붙어있어라!’ 그렇게 말하려는 거 아니었어요?”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난 당연히.

“약 먹었습니까? 제가 그쪽을 보호하게?”

얼굴을 팍 구긴 채, 무슨 말이냐며 그녀에게 되물었다.

‘누가 누구를 보호한다는 건지.’

미리암과 개리슨이 내 옆에 붙일 정도라면, 그 전투력이 어떨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내가 보호받아도 모자랄 판에, 붙어있긴 뭘 붙어있어?

“그럼 함부로 행동하지 말라는 게….”

그렇게 되묻는 스텔라를 향해, 난 잔뜩 떨떠름한 표정을 한 채 말했다.

“왕릉에서 나오는 금붙이, 유물, 기타 등등 돈 될 만한 것들.”

뜨끔.

“부정 타니까 그런 거 함부로 줍고 다니지 말라구요.”

내가 그렇게 말한 순간, 한창 의욕에 불타던 스텔라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

“…무, 무슨 말씀을.”

잠시 동안의 정적.

이윽고 스텔라는 도끼눈을 뜬 내 시선을 슬그머니 피하면서 말했다.

“시, 신성교단의 수녀가 이교도의 무덤을 도굴한다니요. 다, 당치도….”

“제 눈이나 똑바로 보고 말 하시죠.”

그렇게 말한 난 짧은 한숨과 함께 재차 강조했다.

“농담 아니니까 진짜로 챙기지 마요.”

“하나라도 몰래 챙기면, 어떻게 되는데요?”

내가 계속해서 강조하자, 스텔라가 내게 물어왔다.

‘미리 말해두길 잘했지.’

그렇게 생각하며 난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교단에서 매 분기마다 성찬 의식 하는 거 있죠?”

그렇게 말하자, 스텔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성찬 의식.

수확물을 내린 주신에게 감사하며, 음식을 바치는 일종의 축일이었다.

“의식 전에 제단에 놓인 음식 먹으면. 어떻게 됩니까?”

“수녀님께 혼나죠.”

어울리지 않게 즉답.

창백해진 스텔라의 얼굴을 보아, 그녀가 말하는 ‘수녀님’이 누구인지는 금방 답이 나왔다.

“이 안에 들어있는 물건들도 똑같은 겁니다. 허락 없이 훔쳐 가면 혼나요.”

물론, 허락을 받기 전이지만 말이야.

마지막 말을 삼킨 채, 왕릉으로 통하는 계단을 계속해서 내려갔다.

푸른다리 부족들한테 썼던 4천 골드에, 추가금까지 더해서 8천.

이 왕릉에서 전부 다 상환받을 거다.

***

파아앗-!

플리시안 지하에 위치한 공간이동 게이트.

그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글렉의 얼굴은 악귀와도 같았다.

“실패, 실패. 또 실패.”

실패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낙엽의 조직원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글렉의 오른손에 들려있는 것은 임무 실패를 보고한 조직원의 머리.

날붙이로 자른 것도 아니고, 실패 소식을 보고받는 동시에 손으로 뽑아버린 것이었다.

“어떻게 그 애새끼랑 엮이면 제대로 하는 일이 없지? 어?”

그럼에도 분이 풀리지 않은 듯, 글렉의 목소리는 점점 크기를 더해갔다.

“대답을 해 이 버러지 새끼들아-!”

퍽-!

수박 터지는 소리와 함께 들고 있던 머리통이 산산조각 났다.

피와 뇌수가 얼굴에 튀었지만, 도열해 있는 암살자들은 끝까지 부동자세를 유지했다.

손가락 하나 잘못 까딱하면, 그다음에 터지는 것은 자신의 머리가 될 테니까.

“1조 조장.”

“예.”

글렉의 부름에 곧바로 고개를 숙인 남자가 말했다.

“플리시안 수도에 은신처 확보, 정보망 구축까지 전부 완료했습니다.”

“그래. 그래도 아주 머저리들만 있지는 않았구만.”

임무를 성공했다는 말에 기분이 조금은 풀린 듯, 글렉이 쯧 하고 혀를 찼다.

“새 자금원은 누구지? 꽤 거물이라고 들었는데.”

그렇게 말하자 보고를 올린 남자에게서 뜻밖의 이름이 올라왔다.

“엘프란 아일라시스. 전대 아일라시스 공작입니다.”

“……뭐라고?”

자신이 잘못 들었냐는 듯, 글렉이 되물었다.

엘프란 아일라시스.

제국 3대 공작가 중 하나이자, 대륙 최대의 마법명가인 아일라시스 공작가의 가주였다.

“‘전대’ 공작이라니, 그게 무슨 개소리야?”

엘프란의 연배는 라인란트 공작인 하인켈과 비슷하다.

늙긴 했으나, 공작위를 넘길 정도로 쇠퇴하진 않았을 터.

게다가 정보에 따르면, 후계자인 아이긴은 너무 어리지 않은가?

“공작위를 빼앗긴 채, 플리시안으로 몸을 숨긴 상황입니다.”

그 말에 글렉은 더 알 수 없는 기분이 되었다.

“공작위를 빼앗기다니? 그럼 지금 아일라시스 공작은 누구인데?”

그렇게 묻자, 남자는 잔뜩 굳은 얼굴로, 글렉을 향해 입을 열었다.

“시엘 라 아일라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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