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초원은 영원히 우리를 기억하리라(2)
“이런 미친, 저건 또 뭔…?”
처음 보는 광경에 욕지거리가 절로 나왔다.
남자의 이름은 티무르.
동부 사막의 가장 큰 부족인 푸른다리 부족의 족장이었다.
“뭐, 뭐야?!”
“티무르! 저건 대체!”
밤중에도 빠짐없이 감시했었다.
여자 둘, 남자 하나.
특별히 주의하라는 말에 인원도 부족하지 않게 준비했다 자신했다.
그런데, 도대체 저것은 뭔가.
왜 적의 수는 수천 명으로 불어났으며.
하늘에 떠 있는 저건 또 뭐란 말인가?
“괴, 괴물이다!”
사람 크기만한 거대한 올빼미가 날아오고 있었다.
거대한 날개를 활짝 펼친 채, 자신들에게로 쇄도하고 있었다.
- 끼이이이이-!
“창 준비해 새끼들아! 어, 어떻게든…!”
재빨리 부하들에게 지시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쾅-!
뒤따르던 무리 중 일부가 괴조의 돌진에 맞아 전열을 무너트렸다.
“티무르!”
“젠장, 도망쳐! 괴물이다!”
“으, 으아악?!”
땅에 내려앉은 괴조를 향해 몇몇 전사들이 검을 휘둘러봤지만, 역부족이었다.
- 끼이이이-!
검은 날개가 그들의 몸을 후려치자, 전사들의 몸이 속절없이 하늘을 날았다.
도저히 대처할 수가 없는 완력이었다.
콰득!
그러던 중, 거대한 맹금의 발톱이 전사 중 한 명을 낚아챘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검은 괴조는 그대로 한 명을 낚아채 하늘 위로 튀어 올랐다.
“우, 우와아악-!”
“울란!”
동료 중 한 명이 순식간에 사라지자 그들의 눈에 당혹감이 서렸다.
사막에서 온갖 적들과 싸워왔다 자부한 그들이었지만, 하늘이라니?
그들로서는 어찌할 수도 없는 불가항력이었다.
후두두둑-!
거기에 더해, 포진한 언데드들이 쏘아대는 쿼렐.
일반 활의 세 배는 되는 강력한 철시에, 선두에서 달리던 전사들이 그 자리에서 거꾸러졌다.
“크아악?!”
“궁병에, 방패로 진을 쳤습니다!”
“제길, 도대체 뭐 하는 인간이야?!”
거북이의 등갑처럼 얽힌 방패벽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수가 너무 많습니다! 후퇴하는 게…!”
“씨발, 할 수 있으면 진작에 했지!”
그렇게 외친 티무르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의뢰에 선금까지 받았는데, 여기서 도망치면 체면이 안 서지!”
그렇게 말한 그는 자신을 따르는 전사들을 향해 명령했다.
“전원 산개!”
티무르의 명령에 2백 명의 기수가 대형을 이룬 채 내달렸다.
투투투투투-!
점점 가까워지는 방패벽.
부딪힌다면, 그들이 탄 말과 함께 산화할 터였다.
“클라인 공자만 잡으면 끝난다. 알지?!”
“예!”
그렇지만 그들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방패벽을 향해 자신들의 말을 부딪혔다.
투콰아앙-!
전차와 같은 속도.
충격을 버티지 못한 말들은 곧바로 창에 꿰뚫려 절명했다.
“으아아아아-!”
그렇지만 충격에 의해 대열에 생긴 작은 틈.
전사들은 그 작은 틈을 놓치지 않았다.
“모두, 뛰어들어!”
말을 타고 있던 기수들이 일제히 위로 튀어 올랐다.
방패벽이 없는 머리 위.
예상한 대로, 은발 머리의 소년이 공중에 떠오른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콰직! 콰득-!
- 크아아아-!
- 키이이이이-!
침입을 허용한 탓일까.
검을 든 해골들이 전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팔꿈치까지 오는 짧은 검.
집단전에서는 최적의 무장이었다.
“티무르! 이놈들…!”
“해골입니다! 스켈레톤이에요!”
“스켈레톤?!”
죽은 자의 뼈를 얽어 만들어낸 해골인형.
그 말에 키무르의 눈에 한 줄기 희망이 비췄다.
“네크로맨서였군. 그렇다면 잘 됐어!”
언데드로 짠 진형으로 소모전을 거는 것이 네크로맨서.
그렇지만, 자신과 전사들은 이미 진형을 돌파하고 중추에 파고들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승기를 잡은 것은 검을 든 자신들이었다.
‘같잖은 눈속임으로 우릴 농락했겠다…!’
방금 전 대형을 습격한 괴조.
그것을 떠올리자 부아가 절로 치밀었다.
“클라인 공자. 맞지?”
“아니라고 하면 그냥 보내주나?”
상황을 모르는 듯, 태연자약한 얼굴을 한 클라인이 말했다.
자신들을 품평이라도 하는 듯한 말투.
건방지기 짝이 없었다.
“산 채로 데려오라고 했는데, 사지 멀쩡히 데려오라는 말은 없었거든?”
상대가 네크로맨서라면 대처법은 간단하다.
술자를 죽이면 될 뿐!
“팔다리를 전부 도려내 주마!”
티무르의 곡도가 클라인의 목을 향했다.
이 간격은 검사의 영역.
네크로맨서가 대처할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아니었어야 하는데.
카앙-!
“뭣?!”
불꽃이 튀었다.
두 검이 맞부딪히며 나온 불꽃.
자신의 검로가 비틀리자, 티무르의 눈에 당혹이 일었다.
“어째서 네크로맨서가 검을…!”
“주 전공은 아닌데, 어깨너머로 배웠지.”
짧은 농담과 함께 클라인의 검이 티무르의 목을 노렸다.
“크윽?!”
예상치 못한 상황에, 예상치 못한 곳으로 찔러 들어오는 검.
곧바로 마력을 끌어올려 놈의 검을 틀어냈다.
키리릭?!
정확히는, 틀어내려 했지.
“뭐라…?”
티무르의 눈이 부릅떠졌다.
기괴한 각도로 휘어 찔러 들어오는 세 번의 검격.
카카캉-!
검을 얽어맨 뒤 아래로 내려봤지만, 소년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다음 동작을 연계했다.
“저 기술은…!”
낯선 소년이 펼치는 익숙한 검술.
하지만 부족의 장을 맡은 그는 알 수 있었다.
마치 뱀처럼 이리저리 휘어 검로를 농락하는, 사막 전사들의 비기.
흉사(凶巳).
캉-!
검을 쳐내는 것과 동시에 소년이 이를 악물었다.
검의 깊이가 부족했던 것인지, 그의 검은 마력을 담은 자신의 수비를 뚫어내지 못했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그렇지만 티무르에게 그건 더 이상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저 소년이 구사한 검술.
방금 그가 막아낸 그것은, 잃어버린 옛 성현의 검술이 아닌가?
“크으!”
의문은 잠시 접어둔 채 곧바로 달려들자, 클라인의 표정이 구겨졌다.
카카카캉-!
쉴 새 없이 퍼부어지는 연격.
그렇지만 검을 맞대면 맞댈수록, 티무르의 의심은 점점 확신이 되어가고 있었다.
“레이븐!”
그러는 사이, 클라인은 허공을 향해 누군가의 이름을 외쳤다.
거기에 의문을 표하는 것도 잠시.
웅혼한 마력을 담은 검이 그를 향해 쇄도했다.
쿠콰아아앙-!
“크악?!”
자신의 검이 버티지 못할 정도의 강격.
마력을 담지 않은 저 소년의 검과는 차원이 다른 일격이었다.
촤아악-!
충격파에 밀려 나갔음에도 그의 자세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는 푸른 다리의 족장.
무력으로는 대륙의 기사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자였다.
- 버텨냈군. 여간내기가 아닌데.
그림자에 휩싸인 갑옷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전황은 이미 기운 상황.
기사는 천천히 검을 세운 채, 마무리 일격을 준비했다.
“그, 그 검술!”
“뭐?”
다시 한번 들어온다면, 막을 수 없는 강격.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지만, 그는 참지 못한 채 질문을 내뱉었다.
“방금 사용한 그 검술, 그걸 어디서 익혔소!”
말투까지 바뀐 채 내밀어진 질문.
그러자 되려 어리둥절해진 것은 클라인이었다.
“아니, 다짜고짜 쳐들어 와놓곤 그게 뭔….”
“대답해!”
소년을 향해 일갈했다.
계속되던 전투 중에 생긴 잠깐의 틈.
자신의 질문에 관심이 생긴 듯, 미심쩍은 표정을 한 클라인이 말했다.
“삼촌한테 배운 건데, 뭐 문제 있냐?”
“……!”
삼촌.
그 말을 들은 티무르는 더 이상 싸울 의지를 다지지 못했다.
“엥?”
그가 검을 내리자, 갑자기 무슨 짓이냐는 듯 소년이 앓는 소리를 냈다.
“야, 싸우다 말고 뭐해? 거의 다 잡았는데….”
그렇지만, 갑작스러운 것은 그의 행동뿐만이 아니었다.
“전원, 전투 중지!”
그는 별안간, 그와 함께한 전사들에게 전투를 중지하라 명령한 것이다.
“티무르?!”
“무슨 말입니까?! 우린 아직 싸울 수 있는데…!”
그의 외침에, 티무르의 부하들이 무슨 소리냐는 듯 되물었다.
땡그랑-!
그렇지만 티무르의 행동은 더욱 이상해졌다.
적을 눈앞에 둔 채, 그 자리에서 무기를 버렸으니까.
“……!”
부하들의 의문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클라인을 향해 몸을 낮춘 그는 이윽고.
“사형-!”
피를 토하는 듯한 외침과 함께, 클라인을 향해 부복했다.
***
자. 당황하지 말고.
잠시 상황을 정리해보자.
어제부터 날 미행하던 추격자가 있었고.
그놈들이 노을 오후에 날 습격했다.
당연히 이 모든 것을 예상하고 있었던 난, 곧바로 언데드를 불러 대응했지!
날 미끼로 삼아서 단번에 잡을 생각으로 말이야!
그리고 거의 다 잡아가던 도중에, 갑자기 얘가 내 검술에 관심을 보이네?
뭔가 싶어서 말을 해 줬더니, 갑자기 엎드려서 날 향해 사형이라고 부르네?
….
…….
……….
아니, 이게 대체 뭔 상황이야?
“티, 티무르?!”
다행히도 상황 파악이 안 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갑자기 뭐합니까? 그렇게 살고 싶어요?!”
“빨리 일어나십쇼! 아님 우리가 등 뒤에서 찌를 겁니다!”
날 습격한 남자의 이름을 외친 다른 놈들 또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들이었으니까.
“시끄럽다! 너희들도 빨리 와서 엎드려!”
“예, 예?!”
그리고 이어지는 티무르의 외침에 그들의 표정은 더욱 울상이 되어갔다.
물론, 그걸 보고 있는 난 더 어리둥절할 따름이고.
- 어떻게 할 텐가?
대기 중이었던 레이븐의 목소리가 들렸다.
- 적장이 무방비 상태일 때 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 생각한다만.
“그렇긴 하지.”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게 맞지.
이놈들이 날 뭐라 착각했든, 그건 내 알 바가 아니었으니까.
“잠깐 기달려 봐.”
이곳은 옛 아이신기오르 제국의 왕릉.
그리고 저들의 혼의 파장은, 이 아래에 잠든 혼들의 그것과 일치한다.
말인즉, 저 유목민들은 옛 제국의 유민이라는 뜻.
‘다른 곳도 아닌 이곳에서, 저들을 죽인다면….’
테르친에 맨 처음 도착했을 때 목격한 미라들을 떠올렸다.
이 왕릉을 파헤치려 한 도굴꾼들.
‘옛 제국인의 피가 필요하지만, 억지로 뽑아낸 피는 역효과라는 말이지.’
그들을 죽인 것들을 떠올린 난, 손을 들어 언데드들의 공격을 중단시켰다.
“어, 어?”
“뭐야, 왜 갑자기….”
내가 공격을 멈추자, 전사들 또한 어리둥절해하며 천천히 무기를 내렸다.
“어떻게 된 거예요?”
아린과 함께 멀찍이 떨어져 있던 스텔라가 내게로 다가오며 물었다.
“있어 봐요. 나도 지금 대책이 안 서니까.”
생각을 해봐라.
죽일 것처럼 싸우더니, 갑자기 나한테 사형이니 뭐니 개소리를 하는데.
상황이 이해가 되겠냐?
“사형이라고 했지?”
“맞습니다!”
상대가 이렇게 나오는데 죽자고 덤벼들 수도 없는 노릇.
뒤통수를 긁적이며 남자를 향해 물었다.
“날 그렇게 부르는 이유는?”
내 질문에 남자는 고개를 숙인 채로 답했다.
“당신이 사용하신 검술!”
“???”
검술?
속으로 되물으며 방금 전 있었던 전투를 복기했다.
제국과는 달랐지만, 그들의 검은 이안이 내게 알려준 수많은 검술 중 하나.
그리고 특정 유파의 검술을 파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같은 검술로 상쇄하는 것.
그런 논리에 따라 사용한 것뿐인데….
“우리 부족의 전통 검술입니다!”
……뭐?
“족장과 그 후예들에게만 전해 내려오는 비전입니다!”
뭐라고?
“그마저도 이제는 실전되어, 기억하는 이가 없는 비급입니다-!”
아니, X발 잠깐만.
…진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