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103화 (103/209)

103. 관문도시(3)

쿠콰아앙-!

식당의 한쪽 벽면이 터져나가며 그레이브 하운드들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가게 뒤집어놓은 건… 몰라. 지들이 알아서 하겠지.’

저쪽이 먼저 치고 들어온 거니, 난 잘못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사냥개들과 실랑이 중인 암살자들에게 달려들었다.

“젠장, 이게 무슨?!”

“대기 중인 인원들을 먼저 노리고 있다!”

“이런 건 보고에 없었잖…! 크아악?!”

레이븐과 내 검이 허공을 그을 때마다 암살자들의 팔다리가 하늘을 날았다.

- 전부 죽이면 안 될 텐데?

“말단은 필요 없어. 대가리 하나만 살려놓으면 돼.”

그렇게 말하는 내 시선은 처음 만난 남자에게로 향해 있었다.

- 키이이이이-!

“스켈레톤까지…!”

추가로 튀어나온 수십 구의 스켈레톤이 남자를 포위했다.

“거리 유지하고, 머릿수로 찍어눌러.”

명령과 함께 스켈레톤들의 무장을 전환시켰다.

단단한 플레이트 메일과 손발을 구속하기 최적의 형태인 넓은 삼지창.

암살자들에게는 쥐약이나 다름없는 무장이었다.

“치잇-!”

낭패한 듯 남자가 몸을 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 컹-! 컹-!

이미 포식을 마친 사냥개들이 식당을 빈틈없이 포위한 상황.

사면초가였다.

“혹시나 말하는데, 죽으면 더 죽고 싶어질 거다. 그러니까 얌전히….”

그렇게 말하며 놈에게 다가가던 순간.

“우습게 보지 마라, 네크로맨서!”

카앙-!

불꽃이 튀며 날 향해 밀고 들어온 대검을 막아냈다.

‘클레이모어?’

찔러 들어오는 검을 비틀어내며 생각했다.

암살자가 양손검이라니.

의외의 무장에 놀라는 사이, 곧바로 2격이 들어왔다.

카앙-!

특별한 초식이나 검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순수한 힘만을 활용한 올려치기.

그렇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기교에 치중된 내 검술을 상대하기엔 최적이었다.

쿠콰콰쾅-!

펑-!

남자의 검을 빗겨낸 곳이 통째로 터져나갔다.

오른팔에 전해지는 저릿한 감각.

‘완력으로만 따지면 델라인 이상이다. 뭔 놈의 암살자가…!

기괴했다.

기척을 죽인 채 빠른 몸놀림으로 숨통을 끊는 것이 암살자일 터.

그렇지만, 날 습격한 남자의 모습은 오히려 그 반대였다.

“상처 없이 데려오라는 명령이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남자의 대검이 날 향해 내리꽂혔다.

카아앙-!

정면으로 내리치는 검을 막은 것은 레이븐이었다.

“데스나이트! 치졸한 수를…!”

“아니, 그게 지금 니들이 할 소리냐?”

어처구니가 없어 소리쳤다.

지들은 밥 먹을 때 쳐들어와 놓고는!

그러는 사이, 레이븐의 검이 남자를 후려쳐 밀어냈다.

쿠당탕탕!

식탁과 의자들을 박살 내며 날아간 남자가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레이븐의 검을 정면으로 맞고도 그 몸은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 사람이 아니라 바위를 때리는 느낌이군. 영체가 아니었다면 검이 부서졌겠어.

레이븐의 목소리와 함께 잔해 속에서 걸어 나온 남자가 몸을 툭툭 털었다.

여행복 아래에 모습을 감추고 있던 것은 풀플레이트 흉갑이었다.

“점점 더 암살자와는 거리가 멀어지는구만.”

목격자만 없으면 암살이니, 무장은 상관없다 이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거기까지.”

사냥개들이 도중에 놓친 것일까.

스산한 암살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검은 옷을 입은 남자는 식사에 한창이던 아린에게 칼을 겨누고 있었다.

“도련님!”

“어, 괜찮아. 가만히 있어.”

내가 당황한 것이라 생각한 듯, 갑옷을 입은 남자 역시 이를 드러내며 내게 말했다.

“우리가 얻은 정보는 네 힘뿐만이 아니다.”

인질을 잡았다고 생각한 탓인지, 그들의 목소리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폴와이번 영지로 떠날 때, 넌 저 하녀와 같은 마차를 이용했다.”

“일개 하녀를 저렇게까지 가까이한다는 건, 그만큼 이 아이가 소중하다는 뜻이겠지?”

기고만장하게 소리치는 그들의 말에 내 얼굴은 점점 더 괴상해져 갔다.

‘아니, 그, 소중한 건 맞는데….’

저 상황을 뭐라고 표현해야 하려나.

고블린들 피한답시고 오우거 굴에 들어간 꼴?

“와! 그런 거예요? 저 그렇게 소중해요?”

“조용히 해!”

천진난만한 아린의 모습에 남자가 곧바로 윽박질렀다.

“얌전히 따라오시오. 공자, 그렇지 않으면 이 하녀가…!”

아린을 잡아당긴 남자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뿌득.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남자가 쥐고 있던 단검이 떨어졌다.

“꺽, 꺼억…?”

기척조차 감지하지 못한 듯, 남자의 눈이 크게 뜨였다.

“이 하녀가…?”

남자가 그렇게 말하던 것도 잠시.

털썩.

아린을 잡고 있던 남자는 그대로 눈을 까뒤집은 채 절명했다.

‘그래도 사람들 보는 앞에서 먹지는 않네.’

죽은 남자를 보며 입맛을 다시는 아린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오! 언니 어디 갔다 왔어요?”

그 사이, 식당 안으로 들어온 스텔라를 보며 아린이 말했다.

“숨어있었어요. 나서봤자 방해만 될 거 같아서.”

태연한 어조였지만, 거짓말이었다.

전투 도중, 보고를 위해 도망치던 놈들이 다섯 명.

그들의 생명 반응이 사라져 있었다.

‘개리슨이 스승이라고 하더니, 허언이 아니로군.’

대행자를 인간병기라도 부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하늘에서 내리꽂히고, 단숨에 수십 미터를 주파하는 압도적인 기동성.

근거리 교전을 전문으로 하는 기사와는 전혀 다른 영역에 있는 전투법이었으니까.

카카캉-!

“크윽?!”

그러던 중.

데스나이트인 레이븐은 특유의 쾌검으로 남자를 압도하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언데드가 어떻게 이런 검술을…!”

기사의 혼이나 시체를 소재로 만들어내는 데스나이트.

그렇지만 그중 대부분은, 같은 마력 등급을 지닌 기사를 이길 수 없었다.

‘진짜 기사와 데스나이트를 가르는 가장 큰 차이는 검술이지.’

네크로맨서의 대부분은 검술에 대해선 문외한.

언데드에게 검술을 주입하는 방법을 알 턱이 없다.

‘하지만, 내 언데드는 달라.’

종속을 기본으로 하는 기존의 사령술과는 달리, 아키몬드의 사령술은 계약을 기본으로 한다.

혼의 의지를 지우지 않고, 망자의 기억을 복구한다는 뜻이지.

생전의 기억을 가진 채, 자신의 의지로 움직이는 언데드.

시체를 기워 만든 인형 따위와는 격 자체가 다르다.

스걱-!

“크아악?!”

두 검사의 대결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마력을 머금은 레이븐의 검이 남자의 손목을 잘라냈고, 남자는 고통에 무릎을 꿇었다.

“좋아. 대가리를 붙잡았으니….”

그렇게 말하며 남자에게 다가가던 중.

“…잠깐만.”

눈을 흘긴 난 곧바로 그가 두르고 있던 검은 로브를 들춰 보였다.

“크으…!”

내 행동에 당황한 듯, 남자가 침음성을 흘렸다.

“허, 이것들 좀 보게?”

남자?

아니지. 그렇게 말하면 이 남자에게 실례다.

위대하신 제국의 기사님이라고 불러줘야지.

“보아하니 황가 직속은 아닐 테고.”

황제는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멜디르 황제는, 이런 식으로 사람을 떠보는 자가 아니니까.

“테레인 변경백의 기사로군?”

테레인 탈리크.

이곳 영주의 이름이 흘러나오자 정곡을 찔린 듯, 기사가 내 시선을 피했다.

“제국 귀족이라는 인간이, 저런 시궁쥐 새끼들이랑 어울리나?”

“뭐라고…!”

짧은 도발에 기사가 반응하자, 내 의심은 확신으로 변했다.

‘자,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냐는 건데….’

웃는 낯이었지만 머릿속은 조금 복잡했다.

변경백의 기사를 건드렸다는 말은, 그가 날 붙잡을 빌미를 주었다는 뜻.

이 기사를 보낸 것 또한 계산된 행동일 것이다.

- 손목을 자른 건 좀 심했나?

“아니, 아마 털끝만 건드려도 잡아가겠다고 난리를 쳤을걸.”

레이븐의 말에 답하며 생각했다.

‘순례한다는 놈이 언데드로 변경백이랑 전쟁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순순히 잡혀줄 수도 없다.

어떻게 할지 생각을 거듭하던 중.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가는 광경이 하나 있었다.

‘저주다…! 사막의 저주야…!’

테르친에 들어왔을 때, 성 안으로 실려 들어온 미이라들.

“…그래, 그러면 되겠네.”

그냥 사막으로 유인한 다음, 왕릉 근처에서 죽여버리면 되잖아?

‘영지에 소문도 파다하고, 없는 얘기도 아니니까.’

그렇게 생각한 난 짧은 한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적어도 이틀 정도는 쉬다 갈 생각이었는데 말이지.”

다행히도 사막을 횡단하기 위한 준비물은 식당 앞에 준비된 상황.

“아린.”

“네!”

이름을 부르자, 아린은 한쪽 손을 번쩍 든 채 내게서 다가왔다.

“수녀님은 뭐하시냐.”

“사람들 주머니 뒤져요!”

괴상한 표정을 한 채 아린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죽은 암살자들의 시체에서 금화를 주섬주섬 챙기는 스텔라가 보였다.

“…….”

“……….”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던 끝에 먼저 입을 열었다.

“뭐합니까?”

“……습격당했다는 증거품 수집이요.”

“그럼 옷조각이나 무기를 챙겨야지, 주머니에 돈은 왜 뒤지는데요?”

그렇게 말하자 잠시 말이 없던 스텔라는 이윽고.

“이번 달 월급이 안 나와서요.”

결연한 표정을 한 채 그렇게 말했다.

“하아…….”

지끈거리는 이마를 부여잡았다.

아니, 미리암도 그렇고.

신성교단 수녀들은 다 저 모양인가?

왜 정상인이 한 명도 없지?

“됐고, 밖에 나가서 낙타 한 마리 잡아요.”

그렇게 말한 난 스텔라를 향해 주머니 하나를 건넸다.

“이건…?”

주머니 안에 든 것은 나무를 깎아 만든 룬 문자.

검게 물들어있는 나뭇조각을 본 스텔라가 설명을 요구하듯이 날 바라보았다.

“말했잖아요. 사막에 귀신 나온다고.”

테르친으로 향하는 틈틈이 만들어둔 부적.

룬이 뜻하는 것은 수호였다.

“잠깐만요. 이걸 저한테 준다는 건….”

흠칫 표정을 굳힌 스텔라가 날 바라보았다.

“뭐긴 뭐겠어요.”

그녀의 기대에 부응하듯, 밝은 미소와 함께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짐 싸세요. 사막으로 갑시다.”

***

투두두두두!

거친 말발굽 소리가 텅 빈 사막을 가로질렀다.

가쁜 숨과 침을 사방에 흩뿌리는 말.

이미 한계에 다다른 것이 분명했지만, 기수는 그것을 모르는 듯 끊임없이 말을 재촉하고 있었다.

허억…! 허억…!

기수는 이 사막에서 30년을 살아온 자였다.

그가 탄 말 또한, 그와 함께 대륙 곳곳을 함께 누빈 지 10년이 다 되어가고 있는바.

그의 말이 얼마나 달릴 수 있는지.

모래사막에선 어떻게 달려야 하는지.

부족의 실력 좋은 기수인 그가 그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젠장… 젠장…!”

히-히히히힝!

“으, 으아악?!”

그런 광란의 질주가 얼마나 계속되었을까.

콰드득-!

끝내 버티지 못한 그의 말이 고꾸라져 모래 속으로 파묻혔다.

“아아악…!”

일반적인 기수였다면 그 자리에서 즉사해도 이상하지 않을 사고.

그렇지만 그는 지금,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증오했다.

낙마하는 그를 받아낸 사막의 모래가 너무나도 저주스러웠다.

차라리 지금 죽었다면 편했을 텐데.

차라리 여기서 목이 부러져 죽었다면.

자신을 쫓고 있는 저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죽을 수 있었을 텐데!

쿠구구구구…!

그러는 사이, 그를 쫓던 어둠이 그의 지척에 다다랐다.

어둠.

그는 자신을 쫓는 미지의 존재를 단지 어둠이라고만 생각했다.

쿠르르르르르-!

소리가 들렸다.

한평생을 말 위에서 살아온 그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소리였다.

“온다…! 온다……!”

두 다리를 굴려 도망치는 그에게 점점 가까워지는, 절망적인 소리.

콰르릉-!

시퍼런 벼락이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줄기줄기 갈랐다.

“잘못했습니다…! 제발! 제발 용서를…!”

후회와 한탄으로 가득한 애원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가지 않았으면 좋았다.

옛 부족장들의 말을 들었으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터인데…!

퍼석-!

공포는 길었으나, 고통은 짧았다.

기병창에 꿰뚫린 그의 몸.

가슴팍을 깨부순 시커먼 창날이 그의 몸을 들어 올렸다.

- 우리를 잊은 자 누구인가!

거센 음성이 울려 퍼졌다.

그 목소리에 답하기라도 하듯, 구름 밖으로 나온 월광(月光)이 하늘에 떠오른 그의 육신을 비췄다.

- 초원의 정복자, 케르시크를 잊은 자가 누구인가!

오오오오오오-!

수천 줄기의 창날이 하늘을 수놓았다.

- 잊혀진 제국의 성전을, 흙발로 더럽힌 자들이 누구인가!

둥근 월광 한가운데에 떠오른 산 자의 시신이 입을 벌렸다.

성전을 파헤치려 한 그는 파묻힌 자들을 위한 제물이요, 잊혀진 자들을 위한 만찬일지니.

- 우리를 기억하라! 케르시크를 기억하라!

원수의 피를 음미한 기수들이 얼굴을 가린 장막을 벗어던졌다.

쿠오오오…!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그림자, 연기, 혹은 혼의 잔재.

- 이 초원이, 영원히 우리를 기억하고 있느니라!

함성 소리와 함께 목 없는 기수들의 포효가 온 사막을 메꿨다.

화아악-!

그리고 새벽 동안 이어진 그들의 만찬이 끝나고 동이 튼 순간.

사막은 처음부터 그들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조용하고 평온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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