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101화 (101/209)

101. 관문도시(1)

소녀가 태어난 곳은 빛 한점 들지 않는 암굴이었다.

“…….”

철창 속에 갇힌 그들의 삶은 사람이 아닌 짐승의 것이오.

다만 너무나도 어린 그녀는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조차도 알 방도가 없을 뿐이었다.

콰아앙-!

그러나 그날을 기점으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지금이야! 모두 도망쳐!”

희망 없이 텅 빈 동공이 한데 모인 어른들의 모습을 담았다.

그녀와 같이 피골이 상접한 이들.

죽은 자신의 어미를 끌어안고 오열하던 아버지는 이제 없었다.

“죄수들이 도망친다! 잡아!”

“지, 지하에서 뭔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저걸 먼저…!”

위로 올라가려는 수많은 죄수들과 그들을 막으려는 크리펠의 심판관들.

으직!

그들이 휘두르는 철퇴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려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평소에는 그리도 두려워했던 심판관들의 매질.

그렇지만 지금 이들의 눈에선 그런 두려움을 찾아볼 수 없었다.

지금이 아니라면 기회가 없었으니까.

지금이 아니라면, 이곳에서 실험체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으니까.

“이 이교도 놈들이, 어디서 탈출을…!”

“이교도는 지랄.”

상층으로 향하는 입구를 막아선 심판관들을 향해 목소리가 들렸다.

“길 열어 새끼들아. 시간 없어.”

이제 막 소녀 또래가 된 듯한 소년.

먼지 속에 파묻혀 있어도, 특유의 은색 머리칼은 제 빛을 잃지 않고 있었다.

“웃기는 소리!”

“감옥으로 돌아가라! 너희는…! 우, 우와아악?!”

소년을 향해 윽박지르던 심판관의 말이 멎었다.

구륵. 구륵.

“저, 저게 뭐야…?”

“신이시여…!”

그림자가 소년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촉수와 이빨로 가득 들어찬 그림자.

천천히 다가오는 그것을 보자, 심판관들의 전의는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히, 히이익?!”

“괴물! 괴물이다-!”

정신없이 도망가는 것은 심판관들뿐만이 아니었다.

“꺄악?!”

혼비백산한 채 도망가는 죄수들의 등쌀에 밀려, 소녀의 여린 몸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괴물이 뭐야, 괴물이. 애 상처받게.”

저 멀리 멀어지는 죄수들을 보며 퉁명스레 내뱉은 소년이 그림자를 향해 말했다.

“가능한 한 보호해 줘. 먹지 말고. 알았지?”

그림자는 알아들었다는 듯, 소년을 지나쳐 위층을 향해 쏘아져 갔다.

“신부 놈이 있으니 위쪽은 곧 정리될 테고….”

그렇게 중얼거리던 소년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자, 너도 일어나.”

작은 손이 내밀어졌다.

소녀는 한동안 망설이던 끝에 그것을 잡았다.

“밖으로 나가면 사람들이 있을 거야.”

그렇게 말했음에도 소녀는 별 다른 반응이 없었다.

“이럴 시간 없어. 지금 안따라가면….”

“따라가면, 뭐가 달라져요?”

소년의 말을 끊고 말했다.

“엄마 아빠도 없는데…. 위에 뭐가 있는지도….”

그녀에게는 이곳이 세상의 전부였다.

어둡고 축축한 암굴.

그렇기에 이곳을 벗어난다는 것은, 심판관들이 행하는 모진 매질보다도 더 두려운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럼, 달라지지!”

호언장담하듯, 소년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 인생이라는 게, 일단 살아만 있으면 어떻게든 되는 법이거든!”

자신과 같은 일곱 살 꼬맹이 주제에, 인생이 어쩌고를 논하다니.

지금 생각하면 우스웠지만, 당시의 소녀는 그 말에서 한 줄기 희망을 보았다.

“그러니까, 후딱 올라가 봐.”

텅 빈 계단 끝에서는 미미한 빛이 흘러나왔다.

“올라가서 아득바득 살아가다 보면, 좋은 날이 찾아올 테니까.”

소년이 소녀의 손을 잡아끌고, 빛을 향해 나아갔다.

그녀가 느낀 최초의 빛이었다.

***

“꾸꾹-!”

“히히! 여기야 여기!”

앞장서서 방방 뛰어놀고 있는 아린과 아울.

그리고 주머니 가득 들어찬 돈주머니를 보니 마음이 절로 푸근해졌다.

“어떻게 한 거예요?”

“…….”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치는 저 질문에, 내 푸근한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그러니까, 주사위를 어떻게 굴리면 연속으로 세 번을….”

“시끄러워요.”

교국 중앙교구를 벗어나 동북 지방으로 향하는 도로에 오르기까지.

입만 열면 도박 좀 알려달라고 난리를 치는데, 내 속이 꼬이지 않을 리 없다.

“말했잖아요. 사기에는 사기로 응수했을 뿐이라고.”

광장에서 벌어졌던 주사위 내기를 떠올리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니까요. 어떻게 자기 맘대로 주사위 눈을 바꾸냐는 거에요.”

계속해서 방법을 알려달라는 스텔라를 향해 비꼬듯 말했다.

“알려주면. 그거로 뭐 사기라도 치시게요?”

그렇게 말하자 돌아온 대답이라는 게.

“당연하죠.”

“…….”

죽어도 안 알려준다.

알려주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물주머니에 담긴 물로 목을 축이며 난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그나저나 이거….”

그러는 동시에, 난 내 오른손에 들려있는 지도를 보았다.

“길 한번 무식하게 짰네.”

교단이 지급한 순례지도.

그곳에 표시된 경로를 보며 난 피식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문제가 있나요?”

그런 내 기색을 눈치챈 것인지, 어느새 내 옆으로 바짝 다가온 스텔라가 물어왔다.

‘처음 본 인간한테 왜 이리 들이대?’

거리감을 종잡을 수가 없네.

그렇게 생각하면서, 난 지도를 이리저리 흔들어댔다.

“이 지도를 만든 인간은 대륙 동부에는 한 발자국도 안 가봤을 겁니다.”

그렇게 말하자 스텔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단순한 경로만으로 그걸 알 수가 있나요?”

“그럼요.”

그렇게 답한 난 손가락을 들어 지도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여기 경로를 보면, 플리시안 국경에 도착하기 위해선 동부 사막 중심부를 지나쳐야 하죠?”

그렇게 말하자 스텔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이 지도가 엉터리라는 겁니다.”

그렇게 말한 난 손가락으로 사막의 정 중앙을 가리켰다.

“여기 중심부는, 아이신기오르 제국의 왕릉이 있거든요.”

아이신기오르 제국.

그 말을 들은 스텔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잠깐, 역사 시간에 이런 거 안 배워요?”

“예.”

난 그런 그녀의 반응을 보며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공작가에서 붙여준 역사 교수라는 놈도 별반 다르지 않았지.’

아이신기오르 제국.

지금은 사막이 되어버린, 대륙 동부 초원지대에서 태동한 대제국.

전성기에는 대륙의 7할에 달하는 광활한 영토를 자랑하던 국가였다.

그리고 당시 신흥국이었던 멜디르 제국과 그에 동조한 대륙 연합에 밀려 멸망한 제국이었다.

‘이젠 이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도 없는 건가.’

기억하는 이들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역사를 지우고 있는 것인지.

내 짐작으로는 후자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다.

“그런데, 그 왕릉이 왜 문제라는 거에요?”

“그야 당연히…….”

그렇게 말을 흐린 난 스텔라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여기 귀신 나오는 곳이거든요.”

“…….”

내 말이 끝나자, 잠시 말이 없던 스텔라가 도끼눈을 뜬 채로 말했다.

“혹시 어디 가서 농담하려고 하지 마세요. 저니까 이런 거 받아주는 거니까.”

“받아주고 나서 그런 소리를 하세요.”

스텔라의 말을 받아치던 내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리고, 농담하자고 하는 소리 아닙니다.”

“……?”

뭐, 이 말을 들으면 대부분 이런 반응이겠지.

신성교단에서 나고 자랐다면 더욱 그럴 테고.

“그러니까, 귀신이 나온다는 이유 때문에 그 많은 행상들이 사막을 돌아서 간다고요?”

“그럼요.”

그렇게 말하는 사이, 언덕 너머에서 연기가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도련님! 도시에요!”

“어, 잘 보인다.”

앞에서 방방 뛰는 아린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입을 열었다.

“아마 저보다, 여기 사람들이 더 잘 알 겁니다.”

멀찍이 떨어진 소도시.

동부 대사막으로 향하는 관문도시, ‘테르친’이었다.

***

“순례라니, 교단에서 그런 것도 했었나?”

사막을 건너는 이들의 태반은 플리시안으로 밀입국하려는 범죄자들.

그렇기에 날 살피는 경비병들의 눈은 미심쩍기 그지없었다.

“우선 영주님께 보고하겠소. 이봐!”

그렇게 말하자 두어 명의 경비병들이 내게로 다가왔다.

“외부인은 신원확인이 끝날 때까지 구금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잠깐.”

그 말을 들은 스텔라가 교단의 증표를 흔들어 보였다.

“저 사람은 어떨지 몰라도, 전 교단의 수녀입니다. 신원 확실하죠?”

“허이구?”

자기 혼자서만 속 빠져나가려는 모습에 내 눈꼬리가 위로 치켜 올라갔다.

“보통 이럴 땐 그쪽이 대표로 신원보증을 하는 아닙니까?”

“개리슨 신부님은 그런 지시 안 했는데요.”

능청스레 그렇게 말하는 스텔라를 보며 도끼눈을 떴다.

“진심은?”

“주사위 던지는 거 안 알려준 거 때문에 삐져서요.”

아오, 진짜 쪼잔하긴.

그렇게 실랑이가 한창인 날 보며 경비병이 뒤통수를 긁었다.

“수녀님은 그렇다 치고, 그쪽은….”

“이거면 되지?”

툭 하니 내뱉은 난 곧바로 공작가의 증표를 내밀었다.

“라, 라인란트…?”

증표와 내 얼굴을 번갈아 본 경비병의 얼굴이 단번에 새파래졌다.

“시, 실례가 많았습니다!”

공작 가문의 일원을 막아섰다면 어떤 꼴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

깜짝 놀란 경비병은 곧바로 성문을 열라고 외쳤다.

쿵-!

검문을 마치고 도시에 들어왔을 때는 이미 정오를 넘긴 시간.

“권력자의 횡포로군요?”

“입 다물어요. 진짜….”

덤덤히 말하는 스텔라의 개소리에 답하며, 도시 전경을 둘러보았다.

“도시가 굉장히….”

“후져요.”

국가와 국가를 잇는 관문도시라고 부르기엔, 테르친의 거리는 허전하기 그지없었다.

“동부 대사막 덕분에, 플리시안으로 향하는 물자 대부분은 해로를 이용하니까요.”

검문소에서 봤듯, 이곳을 경유하는 이들의 태반은 밀입국자.

그런 연유인지, 이 도시의 사람들이 외부인을 보는 시선은 그리 고깝지 않아 보였다.

“그리고 그에 반해서, 저 위쪽은 으리으리하군요.”

그렇게 말한 스텔라가 손가락을 들어 한 곳을 가리켰다.

축 처진 시내의 분위기와는 대조되는, 화려한 성과 호화로운 저택.

이곳의 영주, 테레인 탈리크 변경백의 성이었다.

“이상하죠?”

넌지시 스텔라에게 묻자,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다니, 뭐가요?”

“돈 나올 구석이 없는 동부의 변방에서, 저 정도로 화려한 성을 유지한다는 게요.”

“그야 뭐, 불 보듯 뻔하죠.”

그렇게 말하자 스텔라가 어깨를 늘어트렸다.

“뒤에서 벌이는 사업이 있던가, 아래를 쥐어짜고 있던가.”

“아마 둘 다일 겁니다.”

그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사람들을 보면, 일은 제대로 하는 것 같지만 말이지.’

먹고 사는데에 지장은 없다.

기사들과 병사들을 시켜, 보호 또한 제공한다.

그렇지만, 그 이상은 없다.

제국의 귀족들이 으레 그러하듯 탐욕스럽고, 또 영리한 자였다.

“그, 그게 정말이야?”

그렇게 생각하며 숙소를 찾던 도중.

“정말이야. 동생이 사막 외곽으로 행상을 다니는데, 이번에 그 부족에서…!”

“탈리크 놈들, 이 지경이 되어도 계속 그 유적을 파헤치는 거야?!”

“도대체 이걸로 몇 명째인지…!”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미간을 좁혔다.

‘영주가 왕릉을 노리고 있다고?’

불안에 가득 찬 목소리를 들으며 그렇게 생각할 무렵.

“수, 수색대가 귀환한다!”

사막으로 향하는 성문에서 들려온 외침에, 도시민들의 발걸음이 일제히 그곳을 향했다.

“수색대요?”

“저한테 물어도 모릅니다.”

내가 무슨 여행 가이드도 아니고.

뭔 일만 생기면 내 쪽을 바라보는 스텔라에게 그렇게 말하며 사람들이 몰려든 곳으로 걸어갔다.

쿠르르르르….

성문 너머로 보이는 동부 대사막.

그곳에서 방금 돌아온 듯, 수레를 끌고 돌아오는 군인들의 갑옷엔 모래가 가득 껴 있었다.

“이, 이런 미친…!”

“이게 뭐야…?”

그렇지만 사람들이 경악한 것은 그들의 몰골이 아닌 수레에 들려 나온 것.

바짝 말라비틀어진 미이라 스무 구 정도가 짐짝처럼 들린 채 성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저주다…! 사막의 저주야…!”

“신이시여…!”

고통스러운 듯 비명을 지르는 그들의 몰골을 보자, 도시민들이 공포에 떨었다.

“저건….”

“언데드. 그것도 상급 언데드가 섭취한 시신이군요.”

성 안으로 실려 들어온 미이라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영혼의 흔적은 조금도 남지 않은 채, 껍데기만 남아버린 육체.

내 기억상, 저런 식으로 인간을 습격하는 언데드는, 한 종류밖에 없다.

듀라한(Dullahan).

원한에 찬 기사들의 혼이 오랜 세월로 인해 변질된 형태.

망령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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