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100화 (100/209)

100. 스텔라 라프탈리아

“클라인 오빠 잘 다녀와-!”

“올 때 장난감 사 오는 거 잊지 말고!”

멀찍이서 날 향해 손을 흔드는 아이들에게 화답하며 거리로 나왔다.

“…….”

“…….”

머리에 큼지막한 혹을 달고 있는 스텔라와 그것을 말없이 외면하고 있는 나.

목적지가 같기에 나란히 걷고 있었지만, 참 어색하기 짝이 없는 광경이었다.

“그래서.”

플리시안에 다다르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빨라도 2주 이상.

그동안 이렇게 어색한 꼴로 다닐 수는 없으니, 먼저 나서서 말문을 열었다.

“신부새끼… 아니, 개리슨 신부의 제자라구요?”

출발하기 전 미리암 수녀가 소개한 내용을 말하자, 무표정한 그녀의 얼굴이 위아래로 움직였다.

“후견인이기도 하고, 스승이기도 하고, 양아버지이기도 합니다.”

그 개리슨이 양딸을 들였다니.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는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 신부가 말하길?”

“당신은 아키몬드의 씨앗이니, 수상쩍은 행동을 하면 죽이라던데요.”

“하아….”

그 미친 신부놈을 떠올리자 안 그래도 착잡한 속이 더 꼬여왔다.

감시자로 붙인 것이 개리슨의 제자라.

차라리 교황의 성기사와 함께 하는 게 마음이 더 편할 지경이다.

적절한 시점에 죽이면 그만이니까.

‘순순히 놔주는 법이 없구만.’

개리슨이 안보이길래 이때다 싶어 플리시안으로 튈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감시가 붙게 될 줄이야.

솔직히, 교황이니 팔리만이니 하는 것들보다도 훨씬 성가셨다.

“그래서, 그 ‘수상쩍은 행동’의 기준은 뭡니까?”

“기준이요?”

그렇게 되물은 스텔라는 잠시 고민하다가 어깨를 으쓱이며 내게 말했다.

“알아서 판단하라고 해서, 알아서 죽일 생각입니다.”

“아, 예….”

제대로 된 기준도 없이 날 죽이라고 지시하는 스승에, 당사자 앞에서 죽이겠다고 말하는 제자.

양쪽 다 제정신은 아니었다.

“오! 도련님!”

“꾸꾹-!”

중앙 광장에 다다르자 분수대에 앉아 뭔가를 먹고 있던 아린과 아울이 날 반겼다.

“많이 기다렸어?”

“네! 그래도 엄청 맛있었어요!”

그렇게 말하며 내게 다가오는 아린의 입을 닦아줬다.

“하여튼, 흘리고 먹지 말라니까.”

“히히~!”

분수대 한구석에 잔뜩 쌓여있는 꼬치들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교화소에서부터 고생이 많았으니, 나름대로 선물을 한 것인데.

웃는 얼굴을 보니 썩 괜찮았나 보다.

“함께 다니게 될 테니 소개하겠습니다. 이쪽은….”

그렇게 말한 내가 스텔라에게 아린을 소개하려 고개를 돌리자.

“…?”

방금 전까지 내 옆에 있던 그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뭐야, 어디 갔어?”

기척도 없이 사라진 그녀의 행방을 찾기 위해 광장 곳곳을 살펴보던 사이.

“도련님. 저기.”

아린의 눈에 뭔가가 들어온 듯, 자그마한 손이 광장의 한구석을 가리켰다.

“자~! 자~! 오세요. 쏘세요! 돈 내고 돈 먹기!”

한 무리의 사람이 몰려있는 허름한 협탁.

잡상인들이 한데 모인 그곳에서는 주사위 내기가 한창이었다.

“길거리 도박장이잖아? 거긴 왜….”

그렇게 말하며 그곳에 모인 사람들을 유심히 본 순간.

“뭐야, 왜 저기 있어?”

내 눈에 띈 것은, 사람들 사이에 쪼그려 앉아 주사위를 유심히 보고 있는 스텔라의 모습이었다.

“아이고~! 안타깝게 됐습니다. 수녀님!”

“…….”

모여있는 사람들을 헤치고 안쪽으로 들어가자, 스텔라는 뚱한 표정으로 주사위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 앞에 놓인 주사위의 눈은 6.

그렇지만 도박사로 보이는 사내의 주사위는 3이었다.

‘눈이 같으면 도전자가 세 배. 다르면 딜러가 돈을 먹는 내기로군.’

전문 도박장이 아닌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간단한 게임이었다.

“한 번 더.”

비장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들어 보이는 스텔라의 모습에 남자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오늘은 통 크게 쓰시는구만?!”

‘오늘은?’

그 말을 들은 내 표정이 괴상해졌다.

아니, 담배랑 술에 중독된 수녀가 튀어나오더니.

이번엔 도박중독이야?

‘아주 가지가지 하는구만.’

속세에 타락해가는 성직자들을 보며 탄식하는 사이.

두 사람의 주사위가 다시 한번 컵 속으로 들어가 구르기 시작했다.

컵 속에서 한참을 구른 주사위가 한 지점에 멈추고.

“자, 까봅시다! 하나, 둘, 셋!”

남자의 구령에 맞춰 컵이 위쪽으로 치워지자.

“…….‘

이번에도 스텔라는 자신이 건 돈을 남자에게 헌납하는 신세가 되었다.

“하하하하! 이거 안타깝게 됐습니다. 수녀님~!”

능글맞은 표정으로 협탁에 놓인 은화를 쓸어가는 남자를 보며 실소했다.

‘이거, 사기도박인데?’

주사위를 섞는 손의 기묘한 각도와 컵의 움직임.

그것을 본 난 확신할 수 있었다.

심지어 이런 길거리 초짜들한테 걸릴 줄이야.

지지리도 이런 내기에 약하단 소리겠지.

“한 판만 더….”

“한판 더는 얼어 죽을, 일어나세요.”

다시 손가락을 세우려는 스텔라의 말을 끊자, 쪼그려 앉은 그녀가 날 올려다보았다.

“수녀 봉급이 그렇게 많지도 않을 텐데, 여기서 다 탕진할 생각입니까?”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지만, 스텔라는 고개를 저었다.

“걱정 마세요.”

그렇게 말한 그녀는, 오히려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날 향해 말했다.

“따서 갚겠습니다.”

“……예?”

…잠깐만.

이 수녀가 방금 뭐라고 했지?

“갚는다고?”

잠시 그녀의 말을 곱씹던 내 표정이 괴상해졌다.

“잠깐만. 설마?”

그렇게 중얼거린 난 서둘러 내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내용물을 확인했고.

“아, 미치겠네. 진짜….”

돈주머니가 있어야 할 그곳이, 텅 비어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지금 잃은 돈을 경험 삼아서.”

그렇게 말한 스텔라는, 내 안주머니에 있어야 할 돈주머니를 든 채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잃은 돈의 두 배, 세 배로 갚겠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난, 손바닥으로 내 얼굴을 가릴 수밖에 없었다.

아.

아, X발 머리 아파.

“남의 돈으로 도박을 해대는 수녀가 세상천지 어디에 있냐고….”

아까 내가 뭐라고 말했지?

제정신이 아니다?

정정한다.

이 여자는 그 정도가 아니다.

스텔라 라프탈리아.

나와 동행하게 될 이 수녀는….

상상 이상으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

“하하하! 그러니까 주머니 간수를 잘하셨어야죠. 나으리!”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상인을 보니 내면의 아키몬드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사기도박이라 한들, 속은 놈이 잘못이라는 논리.

훔친 돈으로 한 도박이라 설명한들, 그 말이 먹힐 리 없었다.

‘하다 하다 주머니까지 털리다니. 천하의 아키몬드가….’

온 대륙을 공포로 몰아넣던 네크로맨서가, 이젠 수녀한테 주머니나 털리는 신세라.

황망한 기분에 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니, 그쪽 소지금은 어디에 팔아먹고 제 주머니에 손을 댑니까?”

어이가 없어 그렇게 묻자, 스텔라는 자신 있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전에 감옥에서 낮잠 잔 거 알죠.”

“예.”

“그거 걸려서, 이번달 월급이 안나와요.”

“……!”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었다.

만일 이 여자를 동행으로 선정한 목적이 감시가 아닌 암살이라면.

내 장담컨대, 개리슨 그 새끼는 아주 딱 맞는 인재를 찾은 거다.

왜냐고?

난 지금 당장 복장이 뒤집혀서 죽을 것 같은 기분이거든!

“헌데, 참 신기하군요.”

그렇게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있을 때.

스텔라에게서 따낸 돈을 짤랑거리던 도박사가 날 향해 물었다.

“복장을 보니 검 꽤나 쓰시는 것 같은데, 눈치 못 채셨습니까?”

그렇게 말하자, 스텔라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날 향해 말했다.

“순례자께선 조심성이 너무 부족합니다. 제가 한 일은 일종의 예방 교육이라는 걸로….”

“공작가 이름으로 소송 걸기 전에 입 다물어요.”

태연자약하게 속 터지는 소리를 해대는 스텔라를 향해 쏘아붙였다.

초면? 존대? 예의?

다 집어치우라지.

이쪽은 절도 사건 피해자다 이 말이야.

‘뭐, 따지고 보면 내 돈도 아니었으니 별 상관이야 없다만….’

은행장에게서 뜯어낸 돈이었으니 대수로운 문제는 아니었다.

‘문제는 따로 있지.’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방금 전 도박사가 지적했던 부분.

내 돈주머니에 눈독을 들이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내 경계심은 더욱 높아졌다.

‘알아채지 못했어.’

품 안에 든 돈주머니를 도둑맞은 것도.

그리고 기척도 없이 내 앞에서 사라진 것도.

전부 내가 모르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개리슨의 제자라는 게 허언은 아닌 모양이야.’

개리슨과 닮은 힘을 가졌으나,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은 천지 차이였다.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닌, 존재와 기척을 죽인 은밀한 침투.

성직자라기보단, 암살자와 같은 움직임이었다.

‘상성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개리슨 보다도 더 위험할 수도….’

그렇게 생각을 거듭하던 순간.

“이겼다!”

협탁 한구석에서 들려오는 활기찬 목소리에 나와 스텔라의 고개가 돌아갔다.

“어, 어…? 아니, 어떻게…?”

쪼그려 앉은 채 방긋 웃고 있는 아린과, 어리둥절한 얼굴을 한 도박사.

협탁에 놓인 두 주사위는 동시에 6을 나타내고 있었다.

“도련님! 이거 봐요!”

함박웃음을 지은 아린이 날 보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뭐야, 이거 할 돈은 또 어디서 났어?”

그녀의 눈앞에 수북이 쌓여있는 동전을 보며 물었다.

“이 아저씨가 한번 해보라고 줬어요!”

“…줬다고?”

“네!”

그렇게 말한 아린은 천진난만한 얼굴로 도박사를 가리켜 보였다.

“돈 모자라면 도련님한테 달라고 하면 된다고 하던데요?”

“쉬, 쉬잇! 쉬이잇!”

화들짝 돌란 남자가 뒤늦게 수습하려 했지만, 때는 이미 늦은 상황.

“…아, 그러셔?”

아무래도 스텔라와 푸닥거리를 하는 와중에 어지간히도 얕보인 모양이다.

애를 꼬셔서 날 벗겨 먹을 생각을 하다니.

빠직.

아린의 그 말에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이 끊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 나리. 그게….”

잘못 건드렸다는 것을 직감한 듯, 어색한 웃음과 함께 날 달래려는 순간.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원금 회수는 하고 가야지.”

난 그렇게 말하며 아린이 앉아있던 자리에 걸터앉은 채 주사위를 손에 쥐었다.

“……?”

“뭐해? 시작 안 하고.”

그렇게 말하자 도박사의 표정은 더욱 알 수 없게 되었다.

표정을 보니 칼이라도 뽑아 들 줄 알았나 본데.

라인란트 체면이 있지, 이런 일로 칼을 뽑을 수는 없다.

‘그리고, 도박사는 도박으로 조져야 제맛이거든.’

속으로 그렇게 생각한 뒤, 그를 향해 금화 한 잎을 내놓았다.

“흐읍?!”

땡그랑 소리와 함께 협탁에 금화가 올라오자, 도박장에는 순식간에 수많은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다.

“이야, 이거…!”

“금화다. 진짜 금화야!”

멜디르 황제의 얼굴이 새겨진 제국 금화.

아마 이 도박장의 역사상 가장 큰 판돈일 것이다.

“나, 나리?”

마른침을 꿀꺽 삼킨 도박사가 날 향해 그렇게 물었고.

“이기면 세 배. 확실하지?”

내가 그렇게 말하자, 도박사 역시 물을 만난 듯, 이빨을 드러내며 웃어 보였다.

“보는 눈이 이렇게 많은데, 나중에 딴소리하기 없습니다.”

사뭇 도발적인 그의 말에 난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다.

“그쪽이야말로, 도망갈 생각은 말고.”

말을 마친 난, 컵에 담긴 주사위를 이리저리 굴려보았다.

이래 봬도 난 윈터폴의 수도, 하이델베르그의 뒷골목 출신.

온갖 술수가 판치는 길거리 도박을 수도 없이 해본 인간이다.

“한번 해보자고. 돌려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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