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7. 당사자랑 직접 해결하죠
재판장에 모인 신관들을 향한 내 열변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쾅-!
거칠게 책상을 치는 소리와 함께 분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헛소리요! 전부 헛소리야!”
그렇게 외친 것은 교황 오른편에 자리한 신관들 중 한 명.
추기경임을 상징하는 갈레로가 그의 어깨 위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신성교단이 인체실험이라니! 어디서 그따위 정신 나간 망언을…!”
“이젠 망언이라고 치부할 수도 없지요.”
그렇게 분개한 신관의 목소리가 도중에 끊겼다.
반대편 의석에 앉아있는 신관의 목소리였다.
“이미 대행자인 개리슨 신부의 증언이 있다 들었습니다만.”
“교차검증까지 완료된바, 교단 차원에서 제대로 수사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자 이번엔 그 맞은편에 있던 성직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이미 교화소가 텅 비지 않았습니까?! 조사를 한들 뭐가…!”
그러자 이번엔 반대편에서.
“애초에 교화소 그 자체가 문제였소! 교단의 검증도 받지 않고 독단으로 이교도를 처리하니 이런 일이…!”
그리고 또 반대편에서 반론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럼 대륙에 퍼진 이교도들을 좌시하란 말이오. 신관 된 자가 어찌 이교도의 말에…!”
그렇게 분에 찬 신관들이 몇 마디를 주고받은 결과.
날 둘러싼 재판장 전체가 야유와 고함으로 뒤덮였다.
‘저들도 어렴풋이 짐작은 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신관들의 면면을 살폈다.
인체실험을 부정하는 이들은 대부분 본국의 신관들.
반면, 해명을 요구하는 이들은 대부분 독자적인 활동을 하던 지방교구의 신관들이었다.
‘그리고 난 그 의혹의 증거를 정면으로 제시한 셈이고.’
계획대로 흘러가는 분위기를 보며 눈을 빛냈다.
이제 남은 건, 교황이 직접 나서는 걸 기다릴 뿐.
“음?”
고함이 오가는 재판장을 둘러보며 그렇게 생각하던 사이.
멀찍이서 날 보고 있던 팔리만과 눈이 마주쳤다.
‘또 또 쳐 웃네. 미친 새끼.’
팔리만은 얼굴을 가린 채 날 응시하고 있었다.
그로서도 표정 관리가 되지 않는 듯 기울어진 눈.
그렇지만 그 눈이 담고 있는 감정은, 분명한 분노였다.
“성하.”
“음….”
그러나 그것도 잠시.
교황의 귀에 얼굴을 가까이 댄 팔리만이 뭔가를 수군거렸다.
쿵-!
그 광경을 확인한 찰나.
교황이 손에 쥔 법봉으로 한 차례 땅을 찍자, 논쟁이 한창이던 신관들이 움직임을 멈췄다.
“모두들 정숙하시오.”
교황이 직접 그렇게 말하자, 혼란스러워하던 신관들의 분위기가 단번에 가라앉았다.
“……!”
“…….”
교황을 비호 하는 자들도, 비판하는 자들도.
그가 두른 법의와 법봉이 내뿜는 권위에 몸을 숙였다.
‘이빨 빠진 맹수라도 그 존재감만큼은 여전하다는 건가.’
단순한 행동만으로도 좌중을 지배하는 권위와 힘.
껍데기라 해서 마냥 방심할 수는 없었다.
“정녕 악마와 같은 혀를 지녔구나.”
양측 신관들을 진정시킨 교황이 날 보며 말했다.
“신성교단의 총본산에서, 케르시아스의 종들을 이리 반목하게 하다니.”
곧바로 날 향하는 서슬 퍼런 적의.
그렇지만 난 그 적의 어린 시선을 담담히 받아넘겼다.
‘니들이 우리한테 이러던 게 하루 이틀이어야지.’
시체를 태우고, 혼을 정화하는 케르시아스의 신관.
시체를 염하고, 혼을 이끄는 네크로맨서.
망자를 다루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음에도, 양 집단은 물과 기름처럼 계속해서 반목해왔다.
“참으로, 아키몬드의 환생이라 불릴 만하다.”
이어지는 교황의 한마디에 뭔가 더 말하려던 신관들이 말을 아꼈다.
‘논점을 흐리는군.’
내 말에 동조한다는 것은, 아키몬드에게 동조한다는 것.
이것은 반대파들을 향해 내뱉은 경고와 다름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주도권을 빼앗길 수는 없지.’
그렇게 판단을 마친 난 이어지는 교황을 말을 가로챘다.
“그러나 우린 네 얕은수에….”
“내 청하되 삿된 이름에 현혹되지 말고, 다만 내가 가리키는 이름으로만 볼지어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 목소리.
낯익은 외국어가 들려오자, 교황은 잠시 말을 잃은 채 되물었다.
“…뭐라?”
그렇지만 난 교황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대신에 난, 계속해서 그들의 언어를 통해 경전의 문구를 입에 담았다.
“너희가 만든 거짓 이름에 흔들리지 말고, 다만 내 눈과 귀로 그것을 볼 지어라.”
내가 말하는 것은 대륙어가 아닌 고대어.
최초의 경전을 기록한 성스러운 언어였다,
교단의 교육을 받은 성직자만이 배울 수 있는 특권이었다.
“어째서, 네크로맨서가 고대어를…?”
“4번 복음 192절, 그리고 211절입니다.”
그들의 언어로, 그들이 아는 구절을 말했다.
신관들 사이에서 동요가, 교황의 얼굴에는 불쾌감이 일었다.
“오만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얼굴을 찡그린 교황이 내게 말했다.
“네크로맨서인 그대가, 감히 우리에게 옥음을 가르치려 드는가?”
“모르면 배워야죠. 안 그렇습니까?”
입꼬리를 올린 채 그렇게 답했다.
“당신들의 말대로, 교화소를 실험장으로 만든 것이 벤 소장 개인의 소행이었다면.”
미간을 좁힌 채 말이 없는 교황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당신들은 그런 자의 말에 휘둘려서, 그 수많은 사람들을 교화소로 보낸 겁니다.”
“……!”
내가 이렇게 말하자, 본국 소속 성직자들의 표정이 굳었다.
“자, 잠깐만 기다리시오! 그건…!”
“케르시아스의 종을 자처하신 이 고귀하신 신관들이-!”
반론의 여지를 주지 않은 채 외쳤다.
재판관이 아니라, 이곳에 모인 반대파 신관들을 향해.
“사령술을 악용하는 악마에게 먹이를 갖다 바쳤다는 말입니다!”
논리가 여기까지 진행되자, 교황 측 신관들의 얼굴은 아예 사색이 되었다.
“자! 이제 악마의 혀를 가진 것이 누구입니까?”
네크로맨서가 자신을 악마라고 부르는 아이러니.
굴욕적인 상황이었음에도, 내 말에 반론하는 이는 없었다.
“진실을 말하고 있는 저입니까? 아니면 아키몬드라는 거짓 멍에로 절 모함하는 당신들입니까?”
이제 내 말은 교황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교황과 교단의 행위에 불만을 품은 성직자들.
그들을 향해 보란 듯 외쳐 보인 것이다.
“크, 크흠….”
“허어…….”
성직자 중 몇몇이 턱을 감싸 쥔 채 생각에 잠겼다.
만에 하나, 교화소에서 벌어졌다는 그 끔찍한 일이 사실이라면?
만에 하나, 이 자가 정말로 무고한 희생자라면?
온갖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진 것이다.
“논리는 그럴 듯 하지만, 더 들을 가치가 없군요.”
그렇게 신관들의 동요가 점점 커져가던 순간.
“당신은 북방의 마녀가 낳은 자식이고, 교단의 적인 네크로맨서입니다.”
교황의 옆에 서 있던 팔리만이 입을 열었다.
내 쪽으로 기울어가던 분위기를 더 두고 볼 수 없다는 뜻이다.
“케르시아스를 섬기는 우리들이, 왜 당신의 말을 신뢰해야 합니까?”
결국 이 지랄이지.
증거를 들이대면 그 증거를 의심하고, 외면하는 수법.
지긋지긋하기 짝이 없었다.
“마, 맞소!”
교황 측에 앉아있던 신관들이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네크로맨서인 당신의 진술을, 어떻게 믿으라는 말이오?!”
“대행자를 방패로 세울 생각은 마시오. 그 또한 팔리만 추기경을 겁박한 혐의가 있으니!”
개리슨도, 나도 믿을 수 없다.
그러니 교화소에서 일어난 일도 믿지 않겠다.
그렇게 외치는 그들을 보니 기가 차서 할 말이 없었다.
“허, 참…!”
“이제 와서 그런 궤변을…!”
같은 신관들도 기가 차는지, 지방교구의 신관들의 얼굴이 뒤틀렷다.
“하아….”
지겹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그렇게 생각한 순간.
꿈틀!
천장에 난 스테인드글라스 밖.
검은 새 한 마리가 날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좋아. 도착한 모양이군.’
그리고 그와 동시에.
쿵쿵쿵-!
재판장 입구를 두드리는 주먹 소리가 들렸다.
“뭐지?”
“신성한 재판을 방해하다니, 누구냐!”
뜻밖의 불청객이 거추장스러운 듯, 갈레로를 두른 추기경 한 명이 그렇게 외쳤다.
“그, 그것이…!”
낭패한 기색이 가득한 경비병들이 뭐라 말하려던 순간.
“나다 이 X새끼들아-!”
걸걸한 외침에 신관들의 어깨가 절로 움츠러들었다.
“듣자 듣자 하니까, X를 XX해서 XXX할 놈들이.”
교회에서 들으리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는 걸쭉한 욕설.
“저 저급하기 짝이 없는 언행은, 설마…?”
몇몇 나이 든 신관들은 곧바로 몸서리를 쳤다.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짐작한 듯했다.
“드,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물러나 주십시오! 이곳은 성하의…!”
당황한 경비병의 방어가 이어지는 것도 잠시.
콰앙-!
재판장 입구를 틀어막은 철문이 거칠게 열렸다.
“우와악?!”
그녀를 틀어막고 있던 경비병들은 충격에 못 이겨 하늘을 날았다.
“야, 이 X같은 쭉정이 새끼들아-!”
그와 함께 들리는 우렁찬 외침.
그 말과 함께, 미리암 수녀가 재판장으로 들어왔다.
“미리암 수녀…!”
“이, 이게 무슨 짓이오! 아무런 허가 없이 재판장에 들어오다니…!”
자리에 앉은 한 신관이 그렇게 역정을 내려던 순간.
쾅-!
통로 벽을 후려치며 난 굉음에 말문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
주먹 한 방에 갈라진 벽.
그것을 본 미리암은 ‘왜 이리 약해?’라고 말하며 손을 툭툭 털었다.
손에 끼워진 철제 건틀렛.
입에서 흘러나오는 담배 연기.
오늘따라 한층 더 흉흉해 보이는 모습이다.
‘그러니까, 누가 저걸 수녀라고 생각하겠냐고….’
내가 부르긴 했어도, 이렇게까지 분위기를 휘어잡을 줄은 몰랐다.
교단의 최고위 사제들이 몸을 움츠리는 광경이라니.
수녀가 아니라 깡패를 데려온 느낌이었다.
“성하, 재판이 너무 혼란스럽습니다. 우선 죄인을 연금하고, 다른 시일을….”
팔리만이 교황의 귓가에 슬쩍 언질했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을 감지한 듯했다.
“거기 키 큰 뺀질이-!”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것을 두고 볼 수 없다는 듯, 미리암이 그를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추기경 감투 하나 달더니, 네 선생님 얼굴도 못 알아보고 있냐?! 인사 안 해-?!”
팔리만이 곧바로 말을 멈췄다.
그로서도 감당이 안 되는 탓이겠지.
“풉.”
아, 꼬시다.
역시 뒤에서 일을 꾸미는 저런 놈에겐, 미리암 같은 외골수가 제격이다.
“성하, 어서 재판을 중지시켜야….”
“아니다.”
팔리만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교황은 한 손을 들어 그의 조언을 밀쳐냈다.
“이미 판세가 기울었다. 억지로 파한다면 저 말을 인정할 뿐이야.”
“…….”
그 말에 곧바로 고개를 숙이는 팔리만.
그렇지만 난 알아챌 수 있었다.
그의 표정에 미세한 균열이 이는 것을.
‘어지간히 약오르겠지. 기껏 설계한 판이 산산이 박살 났으니.’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건강해 보이니 다행이군. 미리암.”
교황은 친근한 어투로 미리암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는 넌 다 뒤져가는 송장이 되었고 말이지.”
물론 친근한 거로는 미리암을 따라갈 수 없었지만.
‘천하의 교황의 면전에서 송장이라….’
미리암의 태도에 주변에 있던 신관들이 기겁했지만, 교황의 표정은 평온했다.
“우린 지금 교단 내부의 부정에 대해 대화하는 중이었네만,”
그렇게 말한 교황이 미리암을 향해 물었다.
“그대는 무슨 일로 여길 찾은 것이지?”
괄괄한 말투의 미리암과는 상반되는 격식 있는 어조.
마치 지금의 개리슨과 팔리만의 대비를 보는 듯했다.
“나? 별 건 아니고.”
교황의 말에 미리암이 퉤, 하고 담배를 뱉었다.
“애새끼 하나 묻어보겠다고 교단의 온 성직자가 머리 싸매는 꼴이 보기 X같아서.”
“그……!”
“크, 크흠…!”
있는 그대로 꽂히는 미리암의 비판.
신관들의 헛기침 소리가 한층 더 커졌다.
“클라인 공자를 옹호하겠다는 것인가?”
미간을 좁힌 교황이 그렇게 묻자 미리암이 곧바로 쏘아붙였다.
“미쳤냐? 내가 니들 정치놀음에 끼게.”
그렇지만 그 말을 마친 직후.
“내가 직접 옹호하겠다는 건 아닌데.”
짧게 한숨 쉰 미리암은 교황을 향해 말했다.
“이 재판에 증인들이 좀 많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