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96화 (96/209)

096. 제가 다 봤습니다

끼이익-

나무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미리암 수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방 꼬라지 하고는,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구만.”

옷가지 몇 개와 침대.

경전 한 권과 성상 하나.

조촐하다 못해 살풍경한 방의 주인은 앉은 자리에서 그녀를 향해 말했다.

“부르셨다면 제가 찾아뵈었을 겁니다만.”

“네가? 허이구, 지나가던 개가 짖지.”

기가 찬다는 듯 그렇게 말한 미리암 수녀는 개리슨을 향해 말했다.

“편지는 다 읽었지?”

대상을 가리키지 않은 질문이었지만, 개리슨은 곧 입을 열었다.

“아무 계획 없이 들어갈 리 없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이런 일을 꾸밀 줄은 몰랐습니다.”

그렇게 말한 개리슨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작은 쪽지 한 장이 놓여져 있었다.

“다들 가겠다고 하던데, 넌 어쩔 거냐?”

“가야죠.”

그의 대답을 들은 미리암은 ‘진작 그럴 것이지’라고 중얼거리며 개리슨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라인란트가 직접 나서서 신변을 보호하겠다 했으니, 둘도 없는 기회입니다.”

“그러면 후딱 나갈 것이지, 여기서 왜 이리 궁상인데?”

얼굴을 찌푸리며 그렇게 말하는 미리암의 말에 개리슨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에휴, X신 같은 새끼.”

그런 그를 향해 악담을 내뱉은 미리암은 그를 향해 물었다.

“아직까지도 죽일지 말지 고민 중이냐?”

“…….”

계속 대답하지 않는 개리슨을 보던 미리암은 답답하다는 넌더리를 냈다.

“너도 그 녀석한테서 뭔가 느끼는 게 있으니까 나한테 녀석을 보낸 것 아니야?”

그렇게 말하며 작은 의자에 걸터앉은 미리암이 품속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만일 제가 그를 죽이겠다 하면, 수녀님께서는 막으시겠습니까?”

“막을 거야.”

개리슨의 질문에 답하는 미리암의 말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우리 고아원 최고의 돈줄인데, 그냥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지.”

그 말과 함께 물고 있던 담배에 불을 붙인 미리암은 푸우, 하고 연기를 내뿜었다.

“그가 사령술을 사용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겠지.”

“죽은 자를 되살리는 것도. 언데드의 군세를 호령하는 것도요.”

“근데 어쩌라고?”

툭 내뱉은 미리암의 말에 개리슨의 고개가 홱 하고 돌아갔다.

“그렇게 말하는 넌 떳떳하냐?”

그렇지만 미리암은 그에 질세라 눈을 흘기며 말했다.

“네크로맨서는 이단이니 사도니 발광하던 종교쟁이들이, 뒤에서는 그 개짓거리를 하고 다니는데.”

그녀가 맡은 고아원의 아이들이 어디서 왔는지를 떠올리며 미리암의 말이 계속되었다.

“같은 신부복을 입고, 같은 십자가를 졌으면서. 부끄럽지도 않아?”

“……!”

개리슨은 잠시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크리펠을 겪은 아이들은 교단을 증오하고 있다. 네가 네 인생을 나락으로 처박은 아키몬드를 증오하듯이.”

“알고 있습니다.”

미리암이 연기를 내뿜을 때마다 그녀가 문 커다란 담뱃대가 점점 타들어 갔다.

“그걸 알기 때문에, 교단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지겠다고 한 것입니….”

개리슨이 거기까지 말한 순간.

“그럼 그놈도 똑같겠구만.”

그녀의 대답을 들은 개리슨은 탁자에 놓인 편지에 시선을 보냈다.

“먼저 갈 테니, 후딱 따라와라. 늦으면 궁둥이에 불날 줄 알아.”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미리암이 방을 나갔다.

“나와 같다고….”

잠시 그 말을 되뇌던 개리슨은 쯧, 하고 혀를 찬 뒤 자리에서 일어나 신부복 외투를 걸쳤다.

***

“시간이오. 클라인 공자.”

한 무리의 성기사들이 내가 갇힌 지하감옥을 찾아왔다.

“언제 오나 했네.”

시간은 이미 정오를 넘어선 뒤.

내 두통의 근원이었던 이름 모를 수녀는 이미 없었다.

아니, 근데 진짜 그 뭐였지 그 여자?

내가 꿈이라도 꾼 건가?

꿈틀.

그렇게 잡생각을 이어가던 중.

잠시 물결치듯 내 그림자가 흔들렸다.

‘답답한가 본데.’

그것을 본 난, 옅게 웃으며 발끝으로 땅을 툭툭 건드렸다.

“조금만 참아. 나가면 과자든 뭐든 사줄 테니까.”

“뭐라?”

이크.

내 입이 열리는 것을 보았는지, 성기사가 날 돌아보며 물었다.

“방금 누구에게 얘기한 것이오?”

혹여나 내통자가 있을까 추궁하듯, 성기사는 서슬 퍼런 눈으로 내게 물었다.

“아니, 별 건 아니고.”

위협을 할 거면 좀 제대로 하지.

능청스레 그 눈빛을 받아넘긴 난 그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여기에 웬 애가 앉아있길래 말이야.”

“무…!”

그렇게 말하자 날 압송하던 행렬이 잠시 멈췄다.

“우, 웃기는 소리!”

날 향해 눈을 부라리던 성기사가 코웃음을 쳤다.

“감히 교국에서, 그것도 성기사에게 그런 허풍을…!”

난 그의 말이 다 끝나는 걸 기다리지 않은 채 툭 하고 내뱉었다.

“일곱 살 난 남자아이, 금발, 목에 난 상처.”

“……!”

그러자 그는 할 말을 잊은 채 창백한 얼굴로 자신의 어깨를 돌아보았다.

“그, 그……!”

뭔가 켕기는 것이 있는 듯, 손을 부르르 떠는 성기사를 향해 말했다.

“장난인데.”

“크……!”

그렇게 말하자 성기사는 긴장이 풀린 듯 헛숨을 들이켰다.

“교국에서 미신은 안 통한다더니, 효과 죽이네?”

그를 조롱하듯 한 번 더 이죽거렸다.

“왜, 헛소리로 치부하기엔 켕기는 게 있나 보지?”

내가 그렇게 말하자, 성기사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감히 성기사에게 장난질을!”

“아, 됐고.”

놀려먹으면서 적당히 재미도 봤겠다.

“높은 사람들 기다리는데, 빨리 안 가도 되나?”

그의 말을 끊고 재판장으로 향하는 길을 재촉했다.

으득.

이를 갈아붙이는 소리가 났지만, 별다른 제재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 난리를 쳤는데도 섣불리 건드리지는 않는군.’

교황은 아직도 날 회유할 생각인 건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난 어느새 대성당 중앙에 위치한 재판장 문 앞에 서게 되었다.

고오오오….

마치 탑처럼 높이 솟은 두터운 철문.

그곳에는 태양신 케르시아스와 천사들의 성전(聖戰)이 조각되어 있었다.

‘새끼들, 돈지랄에는 도가 텄군.’

장엄하기 그지없는 철문을 보며 감흥 없이 기다리자.

“증인, 클라인 라인란트는 앞으로 나오라!”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근엄한 목소리.

그와 함께, 높이 솟은 철문이 날 향해 아가리를 크게 벌렸다.

쿠르르르르…!

두터운 쇳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재판장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재판이라기보단 회의실 같은 풍경이군.’

서류와 필기구가 어지럽게 놓여진 재판장을 보며 생각했다.

이미 교화소 사건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었던 듯했다.

“그래, 저자가 아키몬드의….”

“은발이라. 북부인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빛이군요.”

“이민족의 혈통이라니, 천하의 라인란트에서….”

좌중에 앉은 수많은 이들이 날 보며 수군거렸다.

날 훑어보고, 평가하고, 품평하는 시선들.

몇몇은 호기심이었지만, 그 시선의 대부분은 멸시와 적의가 깔려있었다.

“증인은 거룩하신 주 케르시아스의 앞에 예를 표하고, 진실의 맹세를 행하시오.”

재판관의 지시에 수녀 중 한 사람이 걸어왔다.

‘그 여자는 아니군.’

내게 잔과 작은 칼 한 자루를 건네는 수녀를 확인한 뒤.

‘종교쟁이들은 왜 그리 사족을 못 쓰는지 모르겠단 말이지.’

해묵은 불평과 함께,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을 손으로 잡았다.

스걱!

칼날을 잡은 손을 그대로 당겨, 그곳에서 나온 피를 잔에 내었다.

시큼한 통증이 손을 타고 올라왔다.

곧이어 수녀가 건넨 붕대가 곧바로 내 손바닥을 지혈했다.

“주신의 가호 아래, 제 입이 토해내는 모든 말이 진실 될 것을 맹세합니다.”

짧은 기도문으로 맹세를 마친 뒤 재판장의 정중앙에 섰다.

모든 성직자들의 이목이 내게 집중된 가운데, 내 시선은 그들 중 가장 높은 곳을 보고 있었다.

“성하, 죄인이 도착했습니다.”

“음.”

오른쪽에 앉은 팔리만의 모습.

그의 속삭임에 반응한 교황이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신의 대리인으로서, 그대의 맹세를 허하노라.”

새하얀 성좌에 앉은 희고 긴 수염의 노인.

그를 보며 미간을 좁혔다.

‘저게 교황이란 말이지?’

금실로 수놓아진 새하얀 법의와 커다란 태양 십자로 덮인 세 개의 왕관.

주름진 손에 쥐고 있는 법봉은 끝을 알 수 없는 힘을 뿜어내고 있었다.

‘개리슨과 팔리만 놈이 가진 것과 비슷한 힘이군.’

교국의 정점을 눈앞에 두었지만, 난 교황보다는 그의 무구에 더 관심이 갔다.

이유는 별것 없다.

저 교황이라는 자는, 아무것도 없는 빈껍데기였기 때문이다.

‘왜 그리 성혈에 못 죽고 살았는지 알만하군.’

입가가 절로 비틀렸다.

왕의 위엄도, 성직자의 의지도 느껴지지 않는 자.

저것은 그저 상징과 화려함에 파묻힌 송장이요.

삶에 대한 집착으로 말미암은 병든 망령일 뿐이다.

“성하께서 맹세를 받아들이셨으니, 심문을 시작하십시오.”

늙은 교황을 대신하여 팔리만이 명했다.

늙고 병든 교황과 그의 최측근이 된 추기경.

‘네가 실세라 이 말이지?’

교황의 입이라도 된 듯 지껄이는 팔리만을 비웃던 때였다.

“클라인 라인란트.”

교황의 아래쪽에 자리 잡은 재판장이 내 이름을 불렀다.

“그대는 12년 전, 크리펠 이단교화소장인 벤 드레이크 신부의 고발로 교화소에 구금되었소.”

‘세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말이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재판장은 내 얼굴을 보며 말했다.

“대륙을 공포로 몰아넣은 네크로맨서, 아키몬드의 환생이라는 것이 그 이유요.”

곳곳에 앉은 성직자들이 저마다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아키몬드.

교단에 있어서 트라우마와 같은 이름이었다.

“그대를 고발한 벤 소장은, 증거로 그대가 사령술을 익혔다는 사실을 내세웠소.”

“…….”

“지난 폴와이번 내전에서, 사령술을 사용했다고 했지.”

재판장은 교묘하게 벤의 이름을 계속해서 언급했다.

크리펠의 참극은 교단이 아닌, 벤 개인의 일탈이다.

그렇게 주장하고 있는 듯했다.

‘순순히 넘어가 줄 수는 없지.’

날 교화소에 처넣으려 한 건, 그 위에 서 있는 놈.

난 가장 높은 곳에 앉아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안 그러냐? 교황 브리간테.’

내가 적개심을 불태우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날 향한 재판관의 질문은 계속되었다.

“하여 그대에게 물으니, 이 모든 것을 계획한 자가 누구인가?”

벤이라고 하면 된다.

그가 자신의 추종자들을 모아, 혼자서 저지를 일이라고.

그렇게 말하면, 나머지는 자신들이 알아서 한다고 했지.

교화소에서 벌어진 모든 일들을 벤의 독단으로 뒤집어씌운 채.

뒤에서 제2, 제3의 교화소를 만들어낼 것이다.

‘그렇겐 안 되지.’

지옥과 같은 교화소를 떠올리며 되뇌었다.

한낮 실험체로 죽어간 사람들.

원치 않은 힘을 받아들여, 성혈을 내뿜는 괴물로 전락한 자들.

그들의 불행을 이용해, 제 잇속을 채우는 버러지들.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들은 그들이 낳은 모든 불행에 대해 책임져야 했다.

관련된 모든 이들을 찾아내, 그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

내가 그렇게 할 것이다.

그것이 다시 태어난 내가 짊어진 업이요, 네크로맨서의 덕목이니까.

“제국입니다.”

잠시 뜸을 들인 뒤, 모두에게 들리도록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

짧은 한마디.

그 한마디에 웅성거리던 좌중의 모든 목소리가 멎었다.

“지금, 뭐라고……?”

목 밑까지 시뻘게진 신관들의 얼굴이 보였다.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강조하듯 힘주어 외쳤다.

이곳에서 날 응시하는 모든 성직자들에게 들리게끔.

“이단이라는 명목으로 죄 없는 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당신들입니다.”

“…!”

“저, 저……!”

내 말을 들은 성직자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와 비례하듯, 팔리만의 웃음은 더욱 짙어졌다.

“클라인 공자, 그 발언이 지금 무엇을 뜻하는지…!”

“전 망자와 교감하는 네크로맨서. 그렇기 때문에 증언할 수 있지요.”

신관의 말을 가로막은 채 곧바로 입을 열었다.

“크리펠 이단 교화소는 산 사람을 제물로 성혈을 만들어내는 공장이었으며.”

좌중에 앉은 모든 이들이,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그 성혈을 위해, 제국의 네크로맨서와 손잡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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