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5. 저 네크로맨서입니다
교황의 보좌관인 버켄을 반죽음으로 만들자, 성기사들은 곧바로 날 참회실에서 끄집어냈다.
날 연행하는 기사들의 눈이 당장이라도 날 죽일 듯 흉흉했다.
뭐, 당연하겠지.
사고 치지 말라고 경고한 지 5분 만에 대형사고를 쳐버렸으니.
손수 연행해 온 기사들 입장에선 체면이 말이 아닐 것이다.
“재판일까지 그 누구도 이곳에 들이지 말라!”
…라고 윽박지른 것이 이틀 전.
난 슬슬 익숙해지는 새 숙소에서 기지개를 켰다.
“아우~! 허리 아파 뒤지겠네.”
그렇게 말한 난 대성당 지하감옥을 둘러본 뒤 부스스한 뒤통수를 긁었다.
“오늘도 시커먼 하루구만.”
퀴퀴한 지하의 습기.
오랫동안 방치된 묵은 먼지.
경험상, 이 감옥보다 크리펠 교화소가 더 안락할 지경이었다.
“정 없는 새끼들, 이런 걸 밥이라고 갖다 놓은 거냐?”
구석에 쌓여있는 건빵을 툭툭 털며 불평했다.
아니, 이걸 빵이라고 해야 할까?
감옥 벽으로 부숴 먹으려고 하니까 벽이 갈라지던데.
매끈하게 다듬어진 건빵을 보며 그렇게 생각하던 때였다.
- 교단의 중심부에서 보좌관 손목을 날리는 건 자네밖에 없을 걸세.
짧은 감탄과 함께, 데스나이트 레이븐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 굳이 교단 한가운데에서 피를 본 이유가 뭔가?
“이유 없어.”
레이븐의 질문에 답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X같아서 저지른 것 뿐이야.”
그렇게 말한 난 레이븐을 향해 양손을 내밀었다.
스걱-!
레이븐의 검이 내 양손을 묶은 수갑을 단번에 잘라버렸다.
- 계획적으로 움직이는가 싶더니, 이번엔 감정적으로 움직이고.
오랜만에 입을 연 그는 신기한 듯 말했다.
- 알면 알수록 종잡을 수가 없는 자로군.
“이래 봬도 성질 꽤 죽인 거다.”
자유로워진 양손을 툭툭 털어낸 뒤 날 가로막은 감옥 철창을 보았다.
“이따위 철창으로 날 가두려 들다니.”
그렇게 중얼거린 난 뒤에 선 레이븐을 향해 수인을 맺었다.
파츳!
마기를 머금은 술식이 푸르게 빛나더니, 룬 두어 개가 레이븐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 뭐 하는 거지?
“있어 봐. 아픈 거 아니니까.”
뭐라 더 물으려는 레이븐을 조용히 시킨 뒤, 술식의 경과를 지켜보았다.
스르륵-!
- 이건…?
한 손을 들어 보인 레이븐의 표정이 괴상해졌다.
“좋아. 성공이다.”
그의 오른손 검지는 내가 갇힌 감옥 문 열쇠로 변해있었다.
“자. 이제 그걸로 가서 문 열어.”
- …….
잠시 정적.
레이븐은 열쇠 모양으로 변한 자신의 손가락을 보며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 무슨 대단한 사령술을 쓰나 했더니….
레이븐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난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아니 그럼, 감옥 문도 수갑처럼 작살내자고? 들키면 니가 대신 갇혀줄래?”
- 됐네. 내가 말을 말지.
내 이죽거림에 체념한 듯, 레이븐이 철창문을 통과해 지나갔다.
철컹-!
활짝 열린 철문을 보니 기분이 뿌듯하기 그지없다.
“이래서 영체가 편하다니까.”
이것이 아키몬드 사령술의 전매특허, 형상변환.
시체로 만든 언데드로는 꿈도 못 꾸는 기술이며.
나 정도 되는 네크로맨서가 아니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천재적인 발상이었다.
- 그나저나, 정말 어이가 없군.
그렇게 잔뜩 자아도취에 빠져있을 때.
날 따라 걸어 나온 레이븐은 감옥을 빙 둘러보며 말했다.
-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렇지, 네크로맨서에 대한 감시가 이리도 허술할 줄이야.
“뭘. 크리펠 놈들도 제국한테 손 벌리는 판국에.”
대성당은 죄수가 아닌 신자들을 위한 공간.
크리펠 같은 간수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리고, 방비가 허술한 게 당연하기도 하고.”
- 당연하다니?
레이븐이 그렇게 묻자 난 뿌듯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미 내가 200년 전에 전 국토를 갈아버렸는데, 교단에 내 약점을 남겨뒀을 리 없잖아?”
- …허, 그것 참.
신성력은 네크로맨서의 마기와 상극을 이루는 힘.
전쟁을 일으킨 동시에, 교단은 내 최우선 박멸 대상이었다.
물론, 그들을 먼저 척결한 것은 훨씬 감정적인 이유였지만.
- 그대가 아키몬드였다는 사실을 가끔 잊어버리는 것 같단 말이야.
“영혼도 치매가 오냐? 몸 관리 잘해.”
- 내 영체를 관리하는 건 그대 소관인 줄 알았네만?
…라며, 실없는 대화를 이어가던 중.
- 그래서, 이제 뭘 어쩔 생각이지?
레이븐의 물음에 나 또한 팔짱을 꼈다.
재판은 앞으로 사흘 뒤.
나가봤자 들킬 게 뻔하고, 재판 준비는 하늘에 맡겼으니.
원래 같았으면 얌전히 기다리는 것이 상책이었다.
“원래는 재판날까지 잠이나 퍼질러 자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말한 내 시선이 한구석에서 멈췄다.
“생각지도 못한 일거리가 생겨서 말이야.”
어둡고 오래된 독방.
그곳에 누군가가 있었다.
저벅. 저벅.
시커먼 인영(人影)이 걸어왔다.
아주 오래되어 바랜, 그러나 의지만은 남아있는 혼.
“노느니 염불한다고 하던데. 말 그대로일 줄은 몰랐네.”
흐릿한 망자의 모습을 보며 눈을 빛냈다.
‘최소 50년 이상은 묵은 혼이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의지가 남아있다는 건….’
대성당은 신성력의 집합체나 다름없는 공간.
네크로맨서인 나조차도 레이븐 한 사람을 유지하는 것이 고작인 상황이었다.
그런 곳에서 오랜 시간 동안 버텨올 정도로 강한 의지.
저 혼은, 데스나이트가 될 수 있는 재목이었다.
‘뭐, 계약에 동의했을 때의 얘기지만.’
선택지를 부여하되, 강요하지 않는다.
이제는 지키는 자를 찾을 수 없는 네크로맨서의 기본 소양이었다.
- 존재를 잊은 망자에게 고하니, 원한다면 계약에 응하십시오.
바닥에 그려진 술식이 빛나며 계약문을 형성했다.
- 안내자의 이름은 클라인 라인란트.
원한만이 남은 시커먼 혼은 이제야 내 존재를 인지한 듯, 계약문을 이리저리 살폈다.
- 계약에 응한다면, 그대의 기억과 염을 찾겠습니다. 응하지 않는다면, 그대는 환원하여 평안할 것입니다.
계약문이 형성된 순간, 네크로맨서는 혼과 연결된다.
- ……해야 할 말이 있소.
말하는 것이 너무나 오랜만인 듯, 망자의 말은 짧았다.
- 누구에게 해야 하는지,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도 잊었지만.
신성력에 의해 깎여나간 존재.
자신의 이름도, 그 원한이 무엇인지조차 잊어버린 자다.
- 다만, 말하지 않으면 평안할 수 없소.
남아있는 것은 뭔가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뿐.
- 망자의 염을 이어받아, 이 자리에서 선언하니.
시커먼 그림자의 손이 계약문의 중심에 닿았다.
- 이 순간부터, 그대의 염은 나의 염입니다.
이름 없는 혼의 중추에 룬이 깃들고, 그림자뿐이었던 그의 몸이 구체적인 형(刑)을 이루었다.
철컥. 철컥.
갑옷 소리와 함께 나타난 데스나이트.
흉갑 중앙에 새겨진 날개 문양은, 나로서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
- 괜찮은 건가?
“뭐가.”
감옥 문을 열었지만 나갈 수는 없다.
간수들을 위한 탁자에 걸터앉은 난 레이븐의 질문을 받았다.
- 교화소의 혼들과 계약한지도 얼마 안 되었을 텐데, 또 데스나이트를 만들다니.
“뭐야, 꼴에 걱정하냐?”
그렇게 말한 난 관두라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무리하고 있는 건 맞는데, 생각 없이 무리하는 건 아니야.”
떨림이 가시지 않은 손을 들여다보았다.
‘역시. 몸이 마기의 성장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
심장에서 넘치는 마기와 대조되듯, 빠르게 지쳐가는 몸.
사령술을 쓸 때마다 픽픽 쓰러지는 것 또한 그 부작용이었다.
‘생명력을 근원으로 하는 마력이나 신성력과는 반대로, 마기의 근원은 죽음.’
상반된 두 힘의 성질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라인란트의 육체가 아니었다면, 흑요석 반지를 집어 든 순간 죽었을 거다.’
얼음성 외곽에서 얻은 세 가지의 무구.
레이븐, 수정검. 그리고 흑요석 반지.
앞의 두 개는 이제 완전히 다룰 수 있게 되었지만, 마지막 하나를 다루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한 방법은 한 가지.
그냥 마기를 X나게 써서 신체를 적응시키는 거다.
‘대성당에서 이 녀석을 소환해두고 있는 것도, 그 수련의 일환이고 말이지.’
그렇게 생각하며 지친 몸을 의자에 누이려는 순간.
철컹-!
거친 쇳소리와 함께, 두터운 지하감옥의 출입구가 열렸다.
“뭐야, 누구지?”
예상 밖의 상황.
분명, 내가 갇힌 지하감옥은 출입이 금지되었을 터.
“레이븐.”
- 알고 있다.
팽팽한 긴장을 유지한 채, 검을 든 레이븐을 앞세웠다.
상대는 내 존재를 모른다.
기습한다면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문을 열고 들어온 침입자를 경계했다.
“어.”
들려온 목소리로 유추하건대, 성별은 여자.
체구와 발소리는 내 또래인 듯했지만, 풍기는 기운은 예리하게 날이 서 있었다.
- 클라인. 저 소녀가 들고 있는 것은….
표정을 구긴 레이븐이 말을 흐렸다.
나 또한 그것을 보며 경계했다.
‘내 쪽에선 파악이 안 돼. 뭐지? 새로운 무기인가?’
사각형의 부풀어 오른 무언가.
무기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형상이었다.
‘팔리만이 다루던 것과 비슷한 무기인가? 느껴지는 건 없는데….’
무기가 뭔지 모르니 상대의 전술을 파악할 수 없다.
‘우선 레이븐이 정면을 커버하고, 그사이 내가 기습을…!’
그렇게 생각하며 언제든 튀어 나갈 준비를 하던 그 순간.
“거기 형제님도 근무 째고 짱박히러 온 거예요?”
…
……
………
“…짱박, 뭐요?”
나른한 미성(美聲).
난 여태까지 하던 전투 계획을 전부 지워버린 채, 멍청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저만 알고 있던 꿀자리였는데, 이렇게 동지가 생기네요.”
그렇게 말한 침입자는 그대로 지하감옥 구석을 향해 걸어갔다.
“…야, 레이븐.”
- 말하게.
전투준비를 하던 자세 그대로 나와 똑같이 굳어있는 레이븐을 향해 물었다.
궁금해서 묻는 게 아니라, 보고도 믿기지가 않아서 묻는 것이었다.
“저 여자가 들고 있는 거. 무기냐?”
그렇게 말하자 자괴감에 고개를 숙인 레이븐이 내게 답하길.
- 베개일세.
…아니, 야. 잠깐만.
다시 생각해도 빡 치네.
뭐?
배게?
“흐아아암~!”
말이 나오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상황.
망연자실한 채 아무 말이 없자, 졸린 눈을 비빈 수녀복 차림의 여자는 늘어지는 하품과 함께 감옥 한구석에 누웠다.
“혹시 수녀원장님 오시면 저 없다고 말 좀 해주세요.”
그 목소리를 들은 난 확신했다.
‘와. 저건 진짜다.’
저건 뒤에서 일을 꾸미는 거짓말쟁이의 가식이 아니다.
저 수녀는 지금 진정으로, 일터에서 도망 나와 낮잠을 자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었다.
“나중에 제가 저녁 한 끼….”
그렇게 자기 말을 다 마치지도 않은 정체불명의 수녀는.
“코오오오오….”
그대로 자신이 끼고 온 베개를 벤 채, 꿈나라 속으로 떠나버렸다.
“…….”
- ……….
뭐지.
아니, 진짜. 뭐 하자는 거지?
교국의 함정?
- 이봐 클라인.
혹시나 내 판단을 흐리려는 수작인가 싶어 레이븐에게 확인도 시켰다.
- 이 수녀, 진짜 자는데.
근데 잔단다.
지하감옥에 들어와서.
재판 대기 중인 죄수한테 망을 보라고 한 뒤.
감옥 구석에서 코까지 골며 주무시고 계시단다!
“야 잠깐만. 아 X발 머리 아파….”
이딴 놈들한테 복수하자고 내가 이 개고생을 하고 있었단 말이지.
계약할 때도 오지 않던 두통이 찾아온 기분이다.
- 가지가지 하는군.
내가 그러고 있는 사이
레이븐은 자고 있는 수녀를 재차 확인한 후 허탈한 듯 검을 내렸다.
“진짜 자고 있는 거 맞지?”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레이븐은 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제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 신성교단이 아무리 타성에 젖어있다곤 하지만….
그와 같은 참담한 심정으로, 난 얼굴을 덮을 수밖에 없었다.
“이건 빠져도 너무 빠졌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