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93화 (93/209)

093. 성 미리암 고아원(3)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또 올 일이 있을까. 모르겠는데.

날 향해 손을 흔드는 빵집 주인에게 화답하며, 교국 시내의 길거리를 걸었다.

“천하의 라인란트 공자가 심부름이라니.”

수도복 차림을 한 내 모습을 돌아보았다.

한 손에는 식료품이 들어찬 바구니.

다른 한 손에는 사 올 물건이 빼곡하게 적힌 메모.

이 모습을 보고 날 라인란트 공자니 아키몬드의 환생이니 생각할 리가 없지.

“수도에서 직접 들여온 옷감입니다! 오늘은 특히 더 싸요~!”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 남부 새끼들이랑 거래할 때는…!”

“어포에 어란 사시오~! 폴와이번 해안에서 가져온 것들입니다!”

케르시아스 신성 교국.

대륙 최대 규모의 종교집단인 케르시아스 신성교단의 총본산.

그렇지만 그 한가운데에 우뚝 선 있는 신전 아래는 대륙 곳곳에서 온 상인들이 모여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성직자의 국가니 뭐니 해도, 사람들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라는 거지.’

활기가 넘치는 시장을 둘러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보자, 미리암 수녀가 사 오라고 한 건 다 샀고, 남은 건….”

곳곳에서 웅성거리는 사람들 사이를 거닐며 주변을 둘러보던 때였다.

“꾸꾹!”

맑은 울음소리와 함께, 시커먼 올빼미가 내 머리 위로 날아들었다.

“뭐야, 생각보다 빨리 왔네?”

아린이 만들어낸 올빼미.

손바닥에 앉은 그 녀석의 입에는 편지 한 장이 물려있었다.

“중간에 딴 데로 새지도 않았고.”

물려있는 편지를 빼내고 빵조각을 던져주었다.

교국에 온 지 일주일이 되어가는 시점.

내가 먼저 한 일은 본가에 지원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때마침 이 녀석이 내 말을 듣는지 어떤지도 알아봐야 했으니, 전서구로 써먹어 본 거지.

“에헤이, 다 헤졌네.”

하루 종인 바람에 휘날린 탓인지, 편지를 봉인한 포장은 이미 너덜너덜해진 상태.

다행히 안에 든 내용물은 별 손상 없이 깨끗했다.

“어디 보자….”

너덜너덜한 포장을 벗겨낸 난 그 자리에서 라인란트의 인장이 찍힌 편지를 읽었다.

[편지 잘 받았다. 무탈하다니 다행이다.]

간략하게 적힌 안부 인사.

그것을 읽은 난 피식하고 바람 소리를 냈다.

암, 무탈하지.

날 잡아 가둔 교화소는 무탈하지 못했지만 말이야.

[부탁한 물건들은 이미 출발했다. 닷새 뒤에는 교국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힘들겠지만, 그때까지 기다리거라.]

내 종교재판은 일주일 뒤.

이틀 정도면 시간은 넉넉한 편이다.

“음?”

그렇게 편지에서 눈을 떼려던 내 시선이, 구석에 쓰여진 작은 글귀에서 멈춰 섰다.

“이건 하인켈의 글씨가 아닌데?”

유려한 필기체로 쓰여진 하인켈의 것과는 달리, 직선 위주의 딱딱한 필체.

프리실라 공후의 것이었다.

[타지 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교국 은행에 자금을 넣어두었습니다. 교국의 은행장과는 ‘여러모로’ 면식이 있으니, 조치해 줄 겁니다.]

유려한 필체와는 다른 무미건조한 어투.

편지라기보다는 공문서를 연상케 하는 한 마디였다.

‘교국에도 인맥이 뻗쳐 있단 말이야…?’

그리고 이 강조 표시는 또 뭐고?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자금이라, 듣던 중 반가운 소리지.”

그렇게 중얼거린 난 시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가게들을 둘러보았다.

‘3번가 가게에서 인형 사줄 수 있어요?’

‘나 목검!’

‘난 쿠키!’

‘난 장난감!’

고아원 아이들이 입에 담은 온갖 물건들이 진열되어있는, 커다란 만물상이었다.

“…애들한테 작별 선물도 해줄 생각이었고 말이야.”

***

“그, 그러니까 서, 성함이….”

“라인란트 제 2공자, 클라인 라인란트입니다.”

상업구역 한가운데에 위치한 케르시아스 교국 중앙은행.

은행에 들어와 내 이름을 대는 것과 동시에 온 은행원들에게 비상이 걸렸다.

제국 공작의 직계혈족이 은행에 나타난 상황.

곧바로 가장 안쪽에 있던 문이 열리고 살집이 두툼한 남자가 뛰쳐나와 날 맞이했지.

“그, 실례되는 줄은 압니다만, 우선 신분 확인을 위한 증명을….”

“이거면 증명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그 말과 함께 난, 금속 재질의 작은 원판을 내밀었다.

“허어……!”

기사들의 검에 사용되는 특수강 재질에, 북부의 특산품인 청석으로 상감(象嵌)된 라인란트의 문장이.

“틀림없다. 이것은 진짜 라인란트 공작가의 증표…!”

“알아봐 주시니 다행입니다.”

본가에서 데리고 있는 장인이 아니고선 위조조차 할 수 없는 정밀한 표식.

그것을 알아본 남자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날 보며 고개를 숙였다.

“마,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클라인 공자님!”

“에, 예?”

오십 대 중반에 가까운 중년이 머리를 숙이는 모습에, 난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전 케르시아스 중앙은행의 장을 맡고 있는 베기어라고 합니다!”

“아, 예에….”

은행장 정도면 낮은 지위는 아닌데, 왜 나한테 이렇게 숙이고 들어오는 거지?

“그, 프리실라 공후 마마께서는 평안하신지…?”

“건강… 하십니다.”

고개를 숙인 채 양손을 비비던 은행장은 계속해서 날 향해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다행입니다. 일이 있어 그동안 도움을 드리지 못했는데, 무탈하셨다니….”

그렇게 운을 뗀 베기어라는 남자는 계속해서 내게 말했다.

추악한 헬리안의 마수에 얼마나 고생이 많았냐느니.

이번엔 폴와이번이 아니라 라인란트로 선물을 보낼 생각이었다느니.

그것을 가만히 듣고 있던 난 대강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프리실라의 지인인데 왜 이렇게 벌벌 떨지 싶었는데.’

프리실라의 편지에 적힌 내용을 떠올렸다.

분명, ‘여러모로’ 면식이 있다고 했었지.

‘뒤가 구린 인간이군. 그걸 닦기 위해 방계와 줄을 댔었을 테고.’

그리고 그랬던 인간이 내게 굽실대는 것은, 이전과는 상황이 달라졌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이전과는 달리, 헬리안과 방계의 뒤에 숨을 수 없다는 뜻.

“이, 인출 하시는 데는 어려움이 없을 겁니다! 필요한 모든 절차는 제가….”

내가 한동안 말이 없자, 은행장은 곧바로 장부를 살피기 시작했다.

“아뇨. 그 전에.”

그렇지만 난 곧바로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끊었다.

‘할 일이 산더미인데, 집안 돈을 흥청망청 쓸 수는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난 그에게 하던 말을 계속했다.

“라인란트 측으로 선물을 보내겠다고 하셨지요?”

“마, 맞습니다! 선물… 예?”

내 말에 황급히 대답하던 은행장이 멍청한 얼굴로 되물었다.

“선물… 이요?”

“예, 선물.”

그렇게 말한 난 휘적휘적 집무실 한쪽으로 걸어갔다.

“우리 은행장님과 라인란트 간의 친목을 위한 선물이요.”

“아, 하하! 하하하!”

능글맞은 표정으로 그에게 말하자 그 또한 내 말뜻을 알아챈 듯, 어색하게 웃었다.

“무, 물론입니다! 필요하신 걸 말씀하시면 제가…!”

그렇게 말하는 은행장의 눈앞에, 난 작은 쪽지를 내밀었다.

“……흐읍?!”

그곳에 적힌 돈의 액수를 확인한 순간, 그의 얼굴이 단박에 새하얘졌다.

“크, 클라인 공자? 이렇게 많은 돈을 요구하시면….”

“요구라니, 섭섭한 말씀을.”

파르르 떨리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난 언젠가 미리암 수녀가 했던 한 마디를 떠올렸다.

“저와 은행장님의 친목을 위한, 아~주 사소한 지출 아니겠습니까?”

한번 호구를 잡았으면, 먼지 한 톨 남기지 말고 벗겨 먹으라고.

***

“오! 클라인 오빠다!”

“수녀님! 클라인 형 왔어요!”

멀리서 보이는 내 모습을 확인하자, 아이들이 입을 모아 미리암 수녀를 불렀다.

“빵이랑 야채를 사 오라고 했더니, 어디 농장에서 훔쳐 왔냐?! 뭐 이리 늦…!”

한 시간은 넘게 지체한 날 향해 미리암 수녀의 타박이 쏟아지려는 순간.

쿵-!

내가 바닥에 내려놓은 짐들을 보며, 수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

“저녁거리 사 오는 김에, 이것저것 집어왔습니다.”

그렇게 말한 난, 커다란 등짐을 풀어 안에 있는 내용물을 보여주었다.

“오!”

“우와아-!”

형형색색의 사탕과 과자.

인형, 장난감, 목검.

아이들을 위해 사 놓은 온갖 책들과 필기구까지.

“명색이 이 고아원 후원자인데, 빈손으로 온 게 좀 찝찝해서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미리암 뒤에서 그것을 구경하던 아이들이 단번에 내게로 달려들었다.

“우와! 우와아! 우와아아아!”

“이것 봐! 인형도 엄청 많아!”

커다란 가방에 가득 들어찬 온갖 물건들.

난 아이들에게 그 짐을 통째로 쥐여준 뒤, 안에서 그것을 풀어보라고 말해주었다.

“심부름이나 하라고 보내놨더니, 은행이라도 털어온 거냐?”

“은행은 아니고, 은행장 지갑을 털었죠.”

그렇게 말한 난 미리암에게 아직도 묵직한 금화 주머니를 건넸다.

“언제 한번 애들 데리고 근사한 식당이라도 한 번 가세요.”

“흥! 쓸데없이 선심은.”

그렇게 말한 미리암은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고아원의 창문을 잠시 바라보았다.

“떠날 생각이지?”

툭 던지듯 이어진 한 마디.

잠시 뜸을 들이던 난 고개를 끄덕였다.

“확인해야 할 것도 있고, 언제까지고 신세 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렇게 말하자 미리암은 쯧, 하고 혀를 차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저 애들, 너 없어지면 울고불고 난리 칠 거다.”

장난감들을 각자 배분한 아이들은 이제 망토를 두른 채 영웅 놀이에 심취해 있었다.

“봐라! 난 베르켈 라인란트다~!”

“아~! 또 자기가 주인공 하려고!”

“먼저 찍은 게 임자거든?!”

왁자지껄 활기가 넘치는 공간.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멀찍이서 바라보던 미리암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 같은 늙은이는 저 녀석들의 선생 노릇은 할 수 있어도, 친구는 될 수 없거든.”

자신이 이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험한 인생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드세게 키워주는 것뿐.

그녀의 교육관을 떠올리는 사이, 미리암은 성냥을 꺼내 담배에 불을 붙였다.

“제가 쟤들이랑 친구 먹을 나이는 아니잖아요?”

“내 앞에선 너나 쟤네나 똑같은 애새끼들일 뿐이야.”

아마 저 녀석들도 그렇게 생각할 거고.

그렇게 말을 덧붙인 미리암 수녀의 입에서 담배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러니까…. 다 끝나면 와서 얼굴이라도 비춰라.”

말없이 그녀의 등을 응시하고 있던 찰나,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수녀님께서 아키몬드의 환생에게 정을 붙이십니까?”

“하! 아키몬드는 무슨.”

툭 하고 던진 농담이었지만, 그에 답하는 미리암의 대답은 진지했다.

“내가 봤을 때, 적어도 넌 그런 놈 아니다.”

“그렇, 습니까….”

그 말을 들으며 쓰게 웃은 난,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부탁 하나만 하죠.”

“뭐?”

그렇게 말한 난 미리암에게 한 장의 서신을 건넸다.

“이게 뭐야?”

“열어보시면 알 겁니다. 뭘 도와주셔야 하는지도.”

내 말을 들은 미리암 수녀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고 있던 때.

우르르르…!

등 뒤에서 무거운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크, 클라인 공자!”

고개를 돌리자, 한 무리의 성기사들이 날 바라보고 있었다.

“재판 날짜가 확정된바! 혀, 현 시간부로 그대를 중앙교구로 압송하겠소!”

이번에는 막을 수 없다는 듯, 성기사들이 허리춤의 검에 손을 가져갔다.

‘얼굴만 보면 무슨 전쟁이라도 나가는 줄 알겠네.’

긴장한 것이 역력한 목소리를 들으며 그렇게 생각하던 때.

미리암은 더 방해할 생각 없다는 듯, 그들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아, 안 막으십니…. 까?”

“왜. 막아줬으면 하냐?”

미리암이 말을 더듬는 성기사에게 쏘아붙이자 성기사는 당치도 않다는 듯 소리쳤다.

“아, 아닙니다!”

“에휴.”

그렇게 미리암은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나고, 성기사들은 곧바로 사방으로 날 둘러쌌다.

“그렇지, 가는 길에 브리간테 놈한테 한 마디 전해라.”

날 확보한 기사들이 발걸음을 재촉하려던 순간.

그들을 불러세운 미리암이 그들을 향해 목소리를 낮췄다.

“쓸데없이 우리 고아원 후원자에게 개짓거리 하면, 내가 가만있지 않을 거라고.”

“……!”

그 말에 얼굴이 새파래진 성기가들은 급히 고아원을 벗어났다.

등을 돌려 고아원에서 멀어지는 순간.

미리암은 내가 건넨 서신의 내용을 읽었고.

“허, 이 당돌한 놈 좀 보게?”

그렇게 중얼거리는 미리암의 목소리를, 난 확실히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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