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2. 성 미리암 고아원(2)
으직-!
수직으로 내려친 도끼에 원통형의 장작이 반으로 쪼개졌다.
이 고아원에 신세를 진 지 사흘째.
“후우-!”
쉴새 없이 쑤셔오던 몸도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아, 이젠 이렇게 궂은일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클라인 오빠 장작 더럽게 못 팬다.”
…물론 할 수 있다는 것과 잘할 수 있는 건 별개였지만.
“와, 진짜로 맷이 이겼어.”
“라인란트도 별거 아니네.”
“클라인 형이 별거 아닌 거 아니야?”
내가 팬 장작의 두 배 이상을 처리한 열두 살 어린아이를 보니 자괴감이 절로 밀려왔다.
“꾸꾹!”
가만히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머리 위에 앉아있는 검은 올빼미가 내 정수리를 톡톡 건드렸다.”
쉬지 말고 계속 장작이나 패란 말이지?
“이젠 하다 하다 새한테 부려 먹히는 신세라니.”
내 머리 위에 앉아있는 주먹만한 올빼미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하자, 곧이어 아린의 볼멘소리가 들려왔다.
“그냥 새가 아니에요! 새 친구라구요!”
새로운 친구라는 뜻일까, 아니면 새(鳥) 친구라는 뜻일까.
마음속으로 실없는 생각을 하는 사이, 머리 위에 올라타 있던 시커먼 올빼미가 날아올라 아린의 머리 위에 안착했다.
“히히히!”
식당에서 훔쳐 온 감자를 우물거리던 아린이 머리 위를 올려다보며 웃었다.
“근데 얘는 이름이 뭐에요? 까망이?”
올빼미를 보러 몰려온 아이 중 한 명이 그렇게 물었다.
“지금 은근슬쩍 마음대로 이름 정하려고 했지?”
“치, 들켰네.”
계획이 뜻대로 되지 않은 듯, 입을 비죽 내민 아이에게 올빼미가 날아들었다.
“오오! 제자리에서 돈다!”
“까망이 똑똑해!”
‘저 이름은 절대로 쓰지 말아야지.’
작은 새와 어울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겉보기에는 퍽 정겨워 보였다.
물론, 겉모습만.
저 두 존재의 정체를 알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글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작아지긴 했지만 분명해. 이 녀석은 그때 그 키메라다.’
교화소 지하에 있던 실험체를 떠올리며 그렇게 생각했다.
묶여있던 혼을 걷어냈지만, 그 육신이 품고 있는 마력은 보존되었을 테지.
그리고 내가 정신을 잃은 사이, 아린은 그 마력을 응축시켜, 일종의 마법생명체로 가공한 것이다.
‘전력이 늘어난 셈이니 감사할 따름이지만.’
지하에 갇혀 있던 키메라가 가지고 있던 마력 대부분이 보존된 상태.
활용하기에 따라선, 어마어마한 화력을 뿜어낼 수도 있는 녀석이었다.
플리시안에 있는 마법사들이 이 녀석을 보면 뭐라고 할지.
벌써부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뭐야, 이것밖에 못 했어?”
그렇게 장작 패기에 몰두하기를 두 시간.
내 결과물을 본 미리암 수녀의 평가는 신랄하기 짝이 없었다.
“다 나았다면서 뻗대길래 얼마나 잘하나 했더니, 쥐 X만큼밖에 못했구만?”
“쥐, 뭐요?”
입이 험하기론 어디가서 꿇리지 않는다 생각했는데.
천만 다행히도, 이 수녀를 따라가기에는 한참 먼 것 같다.
“킥킥킥!”
물론, 그보다 더 신랄한 것은 같이 장작 패기에 동참한 아이들의 평가였다.
“클라인 오빠 장작 겁나 못 팬대~요.”
“스벤이 한 거에 절반도 안 된대~요.”
수북이 쌓여있는 저쪽과 내 것을 비교한 미리암은 피식하고 웃으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더 할 것도 없으니 들어들 가. 기생 오래비는 남고.”
“와! 클라인 형 잔업한다!”
“수녀님은요? 같이 안 가요?”
날 놀리는 것과 동시에 그렇게 되물었다.
그런 아이들을 향해, 미리암 수녀는 한 손에 든 유리병을 들어 보였다.
“우웩!”
“수녀님 또 술 먹는다.”
도수가 60도는 넘어가는 독한 위스키병이었다.
‘애들 앞에서 술에 담배에, 가지가지 하는구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나뿐만은 아니었는지, 아이들은 볼멘소리와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하아, 이제야 좀 조용해졌네.”
아이들의 목소리가 멀어지는 걸 확인한 미리암 수녀는 그대로 장작더미에 걸터앉아 술병을 들이켰다.
잠시 동안의 침묵.
그렇지만 난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나와 대화할 자리를 만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개리슨 신부의 스승이라고 하셨었습니다.”
“그랬지.”
그녀처럼 장작더미에 걸터앉은 채 입을 열자, 대답이 들려왔다.
개리슨의 스승.
전임 대행자.
그 두 가지 호칭을 듣자, 그녀가 교황을 막 대할 수 있었던 이유.
그리고 팔리만의 협박에도 이 고아원이 무사할 수 있는 이유가 납득이 되었다.
“그런 분이시라면… 제가 어떤 처지에 처했는지도 잘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만.”
“안다.”
그렇게 말한 미리암은 술병 대신 담뱃불에 불을 붙였다.
“아키몬드의 환생이랍시고 온 대륙에 대서특필되고.”
그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좀 잠잠해졌나 싶더니, 지 사촌에 팔촌까지 들쑤셔 줄초상을 내더니.”
제가 다 한 건 아닙니다만… 이라고 반박하려 했지만, 그만두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다 한 것 같기도 했고.
“지금에 와선 네크로맨서랍시고 제 발로 교화소에 기어들어 가더니, 그 교화소를 죄다 작살 냈지.”
크리펠 이단 교화소가 증발했다는 소식은 아직 멀리 퍼지지는 않았을 터.
아마도 개리슨에게서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것이다.
“그 정도면, 교국이 절 어떻게 생각할지도 아실 테고요.”
“그래. 죽이고 싶어 안달이 나 있겠지.”
그렇게 말하는 미리암에게 물었다.
“그런 상황에 처한 절, 이렇게까지 지켜주시는 이유가 뭡니까?”
전임 대행자라 해도, 교황과 말을 놓을 정도로 가까운 사람이라 해도.
아무런 이유 없이 이런 일을 하지는 않는다.
“이걸 빌미로 뭔가를 청하실 생각이라면, 미리 말씀을…!”
“프하아~!”
거기까지 말했을 때, 날 향해 입을 벌린 미리암 수녀에게서 담배 연기가 흠씬 뿜어져 나왔다.
“콜록! 콜록! 아니,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매캐한 연기에 연신 기침을 해대며 소리쳤다.
안 그래도 기침 자주 나오는 것 때문에 짜증나 죽겠는데!
“새파랗게 어린놈이 벌써부터 궁상떠는 게 X같아서 그런다, 왜?!”
그런 내 의중은 아무렇지도 않은지, 미리암 수녀는 연신 기침하는 내게 말했다.
“이 고아원에 정기 후원을 걸어놓은 귀족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있냐?”
그 말에 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클라인 라인란트. 너 하나뿐이야.”
그렇게 말한 미리암 수녀는 프흐, 하고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이곳은 8년 전, 개리슨 녀석이 교화소에서 구출한 애들을 모아놓은 곳이다.”
“……!”
거기에 부랑아 몇 명, 버려진 애들 몇 명이 섞였지만.
미리암 수녀의 그 말에, 난 잠시 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교국 입장에서는 눈엣가시인 아이들뿐이니, 제대로 된 지원이 올 리가 없지.”
그렇게 말한 미리암이 내 가슴을 쿡 찌르며 말했다.
“그런 와중에 쟤들이 나랑 이러고 사는 거. 따지고 보면 다 네 덕이란 말이다.”
퉁명스럽게 그렇게 말한 미리암 수녀는 다 타버린 담배를 비벼끄며 앉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니 네 뒤 봐준 건 그 값이라고 생각해. 괜히 와서 궁상떨지 말고.”
그 말을 들은 난,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한 가지 더 여쭤도 되겠습니까?”
“뭔데.”
그녀 또한 내 질문을 기다린 것인지, 곧바로 대답이 튀어나왔다.
“개리슨이 왜 그렇게 아키몬드의 이름에 연연하는지.”
“…….”
“그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언제까지고 그에게 이런 식으로 쫓겨 다닐 수는 없다.
꼬인 실타래를 해결하기 위해선 우선 그 시작점을 알아야겠지.
그렇게 생각하는 내 질문에, 미리암은 말없이 술병을 들이켰다.
벌컥. 벌컥.
그렇게 늙은 수녀는 한 번에 숨도 안 쉬고 술을 목 너머로 넘겼다.
“푸하아!”
한 모금에 거의 반병을 비우고 나서야, 미리암 수녀의 입이 열렸다.
“……‘아키몬드의 손’이라는 집단이 있었지.”
아키몬드.
내 이름이 나오는 것과 동시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네크로맨서의 수장인 아키몬드를 부활시키고자 준동한… 이교도 집단.”
너무나도 익숙한 구도에 얼굴을 찡그렸다.
북부 장벽.
비밀통로에서 이뤄진 전투.
그리고 그 끝에 마주한 시체들까지.
“개리슨은 그 녀석들의 의식에 사용될 제물이었지.”
파스스스….
그렇게 말하던 미리암의 술병이 빠르게 줄어들어 갔다.
“그 녀석을 제물로 내놓은 건 그 애 친부모였고 말이야.”
그 말을 들은 난, 무심코 그녀의 손에서 술병을 빼앗아 들 뻔했다.
“당시 대행자였던 난 그 의식을 진압하는 임무를 맡았고… 그곳에서 개리슨을 만났다.”
궁금증이 해소되는 와중에도 이가 갈렸다.
교단에 대한 신의.
그리고 아키몬드에 대한 끝없는 증오.
그 모든 감정의 근원이 내게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를… 당신의 후임으로 키우셨군요.”
“그랬지.”
술병을 기울이던 미리암은 얼마 지나지 않아 얼굴을 찡그리며 투덜거렸다.
“쯧, 끝났군.”
텅 빈 술병을 집어던진 그녀는 품속에서 두 번째 담배를 찾으며 말했다.
“난 개리슨을, 브리간테 녀석은 팔리만을 각각 후임으로 기르기 시작했지.”
팔리만.
익숙한 이름이 나오자 내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그래. 네가 생각하는 그 팔리만.”
그녀 역시 그의 본모습을 알고 있는 듯, 착잡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가 개리슨을 친구라고 부른 이유가 그것이었군요.”
“둘도 없는 친구지. 같은 지옥을 헤쳐나왔으니까.”
말하면서도 불쾌한 듯, 담배를 찾는 미리암의 손이 빨라졌다.
“하아…….”
그러는 사이, 생각을 정리한 난 한숨과 함께 하늘을 바라보았다.
‘결국, 또 너희들이로구나.’
장벽에서 느낀 탁한 감정과 함께, 비틀린 웃음이 무표정을 뚫고 새어 나왔다.
‘내 이름을 팔아서 시도 때도 없이 기어 나오는 구더기 새끼들.’
얼음성으로 향하던 때를 떠올렸다.
죽은 네크로맨서를 잡아, 그의 기억을 엿보던 때를 떠올렸다.
장벽 공략에 실패한 그들이 정한, 다음 행선지를 떠올렸다.
“…플리시안.”
“뭐?”
갑자기 튀어나온 내 한 마디에, 담배를 빼 문 미리암 수녀가 물었다.
“플리시안으로 가야겠습니다.”
그렇게 말하자, 가만히 내 얼굴을 보던 그녀가 내게 말했다.
“당장 종교재판부터 궁리해야 할 놈이, 갑자기 동쪽 끝에 있는 나라로 가겠다고?”
“예. 가야 합니다.”
그렇게 말한 난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성혈 연구를 멈췄으니, 앞으로 반년 정도의 여유가 생긴다.’
그 반년이라는 짧은 시간.
이때가 아니면, 언제 이런 기회가 올지 모른다.
‘제국이 준동하는 것도 시간이 필요할 테고, 교단의 연구도 기세가 꺾였다. 이안 노친네의 상태도 걱정되고, 향후 정세를 파악하려면….’
머릿속에 정리해 둔 수많은 요소들이 이리저리 요동쳤다.
계획 중이던 청사진과 대륙의 정세, 그리고 영지의 현황과 다른 이들까지.
그렇게 생각에 생각을 끊임없이 거듭하던 순간.
‘…….’
복잡한 머릿속이 새하얘지더니,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래. 이런 것들, 전부 다 핑계지.’
이해타산, 효율, 명분.
클라인 라인란트가 늘 그랬듯, 복잡한 계산을 하려던 머릿속이 단번에 정리되었다.
‘난 그냥 지금 당장 플리시안으로 가서, 그 새끼들을 전부 죽여버리고 싶은 거야.’
남아있는 것은 순수한 감정.
클라인 라인란트가 아닌, 이전의 내가 지닌 감정이었다.
라인란트의 둘째 공자가 아닌, 한 명의 미천한 네크로맨서가.
“플리시안으로 가서.”
아키몬드의 감정이, 온 힘을 다해 외치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은 두고 볼 수 없다고.
도저히 눈 뜨고 봐줄 수가 없다고.
“아키몬드 교단을 전부 잡아 족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