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 성 미리암 고아원(1)
자, 상황을 정리해보자.
분명 난 교화소를 전부 뒤집어엎은 뒤, 계약의 여파로 쓰러졌었다.
“오, 일어났다!”
날 보고 있던 것은 아린, 그리고 개리슨.
“미리암 수녀님! 이쁜 오빠 일어났어요!”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깨어나니, 수도복 차림으로 이곳에 누워있었지.
“저기요~ 제 말 들리세요오~?”
아무리 몰래 교화소를 제압했다 해도, 늦든 빠르든 교단이 날 발견했을 테고, 아린은 몸을 숨겼을 거다.
“수녀님! 이 오빠 귀먹었나봐요!”
그럼 날 맡은 건 개리슨이나 교단의 성직자들일 테니, 이곳은…!
“제-말-들-리-세-요오오-?!”
“아아아아악-! 시끄러워어어-!”
참다참다 도저히 못참아서 소리를 내질렀다.
사람 귀에다가 대고 소리를 쳐 대니, 생각을 할 래야 할 수가 없잖아!
“오오오! 화낸다 화낸다!”
“수녀님-! 이 오빠 귀 안 먹었나 봐요-!”
격노한 내 외침이 들리지도 않는지, 활기찬 아이들의 목소리가 쉴새없이 귓가를 때렸다.
“오빠 어디서 왔어요?”
“머리 색 되게 이쁘다! 하나 뽑아봐도 돼요?”
“계속 여기 있을 거예요? 이따가 놀러 갈 건데 같이 갈래요?”
대답할 틈도 주지 않은 채 질문 세례가 쏟아졌다.
“미치겠네. 진짜, 좀 차례대로 물어봐! 아니, 물어보지를 마!”
온몸이 쑤셔오는 와중에 몸을 일으켜 도망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 애들은 지금, 내가 누워있는 침대를 빈틈없이 포위하고 있는 형국이었으니까.
“같이 온 언니는 친구예요? 그 언니는 어디서 왔….”
끝을 모르는 아이들의 말소리에 다시 쓰러져버릴까 고민하던 찰나.
쾅-!
“이 망할놈들이, 밥 처먹으러 오라니까 여기 죽치고 앉았어?!”
고함소리와 함께 닫혀있던 내 방문이 거칠게 열렸다.
“우와악?!”
“미리암 수녀님이다!”
“오늘은 스벤이 날아간다!”
“도망쳐!
와아아아-!
아이 중 한 명이 뒤로 날아가는 것과 동시에 내 침대를 둘러싸고 있던 아이들이 우르르 빠져나갔다.
“하여튼, 뭐 하나 껀수 잡으면 득달같이 달려드니.”
아이를 집어 던진 사람의 정체는, 수녀복 차림의 여인.
손에 가득 잡힌 주름과 상처는 그녀가 살아온 세월과 풍파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내가 갈 때까지 준비 안 해 놓으면 또 날아갈 줄 알아!”
“네에에에-!”
친구를 집어던졌는데도 아이들의 목소리에는 겁먹은 기색이 보이질 않았다.
‘익숙한 거야? 사람을 집어 던지는 게?’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노파는 흥! 하고 콧김을 뿜고는 내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어… 저기….”
사납게 치켜 올라간 눈매와 매부리코.
입에 물려있는 굵직한 담배까지.
수녀보단 마녀가 더 어울려 보이는 모습에 순간 할 말을 잊어버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 소개가 늦었습니다. 전….”
정신을 차린 내가 황급히 예를 표하려 하던 순간이었다.
딱-!
“아윽?!”
둔탁한 충격과 함께 이마에 통증이 올라왔다.
이안 노친네가 내게 했던 것과 비슷한 딱밤.
그 딱밤의 주인인 노파는 날 보며 거친 목소리로 내뱉었다.
“일어났으면 멀뚱멀뚱 멍 때리지 말고, 내려와서 밥부터 처먹어 이놈아!”
그 말과 함께, 노파는 등을 돌려 방을 나갔다.
“……?”
아키몬드로 살아온 40여 년과 이번 생 15년.
그 전부를 통틀어도 경험해본 적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멀뚱멀뚱 앉아있는 사이.
“저기요오.”
내 어깨를 찌르는 목소리에 옆을 돌아보았다.
“어깨에 앉아있는 새, 키우는 거예요?”
그렇게 묻는 이는 여섯 살 정도 된 여자아이.
그 말에 고개를 돌린 난, 내 어깨에 앉아있는 검은 새와 눈을 마주했다.
“꾸꾹-?”
무늬 없는 검은 털을 지닌 올빼미.
그 모습을 본 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디 보자. 이건 그러니까….
….
…….
……….
“어, X발 깜짝이야! 이거 뭐야?!”
***
“잘먹겠습니다아~!”
우렁찬 아이들의 목소리와 함께 내 앞에 놓인 스프 그릇을 보았다.
“와아.”
식탁에 차려진 진수성찬을 보니 탄성이 절로 나왔다.
아이들 또한 그 마음은 다르지 않았는지, 멍한 표정으로 삭탁을 응시하고 있었다.
“삶은 감자에, 감자 스프에, 감자볶음에, 감자 팬케이크야.”
“어쩌면 이 세상은 감자로 이루어진 게 아닐까?”
“어쩌면 이걸 먹는 우리도 사실 감자인 게 아닐까?”
감자로 이루어진 식탁을 본 두 남자아이들의 심도 있는 철학 논쟁이 시작되려는 찰나.
“스벤이랑 레빈이 반찬 투정한대~요.”
“아, 아니거든!?”
“맞거든! 반찬 투정했거든!”
한 여자아이의 난입으로 인해 두 철학가의 토론은 단순한 반찬 투정으로 격하되고 말았다.
“누가 밥상머리 앞에서 반찬 투정을 한다고~?”
미리암 마녀… 아니, 미리암 수녀가 눈을 부릅뜬 채 그렇게 말하자, 방금 전까지 얘기하던 두 남자아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감자를 입에 집어넣고 있었다.
오오, 지식의 첨단이여.
권위 앞에서 몰락하는 철학의 단말마는 어찌도 이리 한스러운가.
…머릿속에서 개소리가 절로 나오는 걸 보니, 나도 제정신이 아닌 듯하다.
‘그나저나, 설마 이런 식으로 방문하게 될 줄이야.’
삶을 감자를 감자 스프에 찍어 먹으며 한쪽 벽에 걸린 팻말을 보았다.
‘성 미리암 고아원.’
케르시아스 신성 교국 직할령에 위치한 작은 고아원.
개리슨이 운영하고, 내가 정기적으로 후원하고 있는 곳이었다.
‘팔리만이라고 했지.’
능글맞은 그 상판을 떠올리자 의문이 들었다.
개리슨과 내가 그 난리통을 핀 와중에, 그가 인질로 잡았던 이곳이 무사할 리 만무할 터.
‘그런데, 어떻게 이리 멀쩡하게….’
토마토 맛이 나는 감자를 먹으면서 그렇게 의아해하던 때였다.
쿵쿵쿵-!
식당 문을 거칠게 두드리는 소리.
“클라인 공자가 깨어났다는 게 사실이오?!”
벌컥!
그 말과 함께 문이 열리며 기사 두 명이 고아원 안으로 들이닥쳤다.
‘교황청 직속 성기사단. 역시 이곳도 감시당하고 있었군.’
가슴에 새겨진 약장을 보며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기사 중 한 명은 날 향해 명령서를 꺼내 보였다.
“출두명령이오! 클라인 공자는 지금 당장, 종교재판소에 출두…!”
그렇지만 그 순간.
콰직-!
두 기사가 서 있는 한가운데를 무언가가 스쳐 지나가자, 그들은 하던 말을 멈췄다.
투둑. 투둑.
벽돌로 지어진 외벽을 뚫고 박혀있는 것은, 삶은 감자였다.
“밥 처먹을 땐 개X끼도 안 건드린다는데, 이 XX를 XX해서 XXX할 것들이….”
걸걸한 욕설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 미리암 수녀가 성기사들을 향해 호통쳤다.
“성기사라는 것들이 백주대낮에 환자를 데려가겠다고 이 개X랄들이야?!”
일개 수녀가 기사한테 호통이라.
성기사들도 적잖이 놀란 것인지,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교, 교황 성하의 명이십니다. 미리암 수녀님! 거부하시면…!”
성기사 중 한 명이 거기까지 말한 순간.
“교황이 뭐가 어쩌고 어째?!”
쾅-!
폭음과 함께, 이번엔 후라이팬이 성기사들을 향해 날아갔다.
“히, 히이익?!”
그냥 후라이팬도 아니고, 아까 전까지 불에 올려져 있던 것이다.
치이이익….
열기가 올라오는 프라이팬을 본 성기사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그럼 브리간테 그 X새끼한테 전해!”
그렇게 생각할 새도 없이 노기 가득한 미리암 수녀의 외침이 계속되었다.
“때가 되면 알아서 기어들어 갈 테니, 한 번만 더 귀찮게 하면 골통을 부숴버릴 거라고-!”
그 말과 함께 두 번째 후라이팬이 날아들 준비를 시작하자, 성기사들은 황급히 등을 돌려 돌아갔다.
“흥! 멍청이들 같으니라고.”
기사들을 쫓아낸 미리암 수녀는 의자에 걸터앉아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수녀님 여기요!”
“오냐.”
아이 중 한 명이 쪼르르 다가가 불을 건네자, 미리암 수녀는 당연하다는 듯 담배에 불을 붙였다.
“어! 수녀님 또 담배 핀다!”
“스텔라 언니가 담배 피면 병 걸린대요!”
“흥!”
몇몇 아이들이 딴지를 걸었지만, 그녀는 콧방귀를 낄 뿐이었다.
“얼굴이나 비추고 지껄이라고 해!”
물건을 집어 던지질 않나, 애들을 집어던지질 않나.
하는 행동은 거칠기 짝이 없는 노파였지만, 아이들은 웃으며 그녀를 따르고 있었다.
그 기묘한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때.
“클라인 라인란트.”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불렀다.
“라인란트 둘째 공자. 맞지?”
“예, 맞습니다.”
격식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반말이었지만, 토를 달 마음은 없었다.
상대는 교황한테 X새끼라고 욕하는 수녀.
공작가 끗발이 통할 리가 없다.
“수녀님. 수녀님.”
미리암의 담배에 불을 붙혀준 꼬마가 그녀의 수녀복을 잡아당겼다.
“저 오빠 뭐 하는 사람이에요?”
그렇게 묻는 아이에게 미리암 수녀가 말했다.
“인사해라. 우리 물주다.”
“와!”
그러자 아이들의 관심이 순식간에 내게로 집중되었다.
“오빠 그러면 돈 많아요?”
“돈 많은 사람은 벗겨먹으라고 했어요!”
벗겨먹으라니.
애들한테 참 좋은 거 가르치는구만?
“3번가 가게에서 인형 사줄 수 있어요?”
“나 목검!”
“난 쿠키!”
“난 장난감!”
그렇게 기대감에 가득 찬 아이들의 시선이 이어지자, 난 입고 있던 수도복을 탈탈 털어 보였다.
“아니, 지금은 빈털러리인데.”
그리고 그 한마디에, 아이들의 관심은 빠르게 식어버렸다.
“치, 뭐야. 좋다 말았네.”
“텃다 얘들아. 이 형도 거지래.”
순식간에 사리판단이 잘 되는 아이들을 보니, 어디 가서 굶어 죽을 일은 없을 것 같다.
“흠….”
내가 그렇게 아이들과 투닥거리는 사이.
그렇게 위아래로 날 훑어보던 미리암은 판단을 마친 듯 툭 하고 내뱉었다.
“양갓집 계집애도 아니고, 훅 불면 부러질 것처럼 생겼구만.”
예고 없이 들어온 악담에 안면근육이 움찔했다.
그렇지만 내가 뭐라 대꾸하기도 전에 그녀의 입에서 한 마디가 더 흘러나왔다.
“이런 놈한테 가서 아키몬드니 뭐니, 개리슨 그 새끼도 볼장 다 봤어.”
개리슨.
그 이름을 들은 내 얼굴에 이채가 서렸다.
“…그가 절 이곳으로 데려온 겁니까?”
“그럼 네가 지 발로 여기까지 기어 들어왔겠냐?”
대충 맞다는 말이군.
쓰러진 날 치료한 것이 이 수녀일 테고.
판단을 마친 난 곧바로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보호해주신 것에 대해선 감사드립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이름을….”
“쟤들 말하는 거 보고 숱하게 들었을 거 아냐?”
내 말에 그렇게 답한 그녀가 마지못해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미리암 라프탈리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외의 사실과 함께.
“개리슨 놈의 전임 대행자 겸, 스승이올시다.”
***
희미한 마력광이 비추는 어둡고 탁한 공간.
검은 로브 차림을 한 이들이 모여있는 곳은, 케르시아스 신성교국의 지하 수로였다.
“크리펠이 무너졌다니, 그게 무슨 소리지?”
“실험체까지 전부 사라졌다니, 이게 무슨 낭패란 말인가!”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순 없소. 하루빨리 제국으로…!”
다급한 목소리의 주인은 네크로맨서.
그들이 두른 로브는 제국에서 보급하는 네크로맨서 전용 장비였다.
끼이이익-!
“?!”
닫혀있던 나무문이 열리는 소리에 웅성거리던 네크로맨서들이 시선을 집중했다.
“다들 여기 모여있었군요.”
당황한 그들과는 달리 여유로운 목소리.
사람 좋은 미소를 만면에 띄운 검은 머리의 청년이 그들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파, 팔리만 추기경?!”
“말도 안 돼. 이 장소는 철저히 비밀에 부쳤을 텐데…!”
짝. 짝. 짝.
무심한 박수 소리가 당황한 네크로맨서들을 침묵시켰다.
“그러니 제 조언을 새겨들었어야죠. 벤 소장도 그렇고, 당신들도 그렇고…. ”
싱그러운 웃음 뒤에서 느껴지는 것은, 확연한 분노였다.
“분명 방심하지 말라고 일러두지 않았습니까.”
고저 없는 그 목소리에 네크로맨서들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기, 기다리시오. 추기경! 이번엔 실패했지만, 다음엔…!”
“성혈 생산이 중단된 이상, 다음은 없습니다.”
네크로맨서들의 말을 끊은 팔리만이 손을 들었다.
“성하께서도, 그리고 폐하께서도 합의하신 일이고요.”
쿵. 쿵.
육중한 발소리와 함께 느껴지는 거대한 마력.
그것을 느낀 네크로맨서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저 저건 설마, 아일라시스에서 연구하던…!”
네크로맨서 중 한 명이 그렇게 되뇌인 순간.
- 전부 죽여라.
허공에서 울려 퍼진 기괴한 목소리와 함께, 거대한 그림자가 한데 모인 네크로맨서들을 덮쳤다.
“아, 안돼! 제발 살려…!”
“으아아악-?!”
뼈가 으스러지고 살점이 튀는 소리가 지하수로를 가득 메웠다.
“이것으로, 성혈에 대한 자료가 유출될 일도 없겠죠.”
그렇게 중얼거린 팔리만의 오른손에는, 크리펠에 보관되어있던 연구자료들이 들려있었다.
“순도가 모자랄 텐데, 전부 말소시켜도 되는 건가?”
팔리만은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어깨를 으쓱였다.
“상관없습니다. 폴와이번에서 대체품을 얻었으니.”
제국 황성 지하에 보관된 헬리안의 시체.
그것을 떠올린 팔리만은 등 뒤의 목소리를 향해 말했다.
“피는 해결되었으니, 남은 것은 피를 받아들일 몸. 그리고….”
그렇게 말하며 말을 흐리자, 팔리만의 등 뒤에 선 그림자가 입가를 비틀었다.
“영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