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90화 (90/209)

090. 이젠 잘 모르겠습니다

“도련님은 맨날 쓰러져요. 엄청 약해.”

쓰러지는 클라인의 몸을 받아든 것은 아린이었다.

바닥에 주저앉은 그녀는 늘 해왔던 것처럼 자신의 무릎을 베게 삼아 클라인을 눕혔다.

꾸득, 꾸득.

그러는 와중에도, 거대한 실험체의 육신을 품은 그녀의 그림자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혼이 사라진 거대한 육체.

수많은 희생자들의 마력을 품고 있는 그것은 아린의 몸속에서 분해되고, 또 재구축되고 있었다.

이전에 본 적 없는, 전혀 새로운 존재로.

화륵-!

기름을 머금은 횃대에 불이 올라오고, 불빛이 어두운 지하를 밝혔다.

횃불에 불을 올린 것은 개리슨.

불빛 때문인지, 그의 눈은 그림자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우리 도련님 죽일 거예요?”

클라인을 향해 다가오던 그에게 아린이 물었다.

그 말에 개리슨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

불빛을 제외한 모든 시야는 암흑.

어디까지가 그림자이고, 어디까지가 그녀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야지요.”

싸운다면, 이길 수는 있다.

심판관들이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신성력으로 유지되던 교화소의 장막 또한 사라진 상황.

지금이라면 아마, 교국 성소에 잠든 성법기를 불러올 수도 있을 터였다.

“아키몬드의 환생이라면, 그것이 누가 됐든, 죽여야 하니까요.”

그렇지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개리슨의 목소리에서는 전의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음성에 담긴 것은 고뇌.

그것을 눈치챈 것인지, 아니면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인지.

아린은 언제나 한결같이 천진한 얼굴로 개리슨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모르겠군요.”

개리슨은 방금 전, 괴물을 환원시키던 클라인의 모습을 떠올렸다.

피와 고름을 쏟아내고, 괴성을 지르며 기어오던 혐오스러운 생물체.

자신은 그것을 죽이고자 했지만, 클라인은 그러지 않았다.

‘진짜 괴물은 이 녀석일까, 이 녀석을 만들어낸 너희 교단일까.’

그렇게 말한 클라인은 고통스러워하는 괴물의 혼을 어루만지고, 그를 달래며 인도했다.

‘그 모습은, 내가 알던 네크로맨서가 아니다.’

네크로맨서란 망자의 혼을 모욕하고, 그를 속박하여 권속으로 삼는 자.

산 자와 망자를 동시에 모욕하는, 있어서는 안 될 이단이자 사악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본 광경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의 손길에 안도하며, 평온한 죽음을 맞이한 괴물.

그것이 뿜어내는 피와 오물에도 마다하지 않고, 클라인은 의연히 그것을 받아냈다.

그가 보인 행동은, 네크로맨서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가 바라마지 않던, 성자 가울의….

쿵-!

위에서 들려온 거친 쇳소리가 개리슨을 상념에서 깨웠다.

“이쪽이다! 최하층에 반응이 있어!”

“뭐야, 심판관들은 전부 어디로 사라진 거야?! 죄수들은?!”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군홧발 소리.

심판관이나 인퀴지터가 아닌, 교황청 소속의 태양 십자군이었다.

“갑작스러운 발견이라기엔 너무 잘 들어맞는군.”

그렇게 말하는 사이에도 그들의 발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져 왔다.

‘순찰 중의 우연한 발견을 아닐 테니, 미리 대기하고 있었다는 뜻이겠지. 지시한 자는 아마….’

“쯧.”

추기경 자리에 앉아있는 팔리만의 얼굴을 떠올린 개리슨은 거칠게 혀를 찼다.

“순순히 넘길 수는 없겠군.”

그렇게 개리슨이 결정을 내렸을 무렵, 최하층에 도달한 병사들은 곧바로 개리슨을 원형으로 둘러쌌다.

“개, 개리슨 대행자에, 클라인 공자…!”

“어떻게 감옥에서 탈출을…!”

감옥에 수감 되어 있어야 할 개리슨이 최하층에서 모습을 드러내자, 병사들의 눈에 당혹이 일었다.

십자 모양의 날을 지닌 수십 개의 창이 개리슨을 겨눴지만, 그들 중 전의를 불태우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교단이 보유한 최강의 인간병기 중 하나.

그들로서는 제압은커녕, 창을 겨누는 것마저도 목숨을 내걸어야 할 판이었으니까.

“개리슨 비어크만 신부!”

그렇게 병사들이 주춤하던 것도 잠시.

우렁찬 호통 소리와 함께 한 명의 성직자가 걸어 나왔다.

“대관절 이게 무슨 일이오? 심판관들을 어디에 가고 당신과 이 자만…!”

그가 클라인을 가리키며 노발대발하는 것도 잠시.

쿠르르르르…!

신성력을 내보인 개리슨의 위압에 그를 포위한 모든 병사들이 몸을 떨었다.

“크……!”

등줄기에 소름이 쫙 돋는 것을 느낀 지휘관이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교화소장 벤 드레이크가, 지하에서 괴물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말한 개리슨이 그를 향해 얼굴을 가까이했다.

“뭐, 뭐라? 괴물?”

“예. 괴물이요.”

그렇게 말문을 연 개리슨은 지휘관을 향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하의 실험체가 폭주하여 수감자와 심판관을 포함한 모든 생물체를 먹어치웠고.

그 과정에서 감옥 문을 열고 나온 자신이 부득이하게 실험체를 막아냈다고.

“심지어 그는 괴물을 키우는 데에, 제국의 네크로맨서들까지 동원했습니다.”

“마, 말도 안 되는 소리!”

감당할 수 없는 정보가 마구 흘러나오자, 지휘관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그, 그럼 그 실험체는 어디에 있소?!”

사실을 부정하듯, 지휘관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대가 그 괴물을 처리했다면, 그 시체라도 남아있어야…!”

쿵-!

사실을 추궁하는 지휘관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개리슨의 무력시위였다.

“가증스러운 네크로맨서와 그 부산물 따위. 모조리 으깨버렸습니다.”

“그, 그럼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증언해줄 사람이…!”

그렇게 말하는 지휘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쓰러져있는 클라인 공자였다.

“그, 그래! 클라인 공자!”

그렇게 말한 지휘관이 병사들을 향해 명령했다.

“클라인 공자를 본국으로 압송한다! 저 자에게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아뇨.”

콰앙-!

지휘관이 거기까지 말했을 때, 폭음이 어두운 지하실을 가득 메웠다.

개리슨의 옆에 나타난 것은 빛나는 거대한 망치.

성자 가울의 세 성법기 중 하나, 엔릴(Enlil)이었다.

“클라인 공자는 제가 직접 교국으로 압송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개리슨은 쓰러져있는 클라인의 몸을 들춰 멨다.

‘중요한 것은 단 하나. 내가 이 아이에게서, 베르켈 라인란트의 모습을 봤다는 것일세.’

눈먼 노인, 이안 라인란트의 말을 떠올리면서.

***

몽롱한 꿈속.

내 눈에 보인 것은, 일곱 살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었다.

“헉…! 헉…!”

행여 누가 쫓아오지는 않을까 필사적으로 달리는 어린아이.

누더기처럼 해진 죄수복을 입고 달리는 저 아이가 과거의 나였다.

세 살 때부터 이 교화소에서 생활해오던, 클라인 라인란트 공자다.

“좋아, 도착했다.”

열다섯이 된 내가 다다른 크리펠 이단 교화소의 최심층부.

거대한 철문이 있던 장소에 다다른 과거의 나는, 당시에는 허술했던 나무판자로 이뤄진 임시통로를 걸어갔다.

끼익…. 끼익….

횃불 하나 없이 어두운 시야에 언제 부서질지 모르는 불안한 발판.

그렇지만 그것을 걷는 어린 시절의 내 움직임에는 거리낌이 없었다.

나이에 걸맞지 않은 날카로운 눈.

먼지와 어둠 속에서도, 특유의 은색 머리칼은 빛을 잃지 않은 채였다.

그렇게 교화소 지하의 어둠을 향해, 얼마나 더 깊이 들어갔을까.

크르르르르….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깊은 지하동굴을 울렸다.

지금처럼 더 넓어지기 전.

한 존재를 억류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어두운 공간에서, 무언가가 내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촤르륵-!

그림자.

마치 검은 잉크가 내게로 쏟아지듯 검은 이형(異形)의 무엇인가가 내게로 쏘아져 왔다.

줄기줄기 돋아난 이빨과 바늘.

저것이 우호적인 뜻으로 내게 다가오고 있지는 않은 것이 명확했다.

그렇지만.

“아린.”

수 없이 되뇌이고 각인한 이름.

그것을 말하자, 다가오던 그림자들이 내 코앞에서 움직임을 멈췄다.

살짝 닿은 목덜미에서 흘러나오는 피.

그것을 맛본 그림자는 마치 그것이 오랜만의 별미이기라도 한 듯, 충실감에 몸을 떨었다.

“네가 말한 대로, 난 여기에 왔어.”

요동치는 그림자의 줄기를 살폈다.

제어 술식, 구속명령어, 동결.

온갖 마법이 검은 그림자를 줄기줄기 휘감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 정신만은 장악하지 못한 채였다.

“이제 네 차례야.”

내 말뜻을 알아들은 듯, 검은 존재가 장악한 공간이 진동했다.

기쁨의 표시일지, 아니면 오랜만에 나타난 먹이를 보며 낸 뱃고동 소리일지.

쿠르르르….

내가 딛고있는 땅, 벽, 천장.

내 눈이 담고 있는 모든 풍경을 빈틈없이 메꾸고 있던 검은 그림자가 사라져갔다.

그제서야 난, 내가 서 있는 공간이 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석굴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정말…. 나가도 돼요?”

목소리가 들렸다.

방금까지 있었던 거대한 존재감에 어울리지 않는, 맑은 목소리였다.

“선생님들이 그랬어요. 전 위험한 괴물한테서 태어났다고.”

시선을 돌리자, 그곳에는 한 소녀가 서 있었다.

길게 늘어트린 새하얀 머리칼.

그 사이로 빛나는 황금색 눈까지.

갈색 머리에 안경을 쓴 지금과는 다른, 본래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면…. 똑같은 괴물이 될 거라고.”

어깨를 움츠린 그녀가 날 향해 물었다.

“그런데도 정말… 나가도 돼요?”

그 말을 들은 난, 양손을 들어 양 불안한 듯 떨리는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네 존재가 위험한 것은 사실이다.”

이 생각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변치 않았다.

크리펠에서 연구되던 성혈.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연구가 계속되고 있는 ‘다른 재료들’ 까지.

그녀는 그 모든 것의 근원과도 같은 존재였으니까.

“어쩌면 그들의 말대로, 끊임없이 생명을 탐하는 괴물이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것이, 이 아이를 죽여야 할 이유가 될 수는 없었다.

이 존재는 아직, 자신이 무엇이 될지 선택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걸 결정하는 건 너 자신이지, 그들이 아니야.”

오물로 가득 찬 진창에서 영웅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고귀한 성전에서 추악한 음모의 씨앗이 꽃피는 것을 보았다.

그들의 마지막을 결정한 것은 그들을 둘러싼 운명이 아닌 그들의 의지.

자신의 삶에 대한 선택권은, 오롯이 그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널 제외한 그 누구도 네 삶을 규정할 수 없다.”

그것을 위해 행동할 권리도. 그것을 책임질 의무도.

“네 존재를 규정하는 건, 오직 네 선택과 행동뿐이니까.”

확신을 담아 그렇게 말한 뒤, 그녀에게 질문했다.

“넌 뭐가 되고 싶지?”

그 말에 그녀가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마주했다.

“그 녀석들이 말한 것처럼, 사람을 먹는 괴물이 되고 싶나?”

잠시 생각하던 그녀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래.”

미숙하지만, 확실한 자아.

그것을 확인한 난 그녀의 얼굴을 보며 웃었다.

“그거면 충분하다.”

품속에 숨겨둔 단검을 꺼내, 그 칼날을 움켜쥐었다.

스걱-!

살을 베는 소리와 함께 칼날이 손을 빠져나오고, 왼손에서 한 움큼 피가 베어 나왔다.

“마셔라.”

피가 흥건한 손을 들며 그렇게 말하자, 아린이 몸을 낮춰 입을 벌렸다.

꿀꺽, 꿀꺽.

입 안에 고여있는 피를 받아마시자, 그녀의 몸 곳곳에 푸른 문양이 떠올랐다.

콰직! 콰지직-!

떠오른 것은 그녀를 속박하고 있던 수많은 룬과 술식들.

내 피를 마시면 마실수록, 그녀의 몸에 새겨진 구속이 힘을 잃었다.

“이걸로 너와 난, 서로의 일부가 된 거야.”

그렇게 말하는 것을 끝으로, 영상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 히히, 다 만들었다!

뒤이어 들려온 것은 아린의 목소리.

그녀의 한 마디와 함께, 난 꿈에서 깨어났다.

“……?”

정신을 차린 내가 눈을 뜨자 나타난 것은. 내 몸을 두른 말끔한 수도복.

그리고….

“꺄하하하하하-!”

“야! 내 빵 가져간 거 너지?!”

“아 아니라고-! 이거 내 거라고-!”

“수녀님! 쟤네 또 싸워요!”

사방팔방을 돌아다니며 난리를 치고 있는, 수많은 아이들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