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89화 (89/209)

089. 편히 잠들어라

저벅. 저벅.

미리 청소를 명령해 둔 교화소 하층 진입로.

지하로 통하는 계단을 내려가며, 난 먼지투성이가 된 정복을 툭툭 털었다.

“어우, 진짜 더러워 죽겠네.”

이곳에 갇힌 지도 보름.

머리는 떡지고 눈은 따갑고.

몸 곳곳에 피딱지까지 엉겨 붙어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도련님 지금 엄청 더러운 거 알아요?”

“아는데. 그러면 좀 떨어지던가.”

날 향해 말하는 아린에게 그렇게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히히, 냄새!”

내 모습이 재밌는 건지, 아린은 오히려 내 팔을 붙잡은 채 착 달라붙어 있을 뿐이었다.

‘정작 난 죽을 맛인데, 얘는 뭐가 그렇게 좋은건지.’

마치 소풍이라도 나온 듯 해맑은 모습에 맥이 절로 빠졌다.

“돌아가면 하루 종일 씻어야겠어.”

“하루 가지고 돼요?”

“아니면 욕조에서 하룻밤 잠이나 자지 뭐.”

적진이 아닌 내 집을 거니는 듯한 여유.

그렇게 한참 동안 계단을 내려가자, 일자로 이어진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 크르르르…!

까득! 까득!

먼저 보낸 그레이브 하운드들이 사람의 두개골을 씹고 있는 광경.

그 주변에는 만신창이가 된 검은 로브의 남자들이 몸을 비척거리고 있었다.

“끄으, 이게 도대체…!”

“살려줘…!”

곳곳에서 들리는 신음 소리의 주인은 이곳에서 실험체들을 연구하던 네크로맨서.

연구와 실험만 해 오던 그들은, 위에서 들이닥치는 언데드의 군세를 막지 못한 것이었다.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고!”

완전히 실성한 듯, 네크로맨서 한 명이 고개를 내저었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언데드를…. 시체도 없이…!”

스걱-!

이유를 알려줄 이유도, 그런 여유도 없지.

검을 횡으로 휘둘러 경악에 찬 네크로맨서들의 목을 잘라냈다.

“시체가 없으면 사령술을 쓸 엄두조차 못 내냐? 덜떨어진 것들.”

난 그들을 향해 그렇게 말하며 앞을 바라보았다.

“어이 신부! 곳곳에 생존자들이 있는데, 몇 명은 심문을 해야…!”

그렇게 목소리를 높였지만, 곧이어 난 하던 말을 멈춘 채 한숨 쉬었다.

“하아… 진짜 저 새끼.”

말없이 교화소 복도를 걷던 개리슨은 이미 멀찍이 앞으로 나아간 뒤였다.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지.

“꺼, 꺼어…!”

“흐어어어….”

그 경로에는 벽과 천장, 바닥에는 네크로맨서들의 시체가 한가득 처박혀있었다.

“정보 따위는 필요 없으니, 다 잡아 족치겠단 뜻이군.”

아린이 아니었으면 아마 날 잡아다 족치셨겠지.

일촉즉발의 대치상황을 떠올리며 비쩍 말라가는 입술을 적셨다.

“아린.”

“네!”

내 부름에 답한 아린에게 물었다.

“네 친구들이 날 부른 이유. 알고 있어?”

‘친구.’

이 녀석이 말하는 친구는 교화소 지하에 있는 실험체들을 일컫는 것일 터였다.

아마 교단은 그들을 이용해서 성혈을 만들고, 가공하고 있었을 테지.

인륜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효율위주의 인체실험.

이게 신성 교단인지, 인두겁을 뒤집어쓴 미친 과학자 집단인지 모를 정도였다.

‘뭐, 교단에 몸담은 저 녀석만큼 빡돌진 않았지만 말이지.’

앞서서 걸어가는 개리슨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뿌득-!

그의 주먹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교단이 뒤에서 인체실험을, 그것도 제국의 네크로맨서와 공조한 실험을 자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를 분노케 한 것이다.

“교화소가 뒤에서 개짓거리 한 게 처음은 아니잖아?”

개리슨의 등을 향해 그렇게 말했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뭐, 그때는 네크로맨서가 아니라 그냥 신부들이었으니 경우가 좀 다른 건가?”

“닥쳐라.”

그러거나 말거나.

개리슨의 싸늘한 음성이 나불대는 내 목소리를 막아섰다.

“너와 이 버러지들은 결국, 똑같은 네크로맨서가 아니더냐.”

개리슨이 날 향해 그렇게 말한 그 순간.

“도착했어요!”

아린의 목소리와 함께, 이 기다란 통로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미치겠군. 그 사이에 이런 걸….”

통로 끝에 위치한 거대한 철문을 보며 중얼거렸다.

내가 교화소에서 탈출한 것이 8년 전.

그 시간 동안 이들의 실험실은 더 크고, 더 정교해져 있었다.

쿠르르르르…!

개리슨의 팔이 육중한 철문을 열어젖혔다.

구륵, 구르륵.

찰박, 찰박.

실험체가 사는 심층부를 향해 발을 내딛자, 짙은 혈향이 올라왔다.

명실상부 틀림없는 사람의 피 냄새.

“기다리고 있어라. 아키몬드.”

그것을 확인한 개리슨이 날 향해 말했다.

“이것들을 전부 처리하고 나면, 그다음은 바로 네 차례일 테니까.”

그렇지만, 그의 말에 답하는 대신, 난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막았다.

“미안한데,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내가 개리슨의 말에 대답한 그 순간.

크르르르….

낮게 깔린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끼이이이…!

가느다란 무언가의 울음소리.

크륵! 크르륵?!

기도가 무언가에 잠긴 듯, 끓어 넘치는 음성 또한 함께였다.

“이것이…!”

점점 가까워지는 그것을 본 개리슨이 치를 떨었다.

“이것이 정녕, 교단이 만들어낸 존재란 말인가?”

그런 개리슨을 향해, 포효소리가 들려왔다.

- 크워어어어어어-!

사람의 다리로 이루어진 지네의 형상.

척추에 이빨이 달린 채, 수십 개의 얼굴이 붙어 있는 존재.

그리고 온몸에서 흘러넘치는, 끝을 모르는 마력까지.

“키메라….”

신화에 나타나는 그 괴물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인간을 재료로 사용하여 만들어낸 뒤, 언데드로 개조했군.”

푸슉! 푸슉!

곳곳에 꽂혀 있는 채혈기와, 그 채혈지에 연결된 시험관을 채운 붉은 액체.

나와 개리슨은, 그것이 성혈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내부 구조를 재구축해서, 성혈을 만드는 공장으로 재탄생시킨 거야.”

원통형의 살덩이를 가득 메꾼 것은, 네크로맨서들이 사용하는 사령술식.

이리저리 꿰매고 이어붙인 신체 장기를 억지로 움직이게 하는 저주의 주문이었다.

“제국으로 이송된 헬리안의 시체도, 아마 비슷한 몰골이겠지.”

성혈에 미쳐 스스로 괴물이 된, 그녀의 말로를 떠올렸다.

구역질이 절로 나왔다.

“더 이상 볼 필요도 없군.”

내가 그렇게 생각을 거듭하던 사이.

개리슨은 주먹 쥔 손에 힘을 가득 불어넣었다.

쿠구구구구…!

그의 강권에 모여드는 웅혼한 신성력.

그는 더 볼 것도 없이, 이 존재들을 없애버리고자 결심한 것이다.

“사령술이 낳은 저주받은 생명. 성자 가울의 이름으로, 저 한 많은 생명을 꿰뚫어 분쇄하니…!”

“안돼.”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괴물의 머리를 부수고자 하는 개리슨.

그렇지만, 난 그의 앞을 막아선 채 입을 열었다.

“아직 죽이지 마.”

그러자 날 보는 개리슨의 눈빛이 점점 더 험악해졌다.

“죽이지 마라고?”

그 말과 함께 개리슨은 신성력이 깃든 손을 내게 겨눴다.

“새로운 연구재료에 흥미라도 생겼나? 아니면 여기서 얻어낼 다른 무언가가 있기라도 한가?”

그렇게 날 추궁하는 개리슨이었지만, 난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점점 더 알 수 없는 표정이 된 개리슨이 날 향해 물었다.

“성혈을 뿜어내는 괴물을 죽이려 하는데, 어째서 그걸 막으려 드는 것이지?”

그 질문을 들은 난 짧은 탄식과 함께 그 존재를 향해 걸어갔다.

“신성력의 성질은 환원이 아닌 소멸.”

개리슨을 향해 그렇게 말했다.

반박을 기다리지 않고,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산 자의 세계를 떠도는 영혼을 있어야 할 곳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를 말소시켜버리지.”

교단이 신성력은 주신 케르시아스의 의지가 깃든 힘.

태양을 관장하는 그의 의무는 타락한 자를 이 세상에서 지우는 소멸자의 업이었다.

“하지만 이 자의 영혼은… 그렇게 타락한 혼이 아니야.”

피와 고름을 내뿜는 혐오스러운 외형.

그렇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내 눈에 담긴 것은 혐오가 아닌 연민이었다.

“저 괴물에게 영혼이 있다는 말인가?”

“하, 괴물이라고?”

미간을 찡그리며 개리슨의 말에 반박했다.

“진짜 괴물은 이 녀석일까, 이 녀석을 만들어낸 너희 교단일까.”

“……!”

“난 솔직히 구분 못하겠는데.”

독기가 가득 담긴 내 한마디.

입을 다문 채 말을 잇지 못하는 개리슨을 뒤로한 채, 괴물이라 불린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끄으으으으….

병자의 신음소리와도 같은 기괴한 음성.

고통스러워하는 그것을 향해 손을 뻗은 난, 그 뒤틀린 존재를 향해 마기를 뿜어냈다.

키이익?!

이질적인 기운에 놀란 듯 그가 이빨을 곤두세웠다.

길게 뻗은 송곳니에 걸려있는 것은 네크로맨서들의 시체.

- 두려워하지 마라.

그렇지만 내 성대를 통해 흘러나온 망자의 목소리에 잔뜩 겁먹은 실험체가 안정을 되찾았다.

끼이이이이….

거대한 아가리를 벌린 채, 입에서 성혈을 토해내는 괴물.

철퍽! 철퍽!

그는 이윽고 천천히 내게 다가와, 내가 내민 손에 머리를 갖다 대었다.

“많이 고통스러웠구나.”

오염물로 가득한 고름과 체액이 내 옷을 적셨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고통스러워하는 그의 몸을 어루만진 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힘에 대한 욕망으로 말미암아, 원치 않는 생명을 먹어치우며 억지로 몸을 키웠어.”

네크로맨서는 산 자의 세계와 영혼을 매개하는 중개자.

사람의 형태를 잃고, 말하는 법을 잊어버린 괴물의 모습을 하고 있을지라도, 네크로맨서는 그 혼의 의지를 잡아낼 수 있다.

- 이제 괜찮다.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어린아이를 달래듯, 뒤틀린 얼굴을 향해 말했다.

- 이제 이 감옥에서… 너희들을 꺼내줄 테니.

그 말과 함께,수인을 맺은 내 손이 움직였다.

혈관과 신체에 각인된 술식을 분석하고, 역순으로 이를 파훼했다.

- 안내자, 클라인 라인란트가 고통받는 혼에게 고하니.

파츳-!

그의 몸을 훑은 마기가 빛을 발하고, 온몸을 얽매고 있던 술식을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 족쇄를 풀고 몸을 일으켜라. 자유를 되찾고 편히 잠들어라.

키이이이이….

죽음은 때때로, 안식과 잠에 비유되기도 하는 법.

기계장치와 사령술식에 둘러싸인 몸이 해방되자, 연신 떨림을 멈추지 않던 그의 몸이 점차 안정을 되찾아갔다.

우우우우우…!

억압되어 있던 혼들이 하운팅을 쏟아냈다.

마구잡이로 기워낸 몸을 유지하던 반혼술이 힘을 잃고, 그 몸속에 묶여있던 수많은 혼들이 하나둘 그의 몸을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쿵-!

지네와도 같은 거대한 몸체가 균형을 잃고 무너졌다.

마치 봇물이 터진 듯, 주저앉은 키메라의 육신은 그 비대한 몸에 쌓여있는 성혈을 교화소의 지하 바닥에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린.”

내가 교화소에 들어온 목적은, 성혈의 제조원을 파괴하는 것.

그리고 이만한 크기의 육체를 처리하기 위해선, 그녀의 힘이 반드시 필요하다.

“베에, 저거 맛없는데.”

“억지로 삼켜. 돌아가면 사탕 있잖아.”

“피.”

내 말에 입을 비죽 내민 아린이었지만, 그와 별개로 그녀의 몸은 천천히 나와 개리슨이 선 공간을 뒤덮었다.

콰득-!

사방을 둘러싼 검은 그림자가 키메라의 몸을 집어삼켰다.

치이이익-!

내부에서 정제되지 못한 성혈도, 시험관과 기계장치에 뒤덮인 뼈와 혈관들도.

아린의 몸에서 뻗어 나온 그림자는 그 모든 것을 집어삼켜, 그녀를 위한 양식으로 삼고 있었다.

- 감사합니다.

뒤틀린 키메라의 몸에서, 한 무리의 영혼들이 빠져나왔다.

괴물의 몸에 갇혀 소모되었음에도, 나에 대한 예를 잊지 않는 망자의 혼들.

- 너무 늦지 않았기를 바랄 뿐입니다.

눈을 내리깐 채 그들에게 화답한 뒤, 텅 빈 교화소를 한 차례 둘러보았다.

재물을 위해 죄 없는 이를 잡아 가두던 심판관도.

실험을 위해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 제국의 네크로맨서도 없는, 텅 빈 공간을.

“이걸로, 교단의 성혈 제조 계획은 완전히 무너졌군.”

“연구원들도 전부 족쳤으니, 당분간은 골치 좀 썩이겠지.”

하지만, 그 또한 길어야 2년.

교화소에서 실험한 데이터는 건재했으니, 그들은 곧 제2, 제3의 크리펠 이단 교화소를 만들 것이다.

“그렇게 되기 전에, 우선 교단을….”

그렇게 말하며 뒤를 도는 순간.

뚝. 뚝.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에, 난 무심코 내가 선 바닥을 바라보았다.

“아, 제발 좀.”

흥건하게 바닥을 적시고 있는 피.

그것이 내 것이라는 걸 알아챈 순간, 눈앞이 뿌예지며 몸이 균형을 잃었다.

‘하긴, 아무리 성장했어도. 한 번에 4만 명이랑 계약하는 것은 좀 무리가….’

내 생각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점점 의식을 잃어가는 내 몽롱한 시야.

그러던 와중, 내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복잡한 표정으로 날 보고 있는 개리슨의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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