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6. 망자의 왕(2)
쿵-!
쿵-!
하층 수감구역에서 상부 공동으로 올라가는 진입로.
당장이라도 폭발하려는 듯 요동치는 철문을 수많은 심판관들이 틀어막고 있었다.
“어떻게… 도대체 어떻게…!”
완벽한 계획일 터였다.
저 가증스러운 놈이 교화소에서 빠져나간 그 날부터.
저 놈이 다시 돌아올 이 날을 기다리며 칼을 갈았다.
저 제국의 네크로맨서들에게 아쉬운 소리까지 해 가며 사령술을 틀어막는 구속구까지 준비했단 말이다.
저 소년을 싸고도는 건방진 대행자까지 사지에 몰아넣어서!
‘그렇게 철저히 계획했는데, 어째서…!’
“소, 소장님!”
“더 버틸 수 없습니다!”
문을 틀어막고 있던 심판관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벤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회전시켰다.
한 층을 전부 뒤덮을 정도의 수라면, 어림잡아 6천 이상.
교화소를 방어하는 병력의 세 배는 되는 어마어마한 수다.
‘하지만, 기껏해야 스켈레톤 수준의 잡졸들 뿐일 터.’
클라인 암살을 위해 이단심문소에서 인퀴지터들을 파견했을 때.
그들의 전투기록을 떠올린 벤이 입을 열었다.
“병력은 전부 모였나?”
“예, 소장님.”
옆에 선 심판관 중 하나에게 묻자 대답이 들려왔다.
외벽을 경계 중인 심판관들 또한 전부 모인 상황.
‘이 정도라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어!’
계산을 마친 벤이 손을 들자, 심판관들이 일제히 무기를 들었다.
“우리들의 도움은 필요하지 않은 모양이군?”
그들을 지켜보던 네크로맨서가 그렇게 물었다.
그렇지만 벤은 ‘퉷’ 바닥에 침을 뱉은 뒤 으르렁거렸다.
“지하로 돌아가서 실험체나 잘 간수 해라.”
이미 구속구와 연구 등으로 빚을 진 상황.
이 이상 제국에게 덜미를 잡힐 수는 없었다.
“거기 너!”
벤이 심판관 두 명을 호출하자 부름을 받은 성직자들이 곧바로 그를 향해 달려왔다.
“부르셨습니까!”
“외부로 나가 교단 본부에 연락해라. 클라인 공자는 아키몬드의 환생이었고, 언데드로 교화소를 뒤집어엎으려 한다고!”
이의는 없었다.
이 심각한 와중에 그의 말에 토를 단다면, 그 뒤 일어날 일은 불 보듯 뻔했으니까.
아마 벤의 철퇴가 향하는 곳은 언데드들이 아닌, 자신들의 머리통이 되겠지.
“알겠습니다!”
“건투를 빕니다. 소장님!”
사뭇 비장한 눈으로 그렇게 말한 심판관들이 등을 돌려 성 밖으로 달려갔다.
“남은 인원들은 대열을 갖춰라! 곧 놈들이 온다!”
촤르르륵-!
벤의 명령에 심판관들이 일제히 무기를 들었다.
진득한 피를 닦아낼 생각조차 하지 않은 듯 거뭇거뭇한 병장기들.
거기에 신성력을 불어넣고, 품에서 꺼낸 성수를 뿌려 이중으로 위력을 강화했다.
“교단의 이름으로, 거룩하신 주 아버지 케르시아스의 이름으로!”
다가올 전투에 대한 고양감이 그의 투지에 불을 붙였다.
누런 이를 드러내며 외치는 그의 모습은 피에 굶주린 광견과도 같았다.
“신성교단에 반기를 드는 저 이단을…!
- 덮어라.
벤이 부하들을 독려하기 위해 목청을 높이던 그 순간.
훅-!
어두운 공동을 밝히던 횃불과 조명들이 한순간에 모두 자취를 감췄다.
“뭐지?!”
“횃불이 전부 꺼졌습니다!”
“젠장, 아무것도 안 보이잖아?!”
모든 조명이 사라지자, 어둠에 적응하지 못한 심판관들 사이에서 동요가 일었다.
전투 직전에 벌어진 아주 작은 혼란.
그렇지만 그 작은 혼란은, 뒤이어 찾아오는 침입자에게 전투의 주도권을 넘겨주는 데에는 충분했다.
쿠콰아아앙-!
불이 꺼지는 것과 거의 동시에 심판관들이 막고 있던 문이 터져나갔다.
- 컹! 컹-!
- 크워어어억-!
봇물이 터진 듯 흘러넘치는 그림자의 군세.
보고서에 있던 인간형의 스켈레톤이 아닌, 수천 마리의 사냥개들이 동시에 쏟아져나왔다.
“뭐, 뭐야?!”
“방어! 다들 방벽을 펼쳐라!”
“젠장, 아무것도 안 보이…! 크아악-!”
까드득!
으직!
곳곳에서 목덜미를 물어뜯긴 심판관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두 눈에 의지한 채 세상을 보는 산 자들과는 달리, 망자의 눈은 영혼을 보는 법.
선봉으로 달려 나간 사냥개, 그레이브 하운드들은 정확히 그들의 목덜미를 붙잡아 비틀었다.
“같잖은 장난질을-!”
쿠콰아아앙-!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
신성력을 머금은 벤의 철퇴가 수십 마리의 사냥개들을 하늘로 날려 보냈다.
“오오!”
“역시 소장님이시다!”
단말마와 함께 사라지는 사냥개들을 보며 심판관들이 전의를 다잡을 무렵.
“그러게, 역시 힘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그 뒤에서 들려온 나른한 목소리에 무기를 쥔 벤의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8년 전이랑 변한 게 없구나? 미친개.”
넝마와 낡은 검을 찬 채, 창병의 호위를 받으며 고고하게 선 저 모습.
저자는 지금, 마치 이 교화소가 자신의 것인 양 왕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네놈이 감히, 두 번이나 이 교화소를…!”
당장이라도 저 얼굴을 씹어먹고 싶었다.
골통을 쪼개, 그 안에 있는 뇌수를 땅에 흩뿌리고 싶었다.
“클라인-!”
그가 돌진하는 것과 함께 다른 심판관들이 달려들었다.
“1진, 사냥개. 전군 돌격.”
그렇지만 그에 맞춰 클라인이 명령을 내리고.
그가 나왔던 지하통로에서, 방금 전 튀어나왔던 것의 배는 되는 그레이브 하운드들이 달려나왔다.
투콰아앙-!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벽과 언데드의 파도가 부딪히고, 비명과 굉음이 온 교화소를 뒤덮었다.
“이야~ 역시.”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보고 있던 클라인은, 다른 병력을 향해 손을 들며 말했다.
“개새끼들은 개새끼들이랑 싸워야 그림이 살지.”
***
키이이잉-!
눈부신 섬광이 비산하며 그림자와 뼈로 이루어진 사냥개들을 분쇄했다.
신성력은 언데드의 천적.
수로 밀어붙이긴 했으나, 그 상성 관계를 뒤집을 수는 없으니까.
‘정의를 관장하는 케르시아스의 신관이 저런 쓰레기들이라니.’
언데드를 문자 그대로 갈아버리는 가공할 힘을 보며 생각했다.
이익을 위해 수만 명의 무고한 생명을 취해 온 타락한 성직자들.
그렇지만 케르시아스의 신성력은 그것을 모르는 듯했다.
파아앗-!
온갖 죄악으로 가득 찬 그들의 무기에, 순도 높은 신성력이 흘러 들어갔다.
피딱지가 눌러앉은 무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새하얀 빛.
저것이 신성력인지, 아니면 지성 없이 부여하는 힘의 편린인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렇지만, 그걸론 부족하지.”
그렇게 말한 난 뒤에서 대기 중인 보병진을 추가로 투입 시켰다.
“즈, 증원이다!”
“젠장, 이 사냥개들도 벅찬 마당에…!”
내가 나타난 통로에서 끝없이 쏟아져나오는 그레이브 하운드들.
도통 그 끝이 보이지 않던 찰나에 일반 언데드들까지 합세하자 심판관들에게는 낭패한 기색이 가득했다.
“술자! 술자를 죽여라!”
그렇지만 그들도 바보는 아닐 터.
곧바로 네크로맨서의 약점을 찌르기 위해 한 무리의 심판관들이 날 향해 달려왔다.
- 키이익!
그것을 알아챈 내가 스켈레톤으로 방벽을 세워봤지만, 역부족.
쿠콰아앙-!
신성력에 밀린 스켈레톤들이 터져나가고, 그들의 메이스가 날 향해 돌진해오기 시작했다.
“아직은 때가 아니니 내가 처리해야겠군.”
끊임없이 언데드를 생산하고, 또 생산하고 있는 내 마기.
데스나이트인 레이븐을 부른다면 내가 무방비 상태에 처할 판이었다.
“됐다, 도착했다!”
“건방진 놈! 숨통을 끊어…!”
서걱-!
생각을 마치는 것과 동시에 검을 뽑았다.
기고만장한 채 날 향해 무기를 내민 어리석은 자들.
키리릭?!
메이스를 쥔 심판관의 손가락을 잘라내는 것과 동시에 목, 그리고 뒤따르는 이의 눈을 한 번에 베어냈다.
배처럼 휘어지는 사영격을 베기로 전환한 기술.
“끄아악?!”
“뭐야, 검이 어디서 날아온…!”
어두운 풍경과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검격.
그리고 특유의 기괴한 검로까지.
그들은 뭐에 당했는지도 모른 채 피 흘리는 팔을 감싸 쥐었다.
“인퀴지터 놈들이 훨씬 낫군.”
팔이 여섯 갈래로 쪼개지는 고통에서 아무 반응이 없던 교단의 괴물들.
그들에 빗대어 심판관들을 조롱하는 동시에, 간격을 좁혀 그들 한가운데로 몸을 옮겼다.
“이 자식이 감히!”
“흐아아압-!”
간격 안으로 들어오자 심판관이 곧바로 메이스를 휘둘렀다.
‘동료를 경로에 넣은 채 휘두르다니, 멍청한 놈.’
이미 내 눈은 저 메이스의 움직임을 다 잡아놓은 상황.
몸을 옆으로 빼 그것을 피하자, 심판관의 메이스는 합류하려던 동료의 어깨를 가격했다.
콰득-!
“끄아악?!”
어깨뼈가 함몰되는 파열음과 함께 심판관의 눈이 커졌다.
동료의 무기에 당할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한 탓이었다.
‘서로의 공격 경로가 겹치는 사각지대.
그곳을 선점하면 혼자서 스무 명 정도는 능히 상대할 수 있다.’
장벽에서 배운 사실을 떠올리며 경계를 높였다.
이안이 내게 가르친 것.
그것은 단순한 검술뿐만이 아니었다.
전투에 대한 실전적인 강의와 전술.
상대의 움직임을 이용하는 방법론까지.
그가 내게 가르친 것은 단순한 기술이 아닌, 정보를 바탕으로 전황을 바꾸는 전술이었다.
“뭐, 뭐야?! 왜 네가 거기에…!”
“젠장, 합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잖…!”
이런 대규모 전투가 익숙지 않은 듯, 심판관들의 연계는 형편없었다.
‘엇비슷한 상대와는 싸워본 적이 없는 거겠지.’
교단에 반항하는 이를 잡아 고문하는 것이 그들의 일.
신성력과 신체 능력은 수준급이지만, 그것을 제한다면 실전경험조차 없는 초짜들일 뿐이다.
‘차라리 1대 1로 싸웠으면 더 불리했을지도.’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내 검은 저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촤라라라락-!
스텝을 교차하며 밀집한 그들의 가운데를 누볐다.
그와 동시에 내 검이 발(發)한 것은 루델의 환영검.
촤촤촥-!
동시에 다섯 명의 목젖을 도려내자, 그대로 절명한 심판관들의 몸이 허물어졌다.
“끄으으?!”
“언제 목을…!”
야심찬 돌파 작전도 실패.
그렇지만 그사이에 심판관들은 내가 보낸 그레이브 하운드들을 전부 정리한 상태였다.
콰직-!
마지막 남은 사냥개의 두개골이 부서지고, 심판관들이 나와 내 보병들을 한데 모아 원형으로 포위했다.
“이걸로… 이걸로 끝이다. 클라인!”
승리를 확신한 벤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수천 명의 스켈레톤이 모여 만들어낸 방패벽이 날 보호하는 상황.
“흐하하하하하-!”
그렇지만 그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우렁차게 웃어댔다.
“시야를 차단하고 기습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마무리가 어설펐군.”
철컥-!
일제히 날 향해 무기를 겨눈 심판관들이 달려들 준비를 했다.
“네 놈을 잡으면 일단 그 팔다리를…!”
“하하하하하-!”
벤의 심판관들에 의해 빈틈없이 포위된 상황.
그렇지만 난 오히려 기뻐 죽겠다는 듯 소리 내어 웃었다.
“완전히 포위되더니, 공포에 실성이라도 한 것인가?”
수적 우위를 되찾은 벤은 더 거리낄 것이 없다는 듯 손을 들었다.
“아니, 그 반대야.”
그리고 나 역시, 하늘을 향해 손을 뻗어 내 군대를 향해 신호했다.
“내가 너희들을 완전히 포위한 거지.”
그 말과 동시에, 성벽 곳곳에서 그림자가 솟아났다.
투화악-!
“뭐야?!”
“성벽 외곽입니다! 거기에서 언데드가……!”
눈이 어둠에 익숙해진 듯, 벤과 심판관들이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
“저게, 저게 다 뭐야……?”
그리고 주변을 확인한 그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자신의 등 뒤를 바라보았다.
촤르르르륵-!
나와 스켈레톤을 포위한 수천 명의 심판관들.
그렇지만 그들의 등 뒤에는, 푸른 안광을 내뿜는 스켈레톤 쇠뇌병들이 그들을 향해 석궁을 겨누고 있었다.
성벽과 공동 외곽을 빼곡히 채운 스켈레톤들.
그 수는 어림잡아도 3만 이상.
“저렇게 많은 언데드를, 언제…!”
“보병진, 무장 전환.”
원형으로 날 둘러싼 스켈레톤들에게 명령했다.
철컥! 철커덕!
그들이 두 손에 들고 있던 검과 원형 방패가 사라지고, 방벽 구축용 대방패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부 다 미끼였다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 몸을 떤 벤이 날 보며 웅얼거렸다.
“수천 구의 언데드와 자기 자신을 미끼로 쓴 것이라고…?”
당황한 기색이 가득한 벤을 보며 피식 웃었다.
“네 말대로 여기 모인 언데드들은 잡졸들이지.”
너무나도 미약하고, 나약하게 죽어간 무고한 이들의 혼.
그렇지만 난, 하늘을 향해 치켜든 손을 휘두르며 말했다.
“그래서 한 4만 명 정도 되살렸는데, 마음에 드나?”
수신호의 뜻은 순차 사격.
그 말을 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교화소의 천장은 발사된 쿼렐의 비로 빈틈없이 뒤덮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