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5. 망자의 왕(1)
“배식이오, 클라인 공자!”
드르륵-!
감옥 문 아래에 난 덧문이 열리고, 그곳에서 음식이 내밀어졌다.
다 식어버린 밀죽과 빵.
그리고 물 한 모금.
난 그것을 받아든 채 접시에 머리를 처박고 우걱우걱 먹어댔다.
“하, 천하의 라인란트 공자가 이 꼴이라니.”
“이래선 개들과 다를 바 없군.”
열흘 만에 깨어난 내가 요구한 것은 식사.
이 조촐한 식사는 그런 날 위해 저들이 준비한 특식이었다.
“후우!”
뭐가 들었는지도 모르는 것들을 깔끔히 비워낸 난 감옥 문을 바라보았다.
비웃음과 조소, 경멸이 담긴 시선을 날 보는 심판관들.
그렇지만 난 되려 그들을 도발하듯, 감옥 문을 향해 빈 그릇을 내던졌다.
깡-!
“X나 맛없네. 다음번엔 좀 잘 좀 해 봐.”
철문에 부딪힌 그릇이 쇳소리를 내고, 그것을 본 심판관의 얼굴이 구겨졌다.
“아무래도 지금 자기 처지를 잘 모르나 보네.”
이 지경이 되어서도 기고만장한 꼴이라니.
부아가 치민 심판관이 거친 손짓으로 감옥 문을 열려 했다.
“이봐! 상부의 허락도 없이 문을 열면…!”
날 골리기 위해 같이 온 심판관이 그렇게 말했지만, 머리에 열이 오른 그는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어차피 구속구가 채워져 있지 않나! 주제 파악 좀 시켜주는 걸로 문제 생길 일 없어.”
‘참 쉽다. 병신 같은 새끼들.’
그들을 보며 그렇게 생각할 무렵.
철컹-!
감옥 문이 열리고, 곤봉을 든 심판관이 날 향해 다가왔다.
“곤죽을 만들어주마. 클라인 공…!”
그가 거기까지 내뱉었을 무렵.
스걱-!
이미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레이븐의 검이, 그의 손목을 완전히 날려버렸다.
“어, 어…?”
갑작스러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심판관이 침음성을 냈다.
“크, 클라인 공자가 풀려났다고?! 어떻게…!”
아직 이성을 유지하고 있던 다른 한 명이 그렇게 말했을 무렵.
콰득!
어둠 속에서 솟아난 짐승의 입이 그의 목을 물어뜯었다.
“커어…!”
눈을 부릅뜬 그였지만, 그것은 고통 때문이 아닐 터.
“저게, 다 뭐야…?”
벽, 천장, 바닥.
감옥의 모든 공간을 빽빽하게 채운 술식과 계약문을 본 충격이었다.
- 계약자, 클라인 라인란트가 이곳에 깃든 망자들에게 고한다.
쿠르르르르…!
온 벽면이 푸르게 빛나고, 술식의 빈 부분에 빼곡하게 룬들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상징 어구는 들개의 이빨, 피 묻은 창. 그리고 독이 든 화살.
- 난 그대들의 고향이요, 그대들의 감옥이요, 그대들의 복수자일지니.
열흘에 걸쳐 만들어낸 대규모 계약 술식.
후일을 도모해 형성한 종속계약문에 수많은 원혼이 몰려들었다.
- 계약에 동의하는 자는 나와서 나의 수족이 되어라.
오오오오오오-!
계약에 응한 영혼들이 손을 뻗었다.
천장에서, 바닥에서, 벽에서 문에서.
수많은 검은 팔들이 솟아나 날 잡기 위해 움직였다.
마치 내게 조금이라도 닿으려는 듯이.
마치 날 경배하듯이.
- 나의 이빨이 되어, 검이 되어, 화살촉이 되어 적을 멸하라.
흐릿한 그림자가 얽히고 뭉쳐 체계를 이뤄냈다.
- 크르르르…!
어떤 이는 이빨을 들이민 이리의 형상이었고.
- 크아아-!
어떤 이는 푸른 안광을 내뿜는 해골의 형상이었다.
“아아… 아아아…!”
내가 갇힌 감옥 전체를 가득 메운 언데드의 안광.
그것을 본 심판관의 몸이 사정없이 떨렸다.
“몸소 문까지 열어주고, 고마워서 어떡하냐.”
그런 그를 향해, 난 덤덤히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너흰 지금, 이 교화소 전체를 내 수중에 넘긴 것이나 다름없단다.”
***
“벤 드레이크 소장.”
교화소 중앙부에 위치한 공동.
벤이 도착한 것을 확인하자 검은 로브 차림을 한 남자들이 그에게로 다가왔다.
“보급품은 다음 주에 내려보내기로 했는데, 무슨 일들이시지?”
같은 목적을 위해 동업하는 관계였지만, 벤은 이들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국 소속의 네크로맨서들.
이들은 팔리만의 소개로 교화소에 들어온 죄수들을 ‘처리’, 성혈을 생산하는 이들이었다.
“성혈을 제작하는 데 문제가 생겼소.”
“문제? 왜, 밑에 짐승들이 반찬 투정이라도 하던?”
벤이 그렇게 비꼬았지만 네크로맨서들의 눈이 살벌해졌다.
상부의 명령으로 공존하고 있지만, 그들은 성직자와 네크로맨서.
그들 사이에는 숨길 수 없는 적개심이 존재하고 있었다.
“성혈이… 나오지 않고 있소.”
“나오지 않는다니?”
생뚱맞은 소리에 되묻자 네크로맨서들 역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술식도, 실험실 환경도 이전과 동일한데 어느 시점부터 실험체들이 성혈을 내뿜지 않게 되었단 말이오.”
“그래서?”
듣고 있던 벤이 가볍게 짜증을 냈다.
“실험과 성혈 생산은 당신들의 일일 텐데, 왜 가만히 있는 우리한테 와서 이 난리이신지?”
“우리들의 실험에는 한 치의 변동도 없었다.”
경어를 쓰지 않는 한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굴곡진 검은 머리를 늘어트린 중년의 남자.
깡마른 몸과 붉은 눈에선 강력한 힘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변화의 원인은 너희들에게 있다는 거지.”
그 말에 지루해하던 벤의 표정이 굳었다.
“…잠깐만.”
뭔가에 생각이 닿은 듯, 벤이 급히 그들을 향해 물었다.
“성혈이 나오지 않게 된 것이 언제부터였지?”
“열흘.”
그 말에 주먹 쥔 벤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열흘 전 이곳에 들어온 단 하나의 변화.
“클라인…!”
방심했다.
설마 그 몰골로 갇힌 와중에도 일을 꾸미고 있었다니.
“클라인 공자가 여기에 있단 말인가?”
예상외의 이름이 나오자 네크로맨서들 역시 흥미를 보였다.
“폴와이번 내전에 출현한 의태형 언데드의 제작자가…!”
정보부로부터 건네받은 보고서를 보며 얼마나 경탄했던가.
제국의 지식도, 아키몬드 교단의 사술도 아닌 전혀 새로운 방향의 사령술.
그것을 떠올린 그들의 눈에 탐욕이 일었다.
‘그 와중에 연구 욕심이라니, 미친놈들.’
“쯧.”
호기심을 표하는 그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벤이 혀를 찼다.
“수감실로 간다! 아예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몸으로…!”
분노에 가득 찬 벤이 거기까지 말했을 무렵.
쿠콰아아앙-!
폭음과 함께, 자신이 선 중앙 공동 바닥이 부르르 떨렸다.
“뭐야, 무슨 일이야!”
아래층을 향해 목소리를 높인 벤이 그렇게 묻자, 하부 수감구역을 경비하던 심판관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언데드입니다! 수감구역 전체에서 언데드가 뛰쳐나오고 있습니다-!”
***
- 컹-! 컹-!
짐승의 울음소리와 함께 심판관들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뭐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도대체 이 많은 언데드가 어디에서 나온 거야?!”
개의 형상을 한 언데드, 그레이브 하운드.
감옥 복도를 가득 메운 개들의 이빨을 보며 심판관들의 기가 질렸다.
“막아! 상층으로 올라가지 못하게 막…!”
- 크워어억-!
필사적으로 지시를 내리는 심판관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최소한의 인간성마저 사라진 원한 덩어리.
그것을 활용해 만들어낸 광견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많이 나올 줄은 몰랐는데.”
감옥 문밖으로 나오면서 내가 갇힌 감옥층을 둘러보았다.
- 크아아아-!
- 키익! 캬아아악-!
진형도, 체계도 없이 전속력으로 달려드는 스켈레톤 하운드.
이들은 전부, 이 교화소에서 죽어간 이들의 혼이었다.
“젠장, 끝이 없어!”
“이봐! 뒤쪽에 다른 놈들이!”
“제기랄! 저리 가! 저리 꺼지란 말이야!”
콰직! 쾅-!
신성력을 가득 담은 철퇴와 곤봉이 그림자로 뒤덮인 사냥개들을 날려버렸다.
심판관들이 사용하는 신성력은 언데드와는 상극.
이전의 나였다면 아마, 이 층을 나가는 것만으로도 꽤 고생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만들어낸 것들은… 이 녀석들 뿐만이 아니야.’
독립된 공간과 넘치는 원혼.
완전히 내 것이 된 흑요석 반지의 마기.
그 모든 것을 갖춘 내게 주어진 시간이 열흘.
저들이 승리감에 도취 되어 있는 그 시간 동안, 난 필사적으로 내 군대를 만들었다.
원혼을 만나고, 계약하고, 악귀가 된 이들을 복속시키며.
이 교화소에 잠들어있는 모든 망자들의 혼을, 내 권속으로 삼은 것이다.
“이런 미친, 끝이 없잖아?!”
“몰아내도 몰아내도 끝이 없어! 아예 우릴 깔아뭉갤 작정으로…!”
시야가 닿는 모든 곳에서 달려드는 검은 그림자들.
그것을 본 심판관들의 눈에 절망감이 깃든 순간이었다.
푸욱-!
“끄어억?!”
마구잡이로 달려드는 광견들 사이에서, 검이 튀어나왔다.
- 키이이-!
스켈레톤 하운드의 뒤를 이어 나타난 것은, 워 실드와 아밍 소드로 무장한 보병진.
철컥. 철컥. 철컥.
중장갑을 두른 스켈레톤들이 일사불란하게 행진하며 쓰러진 심판관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전투 공간이 좁은 통로를 가득 메운 방패의 벽.
사냥개들의 난입으로 혼란에 빠진 이들을 처리하는 것은 그들의 몫이었다.
“이것이, 단 혼자서 만들어낸 것들이라고…?”
심판관 중 한 명이 경악에 찬 목소리로 몸을 떨었다.
이 자는 평범한 네크로맨서가 아니다.
이 자는, 자신이 봐 왔던 제국의 개들이 아니었다.
단 혼자서 이 많은 군단을 부리는 네크로맨서.
이런 짓을 벌일 수 있는 자는, 역사상 단 한 명뿐일 터였다.
그 네크로맨서의 이름은….
“아키, 아키몬…!”
스걱-!
내 정체를 알아낸 것은 좋았는데, 시기가 늦어도 너무 늦었지.
그레이브 하운드가 물어온 낡은 검을 휘둘러 그의 목을 끊어버렸다.
털썩-!
머리를 잃고 쓰러진 심판관의 몸.
그렇지만 이제 난, 이 자의 혼을 가만히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 죄 많은 영혼에게 고하니, 내 발아래 엎드려라.
쿠우-!
이미 시신으로 변한 심판관들이 백 이십.
그들의 혼을 제압한 난 바닥을 향해 계약문을 그렸다.
츠츠츠츠-!
모든 고통과 업을 영혼에게 부여하는 불공정 계약.
이 심판관들은 이제, 혼을 전부 소모하는 그 순간까지 날 위해 싸워야 할 것이다.
이곳에 모인 다른 원혼들과 마찬가지로.
- 크워어어어-!
마기로 짜여지고, 마력으로 채워진 영체에 그들의 혼이 깃들었다.
의지를 잃은 채 주어진 명령만을 수행하는 언데드.
교단의 심판관이 네크로맨서의 첨병으로 전락한 순간이었다.
“통로 확보. 다른 층도 전부 끝났군.”
영혼 지도를 펼쳐 교화소 내부의 병력배치를 파악한 뒤 그렇게 중얼거렸다.
상층에서 몰려들고 있는 심판관들과 벤의 기운.
그리고 그곳에 있는 네크로맨서들의 마기까지.
“이제 최상층을 진압하고, 연락을 차단하면 된다.”
작전 목표와 뜻밖의 수확물까지 확인한 내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그럼 가볼까.”
그렇게 말한 내가 위층으로 향하는 통로를 향해 걸어가려는 순간.
- 키이이!
날 호위하듯 도열해있던 백 스무 명의 스켈레톤들이, 들고 있는 무장을 폴암으로 전환했다.
“뭐야, 난 이런 명령 내린 적 없는데?”
의아한 눈으로 날 지키는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다른 개체들보다 한층 단단한 무장을 갖춘 스켈레톤들.
원혼과 의지가 강한 이들을 선발해, 자유의지와 몸을 보강한 특수개체들이었다.
우르르르…!
내가 가려는 방향을 향해 걸어간 스켈레톤들이 질서정연하게 도열했다.
철컹-! 철컹-!
이윽고 그들은, 전환한 검은 폴암을 교차하여 통로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교차 된 창으로 만들어낸 통로.
왕의 행차를 위해 만들어진 길이었다.
“…하여튼, 이상한 데에서 폼 잡기는.”
날 향해 보내지는 열망 어린 혼의 의지.
“…….”
그것을 느낀 난, 그들을 제지하지 않은 채 망자들이 만들어 준 길을 걸었다.
저벅. 저벅.
곳곳이 찢어진 넝마를 두르고, 녹슨 검을 허리에 찼다.
마치 무덤에서 기어 나온 오래된 왕의 시신과도 같은 모습.
- 키이이-!
- 크르르르….!
그런 모습을 한 나를 향해, 말하는 법조차도 잊은 원혼들이 고개를 조아렸다.
자신의 염과 원을 내게 맡기며, 일제히 예를 표했다.
“옛날 생각이 나는군.”
그래, 그때도 그랬었지.
얼음성 아래에 모인 수백만의 군세.
지평선을 전부 메운 망자의 군대가 내게 머리를 조아리고, 난 그들의 한 가운데를 걸었었다.
대륙의 공적.
최악의 네크로맨서.
하이델베르그가 낳은 악마.
역사가들은 대륙 최악의 재앙이었던 아키몬드를 가리키며 수많은 이명을 만들어냈다.
그렇지만 그것들은 전부 후대에 만들어진 것.
그리고 나의 적들이, 날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만들어낸 거짓 이명이었다.
네크로맨서 아키몬드를 칭하는 가장 적합한 칭호.
그의 발아래에 모인 원혼들이 소리높여 부른 그 이름을 떠올렸다.
아키몬드를 칭하는 진정한 이명.
망자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