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84화 (84/209)

084. 너흰 아무것도 몰라

교화소 면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거대한 구덩이.

그 외벽을 깎아 만들어진 지하 감옥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철컥. 철컥.

철판으로 덧댄 각반이 부딪히는 소리.

그가 갇혀있던 감옥을 향해 점점 가까워진 발소리는, 이윽고 한 지점에서 멈춰 섰다.

개리슨 비어크만의 독방 앞이었다.

“용케 아직까지 살아있군요. 개리슨 비어크만 신부.”

걸걸하게 쉰 목소리를 듣자, 개리슨이 정신을 차렸다.

훤히 드러난 그의 상반신.

그곳에 새겨진 고분의 흔적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하여튼, 죽이지는 말라니까 꼭 이렇게 과잉고문을 해대니….”

랜턴을 들어 그의 몸을 확인한 벤이 그렇게 이죽거렸다.

“이렇게 쇠약해지면, 먹이로 줄 수도 없잖아.”

물 한 모금도 주어지지 않은 채 고문당하길 보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힘이 남아있는 개리슨을 보며 벤이 중얼거렸다.

“벤… 드레이크.”

“어이쿠, 일어나 계셨군요?”

그의 이름을 부르자 그를 비웃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이제 좀 후회가 되십니까?”

그렇게 말한 벤은 개리슨의 몰골을 다시 한 번 눈에 담았다.

“하필이면 추기경을, 그것도 팔리만 추기경님께 손을 대다니요.”

“…….”

대답은 없었다.

벤 역시 대답을 들을 생각은 없었다는 듯, 양팔을 크게 벌리며 말했다.

“성자 가울의 재림이라 불리는 선의의 상징. 팔리만 엘.”

그가 입에 담은 것은 팔리만을 수식하는 말들이었다.

팔리만 엘.

개리슨과 같은 압도적인 무력도, 교황과 고위 사제들이 가진 어마어마한 신성력도 없는 빈민 출신의 사제.

그렇지만 그는 지금, 교단 내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 중 하나가 되어있었다.

그의 가장 큰 무기는, 그의 인품.

그는 특유의 언변으로 수많은 귀족들과 재력가들을 포섭.

그들의 후원으로 수많은 구호단체를 만들어, 곳곳의 난민과 빈민을 구제하며 이름을 날렸다.

그로 인해 직접적으로 구원받은 이들만 해도 수십만.

그의 행동을 지지하는 재력가와 민중들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교단의 대행자라는 인간이 그런 분을 해하려 했으니, 민심이 들끓을 만하죠.”

이미 이단을 명목으로 수많은 성직자를 죽여 온 개리슨이다.

그런 상황에서 추기경단의 일원을.

그것도 인품으로 명망이 높은 팔리만을 공격한 것에 교단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교구의 성직자들까지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으니, 곧 당신의 대행자 직위도….”

“그들은 그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

더 참을 수 없다는 듯, 개리슨이 입을 열었다.

“선인을 가장하고, 선의를 연기하여, 가면으로 이루어진 모습을 대중에게 드러내지.”

팔리만이 개리슨을 이해하고 있듯이, 개리슨 또한 팔리만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은 같은 지옥을 거쳐나온 동지.

함께 보낸 어린 시절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법이었으니까.

“난민을 거둬? 빈민을 구제해? 허울 좋은 헛소리.”

그렇게 말하는 개리슨의 목소리에는 짙은 분노가 서려 있었다.

“그가 구한 것은 곤경에 처한 약자들이 아닌, 자신의 실험을 위한 재료들이다.”

그 말에 웃음기 가득하던 벤의 표정이 굳었다.

“당신…?”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있냐는 말.

그렇지만 개리슨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그를 향해 말했다.

“이 교화소로 흘러들어오는 죄수의 태반은, 그가 거둔 난민캠프에서 데려오는 것이 아닌가.”

“……!”

그의 눈이 커지고, 다물었던 입이 천천히 갈라졌다.

“이래서…. 이래서 당신은…!”

허름한 감옥으로 이뤄진 외벽과 그 중앙에 뚫린 구덩이.

그 구렁텅이에 파묻힌 시체들을 떠올리며 벤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렇게 얼마간 더 몸을 떨던 벤은, 그림자에 가려졌던 자신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러니까 당신은 여기서 죽어야 하는 거야, 개리슨.”

기괴한 광기로 가득 뒤덮인, 짐승과도 같은 광소였다.

“소장님.”

그러던 중, 그와 동행한 심판관 중 한 명이 그에게 말을 걸었다.

“심문 중에는 말 걸지 말라고 말했을 텐데?”

방해받은 것이 불쾌한 듯, 벤이 눈을 부라렸다.

그 서슬 퍼런 눈빛에 흠칫 몸을 떤 심판관이었지만, 그는 곧 고개를 숙인 채 입을 열었다.

“지하 승강장에서… 연구원들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뭐?”

지하의 연구원.

그 말을 듣자 벤 역시 얼굴을 찌푸렸다.

“쯧, 이번엔 또 무슨 일인지.”

짜증 섞인 한 마디를 내뱉은 벤이 몸을 돌렸다.

‘저 몸 상태라면, 어차피 오래 가지 못하겠지.’

만신창이가 된 개리슨의 모습을 보며 그렇게 생각한 그는 감옥 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클라인 공자는?”

“이상 없습니다. 의식을 잃은 채 쓰러져있다고 합니다.”

피식.

그 말에 벤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허세란 허세는 잔뜩 부려대더니, 결국 그 꼴이군.”

그렇게 말한 벤은 개리슨이 있는 곳을 돌아보며 말했다.

“공자를 넘기고 당신을 죽이면, 당신의 자리는 제 것입니다. 대행자.”

그 말과 함께, 벤의 발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쿵-!

육중한 쇳소리와 함께 철문이 닫히고, 조소로 가득하던 감옥에는 침묵만이 감돌았다.

그렇게 또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신부님, 많이 아파요?”

흐릿한 정신에 기억마저 몽롱할 무렵, 앳된 소녀의 목소리가 그를 일깨웠다.

“아린… 양?”

있을 리 없는 존재가 자신의 눈앞에 있었다.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자신의 눈앞에 있었다.

“히히!”

만신창이가 된 채 사지가 묶여있는 자신.

이곳은 그의 오래된 기억 속에 있는, 저주받은 장소였다.

그런데, 어째서 이 소녀가 여기 있단 말인가?

그녀를 잉태한 지옥과도 같은 장소에, 왜 그녀가 돌아왔단 말인가?

카캉-!

생각을 다 마치는 것보다 아린의 행동이 더 빨랐다.

자신의 사지를 묶어 둔 육중한 구속구.

그렇지만 아린의 그림자에서 나온 무언가가, 그것을 깨끗하게 끊어버렸다.

쿵-!

굉음과 함께 돌바닥이 움푹 패었다.

크리펠 교화소의 소장, 벤 드레이크.

그가 자신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구속구가, 속절없이 잘려나간 것이다.

“이제 안 아파요. 신부님?”

아린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 듯 멍하니 있던 개리슨은 그제야 지금 상황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어떻게 아린 양이 여기에?”

그렇게 묻자 아린은 심통이 난 듯 볼을 부풀렸다.

“아래에서 친구들이랑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가라고 했어요.”

“아래에서, 친구 ‘들’…?”

얼이 빠진 채 개리슨이 되묻자, 아린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무서운 아저씨가 오는데, 잡히면 안 된대요. 엄~청 아프대요!”

아래에서.

친구들.

무서운 아저씨.

아프다.

그것을 곱씹은 개리슨은 토악질이 나오는 것을 억지로 눌러 담았다.

교단이 성혈을 생산하는 방법.

그 실마리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린 양.”

“네!”

개리슨이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아린은 환한 얼굴로 손을 들며 대답했다.

“…클라인이 이곳으로 온 겁니까?”

또래 어린아이와 진배없는 저 모습에는 언제나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낀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런 감상보다는 정보가 먼저였다.

“네!”

깔끔한 대답.

거짓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순수한 모습이었다.

“그럼, 지금은 그 자가 온 지….”

“열 밤 지났어요!”

그렇게 말한 아린은 개리슨을 향해 양손을 펼쳐 보였다.

‘열흘. 그렇다면 정말로 시간이 없다.’

클라인이 사용하는 사령술은 다른 누구도 아닌 아키몬드의 사령술.

교단이 그의 지식을 손에 넣는다면, 성혈 완성은 시간문제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다면, 남은 수단은 단 하나.’

주먹을 꽉 쥐며 개리슨은 결단을 내렸다.

‘교단이 그를 확보하기 전에, 죽이는 수밖에.’

그렇게 생각을 마친 개리슨이 몸을 일으켰다.

뿌득-! 뿌득-!

그의 몸을 감고 있던 쇠사슬이 끊어져 나가고, 곰과 같은 거대한 골격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린 양. 클라인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심각한 표정으로 묻자 아린은 웃는 얼굴 그대로 입을 열었다.

“죽일 거예요?”

어린아이가 날씨를 묻듯 천진한 말투.

그렇지만 그녀의 한마디에 개리슨은 뛰어오르려던 것을 멈추고 그녀와 시선을 마주했다.

“죽일 겁니다.”

흉흉한 살기.

그렇지만 아린은 오히려 개리슨을 향해 물었다.

“도련님이 나쁜 사람이에요?.”

그 한 마디에, 개리슨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나쁜 사람이 될 수도 있죠.”

“그럼, 지금은 나쁜 사람 아닌 거네요?”

순간 말문이 막힌 개리슨을 보며 아린이 가슴에 손을 얹었다.

“도련님이 그랬어요. 나쁜 사람이 되기 위해 태어났어도, 착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한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그의 타고난 본성이 아닌, 선택과 행동이다.

초대 라인란트 공작의 격언이며, 클라인이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던 말이었다.

“그렇지만, 존재 자체가 죄악인 자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나락으로 빠트린 저주받은 이름, 아키몬드.

그것을 떠올린 개리슨이 이를 갈았다.

“그 존재 자체만으로 수많은 이들을 불행으로 몰아넣는…. 저주받은 존재가.”

그의 이름을 외치는 자들이 자신을 죽이려 했다.

그의 이름 아래에서, 자신은 심장을 빼앗길 뻔했다.

그의 이름을 외치는 그의 부모가, 그에게 죽으라고 말했다.

아키몬드의 이름을 외치며.

“그것만을 위해 살아왔습니다.”

네크로맨서를 죽인다.

아키몬드의 이름을 외치는 자들을 전부 죽인다.

그들의 뒤틀린 사상의 근원인, 아키몬드를 죽인다.

그것이 그가 가진 신앙의 근원이었으며, 그의 존재의의였다.

쿠콰아아앙-!

그렇게 아린과 개리슨의 대화가 계속되려던 순간.

아린이 가리킨 정확히 그 지점에서, 엄청난 폭음이 들려왔다.

“상부 수감실, 역시 일을 저질렀군!”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와 발소리, 그리고 비명소리.

전투를 직감한 개리슨은 곧바로 감옥 창살을 잡았다.

뿌드드드득-!

철골이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위로 구부러진 철창.

그 사이로 몸을 뺀 개리슨은 온몸에 신성력을 한가득 불어넣었다.

고오오오오…!

그가 디딘 땅에 놓인 자갈들이 떨렸다.

‘아무리 네크로맨서라 한들, 수백이 넘어가는 심판관들을 상대할 수는 없다.’

지난 내전에서 클라인의 역량을 전부 본 개리슨이었다.

놀라운 재능이지만, 압도적인 병력차를 뒤집을 수는 없을 터.

그의 예상대로라면, 제압당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걱정 마.’

그렇게 생각한 그 순간.

‘난 지는 싸움은 절대 안 하거든.’

아직 어렸던 그의 목소리가 스쳐 지나갔다.

너무나도 어린 나이에 끌려온 나약한 아이.

그리고 그 어린 몸으로 당당히 교화소를 빠져나온, 놀라운 아이.

“쯧.”

더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상념을 떨쳐낸 개리슨이 생각에 몰두했다.

‘제압당한다면 도망칠 여유는 없을 터. 그렇다면 모든 게 끝이다.’

성혈이 완성된다면, 교단과 제국은 그것을 전쟁에 사용할 것이다.

사악한 사령술이 만들어낸 저주받은 액체.

그것을 생산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죄 없는 생명이 희생될지 몰랐다.

‘그렇게 되기 전에 죽인다.’

그렇게 결심을 굳힌 개리슨이 감옥 밖으로 튀어 올랐다.

쿠콰아앙-!

발돋움의 반동으로 땅이 갈라지고, 풍압에 아린의 치마가 정신없이 휘날렸다.

그렇지만 아린은 그것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웃는 얼굴을 하며 말할 뿐이었다.

“거짓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