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83화 (83/209)

083. 변한 게 없구나

철컹-!

마차에서 내린 날 기다린 것은 검문, 검문, 그리고 또 검문이었다.

혹시나 숨겨온 무언가가 있는지, 놓친 무언가가 있는지.

‘수십 번을 해 봐라. 먼지 한 톨이라도 나오나.’

빈틈없는 검문이었지만, 난 의연했다.

왜냐고? 진짜 안 가져왔으니까.

무기도, 사령술을 사용하기 위한 도구도.

전부 본가에 두고 온 상태였다.

“팔리만 추기경께 감사하십시오. 클라인 공자.”

철문에 난 작은 창 사이로 벤의 충혈된 눈이 나타났다.

“당신이 사지 멀쩡하게 살아있는 건 모두 그분 덕분이니….”

“님 자 붙이라니까, 등신 새끼가.”

그런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술을 비틀었다.

“……!”

“왜, 죽이게?”

우위에 있다고 방심하니까 내 말에 말려드는 거지.

적의 면전에서 배후를 까발리는 머저리가 세상천지 어디에 있냐?

“죽이고 싶으면 와서 죽여보던가.”

구속구가 채워진 팔을 들어 올려 날 가리켰다.

“이번에도 네 멋대로 하면 새 주인님한테 매라도 맞나?”

“……!”

‘5분만 말을 섞어봐라. 5초 안에 복장이 뒤집어질 테니.’

오래전 동료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계속해서 그의 신경을 긁었다.

조금이라도 더 감정적이 되도록.

조금이라도 더 정보를 뱉어낼 수 있도록.

쾅-!

그렇지만 벤은 철문을 내리쳐 내 말을 끊어낼 뿐, 더 이상의 대화를 하려 들지 않았다.

‘쯧, 역시 쉽게 걸리진 않는군.’

예전엔 더 쉬웠는데 말이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으르렁거리는 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잘난 주둥아리를 언제까지 놀릴 수 있는지 보겠습니다. 클라인 공자.”

그 말을 끝으로 철창 사이에 나타난 벤의 눈이 사라졌다.

“제대로 감시해라.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하게 해.”

“알겠습니다.”

독방 문 앞을 지키는 두 명의 심판관에게 당부한 뒤, 그의 발소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그래, 한번 보자고.”

발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게 되었을 때.

허공을 향해 그렇게 중얼거린 내 시선이 독방 문에 닿았다.

스스스스…!

아니, 내 시선이 닿은 것은 문이 아니었다.

문틈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검고 탁한 혼.

오랜 세월 속에 무뎌져, 의지의 편린조차 잊어버린 원한의 결정체였다.

“망자의 원한으로 가득 찬 공간에, 네크로맨서를 데려다 놓으면 어떻게 될지 말이야.”

내가 아무런 준비 없이 교화소로 들어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그것은 이 교화소가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곳은 사람을 사용해 성혈을 만들어내는 공장. 인간 도축장이나 진배없지.”

가축을 고기로 바꾸듯, 산 사람을 성혈로 바꾸는 장소.

그렇기에 이곳은, 다른 장소와는 비교할 수 없이 많은 혼들이 잠들어있다.

영혼을 느낄 수 없는 평범한 인간에게도 느껴질 만큼 응축된, 원혼의 구렁텅이.

나 같은 네크로맨서가 힘을 키우는데 이보다도 더 좋은 환경이 어디에 있겠는가.

쿠우우우….

마기를 내뿜자, 그에 반응한 영혼들이 몰려들었다.

일반적인 혼들이 발하는 빛과는 다른, 검고 탁한 혼들.

우우우우우-!

사방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낮게 깔리는 음울한 하운팅.

의지도 인격도 잃어버린 채, 원한만이 남긴 영혼들의 단말마였다.

- 슬퍼하지 마라.

망자의 목소리를 내뿜으며 마기를 움직였다.

파츳-!

내 의지에 응답해, 두 개의 소환문이 형성되었다.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검은 연기로 이루어진 사람의 형상.

- 그들은 곧, 대가를 치를 테니.

그 말과 함께, 연기로 변한 두 영체가, 문틈 사이를 통과했다.

그리고 얼마 뒤.

“윽?!”

침음성과 함께 두 심판관이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뭐야, 귀에 뭐가 들어갔나?”

“모르겠어. 갑자기 이게 무슨…!”

머릿속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감각에 심판관들이 머리를 흔들었다.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질적인 감각은 고통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자신의 의지와 영혼이 통째로 지워지는, 끔찍한 상실감으로.

“아, 아아…!”

밀려드는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소용없는 일.

- 입 다물어.

내 한 마디 명령에, 그들은 그 자리에 멈춰선 채 아무런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네크로맨서를 감시할 땐 경계를 철저히 해야지. 우리 땐 상식이었다고.”

감옥 문 뒤에서 들려온 내 목소리에 그들의 두 눈이 바쁘게 움직였다.

“클라… 인?”

경악에 찬 목소리.

너무 미약하여 들리지도 않을,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다.

“구속구를 채워놨을 텐데, 어떻게 사령술을…!”

“구속구?”

그 말에 코웃음 친 난 묶인 손에 힘을 주었다.

파캉-!

거친 쇳소리와 함께 양팔을 묶은 구속구가 떨어져 나갔다.

육중한 금속 덩이에서 팔을 빼자 몸이 한층 가벼워졌음을 느꼈다.

“이따위 장난감을 채워놓고 맞춤 제작? 철저한 대비?”

내가 이렇게 쉽게 구속을 해제할 줄은 상상하지 못한 것인지, 두 심판관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지랄도 정도껏 해야지.”

이런 얕은 수로 날 가두려 들었다니.

산 채로 잡아 지식을 뽑아낼 궁리나 하고 앉았다니.

가소롭기 짝이 없었다.

“너희들은 역시 그때 그대로야. 발전이라곤 없이 오만하고, 독선으로 가득 차 있지.”

“뭐… 라고…?”

내 말에 되묻는 그들이었지만, 난 더 답해줄 생각이 없었다.

“자신들이야말로 유일한 신앙이며 신의 손이라고 참칭하던, 병신 사이비 새끼들.”

내가 교단에게 느끼는 뿌리 깊은 혐오감.

그것은 단순히, 내가 네크로맨서여서는 아니다.

그들에게 수백 년을 박해받고, 존재조차 지워진 옛 신관이어서가 아니다.

“그러니까 너희는 날 못 이기는 거야. 200년 전도, 지금도.”

마지막 가는 선물로 알려주는 진실에, 심판관들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200년 전? 그럼, 네놈은 정말로…!”

“아키몬드. 본인 맞아.”

그들을 비웃으며 진실을 떠벌렸다.

“자, 그럼 내가 왜 너희들에게 정체를 말해줬을까?”

그리고 이어지는 내 말에 심판관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주, 죽일 테면 죽여라! 그렇지만 이곳은 수천 명의 형제들이…!”

“큭큭큭큭….”

공포에 떨면서 주둥이만 나불대는 꼴이라니.

감옥 문 너머에서 그들을 비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뭐, 형제? 만 명도 안 되는 그 오합지졸들?”

웃음기 가득한 내 한마디에 두 심판관들이 흠칫했다.

“오합지졸? 허세 부리지 마라. 혼자서 우리 전체를 이길 수는…!”

“아까 말했지? 내가 아키몬드라고.”

그렇게 말한 난 대답을 기다리지 않은 채 그들의 귓가를 향해 속삭였다.

“그러면, 아키몬드가 뭘로 대륙을 뒤덮었을까?”

“……!”

내 한마디에 필사적으로 저항하던 그들의 의지가 사라졌다.

족쇄를 푼 클라인의 정체가 진짜 아키몬드라는 사실.

그것을 상기시킨 순간, 공포에 이성이 마비된 것이다.

“그럼 잘 가라고.”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난 그들의 의식을 완전히 말소시켰다.

편린조차 남지 않도록, 깔끔하게.

“안돼, 안…!”

뭐라 입을 열려던 그 순간, 모든 것이 끝났다.

두 눈에 눈물이 고인 채 자비를 구걸하는 눈빛.

화풀이로는 좀 모자라지만, 이걸로 대충 만족하기로 하자.

“그래서, 새 몸은 좀 마음에 들어?”

그렇게 타협한 뒤, 짓궂은 목소리로 감옥 문을 지키는 심판관들에게 말했다.

그리고 내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아무 일 없습니다.”

“문제없습니다.”

방금 전 벤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간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상관을 대하는 듯한 목소리.

내 감옥을 지키는 이들은, 내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인형이 된 것이다.

“전부 계획대로라고 생각했겠지.”

날 보며 웃어대던 벤의 얼굴.

웃는 얼굴로 내 거래를 받아들이던 팔리만.

오만에 찬 그들의 몰골을 떠올리며 코웃음 쳤다.

“헬리안과 싸우던 날 감시한 것도, 날 여기로 데려온 것도.”

베르켈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짓밟혀 빙하 속에 파묻혔을 것들이.

감히 나 아키몬드를 가지고 놀려 들다니.

“오히려 그 반대야.”

이곳에서 나온 뒤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교화소의 구조, 공략법, 그리고 심판관들의 동향까지.

“좋다고 날 잡아다가 이 안에 집어넣은 그 순간부터… 너흰 내 손바닥 안에서 놀아났었던 거다.”

구속장치는 힘을 잃었다.

감시자도 내 수중에 들어왔다.

전부 이곳에 오면서 계획한 것들이었다.

“내부로 파고든 네크로맨서는, 그 어떤 자객보다도 강력한 파급력을 가지는 법.”

머지 않아, 그들은 날 이곳에 들인 대가를 톡톡히 치를 것이다.

“그렇지만….”

물 흐르듯 진행된 계획.

그렇지만 교화소를 둘러보는 내 표정은 편치 않았다.

“아직 가장 큰 문제가 남아있지.”

지금까지 내가 한 것은 개인적인 복수.

지난 세월에 대한 앙갚음에 지나지 않는다.

이곳을 다시 찾아온 가장 큰 이유는 성혈.

사람을 재료로 만들어내는 힘의 결정이다.

‘성혈을 만들어내는 존재. 내 예상이 맞다면, 최심층부에 있을 터.’

구속구가 풀린 주먹을 이리저리 흔들며 생각을 정리했다.

‘외부에 발각되지 않으려면 우선 성을 장악해야 해. 벤을 포함한 심판관들을 먼저 처리한다.’

생각을 거듭하며, 난 등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그 뒤엔.”

끼아아아아아-!

수감구역 아래에서 들려오는 소름끼치는 비명소리.

사람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괴성을 들으며 난 얼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

눈을 감으면 지금도 떠오른다.

“우리를 죄악으로부터 구하소서, 무지로부터 구원하소서….”

“당신의 양을 자처하오니, 부디 이곳에 강림하소서….”

동굴을 가득 메운 광신도들.

그들 사이에 섞여 열망 어린 눈으로 날 바라보던 부모라는 작자들.

“후욱…! 후욱…!”

그리고 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제단에 누워있는, 어리고 무력했던 나까지.

“아아, 아키몬드시여! 우리의 외침을 들으소서-!”

금실로 장식된 검을 로브 차림의 남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동굴 천장을 뻗은 손과 그 손에 들려있는 검은 책.

처음 보는 괴상한 문자가 빼곡히 적힌 마도서였다.

“당신을 위해, 오늘 또 하나의 제물을 올리오니!”

책을 든 반대 손에 들린 것은 검신이 검게 물든 단검.

그 칼끝이 노리는 것은 제물의 심장이었다.

제단에 놓인, 어린 내 심장.

“부디 우리에게 임하소서! 우리에게 축복을 내리소서-!”

남자의 외침과 함께 좌중에 모인 신도들이 단체로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여댔다.

“우리의 신이시여!”

“다시 우리를 살피소서! 이 세상을 단죄하소서-!”

“아키몬드 님-!”

“아키몬드 님-!”

뒤죽박죽으로 뒤섞인 목소리가 어지럽게 귀를 농락했다.

“아아아-! 아키몬드시여-!”

신도들의 열기에 실성이라도 한 듯 제단에 선 남자 역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의 웅대한 외침과 함께, 이 기괴한 집회는 점점 그 열기를 더해 갔다.

“이 어린아이의 생명으로…!”

그렇게 말한 그의 단검이 내리쳐지는 그 순간.

‘지금이다-!’

빠악-!

발을 들어, 손목을 차올렸다.

“어, 어어?!”

당황한 듯 눈을 크게 뜬 남자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땡그랑-!

그의 손에서 단검이 떨어지는 것을 확인하며, 난 온 힘을 다해 소리쳤다.

“팔리만! 지금이야-!”

출구는 이미 확인한 상태.

미리 기다리고 있던 친구를 향해 소리치자, 고개를 끄덕인 그가 앞서서 뛰어갔다.

“이런, 제물이 도망친다!”

“막아!”

혼비백산한 가운데, 신도들이 제단으로 올라와 나를 쫓았다.

“저리 비켜어-!”

팔을 교차한 채로 앞을 막아선 이들을 향해 돌진했다.

쿠콰앙-!

“으아악?!”

“뭐야, 어떻게 이런 힘을…!”

하늘 위로 붕 떠오른 사람들이 보였지만,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역시 대단한데?!”

“그런 말 할 시간에 뛰어!”

함께 도망치기로 계획한 친구를 다그치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을 향해 달렸다.

그러나 그 순간.

“이리 와-! 어서 제단에 누워 제물이 되란 말이야-!”

나가떨어진 광신도의 무리 속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내 귀를 때렸다.

뒤를 돌아보자, 날 향해 고래고래 소리치는 중년의 남자가 있었다.

내 아버지였다.

“넌 그걸 위해 태어난 거야! 넌 아키몬드 님의 부활을 위해 태어난 거라고-!”

뒤이어 들려온 어머니의 목소리까지.

턱밑까지 차오르는 탁한 감정의 기류를 억누르며, 난 달리고 또 달렸다.

“제발 돌아와서, 제물이 되어주렴-!”

그런 내 등을 향해, 두 사람은 필사적으로 내 이름을 불렀었지.

“개리슨!”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