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2. 크리펠 이단 교화소
몇 년 전이었을까.
처음 그곳에 도착했던 갓난쟁이 시절.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날 보던 개리슨을 떠올렸다.
“이것이 아키몬드라고?”
아키몬드의 환생을 확보했다는 말에 한걸음에 달려온 개리슨이 본 것은, 수녀의 품에 안긴 세 살의 나.
머리에 피도 다 마르지 않은 어린아이였다.
“그냥 핏덩이가 아닙니다.”
개리슨을 향해 입을 연 것은 벤이었다.
“클라인 라인란트. 라인란트 공작가의 둘째 공자.”
지금과는 달리 말끔한 얼굴을 한 교화소의 관리자.
그렇지만 그 흉망스러운 눈빛만큼은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북방의 마녀가 잉태한… 재앙의 씨앗이죠.”
북방의 마녀.
내 어머니인 클레어 공후를 가리키는 멸칭이었다.
“라인란트 측은 근거 없는 소문이라 일축했습니다만, 다른 귀족들의 증언이 있었기에….”
“제대로 된 검증도 없이 교화소로 쳐넣었단 말이군.”
벤의 말을 끊은 개리슨이 말했다.
“네놈들이 항상 그래왔듯이 말이야.”
크리펠 이단 교화소.
이곳의 별명은 귀족의 쓰레기통이다.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자.
알아선 안 되는 것을 알게 된 자.
끈 떨어진 갓, 쓸모없어진 개, 사생아, 정부(情婦).
크리펠의 심판관들은 이런 대륙 사회의 부산물들을 처리하고, 그 대가로 귀족들에게 편의를 제공받는다.
내가 이곳으로 끌려온 이유 또한 마찬가지.
본가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두려워해 내 어머니를 모함하고, 그 핏줄인 나까지 이곳으로 보낸 것이다.
“이교도를 때려죽여야 할 심판관이 정치질과 재물에 미쳐있다니.”
내가 이곳에 끌려온 내막을 알고 있는 듯, 개리슨의 목소리에 노기가 서렸다.
“성직자의 탈을 쓴 승냥이 떼들 같으니라고.”
개리슨의 신랄한 한마디를 듣자, 심판관 몇몇의 눈이 사나워졌다.
“쳇, 건방진 놈.”
“대행자만 아니었으면….”
면전에서 모욕을 들었지만 개리슨에게 함부로 덤벼드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래서, 죽이지 않겠다는 말입니까?”
벤이 그렇게 되묻자 개리슨은 옆에 선 수녀에게 날 넘기며 말했다.
“네크로맨서는 정도(正道)를 벗어난 이단이다.”
이를 악문 개리슨 신부가 으르렁거렸다.
“사람을 죽여 그 시체를 가지고 노는, 거짓된 믿음에 사로잡힌 자들.”
“암요,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덤덤한 벤의 맞장구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개리슨이 목소리가 낮아졌다.
“이 아이는 아니야.”
잠시 동안의 침묵.
“킥킥….”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빨 사이에서 새어 나온 벤의 웃음소리가 침묵을 깼다.
“크하하하하-! 하하하하-!”
경박하기 짝이 없는 웃음.
방금 전과 같은 격식은 온데간데없는 광소였다.
“들었나?! 천하의 대행자가, 이런 갓난아이 하나를 죽이지 못하신단다-!”
심판관들을 향해 그렇게 외친 벤이 고개를 돌려 개리슨을 보았다.
“아키몬드요, 대행자.”
그렇지만 그다음 순간, 벤의 목소리는 다른 사람인 양 차가워졌다.
“대륙의 공적, 최악의 네크로맨서, 하이델베르그가 낳은 악마!”
그를 칭하는 수많은 이명을 입에 담는 벤의 모습은 광인에 가까웠다.
“그 아키몬드의 씨앗을 죽이는데, 그런 하찮은 이유로 망설이십니까?”
“…….”
“교단의 검을 자처하는 대행자가, 어린아이라는 이유로 손을 거두십니까!?”
개리슨을 노려보는 벤의 눈동자가 사나워졌다.
같은 교단의 성직자를 보는 것이 아닌, 적을 보는 것만 같은 표정.
그렇지만 그를 향해 으르렁거리는 벤의 모습에서 내가 본 것은, 다른 감정이었다.
“얼마나 대단하신 분이 새 대행자가 되었나 했더니, 이따위일 줄이야.”
그것은 바로, 열등감.
‘원래 대행자로 내정돼 있던 건 저 자식이었나 보지?’
개리슨이 지닌 대행자라는 칭호.
그것을 바라보는 벤의 열띤 시선.
그것을 보며 확신할 수 있었다.
“됐습니다.”
더 할 말이 없다는 듯, 벤이 날 향해 손을 뻗었다.
“당신이 하지 않겠다면, 제가 하죠.”
그렇게 말한 벤이 날 향해 손을 뻗었다.
아마 저 손으로 내 머리를 잡아, 그대로 쥐어 터트릴 생각이겠지.
텁.
그렇지만 그 순간, 개리슨의 두꺼운 팔이 그의 손을 가로막았다.
“…뭐 하시는 겁니까?”
“…….”
벤의 물음에도 개리슨은 답이 없었다.
그 품에 안겨있는 내 모습을 보며 무언가를 곱씹고 있을 뿐.
그러는 사이, 벤이 내뿜는 것은 단순한 적의가 아닌 살기로 변해있었다.
“지금 뭐 하시는 거냐고 묻지 않았습…!”
“피 묻은 손으로 내 이름을 가리키는 자는 나의 적이요 간악한 뱀이니라.”
두서없이 읊조리는 개리슨의 한 마디에 벤이 얼굴을 찌푸렸다.
“뭐, 라…?”
개리슨에게 되묻는 벤이 말을 흐렸다.
그렇지만 그와 동시에, 내게 다가오던 그의 손 또한 더 움직이지 않았다.
“하여 내 고하노니, 신부와 목자는 살생하지 마라. 다만 죄 많은 혼을 인도하여 내 뜻을 온 세상에 펼쳐라.”
벤의 열변에 반박하는 듯 읊어대는 개리슨의 목소리.
벤 역시, 그 말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모르지는 않는 눈치였다.
“…제 1경전, 목동의 서.”
“잘 알고 있군.”
교단의 논리.
그것도 성전에 적힌 말을 내세우며 그를 막아서자, 벤 역시 잠시 말을 멈췄다.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뿐.
쾅-!
“미치겠군, 이 상황에서 한다는 짓이 신학 토론이라니!”
허리춤에 메이스를 뽑은 벤이 벽을 후려치며 사납게 개리슨을 위협했다.
“아이를 넘겨라 대행자. 크리펠 교화소는 내 관할이야-!”
촤르르륵-!
소장인 벤이 무기를 뽑는 것과 동시에 다른 심판관들도 일제히 무기를 뽑았다.
“꺄악?!”
“이게, 이게 무슨 짓이오!”
“대행자님, 어서 아이를 넘기세요! 형제님들끼리 싸우실 생각입니까?!”
개리슨과 동행한 수녀와 신부들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낮췄다.
성직자가 성직자에게 무기를 들이대는 아이러니.
교화소의 심판관들이, 벤의 사병집단으로 전락했다는 반증이었다.
“아니오. 다릅니다, 형제님.”
그렇지만 개리슨 역시 도통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쿵-!
어두운 돌바닥을 짓누르는 압도적인 힘.
수백 명의 심판관들을 앞에 두고도 전혀 물러섬이 없는 모습이었다.
“제 본분을 잊은 성직자에게, 자신이 누구인지를 일깨워 줄 뿐.”
그 말과 함께, 심판관들이 일제히 개리슨을 향해 달려들었다.
찰나의 순간, 그의 눈앞에서 눈 부신 빛이 쏟아졌고, 그다음은.
그다음은….
***
덜컹-!
거친 흙길을 달리는 마차.
위아래로 요동치는 거친 감각이 날 잠에서 깨웠다.
“……아, 이 씹.”
입 안에 느껴지는 찝찔한 피 맛을 느끼며 몽롱한 정신을 바로잡았다.
“웬일로 꿈자리가 뒤숭숭하나 했더니….”
어린 시절의 기억을 털어내며 차창 사이로 펼쳐진 풍경을 확인했다.
북부에서는 항상 볼 수 있었던 설산은 사라지고, 황량한 협곡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후를 보니 동부 지역… 교국에 거의 다 와 가는군.’
라인란트의 감시가 사라진 순간, 점잖아 보이던 심판관들은 단번에 본색을 드러냈다.
죄인의 몸에 깃든 사악한 기운을 정화한다는 명목으로 사람을 반나절 동안 두드린 것이다.
녹슨 대못이 박힌 곤봉과 채찍질.
목숨만 붙여놓으면 뭘 해도 상관없다는 듯한 무기 선택이었다.
‘적어도 사흘은 기절해 있던 것 같고, 몸 상태는….’
웅웅거리는 머릿속을 부여잡으며 생각을 거듭했다.
“아윽!”
힘이 들어가는 순간 느껴지는 격통.
그렇지만 오히려 다행이었다.
고통이 느껴진다는 것은 신경이 살아있다는 신호였으니까.
‘변변한 치료도 없이 방치된 것 같은데, 이렇게 회복되다니….’
단련을 안 해도 이 정도라니, 놀라운 회복력이었다.
괜히 영웅의 혈통이 아니라는 말이겠지.
“소장님! 죄인이 깨어난 것 같습니다!”
내 신음소리를 들은 것인지, 마차를 호위하던 심판관 중 한 명이 외쳤다.
“예상보다 빠르군.”
“한번 더 교육할까요?”
교육은 개뿔.
그냥 사람을 묶어놓고 후드려 패는 거잖아.
“아니, 그대로 독방으로 간다.”
“괜찮으시겠습니까? 클라인 공자는 그 때 교화소를…!”
짜악-!
심판관 중 한 명이 계속해서 말을 더하는 찰나, 뺨을 후려치는 소리가 그의 말을 중간에 막았다.
“한 번만 더 그때 얘기를 꺼내면, 어떻게 된다고 했지?”
역린을 건드린 듯, 악에 받친 목소리.
“죄, 죄송합니다.”
심판관 역시 실수를 깨달은 듯, 재빨리 그의 말에 답했다.
“내가 한번 말했으면, 토 달지 마. 죽여버리기 전에.”
“……!”
주먹 쥔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낀 것인지, 심판관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알았어?”
“알, 알겠습니다.”
말을 더듬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애쓰는 목소리가 애처롭기 그지없다.
이래서 상사를 잘 만나는 것도 복이라는 거지.
“그리고, 지난번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지.”
그렇게 말한 벤은 다짜고짜 내가 탄 마차 외벽을 두드렸다.
퉁, 퉁.
“이번엔 이 녀석을 도와줄 개리슨이 없으니까 말이야.”
승리감에 도취 된 표정으로 벤이 목소리를 높였다.
“특별히 준비한 액세서리인데, 마음에 드십니까 공자님?!”
그 말에 난 손을 들어 올렸다.
양팔에 채워진 수갑과 거기에 연결된 쇳덩이까지.
‘흑철석 구속구…. 제국 놈들이 만든 물건이군.’
몸속에 쌓아둔 마기가 움직이지 않는 것을 확인하며 그의 말에 답했다.
“없는 살림에 이 귀한 것도 해주고, 몸 둘 바를 모르겠는… 크윽!”
뭐라 더 말하려는 순간, 구속구를 타고 격통이 밀려왔다.
온몸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이었다.
“크하하하-!”
내 비명이 듣기 좋다는 듯, 벤의 웃음소리가 커졌다.
“기뻐해 주시니 다행입니다. 모처럼 준비한 보람이 있군요.”
그렇게 말하는 벤의 목소리에는 통쾌함이 한가득 담겨있었다.
“도착하시면 더 좋은 걸로 준비해드릴 테니, 기대해주십시오.”
“하, 그러셔?”
보이지는 않겠지만 입가를 비틀어 웃는 얼굴을 만들어냈다.
‘X같은 고문관 새끼.’
저 미친 새끼가 원하는 대로 얼굴을 찡그리고 있자니, 자존심이 도저히 용납하지를 않는다.
땡-! 땡-!
그렇게 부들거리는 손발의 떨림이 멈춰갈 때쯤, 종소리와 함께 마차가 멈춰 섰다.
“도착했군.”
휘오오오오….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황량한 황무지.
그 한가운데에 뚫려있는 거대한 구멍.
그 구멍의 외벽을 깎아 만들어진 것이, 크리펠 이단 교화소였다.
쿠르르르르-!
보초가 벤의 얼굴을 확인한 듯, 견고한 성이 천천히 입을 벌렸다.
‘지옥으로 향하는 불구덩이.’
크리펠에 도달한 죄수들은 이 문을 항상 그렇게 불렀었지.
마차에 난 차창을 통해 바깥을 살피자, 오래된 기억이 새록새록 머리를 내밀었다.
그렇지만….
‘상층 감옥은 텅 비었는데 심판관은 더 많아졌다라….’
곳곳에 눈에 띄는 기계장치와 기계식 승강기를 보며 생각했다.
교화소 중앙에 뚫린 거대한 구멍 가장 깊은 곳.
이제는 아무것도 없어야 할 그곳에서, 낯익은 기운이 풍겨오고 있었다.
헬리안을 괴물로 만든 거대한 힘의 원천.
성혈과 같은 기운이.
“후우우우-!”
교화소의 탁한 공기를 힘껏 들이마신 벤이 호송마차에서 내리는 날 향해 말했다.
“역시 집이 최고지 않습니까, 공자님?”
보란 듯이 웃어 보이는 저 얼굴.
승리감에 도취 된 저 상판을 갈아버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지.’
대답 대신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손에 채워져 있는 수갑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모은 정보들로 최대한 대비해 놓은 모양인데.’
마력 대신 마기의 운용을 막는 특수강 재질의 구속구.
날 위한 맞춤 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너흰 가장 중요한 걸 잊어버렸어.’
그렇게 생각하는 것과 동시에, 그들에게는 들리지 않을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린.”
스스스스스….
검은 그림자가 내 양팔을 휘감았다.
마치 촉수처럼 내 팔을 휘감은 그것은, 이윽고 내 손에 채워진 구속구를 천천히 둘러쌌다.
그리고 잠시 후.
꾸득, 꾸득…!
수갑 곳곳에 미세한 균열이 이는 것과 동시에, 막혀있던 마기의 흐름이 다시 돌아왔다.
‘역시, 눈치채지 못했군.’
구속구가 망가진 것을 눈치채지 못한 듯, 벤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예상대로 일이 흘러가니 미소가 절로 떠올랐다.
‘마기에 대한 정보는 제국만이 알고 있다. 그 원리까지 알려줬을 리 없지.’
교단과 제국의 공조했다고 해서, 그들이 전부 한통속인 것은 아니다.
자기들의 약점이 될 수도 있는 물건을 생각없이 내주진 않았겠지.
그 미세한 균열이 일을 키우는 거다.
200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잘했어. 이제 내려가 봐.”
심판관과 벤의 움직임에 예의주시하며 아린을 향해 말했다.
크리펠 교화소의 가장 깊은 구덩이.
그곳에는 아마, 성혈을 만들어내는 공장이.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실험체들이 잠들어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