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1. 종교재판
“음…?”
저택으로 돌아가는 마차 안.
멀리서 보이는 라인란트 저택을 보던 하인켈의 눈이 가늘어졌다.
‘허, 이것들 좀 보게?’
하인켈의 시선을 따라 저택의 정문을 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낯선. 아니, 내게는 그 어떤 것보다도 익숙한 문양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검은 바탕 한 가운데에 그려진 태양 십자.
그리고 그 십자가를 휘감고 있는 뱀의 문양까지.
“교단… 그것도 이단심판소 본부에서 행차하셨군요.”
그렇게 말하자, 눈을 부릅뜬 델라인이 차창을 들춰 저택을 확인했다.
“이런 미친…?”
“저들이 왜 또다시…!”
깃발의 문양을 확인한 하인켈이 이를 악물었다.
평소에는 좀처럼 보이지 않던 분노한 표정이었다.
성 케르디아스 신성교단의 최고 집행기관, 이단심판소.
라인란트에게 있어서 그들은 가문에 재앙을 가져오는 역신이나 다를 바 없었으니까.
‘생각보다 더 빨리 왔군.’
점점 가까워지는 저택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수많은 심판관들과 교단의 성직자들.
그리고 저택에서 나온 본가의 기사들이 저택으로 향하는 정문 앞에서 서로 대치하고 있었다.
“마력 반응입니다. 기사들인지, 아니면 심판관들인지는 모르겠지만….”
델라인이 그렇게 말하자 하인켈은 곧바로 판단을 마쳤다.
“상황이 급박하군. 듄켈!”
“사이로 돌입하겠습니다. 꽉 잡으십시오!”
그 말과 함께 듄켈은 마차에 박차를 가하고, 하인켈은 곧바로 프리실라를 끌어안아 고정시켰다.
“이럇-!”
듄켈이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마차가 단번에 속도를 높였다.
“저, 저거 뭐야?!”
“마차가 돌진해온다! 다들 대피! 대피하라!”
몰려있던 심판관들이 급히 좌우로 갈라지고, 그 사이로 밀고 들어온 마차가 두 집단 사이를 갈랐다.
“저 마차는!”
“전하께서 돌아오셨다!”
당황한 삼판관들과는 달리, 마차를 본 기사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이게 무슨 소란인가!”
곧바로 마차에서 내린 하인켈이 목소리를 높였다.
“북부에서, 그것도 라인란트의 저택 앞에서 무기를 뽑다니!”
“큭?!”
“하인켈 공작이다. 다들 물러서!”
이미 한 차례 충돌이 있었던 것인지, 기사들과 심판관들은 벌써 무기를 뽑은 상황.
하인켈의 얼굴을 확인한 심판관들이 경계를 한층 높였다.
“하인켈 라인란트 공작 전하.”
일촉즉발의 상황.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긴장의 끈을 푼 것은, 하인켈의 이름을 부른 목소리였다.
“오랜만에 얼굴을 뵙는군요.”
한데 모인 심판관들이 양옆으로 갈라지고, 잿빛 머리를 산발한 남자가 천천히 다가왔다.
법복 안쪽으로 보이는 체인 메일과 건틀릿.
화상으로 일그러진 얼굴과 한쪽 눈을 가로지르는 흉터.
마치 성직자가 아니라, 성직자의 옷을 훔친 도적과 같은 몰골이었다.
“그래, 오랜만이군.”
그것을 본 하인켈이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벤 드레이크 소장.”
그 말에 내 어깨를 잡고 있던 프리실라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벤 드레이크.
교국 극동에 위치한 종교범 전문 수용소, 크리펠 이단 교화소의 관리자.
이단자를 찾아 물어뜯는 교단의 회색 광견.
그리고, 당시 세 살이었던 날 교화소에 집어넣은 장본인이었다.
***
“그대들과 라인란트 사이의 일은 전부 다 끝났다고 생각했네만.”
벤의 손짓에 심판관들이 무기를 내렸다.
곳곳에 선혈이 낭자한 것이, 사람을 죽인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였다.
“끝나다니요. 어찌 그런 섭섭한 말씀을 하십니까.”
하인켈의 질문에 답하면서도 그의 눈동자는 연신 이곳저곳을 구르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아마 날 찾고 있는 거겠지.’
그의 한쪽 눈에 난 흉터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클라인 공자가 이번 내전에서 사령술을 사용했다고 들었습니다.”
역시, 날 잡으러 온 명분은 이것이었다.
헬리안과의 싸움에서 숱하게 사용한 사령술.
살아남은 병사들 사이에서 소문이 돌았으니, 교단의 귀에도 들어갔을 테니까.
‘아니면, 팔리만 그 새끼가 귀띔해 줬던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눈가를 좁힌 하인켈이 그를 향해 물었다.
“개리슨 신부가 클라인을 감시하는 것으로, 이 아이에 관한 건 불문에 부치기로 합의했을 텐데.”
“그랬죠. 저도 기억합니다.”
대륙 최강의 검사가 내뿜는 예기를 앞에 두고도 그는 태연했다.
오히려 벤은 하인켈을 향해 누런 송곳니를 드러내기까지 했다.
“‘죄인, 클라인 라인란트는 대행자 개리슨 비어크만의 입회하에 보호 감찰인 신분으로 전환한다.’”
당시 교단이 내게 내린 판결문.
아무것도 하지 않은 세 살짜리 어린아이를 그들은 죄인이라 부른다.
아키몬드의 환생.
세 살짜리 어린아이의 헛소리에도, 교단은 저렇게 과민반응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 개리슨 신부는 저희 측에서 구금하고 있습니다.”
“……!”
예상외의 정보에 하인켈이 얼굴을 찌푸렸다.
“교단의 대행자가 교화소에 구금괴었다고?”
“예.”
하인켈의 질문에 답하는 벤의 표정은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임무 중 변절하여, 본 교단의 추기경을 폭행하여, 현재 종교재판중입니다.”
그 말을 들은 난 들리지 않게 혀를 찼다.
‘그 재수 없는 새끼.’
눈부신 빛과 함께 사라진 추기경, 팔리만 엘.
만남은 없던 일로 하겠다더니, 이런 식으로 뒷공작을 건 거다.
‘어지간히 몸이 달았나 보군. 대행자를 잡아들이면서까지 날 확보하려 하는 걸 보면.’
그가 날 교화소에 잡아넣으려는 의도는 명확했다.
내 머릿속에 들어있는 아키몬드의 지식을 노린 것이겠지.
“그렇기에 현재 그의 대행자 직위는 정지. 그가 감시하던 클라인 공자 역시 저희 관할로 돌아왔습니다.”
돌아간다.
마치 내 자리는 처음부터 이 공작가가 아닌, 교화소의 감옥이라 말하는 듯했다.
“아니.”
하인켈 역시 그것을 느낀 것인지, 곧바로 검을 뽑아 바닥을 향해 횡으로 그었다.
카가가각-!
“……허?”
하인켈의 행동이 의외였는지, 벤의 표정이 괴상해졌다.
심판관들과 저택 사이에 그어진 기다란 선.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파악한 벤 역시 곧바로 손을 들었다.
“교단의 결정을 거부하는 것입니까?”
그들의 손에서 튀어나온 피묻은 십자가와 철퇴.
하인켈은 무겁게 가라앉은 눈으로 그들을 향해 말했다.
“이곳은 북부의 땅이며, 내 영지이다.”
하인켈이 그렇게 말하자, 기사들 역시 일제히 검을 뽑아 그들을 향해 겨누기 시작했다.
촤르르륵-!
“헌데, 감히 라인란트 공작 앞에서 라인란트의 아들을 데려가겠다?”
라인란트의 수장인 그의 말에 기사들의 검이 한층 더 예기를 더해갔다.
“어디 할 테면 해 보시오.
“뭐, 라고?”
하인켈의 앞서서 반발하자, 애써 유지하고 있던 벤의 평정에도 균열이 생겼다.
“클라인을 데려가려면, 이 나를 먼저 꺾어야 할 터이니.”
“이……!”
으득!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자, 벤의 입에서 이를 갈아붙이는 소리가 들렸다.
“걱정 말아요, 클라인.”
날 안심시키듯, 프리실라가 날 향해 말했다.
“지난번과는 달리, 이번엔 지켜낼 테니까.”
지켜낸다.
그 말을 들으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누가 누굴 지킨다는 건지.’
방계에게, 헬리안에게, 제국에게.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에게서 살아남기 급급했던 라인란트가, 이젠 완전히 몸을 일으켰다.
당당히 어깨를 펴고, 자신을 향한 악의에 맞서 싸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은 아니야.’
날 지키겠다고 나서준 건 고마운데, 현실은 녹록지가 않다.
내전의 뒤처리를 마치는 것도, 새로 얻은 영지를 정상화하는 것도 미흡한 상황.
그런 상황에서 날 지키겠다고 교단과 대립각을 세운다면, 되려 위험을 키우는 꼴이다.
“가봐야겠군요.”
그렇게 말하며, 난 내 어깨를 잡은 프리실라의 손을 떼어냈다.
“클라인…?”
“간다니? 너 이 상황에 어딜…!”
프리실라와 델라인이 그렇게 말하며 날 만류하려 했지만, 난 아랑곳하지 않고 마차 밖으로 몸을 던졌다.
“어이, 미친개!”
목소리를 높여, 가증스러운 저 녀석의 이름을 외쳤다.
“?!”
“클라인, 어째서…!”
갑작스러운 내 목소리에 놀란 듯, 대치 중이던 두 집단의 시선이 나에게로 집중되었다.
“그 사이 얼굴이 많이 좋아졌네? 교황님이 뼈다귀라도 던져주던?”
두려움이라고는 추호도 느껴지지 않는 친근한 목소리.
“크, 클라인 공자?”
“미친 것인가? 소장님을 향해 저런 언사라니…!”
천하의 교화소장을 미친개라고 불러대는 내 목소리.
그를 호위하던 심판관들이 단체로 인지 부조화가 걸린 듯 웅성거렸다.
쿵-!
그러는 사이.
내 부름을 받은 벤은 허리춤에 끼워져있던 메이스를 들어 바닥을 한 차례 찍었다.
“클라인 라인란트….”
들개가 으르렁거리듯 내 이름을 말한 벤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허, 이 새끼 봐라?”
툭, 툭.
주먹을 들어, 으르렁거리는 그의 가슴을 두어 번 두드렸다.
“‘공자님’이라고 해야지.”
“……!”
“왜, 한 8년 못 보니까 위아래도 못 알아볼 것 같아?”
만면에 웃음을 띤 채 이죽거리자, 메이스를 쥔 그의 주먹이 떨렸다.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
“흐, 흐하! 흐하하하하-!”
내 얼굴을 본 벤은 이제 되었다는 듯 큰 소리로 웃어 보였다.
“예! 오랜만에 뵙습니다. 클라인 공자님.”
스산한 웃음소리와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살기.
“직접 모습을 드러낸 이상, 직접 연행하겠습니다. 이의는 없겠죠?”
그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심판관들이 내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 자식들이!”
“누구 맘대로 공자님을 데려가려고!”
기사들이 다가오는 심판관들의 앞을 막아서는 사이.
“클라인!”
앞으로 걸어가던 내 어깨를 붙잡은 하인켈이 날 만류했다.
“이번엔 네가 갈 필요 없다. 네가 가문을 위해 희생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가는 것도 아니고, 가문을 위해 희생하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
내 말에 뭔가 더 말하려던 하인켈이 입을 다물었다.
“어머니의 묘지에서 말했었죠. 라인란트를 북부의 지배자로 만들겠다고.”
그들을 향해, 난 그렇게 약속했다.
클라인 라인란트의 이름으로.
그들의 숙적, 아키몬드의 이름으로.
“그 말을 지키기 위해 가는 겁니다. 허락해주세요.”
옅은 웃음을 깐 채로, 그렇게 말했다.
확신에 찬 내 얼굴.
그것을 본 하인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살아 돌아올 수 있겠느냐?”
끝내 결심을 마친 듯, 그는 날 향해 그렇게 물었고.
“반드시.”
“……알겠다.”
내가 그렇게 답하자, 하인켈은 더 이상 날 막으려 하지 않았다.
“도련님…!”
“가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가…!”
내 지시에 길을 연 기사들이 우려 섞인 목소리를 냈다.
“괜찮아. 죽으러 가는 거 아니니까.”
그렇지만 난 웃는 낯으로 그들을 안심시키며 심판관들의 안내를 따랐다.
철컹-!
마력 운용을 차단하는 특수재질로 이루어진 호송 마차.
난 그 정중앙에 걸터앉으며 툴툴거렸다.
“어우, 마차 승차감이 영 아닌데.”
그러자 열린 문 사이로, 벤이 모습을 드러내며 말했다.
“그 태연한 모습이 언제까지 갈지 보죠. 클라인 공자님.”
비웃음이 가득 담긴 시선으로 날 보던 벤이 혀를 날름거리며 내게 얼굴을 가까이했다.
“교화소에 들어가는 순간 당신은….!”
툭.
날 위협하는 그의 어깨에, 한 번 더 주먹을 대었다.
“눈깔아 개새끼야. 남은 눈 한쪽도 뭉개버리기 전에.”
“크……!”
끝까지 이죽대는 날 보며 부아가 치민 듯, 그는 거친 몸짓으로 호송 마차의 철문을 닫았다.
쾅-!
“교화소로 간다! 출발해!”
그의 불호령에 맞춰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후우.”
점점 멀어지는 저택을 바라보면서, 난 허공을 향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도착할 때까지는 참아, 아린.”
그 말에, 이리저리 요동치던 내 그림자가 움직임을 멈췄다.
“그 망할 신부놈 구하고 나면… 그때 배불리 먹여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