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9. 내가, 내가 아니게 되어버려
“이런, 이런 짓을 하고도 그냥 넘어갈 줄 아느냐!”
공포에 이성이 나간 것인지, 아니면 마지막 남은 권위에 기댈 셈인지.
부켄하임 백작, 데빈 부켄하임이 내게 일갈했다.
“기사들은 무얼 하고 있느냐! 당장 이놈을…!”
“미안한데, 기사들은 안 와.”
그의 말을 가로챈 뒤 그렇게 말하자, 백작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오지 않는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그렇게 묻는 그를 보며, 난 즐거운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당신이 내가 만든 환상에 빠져있던 게 약 두 시간.”
“두, 두 시간?”
경악과 함께 되묻는 백작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주곤, 한 마디를 덧붙였다.
“네크로맨서가 이곳을 장악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지.”
“장악… 했다니?”
그렇게 말하던 백작의 몸이 떨렸다.
“그럼, 기사들과 하인들도…. 전부…?”
“당신과 비슷한 환상을 보고 있어.”
그 말에 백작은 맥이 풀린 듯 마른 숨을 내뱉었다.
기사들도, 하인 하녀들도 모두 같은 환상을 보고 있다.
그 말에 의지가 꺾인 것이었다.
‘뭐, 이 인간만큼 수위가 쎄진 않지만 말이야.’
복잡한 환상을 보이기 위해선 그만큼 많은 마기가 소모된다.
켈딘의 혼을 강령시키는 마당에 저택의 모든 인간에게 그런 환상을 보일 수는 없는 법.
기껏해야 의식을 몽롱한 상태로 만들고, ‘저택은 아무 이상 없다’는 암시에 빠트린 것이 전부다.
“자, 그럼 이제 얘기를 좀 해볼까?”
“얘기…. 라니?”
힘없이 고개를 든 백작에게 얼굴을 가까이했다.
장난기가 가득했던 방금 전과는 달리, 아무런 감정이 섞이지 않은 무표정이었다.
“헬리안이 교단으로부터 공급받은 성혈.”
“……!”
그 말에 부켄하임 백작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나, 난 모르는 일이야! 그건, 헬리안과 교단 사이의…!”
“그런 것 치곤 반응이 많이 격하신데?”
그렇게 말하며 난 계속해서 그를 추궁했다.
“말해. 성혈이 어디에서 제조되는지. 누가 만들고 있는지.”
“난 몰라! 정말, 정말로 모른다고…!”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어 부인하는 백작을 보며 말했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
영문을 모른 채 내 말을 듣던 백작의 머리를 잡았다.
“뭐, 뭐야! 무슨 짓을…!”
“뭐긴 뭐겠어?”
엄습하는 불안감에 몸을 떠는 백작을 보며, 난 웃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한 번 더 다녀오고 나면,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잖아?”
그 말에, 부켄하임 백작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아니야, 안돼! 안…!”
“늦었어.”
그 말과 함께, 백작은 눈을 까뒤집은 채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약 5초 정도가 지난 뒤.
“으, 으아아악-?!”
소름 끼치는 비명소리와 함께,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아아…! 아아아…!”
눈물을 쏟으며 신음소리를 내는 백작.
그런 그의 머리채를 잡아 올린 뒤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자, 이번엔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 것 같아?”
“무, 뭐…?”
영문을 모른 채 날 보던 백작의 눈이, 내 등 뒤의 벽시계에 닿았다.
“아, 아아악! 아아아악-!”
1분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간.
그것을 확인한 백작이 미친 듯 비명을 질렀다.
“아니야, 분명! 분명 난 나흘 동안 그것들한테서…!”
“다음은 두 배. 그다음은 제곱이 될 거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건 일종의 최후통첩이었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이런 영상을 연달아 몇 번씩 보여주는 것은 불가능했으니까.
그렇지만 이미 두 번이나 지옥을 보고 온 그에게, 더 이상의 저항 의지는 남아 있지 않았다.
“흑…! 흐윽…!”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들어, 그가 알 향해 입을 열었다.
고해하듯, 탄원하듯.
어떻게 보면 애원하듯.
그는 자신과 교단의 거래, 그리고 헬리안과의 거래를 자백하기 시작했다.
교황을 포함한 중요인물의 이름부터, 자신의 기억 속에 있던 아주 사소한 것들까지.
내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그는 무슨 짓이든 할 기세로 입을 열었다.
“하,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의 말을 들은 내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고하고 고하다, 종국에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횡설수설하는 백작.
그렇지만 그런 그의 말 사이에서도, 한 가지 장소만은 명확히 알 수 있었다.
“교화소라….”
이젠 입에 담는 것조차 짜증이 솟구치니.
거칠게 그 이름을 씹어뱉었다.
“교단이 제조한다는 말만 들었지, 정말로 그 새끼들일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수확은 있었지만, 그럼에도 내 표정은 편치 않았다.
가장 중요한 흑막.
제국에 대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이다.
“제국에서 누가 관여했는지는… 정말로 모른다.”
“모른다고?”
“그, 그래!”
내가 되묻자, 공포에 질린 백작이 날 향해 외쳤다.
“헬리안 외에는 저, 정말로 몰라! 섣불리 캐려 하면 목이 달아난단 말이야! 그래서…!”
애원하듯 외치는 백작의 목소리에 거짓은 없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간단히 추론할 수도 있지.
‘헬리안 다음 가는 인간을 족쳐도 나오지 않고, 백작위 귀족을 마음대로 죽일 수 있는 자.’
코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 대륙에서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건, 단 한 사람밖에 없었으니까.
“황제, 멜디르….”
뿌득.
머리에 열이 올랐다.
그의 존재만으로도 유추해낼 수 있는 것들은 산처럼 많았으니까.
제국이 사령술을 연구하는 이유.
성혈 연구에 관여하는 이유.
그리고 헬리안의 몸을 직접 회수한 이유까지도.
“좋아. 이걸로 취조는 끝내지.”
그 말을 끝으로, 난 그를 제압하고 있던 마기를 거뒀다.
“으헉?!”
긴장이 풀린 것일까, 아니면 살았다는 안도감일까.
온몸의 힘이 풀린 듯 늘어진 부켄하임 백작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허억… 으, 으허억…!”
“그렇지만, 당신의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야.”
기진맥진한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무, 뭐…?”
미약한 목소리로 그렇게 묻는 백작의 말을 무시한 채, 난 계속해서 말했다.
“부켄하임 백작은 방계의 2인자를 자처하는 동시에, 뒤에서는 라인란트에게 정보를 내놔야 해.”
“……!”
내가 이곳에 잠입한 목적은, 방계 내부에 첩자를 심는 것.
그리고 내가 선정한 첩자는, 부켄하임 백작 본인이었다.
“방계 귀족과 제국 사이의 거래, 그들이 몰래 착복하는 부정수입, 밀수 등.”
서로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와 그로 인해 형성된 결속.
외부에서 파고들 수 없다면, 내부자를 포섭한다.
게다가 그것이 다른 누구도 아닌 방계 세력의 중심, 부켄하임 백작이라면?
그 순간, 라인란트는 언제든지 방계 귀족의 목을 따낼 수 있는 것이다.
“이게 내가 당신에게 제안할 거래야.”
거래.
그 말에 늘어져 있던 백작이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겠네! 그리하도록 하지!”
그렇게 말문을 연 부켄하임 백작이 계속해서 외쳐댔다.
“다, 당장이라도 넘길 수 있는 정보가 있네! 예, 예를 들면 중서부 칼디아 영지의…!”
그가 거기까지 말했을 무렵.
“…아까부터 뭐라는 거야 당신?”
난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뭐, 뭐냐니?”
그러자 백작은, 되려 날 이해하지 못한다는 듯 말했다.
“자네가 말했지 않은가! 첩자가 되라고! 그래서, 그래서 지금 내가 아는 정보를…!”
“아아, 뭔 소리를 하나 했더니.”
그런 그의 외침을 끊고, 난 손을 내저으면서 말했다.
“그쪽한테 얘기한 거 아니니까 신경 꺼.”
“……뭐?”
내 말에 얼굴을 찌푸리던 백작을 뒤로한 채.
“할 수 있겠어?”
난 백작의 등 뒤를 바라보며 그렇게 물었다.
- 좋네. 내 받아들이지.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데빈의 얼굴이 곧바로 새파래졌다.
“아니, 아니야!”
그렇게 외치며 백작이 뒤를 돌아보았다.
스르르르…!
도플갱어의 재료인 액토플라즘에 마기를 담아, 천천히 형태를 갖춰가는 영체.
그리고 그 끝에 나온 것은….
“어, 어어억…?!”
- 오랜만이구나. 데빈.
부켄하임 백작, 데빈 부켄하임의 친형.
켈딘 부켄하임이었다.
***
“혀, 형님이 어떻… 게?”
공포와 경악에 빠진 부켄하임 백작은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우리 사이에, 더 할 말은 없겠지.
그런 동생의 모습을 본 켈딘은, 곧바로 그에게서 관심을 끊은 채 내게로 다가왔다.
파츳-!
그와 나 사이에 원이 그려지고, 그곳에 술식이 떠올랐다.
네크로맨서와 망자가 맺는 계약문이었다.
- 망자, 켈딘 부켄하임이 그대의 계약을 받아들인다.
그 말과 함께 그의 이름이 계약문에 새겨지고, 그것을 확인한 나 역시 그곳에 손을 뻗었다.
- 안내자, 클라인 라인란트가 계약을 확인. 이 순간부터 효력을 발휘합니다.
그렇게 말한 난 켈딘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 배신의 대가는.
- 혼의 소멸일지니.
데스나이트를 생성할 때와는 달리 건조한 계약문이었다.
간단한 도형으로 그려진 술식.
이윽고 그것은 액토플라즘으로 이루어진 그의 몸에 스며들었다.
파스스스스…!
형태를 갖춘 그의 몸이 무너져내리고, 푸른 빛을 발(發)하는 혼의 본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뭐야, 지금 대체 무슨 짓을…!”
“무슨 짓이긴.”
뭔가 잘못되어간다는 것을 깨달은 것인지, 다급하게 묻는 부켄하임 백작.
불안해하는 그의 표정을 즐기며,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촤르르륵-!
“으, 으어억?!”
의자에 묶인 그의 몸을 타고, 술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목을 노리는 독사처럼, 서서히 그를 좀먹어가는 벌레처럼.
“부켄하임 백작을 아군으로 만드는 중이지.”
“무, 뭐…?”
이윽고 그의 몸 전체를 뒤덮은 술식이 푸른 빛을 내기 시작했다.
파아앗-!
“형제의 몸이니, 들어가기도 한결 편하겠지.”
형제의 몸.
들어간다.
그 말을 잠시 곱씹던 백작의 눈이 커졌다.
‘이제야 눈치챈 모양이군.’
잘 여문 과실을 취할 땐 언제나 보람찬 법이지.
소소한 성취감을 느끼며 난 내 주변을 맴도는 푸른 빛을 향해 말했다.
“빙의 준비 완료. 언제든지 들어가셔도 됩니다, 켈딘.”
빙의(憑依).
산 자의 몸에, 망자의 혼을 불어넣는 사령술.
그리고 방계 세력의 중추인 부켄하임 백작을 내 수족으로 부릴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수단이었다.
계약을 맺은 혼을 그의 몸에 빙의시킨다면, 배신할 걱정도 없는 법.
그리고 켈딘의 혼 역시, 이것을 원하고 있었다.
파스스슷-!
망자의 혼이 말없이 그에게 다가갔다.
좌중에 깔린 짙은 마기의 영향으로 백작에게도 그 모습이 보일 터.
“오, 오지 마! 오지 마아아아-!”
눈물로 범벅이 된 채 발버둥 치는 그의 모습을 보니 참….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느낌이다.
“이, 이건 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목숨의 위협을 느낀 백작이 날 향해 미친 듯이 소리쳤다.
“이, 이런 방식이, 정녕 라인란트의 방식인가?!”
날 향한 저주인지, 마지막 발악인지, 그는 켈딘의 영혼이 코앞까지 다가온 순간에도 계속해서 외치고 있었다.
“보, 본가의 기사가, 어찌 이런 사술에 의존하여…!”
“아아. 미안한데, 지금 크게 착각하고 있어.”
난 손가락으로 날 가리키며, 백작을 향해 말했다.
“난 기사가 아니라, 네크로맨서거든.”
“……!”
그리고 그가 그 한마디를 듣는 순간.
파아아앗-!
눈 부신 빛이 그의 몸을 빛내고, 잠시 고개를 떨군 백작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툭, 투툭.
소환한 스켈레톤의 팔이 밧줄을 끊고, 의자에서 풀려난 백작이 날 향해 걸어왔다.
“다시 태어난 기분은 어때?”
그를 바라보며 그렇게 묻자, 백작은 천천히 내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억울한 제 한을 풀고, 새 인생을 선사하신 은인께 고하니.”
다혈질적인 그와는 전혀 다른, 진중한 목소리.
“클라인 라인란트. 그대야말로, 저의 왕이십니다.”
깊이 고개를 숙인 그가 날 향해 그렇게 말했다.
‘왕이래. 하여튼 거창하긴.’
내심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난 그를 향해 천천히 말했다.
“그럼 잘 부탁하지. 부켄하임 백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