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8. 악당의 음모(2)
해가 저물어가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집무실을 향하던부켄하임 백작은, 대동한 기사의 보고를 받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한가?”
“예…. 제가 감시하던 전령은…. 무사히 성을 빠져나갔습니다….”
“목소리가 왜 그모양이야-!”
마치 넋이 나간 듯 얼빵한 목소리.
평소 같지 않은 모습에 부아가 치밀었는지, 백작은 그 기사를 향해 일갈했다.
“본가 놈들이 쳐들어온다니 겁이 났나?”
“아닙니다….”
“그럼 뭐지? 부상이라도 있나?”
“아닙니다… 아무 이상 없습….”
뻐억-!
참다못한 그가 기사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쿠당탕-!
균형을 잃고 쓰러진 기사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눈빛이 흐리멍덩한 것이, 도통 마음에 들지 않았다.
“썩 꺼져라!”
기사를 향해 일갈한 백작은 거칠게 집무실 문을 닫았다.
쾅-!
“하여튼 이놈이고 저놈이고…!”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는 하루였다.
본가에서 온 그 건방진 편지도 그렇고.
굼벵이처럼 느려터진 아랫것들도.
방금 전 그 기사도 그랬다.
마치 넋이 나간 듯 흐느적거리는 꼴을 보고 있으니, 답답해 미칠 노릇이었다.
“후우….”
그렇지만 그는 한숨과 함께 상념을 털어냈다.
지금 그에게 있어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자신의 기사나 하인들이 아니었다.
“한심한 작자들 같으니라고.”
그렇게 쏘아붙인 백작이 책상에 놓인 종이뭉치를 집어 들었다.
다른 방계 귀족들이 보내온 서신이었다.
“헬리안이 죽자마자 이렇게 동요하는 꼴이라니.”
헬리안을 중심으로 형성된 방계의 세력.
그들의 주 무기는 자금, 권력, 그리고 인맥이다.
그것들을 이용한 공격은 언제나 효율적이었고, 본가를 상대로 승리할 수 있는 성공의 방정식이었으니까.
‘그렇지만 헬리안의 죽음과 함께,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라인란트가 검에 헬리안이 무너졌다.
가장 많은 부와 가장 큰 권력.
그것을 지닌 헬리안이, 라인란트의 손에 쓰러진 것이다.
‘단순히 한 귀족의 죽음이 아니야.’
생각을 거듭한 부켄하임 백작이 미간을 좁혔다.
헬리안의 죽음이 시사하는 것.
그것은 그들이 수십 년 동안 사용해온 돈과 권력이, 이제 그 효력을 잃었다는 사실이다.
헬리안의 죽음과 함께 무기를 잃은 방계.
그렇기에 그들은 라인란트를 두려워하기 시작한 것이다.
공포의 근원은 무지(無知).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이다.
“하지만 난 다르다.”
그렇게 중얼거린 부켄하임 백작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헬리안의 죽음은 큰 손실이지만 동시에 2인자인 그에게 있어서는 기회였다.
이제 남은 방계 귀족들은 자신을 중심으로 뭉칠 테니까.
“저들의 재원을 이용해 내 기사단을 강화하고, 제국과 공조한다면….”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하던 백작이 그렇게 중얼거리던 순간.
휘오오-!
바람 소리와 함께, 스산한 냉기가 그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뭐야, 창문을 닫지 않았나?”
얼굴을 찌푸리며 그렇게 중얼거린 백작이 창가를 향해 걸어갔다.
“음…?”
그렇지만, 창문은 굳게 닫혀있는 상황.
날이 춥긴 해도, 방금 전처럼 바람이 들어올 수는 없었다.
“착각인가? 아니, 그건 아닌데….”
그 또한 명망 높은 무인.
본능적으로 느낀 기시감에 마력을 끌어올려 주변을 경계했다.
‘위협이 될 만한 것은 없다. 그렇지만….’
허리춤의 검 손잡이를 잡은 채 주변을 살피던 그 순간.
“음?”
서재 책상에, 낯선 편지 한 통이 놓여있었다.
“뭐지? 언제 이런 것이….”
그렇게 중얼거린 부켄하임 백작이 서재의 놓인 편지를 들었다.
붉은 편지봉투.
그것을 뒤집어 보낸 사람의 이름을 확인한 그 순간.
“으, 으아아악-?!”
소스라치게 놀란 백작이 비명과 함께 그 편지를 집어던졌다.
“백작님, 무슨 일이십니까?!”
“괜찮으십니까?!”
그의 비명 소리에 주변을 경계 중이던 기사들이 황급히 서재 문을 두드렸다.
쿵쿵쿵-!
“하아…. 하아…!”
가쁜 숨을 몰아쉬는 백작의 눈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시야가 흐려지고, 구역질이 밀려왔다.
“백작님?!”
“젠장, 문이 잠겨있어!”
“부수고 들어가겠습니다! 잠시…!”
그의 상태가 이상함을 눈치챈 기사들이 곧바로 문을 부수려 하는 그 순간.
“아, 안돼-!”
백작이 소리치자, 문 너머에서 들려오던 기사들의 목소리가 멎었다.
“아무도, 아무도 이곳에 들어오지 마라! 이건 명령이야-!”
대답은 없었다.
그렇지만 더 이상 서재 문을 두드리는 이도 없었기에, 백작은 가쁜 숨을 내쉬며 바닥에 놓인 그것을 보았다.
정확히는, 편지 뒤편에 쓰여있는 발신인의 이름을.
[켈딘 부켄하임.]
“말도…. 말도 안 돼…!”
떨리는 손을 애써 뻗어, 붉은 편지봉투를 집어 들었다.
검은 잉크로 쓰여진 친형, 켈딘의 이름.
더 볼 것도 없이, 생전 그가 사용하던 글씨체였다.
“누군가 사칭한 것인가? 아니야. 켈딘은, 형님의 생사를 아는 건 나뿐인데…!”
온갖 가정이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와중에도, 그의 손은 천천히 움직였다.
편지의 봉인을 뜯고, 속에 담긴 편지지를 꺼냈다.
[대가를 치를 때가 왔다.]
“……!”
비명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틀어막았다.
생전의 그가 즐겨 쓰던 펜과 잉크.
그리고 틀림없는 그의 필체.
알아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 내 유언장을 조작한 장본인이 바로 너니까. 데빈 부켄하임.
등 뒤에서 들려온 너무나도 낯익은 목소리.
곧바로 고개를 돌리자 부켄하임 백작, 데빈의 코앞에 그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의 친형.
켈딘 부켄하임의 얼굴이.
“으아아아아아악-!”
생각할 시간도, 그럴 정신머리도 없었다.
그저 허상이라고. 그저 환상이라고.
그렇게 미친 듯이 되뇌이며, 되는대로 검을 휘둘렀다.
카각-!
쾅-! 쿠콰아앙-!
제국 검술의 영향을 받은 강격.
그의 서재에 가득 쌓인 서류들과 문서들이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젠장, 죽어! 죽으라고! 죽어어어어-!”
콰아아앙-!
검격의 여파를 이기지 못한 채 서재 문이 터져나갔다.
검은 그림자로 가득한 서재에 비치는 한 줄기 빛.
그것을 본 백작은 본능적으로 그 빛을 향해 달려갔다.
저건 유령.
형의 모습을 한 망령이다.
빛이 있는 곳으로 가자.
빛이 있는 곳으로 가면…!
쿠당탕-!
미친 듯이 달린 백작이 저택 바닥을 나뒹굴었다.
방계의 2인자를 칭하던 자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추한 모습.
그렇지만 지금 그가 느끼는 것은 환희의 감정뿐이었다.
저 망령에게서 벗어나, 환한 불빛이 있는 밖으로 나올 수 있었으니까.
“거기, 거기 누구 없나?!”
서재에서 뛰쳐나오며 그렇게 외친 백작이 저택을 둘러보았다.
기밀? 정치적 입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 지옥 같은 상황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어, 어?”
그렇지만 그렇게 한참 동안 저택을 둘러보던 백작의 눈에 당혹감이 일었다.
“뭐, 뭐야…?”
없었다.
자신을 경호하던 기사들도.
언제나 자신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부관도.
저택을 오가는 하녀들이나, 잔심부름을 도맡아 하는 하인들도.
모습은커녕, 그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으으…! 으으으…!”
공포의 근원은 무지(無知).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전에 자신이 떠올린 그 문구처럼,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온몸을 떨었다.
“아무나, 아무나…! 제발…!”
불혹이 넘은 중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명망 있는 귀족인 그가 자기 자신도 잊은 채 다른 이들을 목놓아 불렀다.
“백작님.”
그러는 사이,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전, 자신에게 얼굴을 얻어맞았던 기사의 목소리였다.
“이, 있었나!”
방금 전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경멸하던 것도 잊은 채, 백작의 표정이 대번에 밝아졌다.
“이보게,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저택에 있어야 할 기사들이 왜…!”
다리는 진작에 힘이 풀린 상태.
주저앉은 채 기어간 백작이 그의 바짓자락을 잡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눈앞에 보인 것은.
“어, 어어어…!”
그의 형 켈딘 부켄하임의 얼굴을 하고 있는, 기사의 모습이었다.
“백작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방금 전까지 보이지 않던 하녀의 목소리였다.
“이게, 이게 어떻게…!”
고개를 돌린 그는, 이제 생각하는 것을 잊어버릴 지경이었다.
하녀의 얼굴 또한, 켈딘 부켄하임의 얼굴이었으니까.
“백작님.”
자신을 부르는 하인도.
“백작님.”
자신의 어깨를 잡은 부관도.
“백작님.”
“백작님.”
“백작님.”
그의 아들, 친지, 친구, 동업자.
그가 알고 있는 모든 이들이 그를 향해 모여들었다.
수십, 수백 명이 넘어가는 수많은 인파.
그들 모두가 켈딘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들 모두가, 자신이 죽인 형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힉! 히, 힉…!”
울고, 비명을 지르고, 애원하기를 수십 번.
“히히~?!”
그의 얼굴에 최종적으로 떠오른 것은, 실성한 듯한 웃음이었다.
***
“흐어어?!”
“어, 일어나셨네.”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에, 난 읽고 있던 책에서 눈을 뗐다.
“뭐야… 난, 그, 분명….”
아직 상황파악이 되지 않는 것인지, 부켄하임 백작의 눈이 요동쳤다.
그가 깨어난 곳은 저택 최상층에 위치한 백작의 서재.
열려있는 창문에선 스산한 겨울바람이 맴돌고 있었다.
“으으?!”
한참 동안 서재를 둘러보던 백작이 침음성을 냈다.
그제서야 자신의 손발이 완전히 묶여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했다.
“뭐야, 서재가 멀쩡하잖아? 아니, 그것보다 네놈은…!”
“오오, 상황파악도 빠르고. 역시 방계 귀족의 2인자구만?”
“?!”
비아냥거리는 듯한 내 말에 백작의 눈이 크게 띠였다.
달빛에 비친 은빛 머리칼과 검푸른 눈.
그것을 보고,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챈 듯했다.
“클라인, 라인란트…!”
“정답.”
탁.
그의 목소리에 난 읽고 있던 책을 덮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초면인데 이렇게 만나서 유감입니다. 부켄하임 백작.”
손발이 묶인 그를 조롱하듯, 일부러 과장되게 예법을 갖춰 인사했다.
전에 봤던 팔리만이라는 신부놈을 따라 해본 건데….
야, 이거 생각보다 재밌네.
“어떻게 된 거냐, 기사들은 무엇을 하길래 네놈이 오는걸…!”
거기까지 말하던 백작의 말이 끊겼다.
그의 뇌리에 각인된 광경이 다시금 얼굴을 불쑥 내밀었기 때문이리라.
“기사…. 들은, 그들은….”
“이젠 자기 기사들도 믿음이 잘 안 가지?”
그 말에 백작의 얼굴이 다시금 창백해졌다.
“걱정 마. 네 생각처럼 이상한 상판들은 아니니까.”
“그, 그래? 그렇다면….”
그가 본 것을 알고 있다는 투로 말하자, 잠시 생각하던 백작이 눈을 크게 떴다.
“잠깐만, 네놈이 그걸 왜 알고 있는 것이지?”
“왜일까? 이제 슬슬 상황파악이 되지 않아?”
내 말에 그의 얼굴이 한번에 달아올랐다.
“네, 네놈이! 네놈이 내게…!”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난 킥킥거리며 손뼉을 쳐 줬다.
짝짝짝짝!
“연출, 각본, 제작. 전부 내 작품이란 말이지.”
“……!”
분노가 임계에 다다르면 말이 나오지 않는다던가?
그 지경에 다다른 듯 얼굴이 새하얘진 백작을 향해 말했다.
“어때, 재밌지 않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