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7. 악당의 음모(1)
“이 서신의 내용이 사실이냐?”
라인란트 남부.
제국과의 접경지대.
제국에서 들어오는 물류의 대부분이 거쳐야 하는 이곳은, 북부에서 가장 발달한 도시 중 하나였다.
규모는 공작령의 중심도시인 라인란트 시에 버금갈 정도.
부유하기로는 이미 그 이상이었으니까.
“예, 예 백작님…. 공작 전하께서 직접 전하라 하셨습니다….”
부켄하임 백작가문의 문장은 곰.
북부에서 가장 사나운 동물이 그들의 상징이었다.
그렇지만 이를 갈아붙이며 몸을 떠는 그의 모습은 곰이라기보단, 성난 멧돼지의 그것과 닮아있었다.
쾅-!
전령이 내심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 부켄하임 백작이 책상을 힘껏 쳤다.
쩌저적-!
“어, 어우?!”
주먹 한 방에 나무 탁자가 부서져 산산조각이 났다.
도시의 기사를 통틀어도 몇 되지 않는 가공할 완력.
그 힘을 본 전령은 다리가 풀리려는 것을 애써 붙들었다.
“헬리안 마마를 제거하더니, 기고만장하기 짝이 없구나!”
편지에 적힌 내용을 다시 읽은 백작은 그 양피지를 와락 구겼다.
그에게 온 것은 하인켈의 군사명령서.
라인란트 기사 30인과 함께 감사관이 올 테니, 성문을 열라는 명령이었다.
“이런 같잖은 빌미로 기사단을 내 영지에 들이겠다니!”
공작의 편지를 집어던진 부켄하임 백작이 이를 갈았다.
“20년 전 사건의 재조사?! 다 끝난 일을 이제 와서…!”
분에 못 이겨 씩씩대는 그의 어깨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안경을 쓴 깡마른 남자.
성의 내정을 관리하는 그의 부관이었다.
“백작님. 그렇지만 이들은….”
“알고 있다!”
감사관과 동행할 30명의 기사.
그들은 공성전에 최적화된 라인란트의 철퇴, 가시망치 기사단이었다.
거기에 그들을 지휘하는 것은, 라인란트의 후계자인 델라인 라인란트.
하인켈과 함께 헬리안을 죽인 세 기사단 중 하나였다.
“폴와이번 내전에 투입한 기사들을 우리에게 보낼 줄이야…!”
꽉 쥔 주먹이 떨리는 까닭은 분노뿐만이 아니었다.
불안, 그리고 공포.
라인란트가 갑자기 이런 공격적인 행보를 취한 것은 수십 년 만에 처음이었기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백작님. 이대로라면 이틀 뒤 예정된 회의가….”
“쯧, 어쩔 수 없지.”
얼굴을 찡그린 백작이었지만, 곧이어 그는 오히려 잘됐다는 듯 누런 이를 드러냈다.
“편지는 잘 받았으니 물러가라.”
“예, 예…?”
더 할 말이 없다는 듯 백작이 손을 내저었다.
“저, 저기…. 백작님?”
“음?”
분명한 축객령.
그렇지만 잔뜩 몸을 움츠린 전령은 실실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저, 전하께서는 반드시 답변을 받아오시라고 하여서… 답변을….”
“…답변?”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는 전령.
그를 보며 얼굴을 찌푸린 백작이 손을 들었다.
그러자 그 순간.
뻐억-!
그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발길질이 전령의 복부에 꽂혔다.
백작의 양옆에 도열해 있는 기사들이었다.
“컥, 커억…!”
“본가의 콧대가 어지간히도 많이 오른 모양입니다, 백작님.”
비열한 인상의 젊은 기사가 그렇게 말하며 전령의 멱살을 잡아 일으켰다.
“가라면 얌전히 갈 것이지, 평민 나부랭이가 감히 누구 앞이라고 입을 놀려?”
사납게 이를 드러낸 기사가 그렇게 위협하는데도, 전령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내저을 뿐이었다.
“하하! 다, 당치도 않습니다…! 제가 어찌…!”
뻐억-!
그의 대답이 들려오기도 전에 기사는 전령의 얼굴을 후려쳤다.
멀찍이 날아가 땅바닥을 구르는 전령의 모습을 보며, 기사는 그제야 분이 풀린다는 듯 손을 털었다.
“거기까지 해 두거라.”
백작이 짐짓 점잖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고개를 숙여 보인 기사가 자리로 돌아갔다.
“본가의 전령은 튼튼하군. 보통 같았으면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데.”
바닥에서 비척거리는 전령을 비웃으며 그렇게 말한 백작이 입을 열었다.
“답변? 원한다면 해주지.”
그렇게 말한 부켄하임 백작이 전령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올 테면 와 보라고 해라! 이 부켄하임 백작과 제국 기사단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니!”
세력의 가장 큰 주축인 헬리안이 사라진 상황.
그렇지만 그는 자신이 있었다.
‘네놈들이 기사를 들이고자 한다면, 오히려 바라는 바다!’
그의 뒤에 서 있는 것은 제국.
내전 상황으로 끌고 간다면, 폴와이번에서 그리했듯 제국군이 라인란트 영지를 덮칠 테니까.
‘그리고 난, 헬리안 같은 멍청이도 아니지.’
제 아들이 죽자마자 제정신을 잃고, 힘에 미쳐 괴물이 된 여자.
쓸데없이 피붙이에 정을 붙이니 그렇게 되는 거다.
‘당신과 같은 실수는 하지 않을 거요. 헬리안.’
생각을 마친 백작은 곧바로 전령을 향해 일갈했다.
“잘 들었다면 물러가라! 아니면 내 직접 본때를…!”
“아, 아닙니다!”
급히 자리에서 일어난 전령이 황급히 백작의 집무실을 나갔다.
“흥! 머저리 같은 놈.”
그런 그의 모습을 비웃으며, 부켄하임 백작은 준비를 서둘렀다.
지하에 모아둔 자금을 외부로 빼돌리려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테니까.
***
“아오…. 겁나 아프네.”
부켄하임 백작의 저택 복도.
난 아직도 얼얼한 볼을 어루만지며 저택 1층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아니, 왜 표정 제어가 어긋난 거야? 실험에선 잘 됐는데….”
그렇게 중얼거리며 난 내 얼굴을, 정확히는 얼굴에 두른 도플갱어의 영체를 잡아당겼다.
뿌득, 뿌드득!
마치 허물을 벗기듯, 천천히 뜯겨나가는 내 얼굴.
“푸하아-!”
얼굴 가죽이 통째로 벗겨지고, 본래의 내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액토플라즘을 이용해 상대의 모습을 모방하는 도플갱어.
그 원리를 응용한 간단한 변장이었다.
“하여튼, 이상한 타이밍에 꼬여선…. 하마터면 들킬 뻔했잖아.”
얻어맞은 건 괜찮은데, 얼굴을 맞았을 땐 아차 싶었다.
영체가 버텨줬으니 그나마 다행이지.
우우우우-!
그렇게 혼잣말하던 사이.
미리 저택에 풀어둔 밴시에게서 반응이 왔다.
“찾은 건가?”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저택 지하.
1층 구석진 방에 있는 지하통로에서였다.
“좋아, 시간을 끈 보람이 있군.”
흡족하게 웃은 난 곧바로 방향을 꺾어 저택 구석진 곳을 향해 걸어갔다.
“이봐, 어딜 가는 거지?”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
내 뒤를 따라온 듯, 기사 한 명이 다가와 내 어깨를 잡았다.
“이 자식, 역시 라인란트의 첩자…!”
그렇게 말한 기사가 내 몸을 돌려 내 얼굴을 확인했다.
“어, 어어…?”
방금 전 전령과 같은 복장.
그렇지만 그의 눈에 들어온 얼굴은 유약한 청년의 얼굴이 아닌, 클라인 라인란트의 얼굴이었다.
뭐, 머리색은 아직 검게 염색한 상태였지만.
“클라인, 라인란…!”
화들짝 놀란 기사가 거기까지 말했을 무렵.
“쉬잇.”
입에 손가락을 대며 그렇게 말하자 그의 말이 그 자리에서 멎었다.
“읍…. 으읍…?!”
말이 나오지 않자, 기사의 눈이 단번에 커졌다.
“으으! 으으으-!”
그렇지만 말이 나오지 않는다 해서, 그의 행동을 막을 수는 없는 법.
그는 곧바로 목소리를 높여 저택 곳곳을 활보하는 하인들과 하녀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렇지만.
“…….”
“….”
애처로운 그의 외침에도, 나와 그를 지나치는 그 어떤 하인도 우리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우리의 존재를 모르는 듯했다.
“아, 아아…?”
“신기하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한 기사를 향해 말했다.
흑요석 반지의 마기를 완전히 흡수한 지금.
내 마기는 이들의 정신을 제압하기에는 충분했다.
“마력이 없는 이들은 전부 내 손아귀에 떨어졌다.”
그제서야 그의 얼굴에 한 줄기 공포가 깃들었다.
“이 저택에 널 도울 사람은 아무도 없단 뜻이다.”
클라인 라인란트.
그가 폴와이번 내전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는, 이미 소문이 파다했을 테니까.
스스스스…!
새파랗게 질린 그의 귀를 통해 천천히, 내 마기를 흘려보냈다.
이곳은 방해꾼도, 마기를 감지하는 네크로맨서도 없는 장소.
일부러 천천히, 공포심을 자극하며 그의 정신을 깎아냈다.
“아, 아아……!”
“저항하지 마라.”
마치 고장 난 인형처럼, 멋대로 흔들리는 그의 눈.
“으, 으으으…!”
“받아들여라. 도망치지 말고,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이제 내 목소리는, 산 자의 것이 아닌 망자의 목소리로 변해있었다.
- 그리하면, 이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다.
파르르 몸을 떠는 기사의 귓가에 천천히 속삭였다.
그의 뇌를 감싼 마기가 점점 농도를 더해가고, 또렷한 그의 의지에 암막을 드리웠다.
“아아….”
탄식과도 같은 한숨.
그것을 확인한 내 입꼬리가 올라갔다.
- 자, 이제 내 말을 따라 해보자꾸나.
마치 놀란 어린아이를 달래듯 말했다.
- 내가 감시하던 전령은, 무사히 성을 빠져나갔다.
“내가 감시하던 전령은… 무사히… 성을 빠져나갔다….”
정신장악이 제대로 먹혀들었는지, 텅 빈 눈을 한 기사가 천천히 내 말을 되풀이했다.
- 1층 구석진 방에는 아무도 가지 않았다.
“1층… 구석진 방에는… 아무도 가지 않았다….”
- 저택은 아무 이상 없다. 너 또한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저택은 아무 이상 없다…. 난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내 입에서 흘러나온 망자의 목소리.
그것을 되풀이한 기사는 내 몸에서 손을 놓은 뒤, 등을 돌려 사라졌다.
끼이이이…!
방해꾼이 사라졌으니, 거리낄 것은 없었다.
저택 한 구석에 위치한 낡은 별실.
그곳에 들어온 난, 먼지투성이의 카펫을 들춰 그곳에 있는 나무문을 열어젖혔다.
- 어이가 없군.
적진 한복판을 제집처럼 누비는 네크로맨서.
그 상황을 지켜보던 레이븐이 기가 찬다는 듯 말했다.
- 명색이 기사단이라는 것들이, 네크로맨서 대책도 준비하지 않았다니.
한 명의 네크로맨서가 저택을 장악해가는 상황.
지금의 난,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부켄하임 백작을 암살할 수 있었다.
“그러게.”
그의 말에 맞장구치며 전생의 기억을 떠올렸다.
수백만 언데드가 대륙을 침공한 아키몬드 사변.
치열했던 그때의 전쟁을.
“옛날엔 이런 식으로 침투하는 건 꿈도 못 꿨는데 말이야.”
언데드와 네크로맨서를 죽이는 데에 이골이 난 연합군을 떠올렸다.
상대가 그들이었다면, 난 아마 접근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감지마법을 펼친 마법사가 상주하고 있었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레이븐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해가 간다.
“그래도, 덕분에 일이 훨씬 쉬워졌잖아. 안 그래?”
그렇게 말하며 지하 통로를 걷던 내 눈에, 목표가 들어왔다.
“찾았다.”
그렇게 말하는 내 눈앞에 놓인 것은, 오래된 유골.
사슬에 묶여, 오랫동안 발버둥 친 남자의 해골이었다.
- 이 자인가?
“어. 제대로 찾아왔어.”
레이븐의 물음에 그렇게 답하며, 난 이 유골의 주인을 불렀다.
현 부켄하임 백작, 데빈 부켄하임의 친형.
- 켈딘 부켄하임.
우우우우-!
원혼은 안내자를 알아보는 법.
내 목소리에 반응하는 낯선 혼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난 오른손에 마기를 가득 응축시켰다.
- 암투에 몰려, 수십 년째 떠나지 못한 가련한 원혼에게 청하니.
그렇게 운을 뗀 나와 해골 사이에는, 시퍼런 계약문이 새겨져 있었다.
- 나와 거래를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