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76화 (76/209)

076. 다 방법이 있죠

“말이 안 나오네. 진짜….”

“이게 다 방계에서 추징한 물건들이라고?”

폴와이번의 내전이 마무리된 지 이틀.

하인켈과 기사들이 헬리안을 치는 사이, 라인란트 영지에서는 또 다른 전쟁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렇게나 많이 모아두고 있었을 줄이야….”

저택 마당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압류품들.

그것들을 보며 기가 질린 것은 비단 기사들뿐만이 아니었다.

“핵심 중진들까지는 손대지 못했다고 했죠?”

프리실라가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행정관에게 그렇게 물었다.

“예, 공후 마마.”

프리실라 휘하의 행정관이 송구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든 감사를 진행하려 했으나, 백작위 이상의 귀족들에게는 효과가 없습니다.”

“제국 기사들에게 보호를 받는 데다가, 어떤 곳은 기사단까지 직접….”

“그렇군요.”

후우.

짧게 탄식한 프리실라는 고개 숙인 행정관들을 독려했다.

“그래도 잘 해주었어요. 덕분에 전하께서 방해 없이 폴와이번으로 향할 수 있었으니.”

그렇게 말하면서도, 프리실라는 착잡한 눈으로 마당에 쌓인 온갖 사치품들을 바라보았다.

“그렇지만 적어도, 이것들의 몇 배는 되는 자금이 남았다는 뜻이군요.”

라인란트 공작령의 세율은 낮기로 유명하다.

척박한 땅과 사시사철 추운 겨울.

그 혹독한 환경을 개척한 것은 농민 자신들이니, 수확물 또한 그들의 것이라는 초대 공작의 지론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많은 자금을 쌓아두고 있다는 것은, 세금이 아닌 다른 방향에서의 착취가 이어졌다는 뜻.

그 생각이 맞았는지, 방계 귀족들의 영지를 감사한 행정관들은 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설마 이런 식으로 장난질을 칠 줄은 몰랐습니다. 영지민들의 생활에 세금이 붙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예요!”

“지방으로 갈수록 더욱 심해집니다. 자식의 생일이라고 세금을 걷던 작자도 있었고요.”

방계 귀족들의 움직임을 제한하기 위해 감행한 대규모의 감사.

이들의 예고 없는 습격은 라인란트 방계 귀족들의 민낯을 만천하에 까발렸다.

“공후 마마. 백작위 이상의 방계 귀족들이 집결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그녀의 뒤에 나타난 버크만이 프리실라에게 속삭였다.

“집결지는?”

“부켄하임 백작. 방계 세력의 2인자입니다.”

부켄하임.

그 이름을 들은 프리실라의 눈이 단박에 찌푸려졌다.

제국과 라인란트의 접경지대를 관할하는 영주.

헬리안이 폴와이번으로 건너가기 전엔 그녀의 오른팔이나 다름없던 자였다.

“제국 기사단장 중 하나입니다, 섣불리 기사단을 움직이면….”

“폴와이번처럼, 제국이 개입할 명분을 주게 되겠죠.”

헬리안의 준동에 발맞춰 그녀를 도운 제국군.

만일 섣불리 그를 자극한다면, 제국은 곧바로 같은 수를 써 올 터였다.

해상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폴와이번과는 달리, 라인란트의 재정은 아직 취약한 상태.

그들처럼 섣불리 내전을 벌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모처럼 기회를 잡았는데도 이런 게 고작이라니.”

프리실라 공후가 허탈한 듯 그렇게 말하던 그때.

“아뇨,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저택 정문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다른 이들이 모두 한곳을 바라보았다.

“클라인…?”

모두의 시선이 겹쳐진 곳에 선 소년.

클라인 라인란트가 그들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

“그러니까 이게 다….”

“폴와이번에게서 뜯어온 재원들입니다.”

토지증서, 어음, 금화, 현물.

마차 하나를 가득 채운 온갖 금은보화를 본 프리실라가 말을 잊었다.

“이걸로 가문 내부의 재정도 확충됐으니, 기사들을 지원하기에도 수월하겠죠.”

페트리우스.

아니, 멜디르 황제가 대동한 수천 명의 기사를 떠올리며 그렇게 말했다.

정확히는 그들이 두르고 있던 마법 무구들을 떠올리며.

‘장인은 붓을 가리지 않는 법이라고? 개소리지.’

케케묵은 격언을 속으로 비웃었다.

기사는 군인.

전선에 투입하여 최대한의 효용 가치를 내야 하는 전투원이다.

그리고 동시에, 한 명을 육성하는 데에도 수많은 재원과 시간을 소비해야 하는 고가치 자산.

‘그런 기사들이 인챈트도 변변찮은 갑옷을 두른다니. 용납 못 하지.’

이걸로 라인란트 기사들은, 그제서야 자신들의 가치에 맞는 장비를 지급받게 될 것이다.

“케르엔의 도공들이 기뻐하겠군요. 항상 재료가 없다며 울상이었는데.”

그렇게 말한 프리실라였지만, 그녀의 표정은 어두웠다.

‘뭐, 이유는 대강 짐작이 간다만.’

차라리 잘 됐다.

일은 빨리 시작할수록 좋을 테니.

“고생 많았어요. 클라인, 우선 들어가서 휴식을….”

“그럴 시간이 없죠.”

하녀들을 부르는 프리실라를 만류하며 입을 열었다.

“남은 방계 귀족들이 집결할 텐데,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으니까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프리실라는 한동안 말없이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그걸…?”

그렇게 물으며 말을 흐리는 프리실라를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방계는 처음 겪는 상황일 텐데, 혼자 머리 싸매기엔 불안할 테죠.”

방계 귀족들은 수십 년간 본가를 괴롭혀왔다.

자금력과 정치력.

그리고 물밑에서 벌어지는 온갖 술수를 통해서.

‘그렇지만 이젠 상황이 다르지.’

프리실라의 감사에 연계한 하인켈의 출병.

그 결과는 제국군의 철수와 헬리안의 죽음이라는 치명적인 결과였다.

처음으로 목도한 본가의 대대적인 반격.

구심점인 헬리안이 이렇게 빨리 사라진 이상, 혼란을 피할 수는 없을 터였다.

“칼자루를 쥔 것은 아마 부켄하임 백작. 자체 기사단까지 보유했으니 가장 적임자일 겁니다.”

그렇게 말하자 프리실라와 버크만은 또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럼 대책으로는….”

거기까지 말한 내가 고개를 들자, 날 바라보던 프리실라와 버크만의 표정이 보였다.

“……뭔 일 있어요?”

“아무런 동요가 없군요.”

눈치가 빠르다며 흡족해할 줄 알았는데, 이 표정들은 뭔가?

‘귀신이라도 본 표정들을 하고 계시는데.’

그렇게 생각하던 와중, 성큼성큼 내게 다가온 프리실라가 말했다.

“암살위협에 내전. 그 모든 참상을 겪고도… 아무런 동요 없이 다음 행동에 나서고 있어요.”

그렇게 말한 프리실라가 내 양어깨를 잡았다.

“전부 알고 있던 건가요, 클라인?”

“에, 예?”

갑작스러운 프리실라의 질문.

영문을 모른 채 그렇게 되묻자, 프리실라는 날 향해 계속해서 말했다.

“헬리안의 죽음과 지금의 상황을, 전부 다 본 건가요?”

“……?”

뭐야,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본다니, 뭘?

“그리고 클레어처럼, 앞으로의 일들도…!”

“마님!”

점점 더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어가는 찰나.

뭔가 더 말하려던 프리실라의 말을 버크만이 가로막았다.

“…클레어?”

“?!”

내가 그 이름을 입에 담자, 프리실라는 못 할 말을 했다는 듯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버크만 역시 당황한 듯 말이 없는 상황.

“…….”

“….”

불편한 침묵이 좌중을 감돌았다.

방금 전까지 떠들썩하던 기사들도, 그리고 하녀들도.

모두가 숨죽인 채,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잘못 건드렸단 표정들이신데.’

계속해서 말이 없는 두 사람.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들이 입에 담은 것은 내 생모, 클레어 라 유스티아.

사령술에 심취한 이민족 출신의 공후.

본가를 제외한 귀족들 사이에선 마녀라고 불리던 여인이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라면, 여기서 왜 그 이름이 나오냐며 따져 물어야 하겠지.

내가, 클라인 라인란트였다면.

“후우.”

클라인 라인란트로써 태어났지만, 내 기억과 지식.

그리고 정체성은 아키몬드다.

그런 내게 있어서 어머니란, 글쎄.

호기심은 있지만, 이 급박한 상황에 굳이 캐물어 알아내고픈 마음은 없었다.

‘지금 캐묻는다고 해서, 제대로 된 대답이 나올 리도 없을 것 같고.’

생각을 마친 난 그렇게 말하며 화제를 돌렸다.

“…방계 귀족의 세력 구도를 분석하고 추론한 겁니다.”

내가 그렇게 운을 떼자, 저택 안을 맴돌던 어색한 분위기가 옅어졌다.

“어딘가, 잘못된 것이 있나요?”

이 일에 대해 더 말할 생각이 없다.

그런 뜻을 담아 버크만과 프리실라를 번갈아 보았다.

“…….”

“…아.”

그러자 뒤늦게 이를 눈치챈 듯, 버크만이 황급히 그 말을 받았다.

“아뇨, 아닙니다. 너무나도 정확한 판단이셨습니다.”

날 향해 미사여구를 붙여가며 말을 이어가는 버크만.

“…….”

그리고, 그런 날 지긋이 보던 프리실라의 눈이 심상치 않았다.

“거기까지 추론했다면.”

그러는 사이, 다른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상황을 타파할 방법도 생각했겠구나.”

목소리의 주인은 하인켈.

델라인과의 대련을 마치고 온 듯, 자신을 따르던 하녀에게 수건을 건네며 내게 다가왔다.

“예. 생각이 있습니다.”

“말해보거라.”

적어도 이 무거운 공기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난 다음 내 계획을 천천히 입에 담았다.

“방계에 첩자를 심어놓으면 어떨까 해서요.”

“첩자?”

그 한 마디에, 세 사람의 표정이 모두 이상해졌다.

“도련님? 그건….”

“이제 와서는 무리에요.”

의문은 의문. 공무는 공무.

그새 생각을 정리한 듯, 프리실라가 내 말에 반박했다.

“이미 방계 귀족들은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혼인으로 연결된 자도 있어요.”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헬리안까지 죽은 상황에, 외부인이 파고들려고 한다면 반드시 의심할 테고요.”

“그렇겠죠.”

첩자를 심겠다는 내 말에 프리실라는 수많은 예시를 들며 반박했다.

별말 없이 그것들을 전부 수긍하자, 프리실라의 표정이 더욱 복잡해졌다.

“그런데, 어떻게 방계 내부에 첩자를 잠입시키겠단 거죠?”

그 물음에, 난 얼굴에 띈 웃음을 지우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방계 귀족 중 하나를 포섭하면 되겠죠.”

방금 전에 꺼낸 말보다도 더 터무니없는 한 마디.

고개를 내저은 프리실라가 곧바로 날 향해 말했다.

“클라인. 방금 제가 한 말을 들었잖아요. 그들은 이미…!”

“가능하겠느냐?”

그런 그녀의 말을 끊고, 하인켈이 내게 질문했다.

“하인켈…!”

“허가한다면, 정말로 그 일이 가능하겠느냐 물었다.”

대답을 요구하는 하인켈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한 치 흔들림 없이 확답했다.

“가능합니다.”

그렇게 말하자, 눈을 내리깐 하인켈은 곧바로 내게 말했다.

“좋다. 허가하마.”

“전하…!”

갑작스러운 결정에 버크만이 뭐라 말하려는 순간.

하인켈은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막았다.

믿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하인켈.

공작인 그가 그렇게 말하자, 버크만과 프리실라도 더 만류하지는 않았다.

“출발은 언제가 좋겠느냐?”

“지금이죠. 방계가 혼란스러워하는 지금이 절호의 기회입니다.”

“음.”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하인켈은 무거운 표정으로 내 어깨를 짚었다.

“일을 마치면… 해줄 얘기가 많겠구나.”

하인켈이 내게 그렇게 말하자 프리실라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뭐, 들어둬서 나쁠 건 없을 테니.’

그렇게 생각하며 하인켈의 말에 답했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걱정하지 말라는 듯, 밝은 목소리.

“그렇지만,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그렇지만 프리실라는 불안이 다 가시지 않은 듯, 재차 내게 물었다.

근심이 가득한 표정의 프리실라를 보며, 난 악당들이 으레 짓는 사악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 방법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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