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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74화 (74/209)

074. 네가 왜 거기 있느냐

“전하,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다급하게 달려온 듄켈과 기사들이 나와 하인켈의 안색을 살폈다.

갑옷 곳곳에 흠집이 난 것을 보며 하인켈은 그들에게 말했다.

“사상자는?”

하인켈의 그 말에 대답하는 기사들의 표정은 밝았다.

“부상이 셋. 그것도 경상입니다.”

“도련님께서 소환한 언데드가 결정적인 순간에 방패가 되었어요.”

뭐, 애초에 그러려고 소환해 둔 녀석들이니까.

상황이 의도대로 흘러가자 내 입에서도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나저나, 이건….”

말을 흐린 기사들의 시선이 닿은 것은, 헬리안의 시신이었다.

성혈이 부여하는 생명력을 모두 소진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경련하는 몸.

“이게, 헬리안 공후라고?”

“믿기지가 않는군. 어떻게 사람의 몸이 이 지경으로….”

그렇지만 계속 구경만 할 수도 없는 노릇.

“마음 놓지 마라. 아직 할 일이 남았으니.”

그렇게 말한 하인켈이 기사 중 한 명에게 눈짓했다.

“여기 있습니다, 전하.”

하인켈의 손에 건네진 것은 라인란트의 깃발.

그것을 바라보던 하인켈은 싸움의 잔해를 헤치고 꼭대기를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헬리안의 죽음을 공표하고자 하는 것이다.

“클라인.”

“여기 있습니다.”

계단을 오르는 하인켈의 부름에 답하자, 잠시 뒤에 하인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덕분에 목숨을 구했다. 고맙구나.”

“…….”

최후의 순간.

헬리안의 목소리에, 하인켈은 검을 멈췄다.

미리 준비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괴물로 변한 헬리안의 독에 당했을지도 모르지.

하인켈은 내게 감사를 표하는 것과 동시에, 그런 자신을 자책하고 있는 것이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하인켈에게 그렇게 말하자, 그는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저들이 망설일 때, 내가 나서면 된다.

그렇게 말하는 내 말뜻을 이해한 까닭이었다.

“아래로 내려가겠습니다. 아버지는….”

“전쟁을 끝내고 따라가마. 고생 많았다.”

하인켈의 말을 들은 난 곧바로 성 아래로 내려갔다.

아직까지도 전투가 한창인 폴와이번 성.

“어, 어어!”

“잠깐만, 저기-!”

그렇지만 곧 그들중 몇몇이 저것 보라는 듯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콱-!

“전투 중인 모든 이들은 들으라-!”

웅혼한 마력을 담은 하인켈의 목소리가 성 곳곳에 울려 퍼졌다.

“뭐야, 왜 성 꼭대기에 라인란트가!”

“잠깐만, 그럼 설마…?”

폴와이번 성 꼭대기에서 펄럭이는 라인란트의 깃발.

그것이 뜻하는 바는 명확하다.

“반란군의 수괴이자, 라인란트의 공적! 헬리안 라인란트는 지금 쓰러졌다!”

하인켈의 외침을 들은 공녀파 병사들의 눈에는 환희가.

다른 이들의 눈에는 절망이 떠올랐다.

“그럼에도 무익한 피를 흘리고 싶다면, 앞으로 나와라!”

하인켈의 외침에 맞춰, 성 중앙에서 라인란트 기사들이 대열을 맞춰 전진했다.

“라인란트의 검이, 그대들의 머리를 쳐 단죄하리라!”

자신들의 본진에 걸린 깃발과 그곳에서 걸어오는 라인란트의 기사들.

“젠장, 젠장!”

“다 끝났어. 우린 이제…!”

침음성과 함께 곳곳에 선 병사들이 무기를 떨어트렸다.

“무장 해제 확인!”

“남은 병사들을 모두 돌입시켜라! 전부 포박해!”

전투가 종료된 것을 확인하자, 라이아의 군대가 발 빠르게 움직였다.

내성으로 돌입한 라이아의 병사들이 순식간에 성의 거점들을 장악하고, 무기를 내려놓은 병사들을 포박해 한데 모았다.

“젠장! 이거 놔! 놓으란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잡혀 온 이들 중에는, 제국군 총사령관인 펜스타 백작 또한 섞여 있었다.

“감히 일개 공작의 사병들이, 제국군 총사령관을 포박하다니! 황제 폐하께서 네놈들을…!”

“이 지경까지 와서도 입은 살아있군요. 펜스타 백작.”

병사들을 향해 윽박지르던 그의 말을 끊었다.

“크, 클라인?!”

내 목소리에 겁을 먹은 듯, 화들짝 놀란 펜스타 백작이 몸을 움츠렸다.

“레이븐.”

이 이상 병사들에게 맡길 수도 없는 노릇.

병사들을 물린 난, 곧바로 레이븐을 소환해 그의 목에 검을 겨누게 했다.

“히, 히익?! 데스 나이트…!”

“이 녀석 앞에서 총사령관이니 뭐니 뻗대보시던가.”

산 자의 권위는 망자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뭣하면 지금 여기서 입을 막아버리는 게….”

그 사실을 상기시키듯 레이븐의 검이 가까워지자, 펜스타 백작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갔다.

“아, 안돼! 안…!”

“잘 알았으면, 입 닥치고 묻는 말에 답해. 펜스타 랜든.”

코앞까지 다가온 레이븐의 검과 서슬 퍼런 내 망자의 목소리.

얼굴이 새파래진 펜스타 백작은 미친 듯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헬리안이 교단에게 주기적으로 공급받은 성혈.”

“?!”

내 말을 들은 펜스타 백작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성혈의 존재. 그리고 교단이 관련되었다는 것.

내가 이것을 모두 알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탓이었다.

“그, 그걸 왜 네놈이…!”

“좋아. 알고 있다는 소리로군.”

레이븐의 검이 그의 목에 한층 더 가까워지고, 내 망자의 목소리 또한 농도를 더해갔다.

“누가, 어디서 만들었나.”

“히, 히익…!”

이젠 파래지다 못해 새하얘진 펜스타 백작의 얼굴.

그의 모습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난 계속해서 심문의 강도를 올렸다.

“나, 난 몰라! 모르는 일이야! 난…!”

“명색이 제국군 총사령관이라는 인간이, 이걸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제국군의 정보력은 대륙 제일.

폴와이번으로 향하는 자금과 인원들에 대해선 모르는 것이 없을 것이다.

“말해. 그렇지 않으면 네 시체를 되살려서…!”

“아, 아아아…!”

내가 거기까지 말한 그 순간.

뿌우우우우-!

온 성을 울리는 나팔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씨발.”

금관이 다섯 종류.

그리고 제국 최고 의전에 맞춘 이 음율.

나팔소리의 정체를 알아낸 난 곧바로 얼굴을 구겼다.

철컥! 철컥!

발소리를 맞춘 한 무리의 기사들이 폴와이번 성으로 들어왔다.

마치 열병식이라도 하는 듯, 질서정연한 움직임.

금빛 장식이 뒤덮인 그들의 갑옷을 보자, 앞을 막던 모든 이들이 양옆으로 갈라져 길을 열었다.

“일이 다 끝난 뒤에야 기어오시는구만.”

이곳으로 들어오는 기사들의 면면을 살폈다.

수천 명이 넘어가는 머릿수와 각종 마법이 부여된 무구.

지금 당장이라도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을 제압할 수 있는 병력이었다.

쿵-! 쿵-!

검집째 검을 들어 바닥을 두 번 찍는 기사들.

이윽고 그들이 좌우로 갈라지고, 행렬의 정중앙의 마차에서 누군가가 내리기 시작했다.

“저, 저…!”

“다들 무릎을 꿇어라!”

마차에 각인된 인장을 확인하는 것과 동시에, 지휘관들이 병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황제 폐하께서 행차하셨다!”

제국 황제, 페트리우스.

그 말을 듣자마자 방금 전까지 싸우던 공녀파와 공후파의 군사들이 일제히 몸을 숙였다.

“낌새가 심상치 않아 직접 왔더니, 생각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군.”

자신의 발아래에 몸을 낮춘 이들을 둘러본 그는 아무런 감흥 없이 그렇게 말했다.

“이런 곳에서 만나 뵐 줄은 몰랐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다가온 이는 하인켈.

제국의 3대 공작 중 한 사람만이, 그를 향해 먼저 말을 걸 수 있었다.

“라인란트 공작, 하인켈 라인란트.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곧이어 몸을 낮춰 황제에게 예를 표하는 하인켈.

“오랜만이군, 하인켈.”

황제는 그것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원래 같았으면 오랜만에 만났으니 술이라도 한잔할까 싶었지만.”

그렇게 말한 황제는 하인켈을 지나쳐 내가 있는 곳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내 인장을 지닌 이가 이리도 큰 실수를 저질렀으니, 그럴 겨를이 없군.”

그의 시선이 닿은 곳은 땅바닥에 엎드린 펜스타 백작.

이제 살았다며 희열에 떨던 그의 몸이 그 자리에 멈춰선 듯 굳어버렸다.

“폐, 폐하. 그것이…!”

“닥치거라.”

인자한 노인의 목소리에서, 웅장한 군왕의 목소리로.

황제의 한 마디에 펜스타 백작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땅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펜스타 백작.”

“예, 예…! 폐하…!”

딱딱한 황제의 음성에 펜스타는 당장이라도 졸도할 것처럼 보였다.

“분명 짐은 두 가문 간의 갈등을 중재하라 명하였는데.”

그렇게 운을 뗀 황제는 양손이 묶인 채 몸을 낮춘 제국군 병사들을 보며 말했다.

“제 잇속을 채우기 위해 사사로이 제국군을 움직여, 전장을 혼란스럽게 하다니.”

그렇게 내뱉은 황제가 손을 뻗자, 기사 중 한 명이 다가와 그의 손에 뭔가를 건넸다.

땡그랑-!

쇳소리와 함께 황제가 내던진 것은… 황금으로 장식된 단검이었다.

“네놈의 죄를 헤아릴 수가 없으니, 자결하라.”

청천벽력 같은 한 마디.

희망이 사라진 듯, 펜스타 백작의 입가가 부르르 떨렸다.

“폐, 폐하…!”

뭔가를 말하려는 듯, 펜크타 백작의 입이 달싹이던 순간.

“아, 아아…?!”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듯, 백작이 앓는 소리를 냈다.

스릉-!

그뿐만이 아니었다.

마치 제 것이 아닌 듯 스스로 움직인 펜스타 백작의 팔이, 땅에 떨어진 단검을 잡았다.

“아아! 아아아…!”

이게 아니라는 듯, 내 뜻이 아니라는 듯 고개를 내젓는 펜스타 백작.

그렇지만 단검을 든 그의 손은, 그의 의지를 벗어난 듯 그의 목에 상흔을 남겼다.

그리고 그 끝에는.

스걱-!

자기 스스로의 목을 그어, 새빨간 선혈을 주변에 흩뿌렸다.

“허…!”

“저, 저건……!”

눈을 들어 그 광경을 목도한 병사들이 탄식을 내뱉었다.

제국이라는 거대한 국가의 총사령관.

그런 이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너무나도 초라한 죽음이었다.

‘증거를 없앴군. 주도면밀한 새끼.’

물론, 그 광경을 바라보는 내 생각은 달랐지만.

“그래, 네가 이 전투의 주역이로구나.”

그러는 사이, 황제의 시선은 방금 전까지 펜스타를 심문하던 나를 향했다.

“고개를 들어 얼굴을 보여라.”

날 향해 내려진 황명.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확인한 난….

‘이런, 미… 친…?’

있을 수 없는 광경에, 곧바로 고개를 숙여 황제의 눈을 피했다.

도저히 저 얼굴을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무엄하오. 공자! 황제 폐하의 명이 있기 전까지는 고개를…!”

“하하, 아니다. 그만하거라.”

기사 중 한 명이 내 행동을 제지하고 나섰으나, 황제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어넘겼다.

“전투가 피곤하기도 하고, 황제를 직접 봤으니 긴장될 만도 하지.”

그렇게 말한 황제는 부복해있는 델라인과 나를 번갈아 보더니, 뒤에 선 하인켈을 향해 말했다.

“훌륭한 아들들을 뒀군.”

“영광입니다, 폐하.”

그 말에 하인켈이 의례적으로 답하는 사이, 난 쿵쾅거리는 심장을 애써 부여잡고 있을 뿐이었다.

‘도대체 왜…!’

미친 듯 요동치는 내 심장.

그 이유는 긴장이 아닌, 분노 때문이었다.

‘왜 아직도 네가 있는 거냐…!’

하인켈과 대화를 위해 등을 돌린 황제를 보았다.

네크로맨서인 내 눈이 본 것은 황제의 겉모습이 아닌 영혼.

주먹 쥔 손이 부르르 떨리는 것도 모른 채, 난 황제의 뒷모습을 죽일 듯 노려보았다.

도대체 왜.

‘왜 아직도, 네가 황좌에 앉아 제국을 호령하고 있는 거냐…!’

내 고향, 북부의 옛 왕국 윈터폴에 역병을 퍼트린 자.

나 아키몬드를, 대륙의 공적으로 몰아 죽이려 했던 자.

저자는 현 황제, 페트리우스가 아니다.

저것은 제 후손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괴물.

제국 초대 황제, 멜디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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