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73화 (73/209)

073. 존속살해.

“가문을 떠나겠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누님!”

수십 년 전, 라인란트 저택.

아직 젊은 하인켈을 표독스러운 눈으로 보던 것은, 그 시절의 헬리안이었다.

“더 이상 라인란트에 볼일이 없다고 한 거야. 하인켈.”

그렇게 말한 헬리안은 가슴팍에 달린 라인란트의 인장을 떼서 바닥에 내던졌다.

“…!”

“헬리안 아가씨…!”

집사장인 버크만과 다른 기사들 역시, 그런 헬리안의 행동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다른 가문들은 한창 영토 확장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우리만 이 모양 이 꼴이라니.”

그렇지만 헬리안은 그런 그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신의 할 말을 계속했다.

“장벽에 배치한 병력으로도, 우린 지금 당장 동부로 진출할 수 있어!”

그렇게 운을 뗀 헬리안은 마치 마지막 기회라는 듯, 하인켈을 향해 웅변했다.

“그런데 왜 안 된다는 거야?! 제국군을 장벽에 주둔시키는 게 무슨 문제가 있다고!”

현 공작, 하인켈과 헬리안의 대립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그들의 주요 쟁점은 장벽.

헬리안은 장벽에 제국군을 배치하는 것을 건의했고, 공작인 하인켈은 그것을 반대하고 나선 것이었다.

“라인란트를 위해선 이러는 편이 더…!”

“라인란트를 위해? 웃기는 소리 마라. 헬리안.”

특유의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대화에 끼어든 것은 이안이었다.

“오라버니, 그게 무슨…!”

“장벽 주둔을 성사시키는 대가로 제국이 네게 부여할 작위. 그리고 땅.”

표정을 굳힌 채 그렇게 말하자 헬리안의 얼굴이 붉어졌다.

“……!”

“저 녀석이 아무리 외골수여도, 그런 뒷거래를 모를 것 같았나?”

이안의 말에 헬리안의 고개가 휙 하고 돌아갔다..

하인켈과 그를 따르는 기사.

그리고 그 뒤에 선 채 차가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여인.

“프리실라, 네년이…!”

이를 악문 채 으르렁대던 헬리안을 향해, 하인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누님이 뇌물을 받았기 때문에 이 일을 반대한 것은 아닙니다.”

뇌물.

그 말에 헬리안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북부는 200년 전, 시조 베르켈 전하께서 아키몬드를 타도하는 대가로 독립시킨 땅.”

제국의 다른 공작가들과는 달리, 라인란트 공작의 임명은 제국의 승인이 필요하지 않다.

제국에 속해있으나, 라인란트 공작령은 사실상 독립국.

그 사실을 입에 담으며, 하인켈은 계속해서 말했다.

“북부는 우리가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라인란트의….”

“그놈의 의무, 그 망할 놈의 전통!”

콰직-!

헬리안의 발이 땅에 내던진 라인란트의 인장을 밟아 으깼다.

“그깟 전통에 얽매여서 병신같이 어물쩍거리니까, 너희들이 이 꼴인 거라고. 알아?!”

확장하여, 세를 키우자.

제국의 검으로 살지 말고, 귀족처럼 찬란하게 살자.

항상 그렇게 외쳐왔던 헬리안의 억하심정이, 지금 폭발한 듯했다.

“…그렇다 해도.”

그렇지만 그 말을 들은 하인켈은 눈가를 좁히며 말했다.

“라인란트는 북부를 지켜야 합니다.”

“……!”

그 말을 들은 헬리안이 하인켈을 노려보았다.

하인켈도, 죽은 아버지 루델도, 그 선대도, 그 선대도!

북부를 지킨다는 사명에 얽매여, 이 땅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래, 그러니까 내가 이곳을 나간다는 거야.”

하지만 자신은 다르다.

의무 따위, 사명 따위 모른다.

거기에 얽매인 네놈들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런 생각 끝에 헬리안의 얼굴에 걸린 것은, 짙은 비웃음이었다.

“내가 이곳을 나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겠지?”

“…….”

헬리안은 직계가 아닌 방계 세력을 장악한 지 오래.

그를 이용하여, 지금껏 가문 내에서의 발언권을 높여 오던 것이었다.

“그 잘난 의무, 어디 끝까지 붙들고 있어 봐.”

그렇게 말한 헬리안은 등을 돌리며 내뱉었다.

“다음에 만날 땐, 네 공작위를 내게 바쳐야 할 테니까.”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가문을 등지고 밖으로 나간 헬리안은, 유독 우중충한 하늘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실패할 거예요.”

그런 그녀의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시선을 돌리자, 그곳에는 은색 생머리를 늘어트린 여인이 나뭇가지에 걸터앉았다.

“……클레어.”

하인켈의 두 번째 부인.

클레어 라 유스티아.

“지금, 뭐라고 했지?”

독기를 가득 담아 그렇게 물었지만, 클레어의 눈은 자신이 아닌 하늘을 향해 있었다.

“공후 마마의 계획. 실패할 거라고요.”

마치 옛날이야기를 하듯 나긋한 어조.

그 태연자약한 모습에 헬리안은 더욱 화가 치밀었다.

“천한 이민족 주제에, 지금 어느 안전이라고 되지도 않는 헛소리를…!”

그렇게 일갈하려던 헬리안의 목소리가 순간 멈췄다.

저 여자가 방금, 자신을 뭐라고 불렀지?

공후 마마?

‘내가 폴와이번으로 간다는 건 아무에게도 말 하지 않았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던 것도 잠시.

환한 얼굴로 하늘을 보는 클레어의 모습을 보며, 헬리안은 고개를 내저었다.

‘정신이 이상한 여자다. 생각해봤자 헛수고지.’

주도면밀한 프리실라와는 정반대로,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이상한 여자.

헬리안은 클레어의 말을 애써 무시한 채, 폴와이번을 향하는 마차로 걸어갔다.

“진짜 가버렸어. 이젠 돌이킬 수 없을 거야.”

하늘을 보던 클레어의 한 마디.

우우웅-!

그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그녀의 눈동자에 푸른 빛이 맴돌기 시작했다.

빛을 쬔 사파이어처럼, 환하게 빛나는 청아한 빛.

“그러니까, 네가 막아줘야 해.”

우중충한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고, 빗방울은 곧 나무에 걸터앉은 그녀의 얼굴을 적시기 시작했다.

“할 수 있지, 클라인?”

그렇지만 그녀는 오히려 그 빗물을 즐기듯, 환한 미소와 함께 그렇게 말할 뿐이었다.

***

“하인켈-!”

투확-!

하인켈의 검에는 틈이 없었다.

재생하려는 순간 그곳을 베어내고, 저항하려는 순간 몸 전체를 날려버렸으니까.

카앙-!

그렇지만 헬리안의 몸은 이미 피 대신 성혈이 돌고 있을 정도.

그 몸이 뿜어내는 마력의 양은 무한에 가까웠다.

“끝이 없군!”

하인켈의 검이 수십 번을 날려버려도, 그녀의 몸은 계속해서 재생을 반복했다.

“아아아악-!”

쾅-! 쿠콰쾅-!

폭음과 함께 헬리안과 하인켈의 검이 맞부딪혔다.

모자라는 기량을 재생력으로, 검의 예리함은 압도적인 마력으로 충당하는 싸움.

“이젠, 이젠 예전의 내가 아니야!”

마력뿐만 아니라, 몸의 형태 또한 괴물이 되어가는 그녀를 보며 혀를 찼다.

카앙-!

불꽃이 튀며 하인켈이 헬리안의 검을 쳐냈다.

콰작-!

충격에 못 이겨 부러진 헬리안의 검.

그렇지만 헬리안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검을 쥔 손을 통째로 뽑아버렸다.

뿌드득! 뿌득!

그렇게 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손목 끝에서 새로운 손과 검이 자라나 그 자리를 대체했으니까.

“라인란트 공작은 언제나 제국 최강의 기사여야 한다지?”

하인켈이 델라인에게 했던 말.

그리고 동시에, 전대 공작인 루델이 하인켈에게 했던 말이었다.

“봐라! 하인켈!”

“…….”

기고만장한 채 양팔을 벌린 헬리안이 실성한 듯 외쳤다.

“시시각각 지쳐가는 너와는 달리, 난 언제고 계속해서 재생할 수 있어!”

아직 찬연한 빛을 잃지 않은 하인켈이었지만, 그것이 어디까지 갈지는 미지수였다.

그 사실을 꼬집으며, 헬리안은 다시 한 번 하인켈을 향해 달려들었다.

카앙-!

“이제 난 널 이길 수 있어! 내가 제국 최강의 기사란 말이야-!”

이를 악문 하인켈의 모습에 자신감을 얻었는지, 헬리안의 검이 하인켈을 점점 압박해갔다.

“아니.”

그렇지만 그런 헬리안의 외침을, 하인켈의 검은 단번에 끊어냈다.

카가가가각-!

수직으로 올려친 하인켈의 검.

그를 향해 달려들던 헬리안의 몸이 순식간에 반으로 갈라졌다.

“제 것이 아닌 힘을 아무리 휘둘러도, 날 꺾을 순 없다.”

“이 자식이…!”

급히 재생을 시작하는 헬리안의 몸을 향해 하인켈의 검이 움직였다.

‘한 번? 아니야. 이건…!’

올려친 것과 반대 방향으로 내려쳐진 하인켈의 검.

그렇지만 그 마력의 움직임은, 단순한 정면 베기가 아니었다.

키이이잉-!

포탄에라도 맞은 듯, 헬리안의 몸이 형체를 잃어갔다.

내 눈이 감지한 하인켈의 공격은 수십 회.

그 모든 검격에, 유성검의 정수가 담겨있었다.

“아악-?!”

유성검은 검 끝에 마력을 응집시켜, 한 점에 쏘아내는 비기.

한 번 사용하는 데도 수많은 준비 동작을 필요로 하는 기술이다.

그렇지만 하인켈은 그것을, 한 번에 수십 번을 겹쳐 사용한 것이다.

자신의 마력을 제어, 응집하는 능력.

그리고 전대 가주 루델을 꺾은 그의 특기, 고속검의 조화.

유성우(流星雨)였다.

쿠콰콰콰쾅-!

마력광이 퍼져나간 뒤, 폴와이번 성의 한 귀퉁이가 통째로 터져나갔다.

“젠장, 저게 뭐야?!”

“방어병력은 당장 후퇴! 다들 피해라!”

“으아아악?!”

하인켈의 기술의 여파로 인해 성탐 하나가 통째로 무너지고, 거기에 휘말린 헬리안의 병사들이 비명을 질렀다.

“저걸로 진입로가 생겼군.”

전장을 둘러보자, 델라인이 열어둔 성문으로 라이아의 기사들이 진입하고 있었다.

그것을 막아내기 급급한 와중에, 후방에 거대한 진입로가 생긴 격.

“저곳으로 돌입한다!”

“이길 수 있다! 전군 돌격!”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녀파 지휘관들이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이것으로 방어병력을 제압하는 것은 시간문제.

남은 건, 이 내전의 근원인 헬리안을 제거하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 헬리안은 지금….’

으으! 끄으으으-!

완전히 무너진 자신의 몸을 추스르며, 땅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었다.

“왜, 왜! 어째서-!”

몸 전체를 일격에 날려버리는 하인켈의 검.

그녀의 재생능력에도 한계가 온 것인지, 몸이 복구되는 속도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수십 년을 쌓아왔는데, 왜 난 저것들을 못 이기는 거야-!”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자, 헬리안은 분노에 미쳐 발악하기 시작했다.

“왜! 왜 나만…!”

“그릇된 선택을 했기 때문이지.”

난 그런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다른 이의 생명을 먹어 힘을 키우겠다는…. 되지도 않는 편법을 선택한 대가다.”

“……!”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반박할 기운도 없는 것인지.

말없이 몸을 떨고 있는 헬리안을 향해, 하인켈이 천천히 걸어왔다.

“이것으로 당신이 일으킨 내전은 전부 끝났소. 헬리안.”

“하, 하하….”

하인켈의 목소리에 반응한 헬리안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재생을 거듭한 그녀의 몸은 이제, 처음 만났을 때보다도 더 쇠약해져 있었다.

스릉-!

하인켈의 검이 헬리안의 목을 향했다.

잠시 동안의 정적.

그렇지만 하인켈은 결심을 굳힌 듯, 헬리안을 향해 검을 치켜들었다.

“이걸로 끝이오. 누님.”

그렇게 말하며 하인켈이 검을 내리치려던 찰나.

“그래도…. 마지막엔 누님이라 불러주는구나.”

힘 빠진 그녀의 목소리에, 그녀의 코앞까지 다가온 하인켈의 검이 멈췄다.

그리고 그 순간.

“그렇게 병신같이 망설이니까, 마지막 순간에 와서 이렇게 되는 거야.”

그 말과 함께, 헬리안의 몸이 순식간에 불어났다.

쐐애애액-!

헬리안의 몸 조각들이 떠올라, 하인켈의 목을 노렸다.

그곳에 돋아난 것은 독을 한가득 머금은 송곳니.

스치기만 해도 치명상에 가까울 터.

“이걸로, 하인켈 네 놈을…!”

“죽이게 내버려 둘 것 같아?”

환영검을 사용해 송곳니를 전부 베어낸 수정검이, 헬리안의 심장을 찔렀다.

푸욱-!

“끄으…?!”

이젠 스스로 성혈을 만들어내는 지경에 다다른 오염된 심장.

수정검을 위로 올려쳐 그녀의 몸을 베어낸 뒤, 그대로 횡으로 그어 그녀의 목을 날려버렸다.

스걱-!

혼을 베어내는 수정검.

힘의 근원을 잃어버린 헬리안의 몸이 그 자리에 널브러졌다.

“……!”

“이리 될 줄 알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그 순간까지도, 헬리안의 숨통을 끊지 못한 하인켈.

그를 향해 그렇게 말하는 사이, 다른 괴물들을 처리한 기사들이 우리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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