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72화 (72/209)

072. 수정검.

스걱-!

투명하게 빛나는 검신이 호선을 그릴 때마다, 헬리안의 기사들이 쓰러져갔다.

“아, 안돼!”

“이럴 순 없어! 난 여, 영생을…!”

쩌적!

검에 닿은 가슴팍을 시작으로, 기사의 온몸이 말라비틀어졌다.

“끄어어어…!”

퍼석!

다른 기사들이 저들의 움직임을 막는 사이, 그 틈을 파고든 내가 숨통을 끊는다.

이걸로 열다섯.

우리 측 사상자는 없었다.

“저게 뭐야! 어디서 저런 게…!”

잘린 팔다리가 순식간에 다시 돋아나는 재생력.

심장을 부숴도, 머리를 잘라도 다시 살아난다.

그런 자신들이 아무 저항도 못하고 사라지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라고 생각하는 중이겠지.’

“크으…!”

그런 내 생각이 맞아떨어진건지, 헬리안의 기사들은 계속해서 거리를 벌린 채 주춤거리고 있었다.

“이런 멍청이들이!”

그런 기사들을 보며 애가 타는 것은 헬리안이었다.

“뭣들 하고 있어! 어서 공격하란 말이야!”

“라고 하는데, 안올거야?”

고래고래 기사들을 향해 소리치는 헬리안.

“그 귀한 성혈을 받았는데, 막상 죽는다니 쫄려?”

그녀의 명령을 비꼬며, 망자의 목소리를 섞어 말했다.

“인간이길 포기한 대가로 얻은 영생인데, 이런 곳에서 날려버릴 줄 몰랐나 보지?”

“이익……!”

이를 악문 채 검을 치켜드는 헬리안의 기사들.

그렇지만 그들에게서, 아까와 같은 여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제 목숨이 위험하단 말이 나오자마자 겁먹은 개새끼들처럼 꼬리나 말고.”

그런 그들을 향해, 수정검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우릴 못이기는거야.”

이들이 믿는 것은 자신의 성취와 가능성, 그리고 검 한자루.

제 것이 아닌 힘을 맹신하여 날뛰는 머저리와는 차원이 다른 강자들이다.

“성혈 같은 편법을 쓰고도 검 한자루에 벌벌 떠는 버러지 새끼들이.”

나와 같은 전장에 선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난 확신에 가득한 한 마디로 도발에 쐐기를 박았다.

“감히 주제도 모르고 라인란트를 넘어서겠다 지껄이면 안 되지.”

내 입에서 그 말이 튀어나오자, 검을 쥔 헬리안의 기사들이 단박에 얼굴을 붉혔다.

“이 자식이……!”

“뚫린 입이라고…!”

화가 머리끝까지 난 듯 부들거리던 기사들이 다시 달려들려던 순간.

쿵-!

굉음과 함께, 어마어마한 마력이 전장을 뒤덮었다.

“그래, 네 말이 맞구나. 클라인.”

정제되지 않은 거대한 힘의 근원.

계단 위에서 싸움을 지켜보던 헬리안이 한 발짝, 한 발짝 이쪽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 어억…!”

“공후 마마, 이게 무슨?!”

주변에서 들려오는 기사들의 신음 소리에 얼굴을 찌푸렸다.

“뭐지?”

“기사들의 상태가 이상합니다.”

하인켈이 경계를 더 하고, 기사들이 그들의 면면을 살폈다.

“컥, 커어…!”

헬리안이 가까워져 갈 때마다 몸을 부르르 떠는 이들.

그들 중 한 사람이 더 버티지 못하겠다는 듯, 바닥에 쓰러졌다.

“내 특별히 여겨 귀중한 성혈까지 내어줬는데, 그깟 검 한자루가 무서워 뭉그적대는 꼴이라니.”

쯧, 하고 혀를 차며 그렇게 말한 헬리안이 쓰러진 기사를 향해 손을 뻗었다.

“끄아아아아아-!”

몸속에서 끓어오르는 고통에 견디지 못한 듯, 기사의 몸이 기괴한 방향으로 꺾였다.

빠각! 빠가각!

뼈가 부서지고, 골격이 뒤틀리는 소리.

얼마간 그것이 계속된 뒤, 우리들의 눈앞에 나온 것은.

“크르르르르…!”

완전히 짓뭉개진 형상으로, 검을 든 채 서 있는 괴물의 모습이었다.

“저, 저게 무슨…!”

“공후 마마! 저희는 이런 걸 원한 것이 아닙니다!”

당황한 헬리안의 기사들이 항변하듯 외쳤다.

‘성혈은 인간의 혼을 응축시킨 물질.’

그들의 몸에서 요동치는 성혈을 감지하며, 난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헬리안의 몸에서 나온 걸 주입받은 순간, 이미 늦었어.’

기사들의 안색을 살핀 내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크아아아-!”

“크워?! 크워어어억-!”

우릴 둘러싼 기사들의 몸이 하나둘씩 변이해갔다.

더 이상 인간의 것이라 생각할 수 없는, 끔찍하게 뒤틀린 형상으로.

‘아니, 오히려 저게 본래 모습이겠지.’

어깨에 수십 개의 얼굴이 떠오른 자, 온몸에 어금니가 돋아난 자.

몸 곳곳에 뚫린 구멍에서 피와 오물을 쏟아내는 그 모습에서는, 한 줌의 인간성도 찾을 수 없었다.

이것이 성혈의 진짜 모습.

생명력을 폭주시켜 만들어낸….

괴물이었다.

“기사단, 집결하라!”

“방벽 구축. 무장은 단창으로 전환.”

하인켈과 내가 각자의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곧바로 한데 모인 기사들과 스켈레톤들이 방어진을 구축했다.

촤르르륵-!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방어진을 향해, 그것들이 달려들었다.

헬리안의 기사들.

이젠 기사는 커녕, 사람이라 부를 수 조차 없는 괴물들이었다.

쿠콰아아앙-!

검은 방패벽에 육중한 살덩이가 부딪혔다.

충격을 받아낸 스켈레톤들이 일제히 하늘로 흩어지고, 그 틈을 통해 다시 한 번 기사들의 공격이 작렬했다.

“이런 제길?!”

“재생이 더 빨라졌습니다! 이렇게 되면…!”

“전하!”

자신을 부르는 기사들의 목소리에 하인켈이 고개를 끄덕였다.

“돌파하여 헬리안을 친다. 클라인!”

“여기 있습니다.”

그의 부름에 답하는 동시에, 내 손이 수인을 맺어 계약문을 작동시켰다.

“레이븐-!”

데스나이트 레이븐.

베르켈의 동료 중 한 명인 그를 불러 전면에 위치시켰다.

쿠오오오…!

- 내가 나타나는 곳은 언제나 지옥 같은 광경이로군.

‘200년 전보다는 덜하잖아?’

검은 연기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레이븐.

그를 향해 그렇게 말하며, 나 또한 검을 치켜들었다.

‘목표는 누군지 말 안해도 알겠지? 방어가 취약한 곳을 뚫어서…!’

내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레이븐은 곧바로 검을 뽑으며 입을 열었다.

- 아니, 그럴 필요 없다.

‘뭐?’

레이븐의 말을 되묻던 그 순간.

쿠콰아아앙-!

내 앞을 막아선 레이븐이 검을 휘두르고, 폭음이 성 전체를 뒤흔들었다.

“씨발, 먼저 이쪽으로 올 줄이야…!”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내뱉었다.

레이븐을 향해 검을 휘두른 이는, 다름 아닌 헬리안 본인이었다.

“네놈만큼은 내 손으로 직접 죽여주마, 클라인!”

카아앙-!

횡으로 올려 친 헬리안의 검격.

검로를 예측한 레이븐이 그것을 막아냈지만, 예상외로 손상이 심각했다.

‘원래의 것이 아닌 데스나이트의 몸체. 역시 아직 내구도가 모자라.’

강화했다고는 하나, 내 마기는 아직 미숙한 상태.

덕분에, 내가 만들어낸 레이븐의 신체는 생전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태였다.

‘설마 근접전으로 덤벼들 줄은 몰랐는데…!’

헬리안의 손에 들린 검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손에 들린? 아니지.

저 검의 재질은 금속이 아닌 뼈.

헬리안의 손에 들린 검은, 그녀의 신체에서 돋아난 것이었다.

“비켜어어어-!”

쿠콰아앙-!

또 한 번의 충돌.

단 두 번의 검격으로, 레이븐의 몸체를 거의 한계까지 몰아붙였다.

‘마력이 없던 인간에게 이 정도의 마력을 부여하다니…!’

기가 질렸다.

헬리안의 능력이나, 성혈의 효능에 대한 감상이 아니었다.

“몇 명이냐.”

레이븐과 대치한 헬리안을 향해 씹어뱉듯이 내뱉었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도대체 몇 명의 목숨을 집어 삼켜온 거냐, 헬리안!”

내가 그렇게 외치는 것과 동시에, 레이븐의 방어를 뚫은 헬리안이 날 향해 달려들었다.

“그따위 미천한 것들, 얼마나 죽어 나가건 무슨 상관이야-!”

내 분노를 이해하지 못한 헬리안이 그렇게 일갈하는 순간.

- 시간은 충분했나?

한쪽 어깨가 완전히 박살 난 레이븐이 날 향해 물었고.

“어, 충분해.”

목전까지 다다른 헬리안의 검을 보며, 난 레이븐에게 그렇게 답했다.

촤르륵-!

수정검을 들어, 그녀와 정 반대 방향으로 검을 휘둘렀다.

유리로 만들어진 무디고 무른 칼날.

일반적인 검사가 사용한다면,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비틀려 산산이 부서질 터였다.

키이이이잉-!

그렇지만 내 몸에 각인된 것은 이안의, 그리고 라인란트 검술의 정수.

한번 본 검술을 분석하고, 완벽히 재현하는 기괴한 재능.

‘영묘에서 사용했던 그 기술을, 이번에야말로 완성시킨다.’

파도처럼 밀려드는 헬리안의 마력.

그것을 몸에 담아, 그대로 검에 담아냈다.

그 때의 기억과 감각을 재현하고, 개선점을 찾아 재배열한다.

치이이익-!

정해진 검로를 그리자, 내 손에 들린 수정검이 달아올랐다.

소유자의 이름을 뜻하는 붉은 룬.

각인이 새겨지는 것과 동시에, 날 향해 쏟아지는 헬리안의 마력을 내 몸으로 받아들인다.

받아들인 마력을 응축하고, 가공하여, 독자적인 형(形)으로 빚어낸다.

‘검로는 그대로 반전시켜서 재현, 그리고…!’

머리가 타들어가는 고통과 함께, 마력이 담긴 수정검을 올려쳤다.

키이이이잉-!

검이 부딪히는 것과 동시에 작렬하는 마력광.

예상하지 못한 이상반응에 헬리안의 눈이 커졌다.

“뭐, 뭐야! 분명 네 놈은 마력을…!”

“그럼 내가 아무 승산도 없이 네 앞까지 기어올 줄 알았냐?”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받아친 거대한 힘은 헬리안의 검, 팔, 뒤이어 온몸을 휘감았다.

“난 원래 지는 싸움은 절대 안하는 인간이거든-!”

그 외침과 함께, 난 내 몸에 머물던 모든 마력을 내뿜었다.

쿠콰아아아아아-!

한 점으로 집중되어, 헬리안의 온몸으로 퍼져나간 마력.

그리고 그것은, 가장 치명적인 순간 폭발하여, 헬리안의 몸을 산산조각 냈다.

하인켈이 제창한 라인란트 검술의 정수 중 하나.

유성검이었다.

“아아아악-?!”

자신의 마력을 정통을 맞은 헬리안의 몸이 하늘을 날았다.

쾅-! 콰콰쾅-!

수 겹의 성벽을 뚫고 나간 헬리안의 몸은, 폴와이번 성의 중앙. 거대한 연무장 한가운데에 떨어져서야 겨우 움직임을 멈추었다.

푸쉬이이이-!

“흐어억…! 아, 아아악…!”

널브러진 헬리안의 온몸에서 연기가 솟아올랐다.

설화 수정을 깎아 만들어낸 수정검.

영혼 그 자체를 베어낸 일격은, 그녀에게 있어 더욱 치명적일 터였다.

“하, 하하하…!”

붉은 드레스는 넝마가 되었고, 젊게 회춘한 얼굴은 엉망으로 일그러졌다.

그렇지만 그 지경에 다다라서도, 헬리안은 웃고 있었다.

“역시…. 그깟 걸로 날 죽일 수 있을 리 없지…!”

온몸을 뒤덮은 고통에도 불구하고, 헬리안의 몸을 계속 재생되고 있었다.

‘이 지랄을 해도 절반이 한계인가…!’

파직! 파지직!

검을 쥔 내 손이 부르르 떨렸다.

한 층 완성도를 올렸지만, 이 기술은 상대방의 마력을 이용하는 것.

부하를 최소화한다 해도, 거부반응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봐라! 클라인! 난 아직 살아있다고-!”

통쾌하다는 듯 웃으며 그렇게 외치는 헬리안.

‘이걸 맞고도 재생력이 건재하다니, 적어도 만 명 이상은 먹어 치운 건가…!’

순식간에 상처를 치유해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이걸로 네 놈은 이제-!”

“이걸로, 저희들은 신경 쓰지 않고 싸우실 수 있겠죠.”

헬리안의 말을 끊고 입을 열었다.

“…뭐?”

내 말을 들은 헬리안이 그렇게 되묻는 것과 동시에, 난 탄식 섞인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아버지.”

“……!”

내 말을 들은 헬리안이 눈을 부릅뜬 그 순간.

“고생 많았다 클라인. 이제 내게 맡겨라.”

착 가라앉은 음성과 함께, 헬리안의 눈앞에 하인켈이 나타났다.

“네놈, 처음부터 이럴 속셈으로…!”

“헬리안.”

선고와도 같은 하인켈의 목소리가 헬리안의 이름을 불렀다.

“하인켈 아무리 네놈이라도 지금의 날…!”

쿠콰아아앙-!

대답 대신 들려온 것은 자축을 뒤흔드는 폭음.

급히 마력을 이끌어내던 헬리안의 몸이 순식간에 산산조각났다.

“아, 아아…?!”

대처할 새도 없이 그녀의 몸을 유린한 검격.

마구잡이로 뻗어나오는 헬리안과는 달리, 날카롭게 벼려진 기운이었다.

“이제 정말로…. 끝을 볼 때가 왔다.”

온갖 감정이 혼재된 착잡한 눈으로, 하인켈이 검을 들었다.

저것이 대륙 최강의 기사.

하인켈 라인란트의 검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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