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71화 (71/209)

071. 대륙 최강의 기사.

카가가가각-!

기사들과 언데드들을 벤 후, 조금 더 지나서야 파열음이 들려왔다.

끼이이이…!

기술의 여파를 못이긴 곳곳의 망루와 집들이 하나하나 주저앉았다.

나무 기둥과 돌벽, 심지어 곳곳의 철골까지.

하인켈이 벤 모든 건물들은 사선으로 잘린 깔끔한 절단면을 보이고 있었다.

쿵-!

‘말이 안나오네 진짜.’

실전에서 그의 검술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무너진 건물들 속에서도, 처음 계획했던 진입로는 멀쩡하다니.

저들을 베는 와중에, 건물들이 무너지는 방향까지 미리 계산하고 있었단 소리다.

“서두르지.”

그렇게 말한 하인켈은 헬리안이 있는 내성을 향해 달려갔다.

한 번의 검으로 십수명의 기사들을 베어버렸지만, 지친 기색 하나 없었다.

“하인켈 라인란트!”

“잡아라! 공후 마마께 접근하지 못하게…!”

뒤늦게 합류한 기사와 언데드들이 그의 앞을 막아섰지만.

서걱-!

하인켈의 검을 방어할 새도 없이, 팔다리가 잘려 돌벽에 피를 흩뿌릴 뿐이었다.

“아악?!”

“뭐야, 분명 난 마력을…!”

자신이 알아채기도 전에 팔다리가 날아가는 참혹한 광경.

당황한 그들의 숨통을 끊는 것은 뒤따르던 듄켈과 그의 붉은수레 기사단이었다.

‘이안 그 망할 노친네… 저게 어딜 봐서 범재라는 거야?’

델라인의 검격은 마력량으로 상대를 후려치는 힘의 정수.

그렇기에 그의 검은 진형을 붕괴시키고, 길을 뚫는 것에 특화되어있다.

반면, 하인켈의 검격은 압축의 정수.

검에 담긴 마력을 한계 이상으로 압축하여, 닿는 모든 것을 베어버리는 신기였다.

대련, 결투, 혹은 검술 시연.

그곳에서 하인켈이 보이는 검술을 보며, 사람들은 경탄을 금치 못한다.

기세는 노도와 같고, 검로는 한 치 흐트러짐도 없으며, 검무는 작품과도 같았으니.

그렇지만 그들 모두가, 가슴 한편에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그래도 실전에서는.’

‘그래도 전쟁에서는.’

실력있는 기사들이 일제히 그를 상대한다면, 제압하지 못할 것도 없으리라고.

그렇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은, 라인란트라는 이름이 어떤 무게를 지녔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자이다.

라인란트, 제국의 검.

그들은 제국의 명에 따라, 가장 절망적인 전장에 내몰리는 기사들이다.

동부 대삼림에 창궐한 몬스터.

장벽 너머에서 밀려드는 언데드.

대륙 남부를 방어하는 갈라무의 레인저들.

그리고 시시각각 덩치를 키워, 제국을 위협하는 수많은 악한들까지.

그들이 준동할 때, 제국의 선봉에 선 것은 언제나 그들이었다.

그리고 싸움이 끝났을 때,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이들 또한 라인란트였다.

제국 3대 공작, 하인켈 라인란트는 그 라인란트의 장을 맡은 자.

정쟁과 암투에 피폐한 지금이라 할지라도.

그는 여전히 대륙 최강의 기사였다.

“전하께서 이렇게 저돌적으로 나서시다니, 의외군요.”

기사 중 한 명의 목에 검을 찔러넣던 듄켈이 그렇게 말했다.

“평소엔 안 저러나?”

평기사 시절엔 하인켈과 함께 전투에 임했다고 했었지.

그 말을 떠올리며 묻자, 듄켈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분은 저희들에게 맡기십니다. 실전경험을 쌓아야 하니까요.”

다른 기사들 또한 의외라는 듯, 힘이 잔뜩 들어간 모습이었다.

‘분노인가 망설임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

가문의 공적, 방계의 수괴, 수십년 간 대립해온 정적.

아무리 그렇게 생각한다 한들, 하인켈에게 있어 헬리안은 피붙이.

누이를 베러 가는 길이 편할 리는 없을 터였다.

‘맡기라고는 했지만… 안심할 순 없겠어.’

하인켈, 델라인.

내 가족들의 공통된 약점은, 정이었다.

선하고 고고한 영웅이기에 필연적으로 지닐 수밖에 없는 연민.

만일 망설인다면, 그 때는 내가 나서야 할 터였다.

카카칵-!

폴와이번 성채의 내부로 향하는 거대한 철문.

하인켈의 검이 닿자, 두꺼운 철문이 수십 조각으로 잘려나가, 그 자리에 무너졌다.

“으, 으헉?!”

예상외로 빠른 기습이었던건지, 목표 대상 중 하나인 펜스타 백작의 모습이 보였다.

“저자는?”

“제국군 총사령관입니다.”

“그렇다면 정중히 모시거라.”

하인켈의 그 말에 난 곧바로 소환문을 작동시켰다.

촤르륵-!

“……!”

그의 주변에 나타난 열 명의 데스나이트들이 일제리 그의 목에 검을 겨눴다.

- 죽이지 마세요. 중요인물입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데스나이트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 들었지? 계약자 덕에 산 줄 알라고.

- 팔다리 하나 정도는 잘라도 되려나?

검은 갑옷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시커먼 연기.

데스나이트의 안광을 정면으로 받자, 펜스타 백작은 겁에 질린 채 날 부를 뿐이었다.

“네, 네놈이 감히…!”

“오랜만이군. 펜스타 백작.”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

서슬퍼런 하인켈의 목소리에 흠칫 어깨를 떨며 입을 다물었다.

“하, 하인켈 공작 전하…!”

그가 내비친 감정은 확연한 공포.

다른 누구도 아니고, 하인켈 본인이 직접 찾아올 줄은 몰랐다는 얼굴이었다.

“나, 남부 전선 이후로는 처음 뵙는…!”

“제국은 분명, 이 내전에 직접적인 개입은 없을 것이라 천명했는데.”

횡설수설하는 그의 말에는 신경쓰지 않은 채 하인켈이 으르렁거렸다.

검을 집어넣지 않은 채, 그에게 다가가 얼굴을 가까이했다.

“그 제국군과 총사령관인 자네가, 어째서 헬리안에게 협력하고 있는 거지?”

“그, 그것이…!”

피가 뚝뚝 떨어지는 하인켈의 검.

고작해야 평기사 수준의 무력을 지닌 펜스타는, 손가락 하나만 가지고도 죽일 수 있었다.

“대답하게. 펜스타 랜든 백작.”

“흐윽……!”

대륙 최강의 기사다 내뿜는 살기.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온몸을 떠는 펜스타 백작에게, 하인켈이 재차 물었다.

“이것은 황제 폐하의 뜻인가? 아니면 그대의 뜻인가.”

“저, 전하. 전, 그것이…!”

그렇게 하인켈의 추궁이 계속되고 있을 무렵이었다.

“누구의 뜻이긴, 당연히 내 뜻이지.”

특유의 고압적인 목소리가 성의 공동을 가득 울렸다.

저벅, 저벅.

계단을 내려오는 발소리와 함께 천천히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연회에 참석하듯, 잔뜩 꾸민 붉은 드레스와 액세서리.

“헬리안…?”

그녀의 모습을 본 하인켈과 기사들의 눈이 일제히 커졌다.

“이젠 누님 소리는 안 하기로 했나 보지? 하인켈.”

“……!”

하인켈보다도 몇 살은 더 먹었을 헬리안의 몸이, 저렇게 젊어졌다니.

사람이 아닌, 진짜 괴물을 보는 것 같은 눈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서.

촤르르륵-!

헬리안의 양옆, 등 뒤.

그리고 방금 전 우리들이 뚫고 온 문에서도 기사들이 쏟아져나왔다.

“저 기사들은…!”

“아까 처리한 놈들이잖아?!”

촤앙-!

곧바로 검을 뽑은 기사들이 나와 하인켈의 주변을 경계했다.

“크르르르…!”

처음 성으로 돌입했을 때, 하인켈이 베어버린 십수 명의 기사.

그리고 이곳으로 오기까지 마주친 수많은 기사들이었다.

“곱게 죽진 못할 줄 알아라, 라인란트의 떨거지들이…!”

짐승과도 같은 울음소리와 함께 그들의 검이 우리들을 겨눴다.

어떤 이는 오른팔이 두 개.

어떤 이는 팔에 송곳니가 나 있었다.

기괴하게 뒤틀린 저들의 모습.

인간의 몸을 저렇게 변질시키는 방법은, 내가 알기론 한 가지 뿐이었다.

“성혈을 주입해 재생시켰군.”

“……!”

성혈의 존재는 기밀사항.

그것이 내 입에서 튀어나오자, 헬리안이 얼굴을 찡그렸다.

“네놈이 어떻게 그걸…?”

“왜일 것 같아?”

그렇게 말한 난 품에서 유리병을 꺼내 그녀에게 보였다.

“네놈이 그걸…!”

“웬일로 배달이 늦는다는 생각 안 해봤어?”

임꼬리를 올리며 그렇게 이죽거리자 뿌득, 이를 간 헬리안이 외쳤다.

“전부 죽여라! 한 놈도 살려보내지 마!”

그 말과 함께, 사방에서 우리를 포위한 기사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죽지 않는 기사.

엉망진창으로 뒤틀린 괴물들.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졸도하고도 남았을 광경이었다.

“기사단, 전투준비!”

그렇지만 나와 하인켈을 둘러싼 그들의 모습에, 동요는 보이지 않았다.

‘나라고 놀고 있을 수는 없지.’

그들을 보며 그렇게 생각한 난 곧바로 마기를 내뿜어 소환문을 작동시켰다.

- 키이이이이-!

허공에서 솟아난 스켈레톤들이 방패를 치켜든 채 진영을 짰다.

“하! 웃기는군!”

“이런 잡것들을 불러 봐야!”

그렇게 말한 헬리안의 기사들이 일제히 스켈레톤들에게 부딪혔다.

쿠콰앙-!

중장갑으로 보강했다고는 하나, 스켈레톤은 스켈레톤.

일제히 달려드는 수백 명의 기사들을 당해낼 재간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움직임을 막는 건 가능하거든.’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

“공자님의 언데드가 발을 묶었다.”

“이거면 충분하지!”

내 의도를 알아챈 기사들이 곧바로 달려들었다.

“크아악?!”

“라인란트, 이 개자식들이!”

스켈레톤의 방패로 가로막힌 시야.

그 사이사이에서 튀어나오는 기사들의 검에, 우릴 포위한 기사들의 팔다리가 하늘을 날았다.

구륵! 구르륵!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

“이런 미친…!”

떨어져 나간 팔을 주워 붙이자, 그곳에서 솟아난 혈관이 팔에 얽혀 그것을 복구해냈다.

“그래, 그거야!”

그 광경이 즐거워 견딜 수 없다는 듯, 헬리안이 웃음을 터트렸다.

“우린 성혈을 받아 영생을 얻었어! 이제 저깟 놈들은…!”

마치 자기가 신이라도 된 양 지껄이는 헬리안.

그리고 그 영생이라는 허황된 말에 넘어가 입맛을 다시는 기사들.

그 꼴을 보고 있자니 참….

가소롭기 짝이 없다.

“영생? 아닐걸?”

그런 그들을 향해 말하며, 난 천천히 허리춤에 찬 검을 뽑았다.

스으으으…!

노르드빈트가 아닌, 본가에서 가져온 새로운 검.

얼음성 지하에 잠들어있던 설화 수정을 깎아, 검의 형태로 벼려낸 것이었다.

콰직-!

그러는 사이, 스켈레톤의 방어를 뚫고 기사 한 명이 날 향해 달려들었다.

“클라인 라인란트! 네놈부터 숨통을…!”

하인켈과 기사들은 끝없이 재생하는 기사들을 상대하는 중.

방해 없이 내 앞에 다다른 기사를 향해, 난 그것을 휘둘렀다.

“유리로 만든 검?! 지금 장난하는 거냐!”

내 검을 본 기사가 기고만장하게 외쳤다.

내가 휘두른 것은 검이라기보단 검 모양의 유리 장식.

그의 몸을 둘러싼 철갑옷을 베려 하는 순간, 그 자리에서 산산조각날 터였다.

“성혈의 원리는 혼을 소모해 육체의 재생을 높이는 것”

그렇지만 난 계속해서 검을 움직였다.

측면으로 쏘아낸 검로를 틀어, 정면으로.

스으윽-!

마치 갑옷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유리로 된 검신이 그의 몸을 꿰뚫었다.

“뭐, 뭐야?! 왜 검날이…!”

본적 없는 기괴한 현상에 그의 눈이 단번에 커졌다.

“그렇다면, 재생력의 근원인 혼 자체를 베어내면, 어떻게 될까?”

그 말과 함께, 난 박아넣은 수정검을 위로 치켜올렸다.

스걱-!

몸을 꿰뚫고, 위로 치켜올린 검.

그렇지만 그 검에 맞은 기사의 몸에는, 그 어떤 상처도 없었다.

그렇지만 그 순간.

털썩!

내게 달려든 기사는,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그 자리에 쓰러졌다.

“흐어어어어…?!”

고통스러운 듯 가슴을 부여잡은 기사가 마른 숨을 내뱉었다.

쩌적! 쩌저적!

머리는 하얗게 새고, 피부가 말라비틀어지며, 점점 움직임을 멈춰갔다.

그리고 종국에는….

퍼석!

땅에 떨어진 석고상처럼, 산산히 부서져버렸다.

“저게 무슨…?”

“어, 어어…!”

동료의 죽음을 지켜본 헬리안의 기사들.

그리고 그것을 본 헬리안의 눈이 커졌다.

“이, 이…!”

처음으로 그녀의 눈에 서린 감정, 공포.

영생을 보장받은 자에게 들이닥친 죽음은, 그 어떤 죽음보다도 두려울 터였다.

“기, 기사들! 뭣들하고 있어!”

“전 기사단은 들어라!”

헬리안이 그렇게 외치는 것과 동시에, 하인켈이 외쳤다.

두 사람은 동시에 날 바라보며, 각자 상반된 명령을 입에 담았다.

“클라인을 막아! 저 검을 빼앗아 부숴버려-!”

“클라인을 지켜라! 저 검이 승리의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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