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70화 (70/209)

070. 라인란트(3)

“언제부터 준비했던 거에요?”

라인란트의 지원병력.

그것도 현 상황에서 가장 부족했던 기사단 전력이 갖춰지자, 공격준비는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계획은 새벽을 틈탄 야습.

라이아의 군대가 시선을 끈 사이, 기사단이 침투해 헬리안을 암살하는 것이다.

“처음 편지가 왔을 때부터 언질은 해 두었습니다. 그 뒤에도 소식은 전했구요.”

“그럼, 헬리안이 저렇게 될 것이라는 것도 처음부터….”

“짐작은 했죠.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지만.”

출정은 오늘 밤.

창밖으로 노을 지는 해를 바라보던 날 향해, 라이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섭지 않아요?”

그 말에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라이아가 있었다.

“무섭다니, 뭐가요?”

“혼자서 이렇게 전부 계획하고 움직이는 거.”

그렇게 말하는 라이아의 어깨가 조금 움츠러들었다.

“당신의 판단으로 이 많은 사람들이 움직인 거잖아요. 난….”

“판단은 아버지가 하셨죠. 전 제안했을 뿐이고.”

최종 결정권자는 하인켈인데 말이지.

난 그냥 척후였고.

“그건…!”

예상외의 뚱한 대답이 나오자, 순간 라이아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칭찬은 고맙습니다만.”

그대로 둬도 재밌을 것 같았지만, 질문에 답을 하지 않을 순 없으니 대충 웃어넘겼다.

“이 심각한 상황에 웃음이 나와요?”

“웃을 일 있을 때 웃어둬야죠. 안그래도 불안해 죽겠는데.”

그렇게 말한 난 성벽 아래에서 무기를 점검하고, 담소를 나누는 기사들을 보았다.

“지금도 ‘잘못되면 어쩌나….’ 하면서 머리 싸매고 있는 중이거든요.”

“…뭐야, 온갖 폼은 다 잡더니.”

그렇게 툴툴거린 라이아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쪽도 사람이긴 했군요.”

“기생오라비 치고는 꽤 쓸만하지 않나요?”

“풉, 푸하하하?!”

그렇게 말하자 라이아가 웃음을 터트렸다.

“뭐야, 그때 그 말한 거 아직도 담아두고 있었어요?”

“웃는 거 가지고 툴툴대더니, 이젠 자기가 웃고 있네.”

입을 비쭉 내밀며 그렇게 말하자 라이아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싸울 때는 무슨 양철 인간인 줄 알았어요. 눈 하나 깜짝 안 하니까.”

그렇게 말하는 라이아의 얼굴을 보며, 난 내심 안심했다.

‘긴장은 어느 정도 풀렸나 보네.’

남을 이끈다는 것은 상상 이상의 부담을 안겨준다.

자신을 이끄는 자들의 인생, 생명, 그 외의 모든 것들을 책임지게 되니까.

‘속은 마흔이 넘은 나와는 달리, 아직 어린 라이아 입장에서는 더 부담이 크겠지.’

내 손짓 한 번에 누군가는 죽고, 내 말 한마디에 누군가는 산다.

누군가는 이 무게에 짓눌려 길을 잃는다.

누군가는 이 사실을 외면하여, 탐욕만을 쫓는 괴물로 전락한다.

전생의 내가 그랬고, 지금의 헬리안이 그렇다.

그렇지만 그것을 모두 이겨낸 자라면, 그는 진정 위대한 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본 베르켈이 그러했듯, 영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길 수 있으니까 걱정 마요.”

아직 웃음을 그치지 못한 라이아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잊었던 불안함이 돌아온 듯, 라이아가 내게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단언할 수 있어요?”

그녀의 눈에 담긴 총기, 그리고 의지.

이전에 델라인에게서 보았던 것과 같은 빛이었다.

“정의는 반드시 승리하니까.”

“……?”

내가 그렇게 말하자 라이아는 더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기, 그…. 농담한 거예요?”

떨떠름한 표정으로 라이아가 내게 물었다.

헬리안에게 내가 해 온 일을 생각하면, 당연한 반응이다.

결투를 빌미 삼아 부하를 광인으로 만들고, 아들을 암살하고, 그녀의 기사를 죽이고.

결과를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던 인간이, 갑자기 정의 운운하고 있으니.

“아뇨. 농담 아닙니다.”

그렇지만,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더 잘 알고 있다.

베르켈 같은 영웅의 광채에 최후를 맞은 악당이었기에, 난 이들의 운명을 확신할 수 있다.

반드시, 그들은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

“라인란트 기사단이 라이아 공녀에게 합류했다고?!”

아연실색한 펜스타 백작의 외침에 헬리안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라인란트 방계는 뭘 하고 있었던 거야?! 왜 그걸 막지 못하고…!”

그렇게 노발대발하는 펜스타 백작을 향해 고개를 조아린 행정관이 말했다.

“프, 프리실라 공후께서 각 가문에 감사관들을 파견했습니다.”

“감사관?!”

“예, 예…….”

그렇게 되묻자, 행정관은 다리를 벌벌 떨며 말을 이어갔다.

“각 가문과 제국 정계 사이의 불온한 연결이 있다면서, 막무가내로 들이닥쳤습니다. 그래서….”

“그깟 일 때문에, 하인켈이 이곳으로 넘어오는 걸 구경만 하고 있었다고!”

행정관을 향해 언성을 높이는 것은 헬리안이었다.

“프리실라, 이 개 같은 년이…!”

주먹 쥔 그녀의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프리실라 엘크라이어.

제국의 다섯 재상 중 하나인 그녀가 동시에 자신을 압박한 것이다.

‘감사관 파견은 단순한 시간 벌이. 그 사이에 하인켈이 날 치도록 수작을 부린 거다…!’

지금까지의 라인란트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기민한 움직임.

말인즉, 하인켈은 이미 자신을 죽이고자 결심한 것이었다.

“어찌할 생각이오. 헬리안 공후! 라인란트가 적으로 돌아선 걸 알면, 병사들의 사기가…!”

“병력 수, 기사단. 전부 우리 쪽이 우월합니다!”

펜스타 백작의 말을 일축한 헬리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작 검사 몇 명이 가담했다고 이따위 호들갑이라니.’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직까지도 지지부진한 영지민 징집.

미적거리는 제국군.

그리고 라인란트라는 이름 하나에 저렇게 과민반응하는 저 겁쟁이들까지!

“그래, 차라리 잘 되었지.”

자신의 발아래에 놓인 군세를 떠올린 헬리안이 비릿한 웃음을 머금었다.

“이번 기회에 하인켈…. 그 자식을 죽여버린다면, 라인란트를 차지하는 것도 시간문제일 테니.”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순간이었다.

“고, 공후 마마!”

성벽 방비를 맡은 지휘관 한 명이 달려와 그녀의 앞에 엎드렸다.

“라이아 공녀파의 군대를 확인! 현재 동문 전방에서 진형을 짜고 있습니다!”

“?!”

전령의 보고에 헬리안의 눈이 커졌다.

‘이렇게 빨리?’

수십 년간 라인란트를 압박해오던 헬리안으로서는 적잖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인켈의 합류 소식과 거의 동시에 이어진 침공.

이전 적어도, 그녀가 알고 있는 하인켈의 지휘가 아니었다.

‘라이아 그년도 아니야. 그렇다면 이 움직임은…!’

대처할 시간조차 주지 않는 빠른 움직임에 과감한 결단.

그리고 그 속에 숨어있는 비수와 같은 한 수까지.

이런 술수를 쓰는 라인란트는, 그녀가 알기로는 한 사람밖에 없었다.

“클라인 라인란트…!”

뿌득!

이를 가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자, 펜스타 백작이 눈을 부릅떴다.

“이게 전부, 그 열다섯밖에 안된 놈의 계획이라고?!”

“그 열다섯 애송이의 계략에 놀아났기에, 일이 이 지경까지 번지지 않았습니까.”

“큭…!”

정곡을 찔린 펜스타가 뭐라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쿠콰아아앙-!

폭음과 함께, 자신의 저택 한 부분이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뭐야!?”

“지진? 아니면 마법사의 공격인가?!”

혼비백산한 병사들 사이에서, 경악에 찬 병사의 보고가 헬리안의 귀를 울렸다.

“내, 내성에 침입자입니다! 라인란트의 깃발을 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고, 공후 마마!”

성벽에서 올라온 다른 전령이 헬리안을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

“라이아 공녀군이 전진 개시! 성벽을 향해 돌진하고 있습니다!”

***

“이런 식으로 폴와이번을 방문하게 될 줄은 몰랐군.”

“그러게 말이에요.”

라이아가 제공한 비밀통로.

이미 헬리안의 기사들에 의해 폐쇄된 진입로였지만, 아쉽게도 이쪽엔 하인켈이 있었다.

쿠르르르르…!

돌벽 한 부분이 통째로 무너지고, 그곳을 향해 라인란트의 기사들이 일제히 돌입하기 시작했다.

“젠장, 이게 무슨! 크아악?!”

예상하지 못한 기습에 당황한 듯, 헬리안의 기사가 그 자리에 쓰러졌다.

주 지휘는 하인켈, 보조는 델라인이었다.

“젠장, 라인란트가 왜 여기 있는 거야?!”

“병진을 짜라! 기사들은 당장 놈들을…!”

마치 벌집을 쑤신 것처럼, 눈에 뵈는 모든 곳에서 병사와 기사들이 쏟아져나왔다.

“징집병들은?”

“여긴 없어. 헬리안의 힘을 받은 괴물들 뿐이야.”

내 옆에서 들려온 물음에 그렇게 답했다.

내 왼손에는 언제나 그렇듯, 밴시의 영혼 지도가 떠올라 있는 상태였다.

“그럼 앞뒤 볼 것 없겠지.”

그렇게 말한 델라인은, 검을 뽑아 병사들을 향해 올려 쳤다.

그리고….

쿠콰아아앙-!

마치 거인이 검을 휘두른 듯, 폭음과 함께 수십 명의 병사들이 뒤로 날아갔다.

‘언제 봐도 괴물 같은 마력량이야.’

대련이나 결투가 아닌, 전쟁에 임하는 델라인.

그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마력량은, 병진과 병법이 의미를 잃는다.

한 번 휘두르면 다 쓸려나가는데, 일반병이 저걸 무슨 수로 막겠는가?

쿠르르르…!

수십 명의 기사들을 날려버리고도 여력이 남았는지, 델라인의 검기는 곳곳의 성벽과 건물에도 상흔을 남겼다.

“붉은수레는 몰려드는 병사들을 막고, 검은방패가 길을 뚫는다.”

델라인의 검격이 만들어낸 경로를 향해 하인켈이 말했다.

“델라인.”

“알고 있어요.”

오랜만에 본 실력을 낸 탓인지, 손을 탁탁 턴 델라인이 기사들을 향해 말했다.

“가시망치는 나와 함께 간다. 공녀의 병사들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지!”

“예-!”

명령을 받은 수십 명의 기사들은 곧바로 델라인과 함께 성문을 향해 달렸다.

“클라인.”

하인켈이 날 보며 말하자, 난 곧바로 그를 향해 말했다.

“헬리안은 요새 중앙입니다. 펜스타 백작도 함께군요.”

“좋아. 넌 백작의 신병을 확보해라. 헬리안은 내가 맡지.”

하인켈이 그렇게 말할 때쯤.

“아니, 그렇게는 못 할 겁니다. 하인켈 공작 전하.”

뒤틀린 목소리와 함께, 한 무리의 기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푸른 장미…. 헬리안의 기사들이군.”

헬리안이 창설한 라인란트의 기사단, 푸른 장미 기사단이었다.

‘이젠 기사도 뭣도 아닌 괴물이 되었지만.’

검게 죽은 피부와 충혈된 눈.

그리고 스멀스멀 올라오는 기괴한 마력까지.

악귀와 같은 그들의 형상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비켜라. 너희들과 씨름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크하하하!”

딱딱한 하인켈의 목소리를 비웃은 그들이 일제히 검을 뽑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크어어어-!

괴성과 함께, 진짜 괴물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언데드….”

재료가 무엇인지는 짐작도 가지 않는, 무너진 살덩이들.

그렇지만 그것들이 내뿜고 있는 독은, 기사에게 있어서는 치명적일 터였다.

“언데드는 제가 처리하죠.”

그 말과 함께 하인켈의 후방에 선 난, 곧바로 소환문을 작동시켜 스켈레톤을 불러내려 했다.

“아니, 그럴 필요 없다.”

그렇지만, 하인켈은 손을 들어 나를 제지한 뒤 입을 열었다.

“헬리안이 괴물로 변모한 이상, 거기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건 너다.”

“…….”

“힘을 아껴둬라.”

그렇게 말한 하인켈은 천천히, 허리춤에 찬 검을 뽑았다.

“아무리 제국 최고의 기사라 한들!”

“이 괴물들의 수를 막을 수는 없을 터!”

그렇게 말하는 기사들의 검이 일제히 하인켈의 목을 노리고.

“전하께서 검을 뽑으셨다.”

“전원 회피! 충격에 대비하라!”

그 말과 함께 나와 기사들은 일제히 몸을 낮췄다.

스걱-!

마치 검에 묻은 먼지를 털 듯, 하인켈의 검이 횡으로 크게 움직였다.

그리고 그다음 순간 우리들이 본 것은.

“……어?”

“뭐, 뭐야…?”

“말도, 안돼……!”

하인켈을 향해 달려든 수십 명의 기사들이, 횡으로 양단된 채 바닥에 널브러지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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