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6. 성직자의 의(2)
쿠콰아아아앙-!
나와 팔리만 사이를 가르며, 거대판 폭발이 일어났다.
두꺼운 유리를 정으로 꿰듯 날카로운, 또 묵직한 일격.
신성력을 이런 식으로 다루는 자는, 내가 아는 이들 중에는 한 사람밖에 없지.
대행자, 개리슨 비어크만.
“언제부터 알았나.”
딱딱하게 굳은 개리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부터라고 할까? 비밀통로에서 처음 출발했을 때?”
“처음부터 알고 있었단 소리군.”
“적어도 방해는 안 될 거라 생각했으니까.”
처음부터 알아? 미친 소리 하고 있네.
지금 내가 하는 말은 허풍.
거짓말이었다.
‘밴시가 아니었으면 이런 거짓말을 생각할 시간도 없었겠지.’
하늘에 띄운 밴시가 그의 형상을 잡아내기 전까지, 난 그의 기척의 편린조차 알아채지 못했다.
지금의 내게 있어 가장 큰 위험요소를 눈치채지 못했다니.
‘닭살이 다 돋네, 진짜.’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느끼며 속으로 탄식했다.
내가 이 전투를 압도할 수 있는 이유는, 전투의 구도가 물량전이었기 때문이다.
내 힘은 군대를 상대하기에 최적이었으니까.
그렇지만 개리슨 같은 괴물이 튀어나온다면?
도망치는 것 말고는 방도가 없다.
내가 가지고 있는 언데드 중, 그를 막을 수 있는 개체는 없으니까.
‘레이븐을 보낸다 해도 시간 벌이가 한계일 테니. 진짜 죽을 뻔했군.’
내가 그렇게 생각하며 안도하고 있을 때였다.
“신의 뜻을 전하고, 병자와 약자를 인도하며, 온 세상에 광명을 전해야 할 성직자가.”
연기 속에서 개리슨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곰처럼 거대하고, 태산처럼 굳건한 몸.
“사람을, 그것도 아무런 죄 없는 자들을 납치한다.”
그림자에 가려진 개리슨의 얼굴이 흉흉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그들의 피를 가공해, 힘을 증폭시키는 이따위 장난감을 만들어 냈다.”
땅에 떨어진 유리병 중 하나를 집어 들며 개리슨이 그렇게 말했다.
콰직-!
강화처리가 된 유리병의 강도는 강철 이상.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짓이긴 그의 손에서, 붉은 액체가 뚝뚝 흘러내렷다.
“직접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어찌 이따위 허튼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겠는가.”
팔리만의 신성력을 자신의 것으로 상쇄한 개리슨.
그의 힘을 가늠하며 그렇게 생각하던 중이었다.
“몇 달 만인지 모르겠군, 친구.”
좌중을 지배하는 무거운 공기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팔리만이 웃는 낯으로 말했다.
마치 나들이라도 나온 듯 편안한 목소리였다.
‘친구?’
그가 개리슨을 부르는 말에 얼굴을 찡그린 찰나.
“닥쳐라, 팔리만 엘.”
한순간에 그의 눈앞까지 도달한 개리슨이, 그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투화악!
그의 주먹에서 뿜어진 충격파에 얼굴을 가린 그 순간.
쿠콰아아앙-!
그가 처음 나타났을 때와 비슷한 폭음이 들려왔다.
“저 미친 새끼…!”
한 치 망설임도 없이 내지른 권.
소리보다도 먼저 충격파가 당도할 정도면, 그 위력이 어느 정도일지는 짐작도 되지 않았다.
영락없는 살수(殺手).
교단의 대행자가, 교단의 추기경을 죽이려 든 것이다.
“진정하게 개리슨. 친구끼리 이게 무슨 일인가?”
그렇지만 그 강권에도 불구하고, 뒤이어 들려오는 팔리만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치직! 파직!
개리슨의 주먹이 닿은 것은 팔리만의 품에서 나타난 책.
공중에 떠오른 그것은 사용자인 팔리만을 수호하듯, 공중에 부유한 채 개리슨의 앞을 막아섰다.
“성법기, 성서 타나크(Tanakh).”
그 책의 이름을 알아본 개리슨이 으르렁거렸다.
‘성법기? 저게?’
그 옛날, 역사에도 기록되지 않은 고대.
대륙을 유린하던 세 괴수 중 하나인 ‘레비아탄’을 타도한 성자, 가울.
저 경전, 타나크는 그가 남긴 세 개의 성법기 중 하나라고 한다.
‘개리슨이 들고 온 무기도 그렇지만, 저건….’
방금 전까지 나와 이 공간 전체를 짓누른 신성력.
그 거대한 힘의 근원은 팔리만 본인이 아닌, 저 책이었다.
“대행자가 관리해야 할 성법기를, 왜 추기경인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이지?”
“걱정 말게. 자네처럼 멋대로 꺼내온 건 아니니까.”
팔리만은 그렇게 말하며 개리슨의 살기를 익숙한 듯 받아냈다.
“성하께서 이 일을 허가하셨다는 말인가?”
“허가하셨다 뿐이겠나?”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 팔리만이 개리슨의 어깨를 짚었다.
“이 일은 교황 성하께서 직접 추진하시는 일이거든.”
쾅-!
개리슨의 주먹이 신성력으로 이뤄진 벽을 후려쳤다.
“이렇게 포악해서야, 짐승이 따로 없군그래?”
“팔리만, 네놈이……!”
팔리만은 여전히 개리슨의 어깨에 손을 올린 상황.
그렇지만 개리슨의 주먹은 팔리만에게 닿지 못한 채, 허공에 멈춰있었다.
‘단순한 장벽이 아니야. 저건 대체….’
원리를 알 수 없는 힘의 작용.
저것이 신성력이 맞기는 한 건지 의문일 정도였다.
“난 그대에게 이리 쉽게 접근할 수 있지만, 그대는 날 건드릴 수 없지.”
성법기의 방벽 뒤에서 말하는 그의 모습에 개리슨이 한번 더 그를 후려쳤다.
치직!
태양 십자의 상징에서 보듯, 신성력의 성질은 열과 빛.
고온으로 달아오른 방벽에 주먹이 닿자 살이 타는 냄새가 풍겼다.
“이것이 교단의 행사라고?!”
묻는 것이 아니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분노, 혹은 탄식.
“왜, 자네도 짐작했기에 이곳에 있는 것 아니었나?”
그런 그의 모습이 즐거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팔리만은 개리슨을 향해 그리 말했다.
‘저 신부가 날 따라온 이유가 이거였군.’
헬리안이 괴물이 되었으니 죽인다.
참으로 그다운 이유였지만, 그 이면에 숨은 진짜 이유는 이것일 터였다.
헬리안을 괴물로 만든 제국의 공작에, 교단이 관계되었다는 증거.
“때마침 잘 되었군, 개리슨 신부.”
개리슨의 어깨를 잡고 있던 손을 치우며, 팔리만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키몬드의 환생이라는 혐의를 진 클라인 공자가, 사령술을 사용한 것이 확인되었네.”
“……!”
팔리만의 그 말에 개리슨의 눈이 커졌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난 네놈을…!”
“교국 중앙교구, 11번길 A72.”
팔리만의 입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가 말한 것은 주소.
‘매년 선물을 보내던 주소를 여기서 듣게 될 줄이야….’
익숙한 그 주소를 떠올린 내 표정이 단박에 구겨졌다.
‘치졸한 수를 쓰다니.’
그곳은 개리슨 비어크만의 본가.
그가 거둬들인 아이들을 키우는 고아원의 주소였다.
“여기서 날 죽이려 든다면, 이단심문관이 그곳에 찾아갈걸세.”
그렇지만 내가 아는 개리슨이라면, 협박은 좋은 수가 아니다.
짜놓은 판에서 놀아나느니, 판 자체를 뒤엎는 것이 그의 방식.
‘이렇게 협박한다면 오히려….’
“이렇게 협박한다면 오히려 분노만 더 커질 거다.”
“?!”
머릿속이 순간 멍해졌다.
방금 전까지 내가 생각하던 내용을 입 밖에 낸 목소리.
팔리만의 목소리였다.
“그렇게 생각하시죠? 클라인 공자.”
날 향해 그렇게 망하는 팔리만의 얼굴을 보며, 불길한 확신이 엄습했다.
“근데 아쉽게도, 어린아이들이 관여되면 다릅니다.”
교단의 대행자.
보이는 모든 이단을 짓이기는 신의 철퇴.
저 팔리만이라는 남자는 그런 개리슨을, 친구라고 불렀지.
“이 친구는 절대로, 자신이 거둔 아이들을 버리지 않습니다.”
친구라고 불렀다.
다른 이들도 아니고, 천하의 개리슨 비어크만을.
“네, 놈이…!”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 개리슨의 몸이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그런 개리슨의 반응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팔리만은 계속해서 말했다.
“그래서 공자님이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의 말을 들으며, 나를 등진 개리슨의 등을 보았다.
“…….”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분노한 얼굴.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먹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봐요. 그렇죠?”
“…그래, 그러네.”
보란 듯 그렇게 말하는 팔리만의 얼굴을 보며, 내 입가가 비틀렸다.
‘참 오랜만에… 악당다운 악당을 만나보는군.’
저 상판을 보며 직감했다.
폴와이번을 둘러싼 이 난리통은 헬리안의 작품이 아니라고.
‘가설을 세웠다면 남은 것은 단 하나지.’
실험하고, 증명하는 것.
“뭐 하고 있나 개리슨? 어서 클라인 공자를….”
“죽인다고? 못할 텐데.”
생각을 마친 난 팔리만의 말을 끊고 앞으로 나섰다.
“뭐라고요?”
“여기서 죽이기엔 많이 아깝잖아. 안 그래?”
들고 있던 검을 집어넣은 뒤, 난 그를 보며 내 이마를 툭툭 두드렸다.
“이 안에 들어있는 게 뭔지, 궁금하지 않아?”
내 말에 개리슨에게 명령하던 팔리만이 멈칫했다.
“전 그저 성하의 뜻을 전할 뿐,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아닐 텐데.”
갑작스러운 내 태도 변화에, 내내 여유롭던 팔리만의 분위기에 균열이 일었다.
한 줄기 혼란.
이 상황의 주도권을 가져오기엔 충분한 흔들림이다.
“교황의 명령은 사실무근. 이 거래는 전부 네가 꾸민 짓이잖아.”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전하듯, 담담하게 말했다.
헬리안과 제국의 공조, 교단과의 거래.
그 중심축에 있는 인물은 헬리안 본인이 아닌, 이 자라고.
‘근거는 없지만, 적어도 틀린 적은 없지.’
내가 팔리만에 대해 아는 것 단편적인 정보뿐.
그렇지만 난, 마치 그의 모든 것을 안다는 듯 허세를 부렸다.
아키몬드로서 살아온 세월이 선사한 연륜이기도 했고.
산전수전 다 겪은 악당으로서의 동변상련이기도 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잠시 말이 없던 팔리만이 어깨를 늘어트리며 말했다.
“모든 건 성하와 헬리안 공후 마마께서 안배하신 일입니다. 전 단지….”
“한낱 도구에게 마마니 뭐니 존칭 쓰는 것도 슬슬 짜증이 나고 말이야.”
도구.
헬리안을 칭하는 그 말에, 뭔가 더 반박하려던 팔리만의 목소리가 멎었다.
“왜, 아니야?”
시커먼 그의 눈을 마주한 채 물었다.
가면 속에 본색을 묻어둔 채, 인간의 가장 약한 부분을 파고드는 음모에 가득 찬 눈.
“…당신, 뭡니까?”
이윽고 그의 만면에 가득했던 비웃음이 사라지고, 경계에 가득 찬 목소리가 날 향했다.
“아키몬드.”
“……!”
날 보던 팔리만과 개리슨의 눈이 동시에 커졌다.
개리슨의 경우에는 경악.
팔리만의 경우에는….
“큭…. 큭큭큭…!”
뜻밖의 수확을 얻은 양,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었다.
“자, 그럼 이제 쓸데없는 미사여구는 집어치우고.”
팔리만의 흥미가 동한 것을 확인한 난, 그에게 말하는 동시에 검집으로 땅을 두드렸다.
툭. 툭. 툭.
일정한 간격으로 세 번.
신호의 뜻은, ‘아래.’
“…!”
내 행동을 눈치챈 개리슨이 곧바로 자신의 발 밑을 보았다.
‘기습한다. 주의를 끌 테니, 준비해.’
마기로 쓰여진 검은 글씨가 한순간 나타났다 사라졌다.
“쯧.”
내 말뜻을 알아챘다는 것 자체가 불쾌한 듯, 짧게 혀를 찬 개리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새끼, 역시 아직 기억하고 있었구만.’
내가 그에게 보낸 신호는 7년 전, 교화소에 있을 때 사용하던 것이었다.
잊을 수가 없는 그 시간.
그것을 떠올리며, 난 악당과 같은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나와 거래 하나만 하지. 팔리만 추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