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5. 성직자의 의(1)
“전투준비-! 전투준비이이-!”
고래고래 악을 쓰는 신부의 목소리에 이단심문관들이 앞으로 나섰다.
“젠장! 이대로는…!”
네크로맨서 역시 부랴부랴 자신의 좀비들을 끌어모아 군집을 이루었다.
“제 아무리 고강하다 한들, 우린 신성력을 사용하는 신의 사도다! 감히…!”
겁에 질린 채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를 더 들어줄 수 없었다.
“쏴버려.”
후열에 위치한 석궁병들이 목사를 향해 쿼렐을 날렸다.
카캉-!
하늘을 수놓은 쿼렐들이 심문관들의 병장기에 부딪혀 튕겨 나가고, 그중 몇 발은 그들의 몸에 박혀 상흔을 남겼다.
‘누가 언데드인지 모르겠군.’
팔이 떨어져 나갔는데도 상처 부위를 툭툭 털며 내게로 다가오는 이단심문관들.
머리털과 눈썹을 모두 민 기괴한 얼굴.
이마 한가운데 박아넣은 태양 삽자 문양까지.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고있자니, 구역질이 절로 나왔다.
‘재수없는 새끼들이었어도, 200년 전에는 이렇게까지 미치지는 않았는데.’
망자를 다루는 사령술은 혐오스럽다.
그러니 산 자의 인격을 말소하여, 교단을 위한 전투기계로 만들겠다.
도대체 어떤 머저리가 이런 논리를 꺼낸 것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피해 보고.”
“2명 손상, 전투는 가능하다.”
“전열은 제국의 언데드가 맡는다. 데스나이트를 묶어라.”
서로 그렇게 이야기를 주고받은 이단심문관들이 좀비들과 함께 달려들었다.
“돌격.”
나 또한 이에 질세라 내 언데드들에게 명령했다.
밀집대형을 이룬 중장갑 스켈레톤들이 그들의 돌진을 받아냈다.
쿠웅-!
썩은 살점과 영체가 부딪히는 기괴한 장면.
크워어어억-!
독과 오물을 흩뿌리며 달려든 좀비가 스켈레톤의 어깨를 사정없이 물어뜯었다.
철퍽! 철퍽!
스켈레톤의 투구, 갑옷에 흩뿌려지는 좀비의 썩은 피.
치이익-!
개중 땅에 떨어진 몇 방울은 연기와 함께 바닥의 풀을 검게 물들어갔다.
‘제국의 네크로맨서… 반혼술이 전쟁에 유용한 이유가 이거지.’
전장에서 병사들을 위협하는 것은 단순히 적의 창칼만이 아니다.
수로를 파지 않으면 고인 물에서 해충이 들끓고.
위생관이 없는 주둔지에는 돌림병이 창궐한다.
보급부대에 보존마법을 걸지 않는다면 식량이 썩는 일도 부지기수.
이런 수많은 요소들 덕에, 전쟁에서 네크로맨서가 가지는 의미는 각별하다.
병균으로 가득 찬 좀비를 적군의 수원지에 몰래 빠트린다면?
시체 속에 모기들을 한가득 번식시켜, 투석기에 장전해 적진에 떨어트린다면?
적의 보급고에 좀비를 넣어, 기생충과 극독을 품게 한다면?
‘네크로맨서의 진가는 단순히 언데드를 만드는 게 아니야.’
언데드에 더불어, 그것을 활용해 만들어낼 수 있는 온갖 변수들.
시체를 다루는 네크로맨서 단 한명이, 이 모든 것을 인위적으로 일으킬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네크로맨서들의 효용가치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 키이익!
그렇지만, 그런 좀비들을 보는 내게 동요하는 마음은 없었다.
“차라리 같은 수의 기사단이었다면 편했을텐데. 그렇지?”
진땀을 뻘뻘 흘리는 제국의 네크로맨서를 비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제기랄, 제기랄…!”
독니를 박아넣고, 산성액을 흩뿌려도 꿈쩍 않는 언데드들.
그것을 본 제국의 네크로맨서가 이를 악물었다.
저것은 살아있는 몸이 아닌 영체.
마력으로 이루어진 몸은 시체의 이빨로 인한 부식도, 피를 곪게 하는 독도 통하지 않는다.
“네크로맨서를 상대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같은 네크로맨서를 활용하는거지.”
손을 들어, 밀집대형을 이룬 보병들에게 명령했다.
“산개 후 포위진. 적 세력을 묶는다. 궁병은 순차 사격 개시.”
후두두두둑-!
거리를 벌리려 하면 석궁이 날아든다.
근거리에서 싸운다 한들, 내 언데드는 중독도, 부식도 걸리지 않는 몸.
가진 무기가 무력화된 상황이라면, 온몸에 중장갑을 두른 내 스켈레톤이 확연한 우위를 가질 터.
쿠콰아앙-!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포위망 한쪽이 폭발하며 스켈레톤들이 위로 솟아올랐다.
“호오, 그새 전술을 바꿨나 보지?”
잔뜩 부풀어 오른 좀비가 그 자리에서 폭발.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심문관이 스켈레톤들을 쳐내기 시작했다.
“분석 완료.”
“돌파한다. 공자를 잡아라.”
몸 곳곳에 박힌 쿼렐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심문관들이 날 향해 달려들었다.
‘전열의 좀비들에 정신이 팔린 사이 날 잡아낼 셈이군.’
체계적으로 움직이는 좀비들과, 거기에 보조를 맞추는 심문관들.
진형조차 갖추지 않은 채 달려들던 교단 놈들에 비하면, 훨씬 짜임새 있는 전투였다.
‘그렇지만 한참 멀었어.’
포위망을 돌파한 심문관들이 날 향해 달려들던 그 순간.
“레이븐.”
내가 이름을 부르는 것과 동시에, 푸른 마력광이 그들의 눈을 가렸다.
키이이이잉-!
횡으로 내지른 압도적인 강격(强擊).
신성력으로 몸을 두른 심문관들의 몸이 뭔가에 후려 맞은 듯 튕겨 날아갔다.
“……!”
“너희들이 뚫고 올 걸 예상 못 할 줄 알았어?”
네크로맨서의 최대의 약점은 술자 자신.
언제나 등 뒤를 조심해야 한다.
- 목표는?
“포위망 뚫고 나온 심문관들을 처리해. 나머진 내가 한다.”
- 확인했다.
무뚝뚝한 걸 보면 저 심문관들이나 이 목석같은 기사놈이나 진배없구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전장을 바라보는 내 시선은 다른 곳에 있었다.
‘내 저럴 줄 알았지.’
전투가 한창인 사이, 손에 든 가죽 상자를 든 채 슬금슬금 뒤로 빠지는 신부.
아군들이 전투에 한창인 사이, 가장 위험한 물건을 가지고 성으로 돌아갈 심산인 듯 했다.
“젠장,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잔뜩 겁에 질린 채 허겁지겁 달려가는 신부.
그렇지만 그의 발걸음은 그리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콰작-!
전장에서 날아온 검은 투창이, 허겁지겁 뛰어가던 그의 등을 박살냈기 때문이다.
“꺼어어어…!”
갈비뼈가 통째로 으스러지는 고통에 말조차 제대로 잇지 못하는 신부.
들고 있던 상자가 엎어져, 그 안에 들어있던 유리병이 와르르 쏟아졌다.
“아, 아아아…!”
“어딜 쥐새끼처럼 도망치려고.”
균형을 잃고 쓰러진 채 비척거리는 신부.
마지막 발악인지, 땅을 기어가던 그의 손이 떨어진 유리병 중 하나를 향했다.
스걱!
그렇지만 내가 그것을 두고 볼 리 없지.
땅을 향한 내 검이 그의 손목을 잘라냈다.
“크아아악?!”
“섣불리 마실 생각 마. 나중에 후회한다.”
그렇게 말한 난 고개를 돌려 소리가 잦아드는 전장을 보았다.
“비상, 비상이다. 아키몬드의 씨앗이 다시…!”
콰직!
레이븐의 검이 비척거리던 심문관의 머리를 꿰뚫는 것을 끝으로 상황은 종료되었다.
“후우!”
훅요석 반지에 담긴 마기를 흡수한 뒤, 처음으로 치르는 전투.
“아이, 씨….”
이상한 느낌에 곧바로 얼굴을 감싸자, 약간의 피가 새어나왔다.
“나올거면 좀 딴데서 나오지, 왜 모양빠지게 코피가 나오고 지랄이야….”
손수건을 찾고자 품 안을 주섬거리며 중얼거렸다.
마기의 양은 충분하나, 열 다섯의 어린 에게는 버거운 듯 하다.
이래저래 번거롭기 그지없었다.
‘소실된 언데드가 일흔, 데스나이트가 둘… 급조한 것 치곤 괜찮군.’
언데드와는 상극인 신성력을 사용하는 이단심문관.
그들과 정면대결을 펼친 걸 감안하자면 훌륭한 성과다.
활성화된 술식들을 확인하면서, 난 땅에 떨어진 유리병 중 하나를 집어들었다.
“씨발, 그 사이 순도가 더 올라갔어.”
마치 루비를 녹여 만든 듯 붉고 투명한 액체.
이들이 이 물건을 ‘성혈’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게다가 이 용기….”
고급 예술품을 보는 듯, 고풍스럽게 만들어진 유리병.
그것을 본 난 여기에 들어간 기술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었다.
“마력수정을 깎아 만든 병에, 온도와 습도를 고정하는 보존술식….”
이 정도의 술식을 주입하고도 부서지지 않는 정밀도.
그리고 곳곳에 이뤄진 마감처리까지.
다른 물건도 아닌 수정을, 이렇게 정밀하게 다루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대표적으로는…. 그래.
“수정에 신성력을 담아, 스테인드 글라스를 만드는 신성교단 정도지.”
그렇게 말하는 내 시선이 수풀 속을 향했다.
“안그런가? 교단의 미행자.”
이미 하늘 위에는 밴시의 눈이 올라가 있는 상황.
내가 그렇게 말하자, 어두운 수풀 속에서 낮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놀라운 기술이죠. 그렇지 않나요?”
방금 만난 신부와 같은 검은 법복.
그렇지만 난 심문관과 네크로맨서 보다도, 이쪽을 더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어깨에 두르고 있는 붉은 띠와 머리에 쓴 갈레로(Galero).
금실로 수놓아진 그것들이 뜻하는 저자의 직위는….
“교단의 추기경께서, 이런 위험한 곳을 함부로 돌아다니시나?”
그의 복장을 알아본 내가 그렇게 말하자, 인자한 웃음을 지은 남자가 쓰고 있던 붉은 모자를 벗었다.
어깨까지 늘어진 검은 머리칼에, 조각으로 깎은 듯 수려한 외모.
만면에 뜬 사람 좋은 미소는, 도저히 그를 악인이라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지원군? 아니, 다른 동행은 없다. 그렇지만….’
방금 전 목사나 심문관들과는 달리, 교단의 추기경을 손댈 수는 없다.
내가 죽인 것은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인원인 심문관과, 인신매매를 자행하던 목사.
교단에서 문제를 제기한다면, 역으로 의혹을 제기하면 될 일이니까.
‘그렇지만 추기경까지 가면 말이 다르지.’
신성교단의 중추를 담당하는 120인의 성직자.
차기 교황의 선출권을 가진 이들을 이유 없이 죽인다면, 일이 더욱 복잡해진다.
“소문이 무성한 라인란트의 공자를 만나 반갑습니다.”
그렇게 말한 남자는 나를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주 케르시아스의 신실한 종, 팔리만 엘이라고 합니다.”
팔리만 엘.
그렇게 자신의이름을 밝힌 남자는 쓰러진 신부를 보며 말을 이었다.
“교단 내부에서 불온한 움직임이 있다 하여, 조사차 나왔습니다.”
“불온?”
그렇게 되묻자 고개를 끄덕인 팔리만이 말했다.
“교단이 허가하지 않은 실험을 자행하여, 위험한 물건을 만든 일파가 있….”
“지랄하지 마.”
콰직-!
목사의 머리를 검으로 찍으며 이를 갈았다.
“이 상자에 담긴 것만 서른 병. 적어도 백 이십 명은 있어야 만들 수 있는 양이다.”
이 성혈은 과거, 내 광기가 만들어낸 산물.
복수심에 미쳐 대륙을 휩쓸고자 했던, 내 망집의 결정체.
그 제조법, 원리, 사용법.
전부 내 머릿속에 들어있었다.
“이정도 양을 은밀히 만들어내기 위해선, 대규모 정제시설과 술식. 그리고 최소한 공국 수준의 은폐공작이 필요하지.”
그렇게 내뱉은 난, 팔리만 추기경을 향해 씹어뱉듯이 말했다.
“제국과 교단이 합심하여, 살아있는 사람으로 성혈을 만들었다.”
그 말에, 날 보던 팔리만의 웃음이 점점 더 짙어졌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꽤 곤란한데요.”
그렇게 말한 팔리만의 옷소매 속에서, 책 한 권이 모습을 드러냈다.
쿠궁-!
그리고 그 순간, 가공할 만한 신성력이 좌중을 무겁게 짓눌렀다.
“이렇게 되면, 모처럼 만난 공자님을 죽여야 하지 않습니까?”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
웃는 얼굴로 벌레를 찢어 죽이는 그 잔인한 순수.
그것을 한가득 담은 팔리만의 얼굴을 보며, 난 참았던 한 마디를 내뱉었다.
“상황이 이 지경까지 왔는데, 슬슬 튀어나오지 그래? 망할 신부 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