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64화 (64/209)

064. 여기서 장사하시면 안 돼요

덜그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호송 마차가 대로를 걸어갔다.

차가운 철벽 안에 갇혀있는 것은 사람들.

폴와이번 성에 거주하고 있던 일반 영지민들이었다.

“크르르르….”

“히익?!”

철창 밖에서 들리는 낮은 울음소리에 몇몇 여인들이 흠칫 몸을 떨었다.

천천히 이동하고 있는 마차를 호위하고 있는 것은 언데드.

자신들이 갇혀있는 이 철창이 아니라면, 이들은 저 시체들의 밥이 될 터였다.

“엄마….”

“괜찮아. 조금 있으면 공녀님이 구하러 오실 거야. 그러니까….”

잔뜩 겁에 질린 딸에게 그렇게 말했지만, 함께 갇힌 이들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

“….”

드세기로 유명한 바닷사람들이 이렇게 침울해진 것은 다름이 아니었다.

이미 헬리안과 제국 기사들이 시민들을 잡아넣은 지 일주일.

그동안 그들이 영지에서 본 것은, 지옥과도 같은 광경이었으니까.

제국의 언데드가 용기사의 성전인 폴와이번의 성전을 활보한다.

공작가는 낯선 이의 손에 넘어가고, 기사들은 지켜야 할 시민들에게 검을 겨누니.

그 모든 일들을 겪은 이들의 눈에, 더 이상의 희망은 없었다.

한 줌 저항의 의지마저 군홧발에 짓밟혀, 모두가 텅 빈 눈을 한 채 체념했을 뿐이었다.

“도착했다.”

성벽 밖으로 나선 지 얼마나 되었을까.

로브 속에 얼굴을 감춘 네크로맨서가 그렇게 말하자, 다섯 대의 마차 행렬이 멈췄다.

저벅. 저벅.

낮은 발소리와 함께 네크로맨서들의 앞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법복 차림의 신부들.

그리고 메이스와 플레일로 무장한 채 그들을 호위하는, 이단심문관들이었다.

“물건은?”

물건.

법복 차림의 신부는 철창 안에 갇힌 사람들을 향해 그렇게 말하면서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마흔다섯. 마차 하나당 열다섯이다.”

“수는 전보다 늘었군. 요구사항은?”

그렇게 말하는 신부를 보며 잠시 가만히 있던 네크로맨서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요구한 대로, 같은 혈족으로 세 명씩 묶었다.”

부모, 형제, 아니면 친척.

얼굴이 닮았으면 좋고, 형제라면 가장 좋았다.

자신이 직접 선별하였음에도, 기괴한 요구사항이 아닐 수 없었다.

“훌륭해.”

철창 사이로 그들의 면면을 확인한 심문관이 보고하자, 신부는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헬리안 공후… 생각보다 더 똘똘하군.”

제국 3대 공작령을 호령하는 헬리안.

그렇지만 그런 그를 거론하면서도, 신부의 태도에는 일말의 존경심조차 없었다.

“덕분에 우린 일이 줄었으니 말이야.”

그 말과 함께, 신부는 자신을 호위하는 심문관들에게 손짓했다.

“물건을 가져와라.”

그 말과 함께, 심문관 중 한 명이 수레를 끌고 왔다.

가죽과 비단으로 만들어진 고풍스러운 상자.

그것을 열자 그곳에는, 붉은빛을 띠는 유리병이 가득 들어있었다.

“허….”

사용자에게 있어선 같은 무게의 금보다도 높은 가치를 지니는 액체.

그것이 수레 하나에 가득 찰 정도니, 어느 정도의 재원이 들어갔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아, 그리고 이것.”

마차와 유리병이 교환되는 사이.

신부는 뭔가 떠올랐다는 듯, 마차를 호위하던 네크로맨서에게 뭔가를 건넸다.

“뭐지?”

“성하께서 보내는 선물이다. 공후께 전하라더군.”

기다란 꾸러미.

그것을 받아든 네크로맨서가 표정을 거뒀다.

“검? 헬리안 공후가 이걸 쓸 일이 있나?”

네크로맨서의 질문에 신부 또한 고개를 저었다.

“성하의 뜻을 헤아릴 수는 없지. 다만….”

그렇게 말을 흐린 신부는 약간의 조소를 담은 채 말을 이어갔다.

“같은 라인란트 아니겠나? 위대하신 베르켈의 피를 받은.”

“하, 그 잘나신 영웅 말이지.”

신부의 그 말에 코웃음 친 네크로맨서가 검을 챙기는 그 순간.

- 이 새끼들이 듣자 듣자 하니까.

허공에서 들려온 낯선 목소리에 신부와 네크로맨서, 그리고 모든 심문관들이 일제히 주변을 경계했다.

“뭣?!”

“웬 놈이냐?!”

거래 현장이 발각되었다는 사실에 분개한 신부와는 달리, 네크로맨서는 그 목소리에 관심을 가졌다.

- 사령술은 이단이라며 온갖 지랄 발광을 해대던 것들이, 뒤에서는 네크로맨서와 거래 중이신가?

계속해서 들려오는 목소리.

그곳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기운에 네크로맨서의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그냥 목소리나 증폭 마법이 아니다. 이건….’

이 목소리에 담긴 힘은 마기.

황제에게 선택받은 자신들이 아니면 다룰 수 없는, 비밀스러운 힘이었다.

‘아니, 다르다. 이건 오히려, 우리들이 사용하는 것보다 더….’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

“네 네놈은…!”

목소리의 주인을 발견한 듯, 신부가 소리쳤다.

로브 안쪽에서 반짝이는 은발.

서슬 퍼런 그의 검푸른 눈이 그들을 향해 말했다.

“옆집 둘째 아들인데, 이런 데서 장사하시면 안 되지. 안 그래들?”

검을 뽑으며 그렇게 말한 이는 클라인 라인란트.

라인란트 공작가의 제 2공자였다.

***

“젠장, 미행을 붙이다니!”

“아니야! 난…!”

잔뜩 분개한 신부가 나무라자, 네크로맨서 또한 억울하다는 듯 이를 악물었다.

‘도대체 어디서 따라온 거지?! 성 내부는 제국군이 빈틈없이 감시하고 있었을 텐데…!’

잔뜩 당황한 저 몰골이 우습기 짝이 없었다.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

자신의 이동 경로는 폴와이번 내성과 헬리안의 개인 사유지.

영지는 관리하는 것은 헬리안의 기사들이고, 그 밖에는 제국군이 진을 치고 있다.

“그사이에 미행이나 추적이 붙는 것은 불가능해! 근데 어떻게…!”

“어떻게 따라왔느냐고?”

발악하는 듯한 그의 말을 도중에 끊으며, 보란 듯 팔짱을 꼈다.

“뭐긴 뭐야, 너희 등 뒤가 털린 거지.”

그 말과 함께, 멀리 떨어진 폴와이번 성에서 연기가 올라왔다.

“뭐야, 왜 성에서 연기가…!”

“연기뿐만이 아닐걸?”

내가 그들을 향해 그렇게 말했을 무렵.

쿠구궁-!

폭음과 함께 감옥탑 중 하나가 통째로 무너지는 게 보였다.

“어, 어어어……!”

뒤이어 온 성에 비상이 걸린 듯, 종소리와 나팔소리가 이곳까지 들려왔다.

저렇게 요란하게 일을 벌였다는 것은, 감옥에 갇힌 주요 인사들의 탈출이 완료되었다는 뜻.

그들이 탈출할 시간을 벌기 위해, 일부러 감옥탑을 무너트린 것이다.

“하이고. 거, 살살 좀 하지. 무슨 골렘들도 아니고”

두 번째 감옥탑이 우르르 무너지는 것을 보니 기가 막혀 중얼거렸다.

라이아도, 그녀의 기사들도, 그리고 내색하지 않았지만 고든도.

기회가 주어진 순간, 그동안 쌓인 울분을 마음껏 토해내고 있을 터였다.

“하, 하하!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 말인가!”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신부가 애써 크게 웃으며 말했다.

“보아하니 혼자 이곳에 온 것 같은데, 너무 섣부른 판단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겁먹은 개가 짖어대는 것 같은데.’

불안을 억누르려는 듯, 당혹을 숨기려는 듯.

잔뜩 긴장한 채 소리치던 신부가 계속해서 지껄였다

“이곳에 심문관의 수는 약 스물! 게다가 이곳에는 저 좀비들까지 득시글거리지!”

말하면서 자신의 말에 확신을 얻었는지, 신부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감돌았다.

“그대의 검술이 아무리 고강한들, 혼자서 이 많은 인원을…!”

“맞아. 기사 혼자선 상대해낼 수 없겠지.”

그렇게 말한 난 신부 옆에서 어깨를 덜고 있는 네크로맨서를 보았다.

덜떨어진 삼류라 할지언정, 그 또한 마기를 다루는 자.

이미 전세가 어느 쪽으로 기울었는지는 진작에 눈치챈 듯했다.

“근데 미안해서 어떡하냐.”

“……뭐?”

벙찐 듯 멍청한 표정을 한 신부를 보며, 난 즐거운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난 기사가 아니라, 네크로맨서 거든.”

그리고 그 말과 함께, 몸속에 축적 시킨 마기를 뿜어내, 계약문을 가동시켰다.

키이이이이잉-!

이미 내 몸속에 스며든 흑요석 반지.

그것에 담겨있던 아키몬드의 마기가 배출되어, 수많은 술식을 구축한다.

겨우 수십 구만을 소환하던 지난날과는 달리, 그 수는 수백.

“거기 삼류. 똑똑히 잘 봐 둬라.”

“……!”

잔뜩 긴장한 눈으로 그것을 보던 제국의 네크로맨서에게 말했다.

“감히 네크로맨서를 칭하고자 한다면, 이 정도는 해 줘야 하는 거다.”

투화악-!

흘러넘친 검은 기운이 사방으로 뻗어나가 충만해진다.

이 순간을 기점으로, 공간의 주도권이 산 자에게서 망자에게로 넘어간 것이다.

우우우우-!

마치 성난 군중의 야유와도 같은 스산한 음성.

그와 함께, 허공에 수많은 문양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저건?”

사령술을 사용할 때 시체에 각인하는 룬.

“아, 아아…!”

그것을 본 네크로맨서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반은 공포에 찬 비명, 나머지 반은 경외감에 탄 탄성이었다.

[이 땅을 수호하는 용살자, 그리고 그 병사들이여. 인도자 클라인 라인란트가 그대들에게 거래를 청한다.]

쿠우우우…!

허공에 떠오른 그것을 중심으로, 혈관처럼 뻗어난 검은 선이 형상을 이뤄 그들을 에워쌌다.

[거짓된 권좌에 앉아, 제 것이 아닌 힘을 휘두르는 괴물이 있으니.]

계약문의 내용을 이해한 영혼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 크워어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스켈레톤.

인도자의 음성에 발맞춰 대열을 이루고, 병진을 짜기 시작했다.

“어, 언데드라고?!”

“말도 안 돼, 시체가 없는 곳에서 어떻게 이 많은 언데드를…!”

- 한 줌도 안 되는 미천한 지식으로 내 힘을 평하지 마라, 덜떨어진 것이.

오만을 넘어 광오하기까지 한 한마디와 함께, 다음 술식을 가동했다.

이전의 다섯 배가 넘어가는 양의 스켈레톤.

그렇지만 이는 전조에 불과할 뿐, 내가 ‘계약’한 망자는 이들 뿐만이 아니었다.

[내 계약에 동의하는 이들은 나오라. 그 타락한 심장을 꺼내, 그대들의 분노를 보여라.]

촤르르륵-!

시커먼 마상창과 방패를 든 이들이 스켈레톤들의 빈틈을 메웠다.

그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검은 갑주로 온몸을 두른 기사들.

“데스…. 나이트…!”

일렬로 늘어선 그들의 면면을 보았다.

검이 아닌 창을 치켜든 그들은, 이 땅을 다스리는 이름의 근원.

하늘을 불태우는 검은 용에 맞서, 그의 권속인 비룡(飛龍)을 떨어트린 자들.

용살자, 폴와이번(Fall Wyvern).

“열 명의, 데스 나이트라고…!”

경악에 찬 네크로맨서의 비명이 들려왔다.

심문관들은 일제히 그들이 지닌 무기를 들었지만, 이미 전황은 뒤집힌 지 오래였다.

“그대들의 계약자, 클라인 라인란트가 명한다.”

검을 뽑아 하늘로 세우며, 내 계약에 응한 혼들에게 말했다.

“그대들의 성전을 모독한 자들을 유린하라. 살점 한 조각도 남기지 못하도록, 철저히 파괴하라.”

그 말과 함께, 진형을 갖춘 언데드 군단이 움직였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발맞춰 행진하는 군대와 선봉에 선 채 전진하는 기사들.

“이건, 이건 평범한 사령술이 아니야! 이런 걸 사용 할 수 있는 이는 오직…!”

거기까지 외친 네크로맨서의 목소리가 멎었다.

“서, 설마…. 소문이…?”

목사 또한 날 둘러싼 소문을 떠올린 듯, 입을 벌린 채 뻐끔거렸다.

“그래, 사실이지.”

그 옛날, 온 대륙을 유린한 망령의 군세.

그들을 향해 전진하는 이들은, 아키몬드 군단의 편린이었으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