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63화 (63/209)

063. 구조대(3)

콰직!

“찍! 찌찍-!”

괴물로 변한 것은 헬리안 뿐만이 아니었던 것일까.

적어도 열 배는 넘게 불어난 쥐를 짓이긴 라이아는 통로를 걷는 내내 어두운 표정이었다.

“성 지하에 이런 것들이 자라나고 있었다니….”

“헬리안의 기사들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떠올리면, 말이 안 되는 일은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있었지만, 고든 역시 적잖이 충격을 받은 듯했다.

“가장 가까운 감옥은 이쪽이군요.”

스크롤을 펼쳐 영혼 지도를 확인한 내가 그렇게 말했다.

폴와이번 성 지하에 촘촘히 퍼져있는 하수도.

도시의 모든 부분을 관리할 수는 없었는지, 몇몇 오래된 수로는 감옥과 연결된 채로 방치되어 있었다.

“이런 곳은 처음이실 텐데, 길을 찾으시는 게 능숙하시군요.”

집사 고든이 수로의 구조를 파악한 뒤 길을 찾아가는 날 보며 말했다.

“마치, 이런 곳을 오랫동안 누벼오시던 것처럼….”

“글쎄요, 이것도 재능인가 보죠.”

대수롭지 않게 얼버무렸지만, 속으로는 뜨끔했다.

‘수십 년을 도망 다니다 보면, 이런 곳은 이골이 나기 마련이지.’

대륙의 공적으로 선포되어, 대륙 연합군에게서 도망치던 시절.

날 잡으려 덤벼드는 암살자와 기사들을 피해, 난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전부 들어가 봤다.

성 밑의 지하도나 카타콤. 축축한 동굴과 절벽. 와중에는 시체로 가득한 늪지대까지.

“제가 워낙에 다재다능해서 말이죠.”

그런 내막을 숨긴 채 웃어 보이자, 그걸 듣던 라이아가 혀를 비죽 내밀었다.

“차암~ 잘나셨네요. 정말.”

그렇게 걸어가던 사이, 머리 위에서 낯선 발소리가 들려왔다.

쿵. 쿵.

“이건?”

“갑옷을 입은 자의 발소리입니다. 소리를 들어보니 중무장했군요.”

기사 중 한 명이 그렇게 말하며 천장을 살피던 중, 라이아가 한 구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문이 있어요!”

천장에 난 쇠창살로 된 문.

발소리를 죽인 채 그곳으로 다가간 난, 벽에 손을 짚어 소환문을 작동시켰다.

[그대의 안내자가 명하니, 쪼개지고 모여, 나의 눈이 되어라.]

“오오…!”

“저게 사령술…. 제국 놈들이 사용하던 기술인가?”

처음 보는 광경에 고든과 라이아, 그리고 기사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목을 타고 흘러나온 망자의 목소리.

내 명령에 따라, 소환문에서 스켈레톤의 머리….

즉, 해골이 ‘쏙’ 하고 튀어나왔다.

“좋아. 성공이다.”

실험이 성공했을 때는 언제나 기쁜 법.

뿌듯한 눈으로 손에 들린 스켈레톤의 머리를 보고 있던 찰나.

“으엑.”

볼멘소리를 낸 라이아가 내게 다가오며 물었다.

“뭐 거창한 걸 쓰나 했더니, 겨우 해골 하나가 끝이에요?”

“겨우? 알지도 못하면서 겨우라니…!”

라이아의 뚱한 목소리에 발끈한 내가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단순히 스켈레톤을 소환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스켈레톤의 영체 구조와 소환 구축식을 해체하고 재구축해서 일부분만 구축하는 겁니다. 사령술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눈앞에 보이는 것만으로 단편적으로 판단….”

그렇게 발끈한 내 설명이 더 이어지려는 찰나.

“아아아아! 알았으니까 빨리하기나 해요!”

귀를 틀어막은 라이아가 더 듣기 싫다는 듯 진절머리를 냈다.

‘하여튼 기사란 것들은.’

제국의 네크로맨서들이 들으면 그 자리에서 뒤집어질 강의를 몸소 알려줬더니만, 이런 반응이라니.

‘일이 급하니 참는다.’

그렇게 생각하며, 난 천장에 난 창살 사이로 해골을 내밀었다.

“호오, 이것 봐라?”

스켈레톤과 연결된 왼쪽 눈을 감자, 천장 너머의 전경이 나타났다.

일자로 이어진 감옥과 그곳에 갇힌 사람들.

형상이 아닌 혼을 보는 스켈레톤의 눈이, 그들에게 담긴 웅혼한 마력을 감지했다.

단전이라 불리는 아랫배에 위치한 마나 코어.

그것들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빙고. 기사들이 갇힌 감옥입니다.”

그 말에 라이아의 얼굴이 대번 밝아졌다.

“정말이에요? 그럼 저들은…!”

“헬리안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수감 된 기사들. 예를 들면….”

라이아의 푸른 성창 기사단이 있겠지.

그렇게 말하며 침투 방법을 생각하는 와중이었다.

“끄아아아악-!”

고통에 찬 비명소리가 감옥을 가득 울리고, 뒤이어 낄낄거리는 남자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크하하하?! 평소에는 그렇게 우리들을 깔보더니!”

“어디 더 지껄여 보지 그래, 어?! 구조대 같은 게 올 리가 없잖아!”

뻐억-!

단단한 군화가 무언가를 걷어차는 소리.

소리가 들린 곳으로 해골을 돌려보자, 그 위치를 짐작할 수 있었다.

‘간수들이 한 곳에 모여있군. 수감 된 기사들을 고문하고 있는 건가?’

고문.

정확히는 고문을 빙자한 화풀이가 이뤄지고 있는 것 같았다.

‘저기에 정신이 팔려있으면, 오히려 일이 쉬워지겠지.’

죄수들을 감시해도 모자랄 판에, 하찮은 복수심 때문에 경계를 내팽개치다니.

그렇게 생각하며, 난 라이아가 있는 곳을 돌아보았다.

“경비는 그리 삼엄하지 않은 것 같으니, 은밀히 침투해야겠습니다. 우선….”

계획을 설명하면서 고개를 돌렸지만 그곳에 라이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뭐야, 어디 갔어요?”

내가 그렇게 말하며 고든과 기사들을 쳐다보자, 그들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내젓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말씀드리는 걸 잊었습니다. 클라인 공자님.”

“잊다니요?”

내가 되묻자, 허리춤에 찬 세검을 뽑은 고든이 내게 말했다.

“아가씨께서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시는 성격이신지라.”

“……아.”

그의 말뜻이 뭔지 뒤늦게 알아챈 그 순간.

쿠콰아아앙-!

폭음과 함께, 하수도 천장 한편이 통째로 내려앉았다.

위치는 목소리가 들려온 곳.

간수들이 기사를 고문하던 곳 정중앙이었다.

“으, 으아악?!”

“뭐야! 갑자기 무슨 일이…!”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진 간수들이 곧바로 무기를 들었지만 그뿐.

으직-!

이미 감옥으로 올라온 라이아의 메이스가, 그들의 안면을 후려쳐 완전히 함몰시켰다.

“라, 라이아 공녀…?”

“제기랄, 지상에 연락해라! 감옥에 침입자가…!”

간수 중 한 명이 그렇게 외치려는 그 순간.

스걱-!

현계 시킨 데스나이트, 레이븐이 그의 목젖을 도려냈다.

“어, 언데드!”

“네크로맨서라니, 이게 무슨…!”

혼란을 감추지 못해 우왕좌왕한 틈을 타, 난 서둘러 그들의 등 뒤에 소환문을 작동시켰다.

[묶어라, 입을 막아 아무도 나가지 못하게 하라!]

간단한 명령.

등 뒤에서 그 말과 함께 솟아난 스켈레톤들이 열 명 정도 되는 간수들을 붙잡았다.

“이게 뭐야?!”

“아무것도 없었는데, 왜 언데드가! 으읍?!”

배정한 수는 사람당 세 구.

입을 틀어막은 스켈레톤들 곧바로 간수들을 바닥에 메다꽂았다.

털썩-!

“커헉?!”

후방에서 이어진 기습.

균형을 잃고 쓰러진 간수들을 처리하는 건 고든과 기사들의 몫이었다.

“후우!”

무너진 천장을 통해 감옥으로 올라갔다.

“미치겠네. 진짜.”

간수들을 모두 제압했으니 결과적으로 잘된 일이지만, 큰일 날 뻔한 상황이었다.

“아니, 평소에도 이렇게 앞뒤 안 보고 들이댑니까?”

피 묻은 메이스를 들고 있는 라이아를 향해 화를 냈다.

“만에 하나 간수 중 한 명이 도망쳤으면 어쩔 생각이었어요?!”

“…….”

“온성의 병력이 이곳으로 들이닥치면, 구출이고 뭐고 전부 수포로 돌아가는 거 아닙니까!”

아니 무슨 델라인도 아니고.

천장을 부숴버리고 돌입하는 인간이 세상 어디에 있어?

심지어 은밀히 침투하는 도중에!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그녀 역시 홱, 하고 날 돌아보았다.

“……!”

턱밑까지 차오르는 감정을 애써 억누르는 얼굴.

“미안해요.”

“예?”

의외로 먼저 고개를 숙이고 사과했다.

‘마주 보며 드잡이질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말이지.’

그녀 나름대로는 자중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메이스를 쥔 그녀의 손은 미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경솔했다는 건 알아요. 그래도 저 기사들은….”

“후우…….”

저쪽에서 먼저 고개를 굽히니, 더 쏘아붙일 껀덕지도 없었다.

‘달리 생각하면, 정면으로 쳐들어가지 않은 것만 해도 많이 참은 거겠지.’

그녀를 바라보는 고든과 기사들의 분위기를 보니, 안 봐도 견적이 나왔다.

헬리안의 갑작스러운 봉기, 그리고 기습.

이곳에 갇힌 기사들은 아마, 라이아를 탈출시키는 과정에서 붙잡힌 이들이겠지.

가문을 잃고, 기사들을 잃고, 제국의 손에 떨어져 감시당하던 상황.

‘그런 와중에, 자기 때문에 붙잡힌 기사들이 고문받는 광경을 보면….’

기사란 명예와 신의에 죽고 사는 이들.

자신으로 말미암은 비극을 마주했을 때, 이성을 유지할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

물론, 네크로맨서인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었지만.

“됐습니다. 덕분에 기습할 수고는 덜었으니.”

그렇게 말하며 스켈레톤 중 한 명이 찾은 열쇠를 고든에게 넘겼다.

철컹-!

굳게 닫혀있던 감옥 문이 열리고, 그곳에 갇혀있던 기사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고든 집사장?! 그럼 라이아 공녀님께서…!”

“구하러 와주셨군요!”

고든의 얼굴을 본 이들이 그렇게 외치며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다들 괜찮아요? 다친 덴….”

기사들의 면면을 살피며 라이아가 그렇게 말하자, 그들 역시 걱정 없다는 듯 팔뚝을 걷어 보였다.

“걱정 마십쇼. 공녀님! 팔팔합니다!”

“괴물이든 언데드든, 다 쳐죽일 수 있어요!”

곳곳에 낭자한 고문의 흔적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표정은 밝았다.

“그럼 다행이네요. 할 일이 산더미인데.”

감동의 재회 사이에 끼어든 내 목소리에, 고든이 곧바로 그들에게 지시했다.

“클라인 공자께서 다른 감옥의 위치를 일러주셨습니다. 기사단은 지금부터 그 감옥들에 잠입, 수감 된 아군을 구출할 생각입니다.”

반격을 위해 이곳에 왔다.

그 말에 기사들의 눈에 투지가 깃들었다.

“부상자는 지하통로를 이용해 탈출하고, 작전이 가능한 인원은….”

간수들의 무기를 탈취해 무장을 갖춘 기사들이 고든의 지시를 받는 사이.

“음?”

스크롤을 펼쳐 생존자들의 위치를 확인하던 난,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무슨 일이에요?”

내 낌새가 이상한 걸 눈치챈 라이아가 그렇게 물어오고, 나 역시 얼굴을 찡그린 채 답했다.

“생존자들 일부가… 한 곳으로 집결해서 성 밖으로 나가고 있는데요.”

“뭐라고요?”

내 말을 들은 라이아 역시 내가 펼친 지도를 보았다.

한데 뭉친 채 이동하는 하얀 점.

그리고 그것을 호위하듯 둘러싼 언데드의 반응….

“씨발!”

비틀린 입에서 욕지거리가 절로 나왔다.

이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진 기분이었다.

산 사람을 이용해 만들어내는 성혈.

그렇지만 기사 가문인 폴와이번에게, 그것을 만들 기술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런 그들이 인질을 잡고, 그들을 호송한다는 건….

‘재료가 될 사람과 성혈을 교환하는 거였어.’

생각을 마친 난 곧바로 감옥 밖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클라인 공자님! 갑자기 어디로…!”

“급한 일이 있습니다. 당신들은 인질 구출에 전념해요.”

기사단을 구출했으니, 전력은 충분할 터.

이후는 그들 스스로 헤쳐 나갈 일이다.

이제 내 최우선 목표는 저 이동하는 포로들.

저들을 따라간다면, 성혈을 만드는 배후가 누구인지 일목요연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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