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62화 (62/209)

062. 구조대(2)

폴와이번 영지 중앙에 위치한 공작가의 저택.

날개를 펼친 용의 문양을 정중앙에 둔 회의장에는, 한 무리의 귀족들이 모여있었다.

“경비를 서던 기사들, 봤습니까?”

“예. 도대체 그 모습은….”

이곳에 모인 이들은 헬리안에게 동조한 폴와이번의 지방 영주들이었다.

제국의 지원을 통해 공작가의 실권을 하나둘 장악해 간 폴와이번의 방계.

십 년이 넘게 지지부진 끌고 온 주도권 싸움에서 승리했음에도, 그들에게선 기쁜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반대파들을 숙청한 건 좋지만, 기사들은 어째서 구금했단 말입니까?”

“게다가 영지민들도 사라지고 있다고 들었어요. 이건 뭔가….”

우려스러운 듯 불안감에 가득 찬 귀족들의 모습.

이것은 승자의 모습이 아닌, 도축장에 끌려온 가축이나 진배없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야!”

물론, 단순히 공포에 떨고 있는 이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맞소! 그동안 협력해 온 우리들에게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입니까!”

오히려 불만스러운 듯, 화가 난 듯.

몇몇 드센 귀족들은 아직 회의장에 도착하지 않은 헬리안 공후를 떠올리며 울분을 토해내고 있었다.

“영지의 사병들을 징집하다니, 마마께선 전쟁이라도 벌이실 생각이란 말입니까?!”

특히 반발이 심한 것은 폴와이번 서부 국경지대를 방어하던 영주들이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협력했지만, 모든 이들이 그녀의 행동에 동조하는 것은 아닌바.

자신들의 이익이 침해받자, 곧바로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단순한 사병이 아니라 서부 해안선을 지키는 병력입니다! 이걸 빼간다면 무슨 일이…!”

“크흠….”

이어지는 열변에 제국에 줄이 닿은 귀족들의 표정이 불편해졌다.

그렇지만 그들 역시 구태여 반박하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폴와이번에 들어온 제국군의 수는 정도를 넘었기 때문이다.

“제국군 중에서도, 왜 하필 네크로맨서들이냔 말이오?”

폴와이번의 원로 귀족들 또한 말을 보탰다.

“천하의 폴와이번 성을 지키는 것이 시체들이라니!”

이 회의를 위해 폴와이번 성으로 오는 길.

늙은 원로는 내성에 가득 들어찬 좀비들과 네크로맨서들을 떠올리며 얼굴을 구겼다.

“대관절 가당키나 하는…!”

“그리 문제 될 것이 있나요?”

헬리안의 목소리가 불만에 가득 찬 그들의 웅성임을 끊었다.

“고, 공후 마마…!”

“문지기는 무, 무엇을 한 게야? 왜 마마께서 오시는데 예고를….”

헬리안을 향한 험담이 들키자 화들짝 놀란 귀족들이 다급하게 말을 아꼈다.

“오, 오해입니다. 공후 마마, 저희는 그저… 으헉?!”

뒤늦게 사태를 수습해보고자 말을 꺼내던 귀족 중 한 명이 헛숨을 들이켰다.

“아니, 저…!”

“저 모습은 도대체…!”

헬리안의 얼굴을 본 다른 귀족들 또한, 소스라치게 놀라 입을 틀어막았다.

“공후 마마… 맞으십니까?”

헬리안의 나이는 50대 중반.

그에 걸맞은 세월이 그녀의 얼굴 곳곳에 녹아있을 터였다.

“실없는 소리를.”

그렇지만 그 반응이 오히려 즐거운 듯, 헬리안은 위풍당당하게 귀족들 사이를 지나갔다.

“….”

“…….”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

비릿한 웃음을 머금은 헬리안은 20대 중반의 젊은 모습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보고하세요.”

회의장 중앙에 위치한 상석에 앉은 헬리안이 그렇게 말했다.

용의 문양이 모든 이들을 굽어보는 위치.

역대 폴와이번 공작이 정무를 볼 때 앉던, ‘용의 권좌’였다.

“마, 마마?”

“저, 저…!”

본래 회의장에 모였을 때, 헬리안의 자리는 저곳이 아니었다.

그녀의 자리는 의자 옆에 비치된 임시석.

그것을 무시한 채 공작의 권좌에 앉은 이상, 헬리안의 의도는 명확했다.

“작작 좀 하십시오! 헬리안 공후!”

참다못한 원로 중 하나가 그렇게 외치며 앞으로 나셨다.

“본가의 혈통도 아닌 자가 함부로 그 자리에 앉다니! 이런 주제넘는 짓을 하고도 원로원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생각하는 거요?!”

나이가 지긋한 노귀족이 그렇게 반발하고 나서자, 봇물이 터진 듯 다른 귀족들도 한 마디씩 거들었다.

지금 헬리안의 행동은 명백히 선을 넘은 상황.

이것을 묵인한다면, 향후 가문에서 자신들의 입지 또한 불안해질 터였다.

“당장 일어나지 않으면 내 당장에라도, 컥…?!”

분기탱천한 채 소리 지르던 원로의 목소리가 무언가에 틀어막혔다.

“이게, 무, 슨…?”

그 역시 한때는 기사단의 일원이었던 자.

늙었을지언정, 마력과 검술은 녹슬지 않았다 자부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위명이 무색하게도, 원로는 목을 부여잡은 채 물고기처럼 입을 뻐끔거릴 뿐이었다.

“여기까지 와서 그따위 헛소리라니.”

그런 귀족의 모습을 본 헬리안은, 가소롭다는 듯 웃으며 허공에 주먹을 쥐어 보였다.

“끅…! 끄윽…!”

마치 무언가를 쥐어짜듯 헬리안이 손을 비틀자, 원로는 더 말을 잇지 못한 채 눈을 까뒤집으며 바둥거렸다.

그리고 그다음 순간.

뿌드득-!

뼈가 부러지는 소리.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길게 혀를 내뺀 원로의 몸이, 그 자리에 허물어졌다.

“흡……!”

“아아……!”

좌중에 깔려있던 불온한 기운이 멎고, 공포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회의장 한가운데에서 원로를 죽인 상황.

그렇지만 헬리안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자신의 손을 보며 흡족한 듯 웃고 있었다.

벌컥-!

그러는 사이 문이 열리고, 수많은 기사들이 회의장 안으로 들이닥쳤다.

촤르르륵-!

이미 검을 뽑은 채 모여드는 수십 명의 기사.

얼굴 곳곳에 돋아난 핏줄과 검게 죽은 피부.

그리고 그 눈에 담긴 흉흉한 살기까지.

‘저 기사들….’

‘인간이 아니야…!’

귀족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자, 이 정도면 어떤 상황인지 짐작하셨을 테죠.”

반대파를 숙청했고, 라이아 공녀를 몰아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헬리안의 권력을 나눠 가진 자신들뿐.

그 사실을 깨닫자, 회의장에 모인 귀족들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명실상부한 폴와이번의 지배자, 헬리안 라인란트가 명한다.”

회의장을 둘러싼 기사들을 보며, 헬리안이 씹어뱉듯이 말했다.

“방금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인 것들, 전부 죽여버려.”

그 말과 동시에, 빈틈없이 귀족들을 포위한 기사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용의 침공에서 대륙을 지켜낸 영웅들의 성전, 폴와이번.

그렇지만 그곳은 이제, 선혈과 비명이 낭자한 지옥이 되어있었다.

“이것으로 준비가 다 되었군요. 헬리안 공후 마마.”

그녀의 등 뒤에서 나타난 검은 머리의 청년이 그렇게 말하자, 헬리안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물건은?”

“차질 없이 가져왔습니다. 이번 주 중으로 ‘재료’들과 거래할 수 있게 해 두었죠.”

깊이 고개 숙인 팔리만 대주교의 모습.

거기에 내심 자신을 업신여기던 원로와 귀족들의 비명.

“훌륭해요, 팔리만.”

어깨를 떨며 희열감에 취해있던 헬리안은 가벼운 몸짓으로 손을 들어 팔리만의 공을 치하했다.

“라인란트를 손에 넣게 된다면 그대에게도 합당한 보상이 있을 테니, 기대해도 좋을 거예요.”

그런 헬리안을 보며 고개를 든 팔리만은 곧 그녀의 말에 화답했다.

“베풀어주신 은혜, 몸 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등 돌린 헬리안의 모습을 바라보는 팔리만의 표정은, 명백한 비웃음을 삼키고 있었다.

***

쿠르르르르…!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

무성한 갈대밭을 헤친 끝에 나타난 것은, 오래된 석판이었다.

“이야….”

“언제 봐도 대단한 힘입니다. 공녀님.”

“하나도 안 기쁘니까 돕기나 해요…!”

기중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그럴 필요는 없었다.

쿵-!

지치는 기색 하나 없이 그 큰 석판을 들어 올린 라이아가 손을 탁탁 털었다.

“시조님들의 영묘가 이런 곳에 있었다니….”

“직계혈통들에게만 전해지는 정보에요. 원래 같았으면 이렇게 내보일 일도 없었겠죠.”

석판을 옮기자, 그곳에 나타난 것은 지하로 이어지는 긴 계단.

기사 몇 명이 먼저 내려가. 벽에 설치된 걸대에 횃불을 놓았다.

“한 시간 정도 걸으면 성 하수구에 연결될 거에요. 그렇게 하면….”

기사들에게 지시사항을 전하던 라이아가 돌연 내 쪽을 보았다.

“뭘 그렇게 유심히 봐요?”

“…이 석판.”

라이아가 들어 올린 석판을 유심히 보며 라이아를 향해 말했다.

“200년 전에 세워진 것이 맞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순간, 언짢은 표정의 폴와이번 기사가 내게로 다가왔다.

“이 통로는 본가의 기밀입니다. 아무리 협력관계라고는 하지만, 이 이상의 정보는….”

“내가 지금 그대에게 질문했나?”

한 사람이 아쉬운 마당에 기싸움이라니.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만큼 불안할 테니.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순순히 굽히고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지.’

난 엄연히 라인란트의 공자.

본가의 기사들이라면 몰라도, 다른 가문의 기사가 함부로 업신여겨도 될 인물이 아니다.

“난 지금 라이아 공녀에게 질문한 건데, 어째서 일개 기사인 그대가 답하는 것이지?”

“……!”

내내 가벼운 태도를 유지하던 내가 이렇게 고자세로 나오자, 폴와이번의 기사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이전과는 달리, 칼자루를 쥔 것은 나.

그 차이를 각인시킨 것이다.

“거기까지 하세요. 둘 다.”

나와 기사의 말씨름을 보다 못한 라이아가 내게 말했다.

“정확한 연도는 알려져 있지 않아요. 조사해보려고 해도, 관련 기록이 전부 소실됐으니까.”

“소실되다니요?”

“아키몬드 사변.”

그렇게 말한 라이아가 석판을 바라보며 말했다.

“북쪽에서 밀고 들어온 언데드 군단 덕에 폴와이번은 성을 포기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기록고가 소실됐다고 해요.”

“언데드 군단이, 기록고를 불태웠다고요?”

“예.”

당시의 일을 떠올린 난 석판을 보며 속으로 비웃었다.

‘개소리.’

폴와이번을 침공했던 언데드 군단의 임무는 성을 점거하고, 제국의 허리를 칠 해로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주어진 명령 외에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군대가 기록고를 불태워? 웃기는 소리.

폴와이번의 기록을 불태운 건 언데드가 아니라, 폴와이번을 탈환한 성기사들일 것이다.

‘교단 놈들, 이따위 방법으로 나한테 뒤집어씌웠단 말이지?’

석판에 새겨진 것은 용의 형상.

세 개의 머리를 지닌 채, 산을 짓밟고 서 있는 용의 형상이었다.

‘고대의 세 괴수 중 하나, 검은 용.’

200년 전, 내가 이곳을 점령하려 했던 가장 큰 이유.

모든 것이 끝난 이후에야 이 장소를 발견하다니, 얄궂기 짝이 없었다.

“근데, 갑자기 그건 왜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계단은 단순한 비밀통로가 아니다.

아마 숨겨진 술식을 작동시킨다면, 그 아래에 잠들어있는 ‘진짜’가 나타나겠지.

‘지금은 때가 아니지만 말이야.’

위치를 알았다면 그걸로 되었다.

지금의 나로선 저것을 깨울 수도, 제어할 수도 없을 테니까.

‘그렇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두고 봐야겠지.’

깊은 지하로 이어진 통로를 향하며 그렇게 생각했다.

아마 언젠가, 이곳을 다시 찾을 날이 분명 있을 것이라는.

그런 불길한 생각을 한 편에 품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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