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61화 (61/209)

061. 구조대(1)

쿠르르르….

강격을 못 이겨 움푹 파인 지면.

그것을 보며 저택의 하인들은 기가 질렸다

“뭐야, 뭐 마법이라도 터진 거야?”

“아가씨야. 갑자기 라인란트 공자님을 후려치던데.”

웅성거리는 그들의 면면을 보던 라이아는 방문을 닫고 의자에 앉은 날 보았다.

“아니, 이게 그렇게까지 화날 일입니까?”

“조용히 해요. 안 그러면 한 방 더 날릴 거니까!”

얼얼한 왼손을 탈탈 털며 라이아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아냈다.

‘네크로맨서라고 하면, 대부분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게 당연하지.’

현재 대륙에 남아있는 네크로맨서 계파는 둘이다.

제국, 그리고 아키몬드 교단.

한쪽은 헬리안과 결탁해 폴와이번을 암약한 제국의 첨병이었고, 다른 한쪽은 시체에 미친 쾌락살인마들.

날 알고 있는 이들이 아니고서야, 경계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예전엔 무시당하긴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말이지.’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을 무렵, 옆에서 집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오히려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공녀님.”

라이아의 심복, 고든 집사.

본거지에서 도망쳐 온 암울한 상황에서도 기품을 잃지 않은 노신사의 모습이었다.

“헬리안의 기사들이 어떤 상태인지, 기억하시지 않습니까.”

“그게 사령술이라는 거에요?”

“적어도 마법이나 신성력은 아닐 테니까요.”

자신들이 알고 있는 힘이었다면 그리 속수무책으로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공자께서 사령술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계시니, 도움이 될 겁니다.”

“하아….”

고든의 설명에 라이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숨을 골랐다.

“가장 급한 문제는 지하 감옥에 갇혀있는 사람들입니다.”

내 말을 들은 라이아가 눈을 빛냈다.

“그때 잡은 ‘낙엽’들이 보수로 받은 것. 기억하고 있죠?”

“…성혈.”

“헬리안과 기사들의 힘을 증폭시킨 것이, 바로 그 성혈입니다.”

라이아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난, 그녀에게도 하인켈에게 말한 것과 같은 정보를 전했다.

“그 재료는, 살아있는 인간이고요.”

그리고 그 말에 라이아와 고든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럼, 지하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방치한다면…!”

“성혈의 재료로 사용될 것이고, 그만큼 헬리안의 힘은 강해지겠죠.”

쾅-!

라이아의 손이 거칠게 책상을 후려쳤다.

“잘도…. 잘도 이런 악독한 짓을!”

“진정해요.”

분이 풀리지 않는 듯, 손을 떨고있는 라이아를 만류했다.

그러는 사이, 한 손으로 턱을 괸 고든이 기억을 되짚었다.

“그때 만난 기사가 말했었죠. 황제 폐하께서 이 일을 알고 있다고.”

적에게 그런 정보를 흘리다니.

어지간히 승리감에 도취한 모양이다.

“이 일을 알린다 한들, 제국군은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고든은 그렇게 말하며 결론 내렸다.

“아마 섣불리 움직이려 하는 순간, 오히려 헬리안 쪽으로 정보가 새겠죠.”

“…!”

제국의 포진은 빈틈이 없었다.

이 저택만 해도, 경호를 빙자한 수많은 감시의 눈이 우릴 주시하고 있을테니까.

그렇지만.

그 빈틈없는 제국의 그물도 단 한 가지, 간과한 게 있었다.

“…밖으로 나갈 수 있으면 되는 겁니까?”

어두운 표정의 라이아를 향해 그렇게 말하자, 고민하던 라이아의 시선이 나에게 닿았다.

“제국의 눈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그들을 구출할 가능성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내가 재차 그렇게 묻자, 라이아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본성 지하에, 용살자들이 사용했던 오래된 통로가 있어요.”

역시.

라이아의 입에서 나온 정보는 굴러들어온 돌인 헬리안으로서는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경비 또한 허술할 터.

“그곳을 이용한다면, 일직선으로 지하 감옥에 당도할 수 있겠죠.”

“경로는 확보됐고, 전력은?”

재차 묻자 다음 대답을 한 것은 고든이었다.

“본성을 탈출한 본가 기사들에게 집결 장소를 일러두었습니다. 그렇지만 정확한 수는 파악할 수 없고, 정작 중요한 저희가….”

“이곳에서 발이 묶인 상황이로군요.”

라이아는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는 전대 폴와이번 공작의 적통.

그녀가 헬리안에게 반발하여 흩어진 폴와이번 세력을 규합한다면, 헬리안으로서는 눈엣가시와 같은 상황일 것이다.

“살아있다면, 남은 기사들은 집결지에 모일 것 같습니까?”

그렇게 묻자 잠시 고민한 라이아였지만, 이내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 3대 공작가의 기사가문.

거기에 그들의 장을 맡았던 그녀의 반응에, 나 또한 결심했다.

“좋습니다. 그럼 어서 나가죠.”

내가 그렇게 말하며 빙글빙글 웃자, 곧바로 질문이 들어왔다.

“하지만, 제국군의 경비는 삼엄합니다. 빈틈이 없지요.”

“야간에도 마찬가지인데, 어떻게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거죠?”

그렇게 말하는 고든과 라이아를 향해, 난 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제국은 여러분들처럼, 제가 네크로맨서라는 걸 모릅니다.”

그렇게 말하며 허공에 손가락을 긋자, 마기로 이뤄진 검은 기운이 허공에 소환문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저건….”

“사령술? 이 상황에 언데드를 왜…?”

아리송한 표정의 두 사람이 그렇게 생각할 무렵, 소환문에서 나타난 그것은 꾸물거리는 몸을 이끌고 내게 다가왔다.

마치 수은처럼 꾸물거리는 액체 덩이가 셋.

상대의 외형과 목소리를 모방하는 언데드, 도플갱어였다.

“제가 어떻게 헥토르의 기사들과 네크로맨서들을 싸우게 했는지. 궁금하지 않았어요?”

***

“그건 불가능합니다.”

“백작…!”

폴와이번-라인란트 접경지대, 서부 요새.

수많은 제국 기사들에게 둘러싸인 라이아와 클라인을 향해, 펜스타 백작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희 기사들의 목숨이 걸린 일이에요. 허락해주세요. 백작!”

“공작가의 자제분께서 근거 없는 정보에 의존하여 이리 경거망동하시다니요!”

설마, 단둘이서 헬리안의 성으로 잠입할 생각을 할 줄이야.

미리 기사들을 대기시켜놓지 않았다면 저들을 놓칠 뻔했다.

‘그렇지만 뛰어봤자 손바닥 안이지.’

한쪽 눈에 낀 외눈안경을 들썩인 펜스타 백작은 냉정하게 라이아의 호소를 잘라냈다.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이러는 와중에도 폴와이번의 영지민들이…!”

“근거 없는 정보입니다. 클라인 공자.”

그다음으로 말문을 연 것은 그 옆에 서 있던 클라인.

결연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지만, 폴스타 백작은 추호도 들을 생각이 없었다.

“내전 상황이긴 하나, 헬리안 공후 또한 엄연한 제국의 귀족입니다. 섣부른 판단은 삼가세요!”

“섣부르다니!”

펜스타 백작의 말에 발끈한 클라인이 곧바로 쏘아붙였다.

“제국인을 지켜야 할 제국군이, 이들을 외면한단 말입니까!”

울분에 찬 목소리.

격정적인 클라인의 모습을 보며 펜스타 백작은 속으로 비웃었다.

‘소문과는 달리 감정적이군. 역시, 라인란트 핏줄이 어디 가는 게 아니지.’

라인란트는 전통적인 기사 가문.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과 같은 정치가들의 좋은 먹잇감이었다.

‘5재상 중 하나인 프리실라 공후만 아니었어도, 진작에….’

그렇게 생각하는 마음속과는 별개로, 펜스타 백작은 클라인에게 맞서 역으로 소리쳤다.

“근거 없는 정보라 하지 않았습니까!”

“……!”

말이 막힌 듯 멈칫한 클라인에게 펜스타 백작은 곧바로 속사포처럼 말을 이어갔다.

“어디서 시작됐는지도 모르는 헛소문 때문에 야반도주라니! 이게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그…!”

이젠 거의 울 듯한 클라인의 모습에 펜스타 백작은 기사들에게 명했다.

“당장 두 분 자제를 별실에 모셔라! 경호에 특별히 신경 쓰도록!”

“예-!”

그 말을 마지막으로, 라이아와 클라인의 양어깨를 잡은 기사들이 그들을 연행하기 시작했다.

“부관.”

“예, 사령관님.”

그러는 와중, 펜스타 백작은 조용한 목소리로 자신의 심복을 불렀다.

“헬리안 공후께 전하게.”

백작은 총사령관의 인장을 툭툭 털며 그에게 말했다.

“라이아 공녀는 이쪽에서 잘 보호하고 있으니,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그 말에 깊이 고개 숙인 부관은 병사들 속으로 몸을 감췄다.

“자, 이걸로….”

폴와이번의 요새, 그리고 그 너머에 펼쳐진 녹지.

그것을 바라보는 펜스타 백작의 눈에 탐욕이 깃들었다.

“폴와이번 영지의 삼림 지역은, 펜스타 가문이 차지하게 되겠군.”

황제에게 승인받고, 헬리안과 거래한 내용.

그것을 떠올린 펜스타는 흐뭇한 미소와 함께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갔다.

이제 곧 새 영지를 개발하기 위해 동분서주해야 하니,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을 것이다.

***

“설마 이런 식으로 탈출이 가능할 줄이야….”

아침 해가 지평선에 걸리는 순간.

추적자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우리는 저 멀리 보이는 요새를 보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세 사람밖에 없었으니까 가능한 겁니다.”

동시에 다루는 언데드가 많아질수록, 행동의 정밀도는 떨어진다.

예전 같았으면 두 개체 정도를 다루는 것이 한계였겠지.

‘흑요석 반지가 거의 다 흡수된 게 컸지.’

그렇게 생각하며 배낭을 내려놓은 난, 그것을 열어 물주머니를 꺼내 입에 댔다.

그렇게 몇 모금 물을 들이켠 뒤.

“푸하아-!”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난 약속장소인 평원을 둘러보았다.

“이거 걸었다고 지친 거예요? 명색이 라인란트 정식 기사가?”

그런 내 몰골을 본 라이아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한 채 걸어왔다.

“그쪽도 마력 없이 살아 보십쇼. 이만큼 걷는 것도 대단한 거지.”

“마력이 없는 몸으로 기사시험을 통과한 게 더 신기하죠.”

그렇게 말한 라이아는 손을 탁탁 털며 자신의 작품을 바라보았다.

“우와아….”

높이가 4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기둥.

그 꼭대기를 감싼 덩어리에서 파란색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놀라운 기만전술이었습니다. 클라인 공자님.”

기진맥진한 내 손의 물통을 받아든 고든이 내 대신 그것들 갈무리해주며 말했다.

“설마 사령술을 저렇게 활용할 수도 있었다니….”

“저니까 이렇게 활용하는 겁니다.”

고든의 말에 답하며 찌뿌둥한 허리를 폈다.

한참 동안 배낭을 메고 걸었더니, 온몸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제국의 네크로맨서들도 곧 찾아올 텐데, 괜찮겠습니까?”

“괜찮아요.”

시체를 되살리는 반혼술만을 연구해 온 기형적인 집단.

네크로맨서라 부르는 것조차 질색인 삼류들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제국 네크로맨서들은 저게 뭔지도 모를 테니까.”

도플갱어는 시체가 아닌 영체.

저들의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였다.

“고든! 저기요!”

그렇게 연기를 피운 지 얼마나 지났을까.

얼굴이 한층 밝아진 라이아가 한 지점을 가리키자, 고든의 얼굴에도 흐뭇한 기운이 감돌았다.

“역시… 명령을 잊지 않았군요.”

라이아가 세운 연기 기둥에 화답하듯, 평원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파란색, 붉은색.

심지어는 급조된 듯한 모닥불 연기까지도.

점점 가까워지는 연기들을 보고 있자니, 검은 위장복 차림의 한 남자들이 우릴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푸른 성창 기사단입니다, 공녀님!”

푸른 성창 기사단.

폴와이번 공작가의 직속 기사단이었으며, 라이아의 기사단이기도 했다.

“바보들… 저 꼴이 될 때까지 한 명도 도망가지 않았다니.”

그들의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졌는지, 눈가를 손으로 비빈 라이아가 마주 손을 흔들었다.

‘수는 약 삼십…. 침투조로 쓰기에는 안성맞춤이겠네.’

성혈의 힘에 취해 변이된 괴물, 헬리안.

그리고 그 괴물의 수중에 떨어진 성과, 그녀의 하수인.

그 지옥 같은 광경을 겪었음에도, 다가오는 기사들의 눈에선 두려움을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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