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59화 (59/209)

059. 기사가 되었다

챙-!

힘을 잃고 늘어진 손에서 검이 떨어졌다.

애써 그것을 주우려 팔을 뻗으려 했지만, 양손에 느껴지는 격통에 그럴 수도 없었다.

아무래도 만신창이가 된 내 손은 그것마저 허락하지 않는 것 같았다.

쿠르르르르….

새로 만들어낸 기술의 여파로, 산 어딘가에서 눈사태가 난 듯 했다.

“하아…. 하아…!”

이판사판으로 시도한 검술의 결합은 성공이었다.

거기에 상대의 마력을 이용하는 방법까지 알아냈으니, 더할 나위 없는 성장이었다.

“아아악!? 끄으으으…!”

그렇지만 지금, 난 도저히 그걸 기뻐할 상황이 아니었다.

치이이이익-!

뜨거웠다.

양손과 눈, 그리고 머리에서 나온 열기가 순식간에 희뿌연 연기를 만들어낼 정도였다.

“이게…! 씨발 대체…?”

그동안 검술을 분석하면서 이런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머리는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지끈거렸고, 눈은 인두로 지진 듯 뜨겁게 달아올랐다.

손은 전신화상이라도 입은 듯 데여 끔찍한 고통을 온몸에 선사해주고 있었다.

이안의 마력을 억지로 받아들였을 때에도.

심지어 루델과 계약했을 때 느꼈던 고통도 이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마음 놓고 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미치겠네. 진짜…!’

악문 이에서 피가 배어 나왔지만, 그것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이곳은 눈보라가 수시로 찾아오는 설산 꼭대기.

지금처럼 보호자가 없는 상황에 쓰러진다면, 정말로 생명이 위험하다.

“버텨라, 제발 버텨…!”

온 힘을 다해 정신을 부여잡는 사이, 가벼운 발소리가 내게로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도련님, 괜찮아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천진한 목소리.

아린이었다.

“괜… 찮아. 잠시…!”

차가운 공기 때문인지, 눈의 통증이 점점 멎어 들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 일어나려 하는 순간, 휘청거리는 내 몸을 아린의 그림자가 붙들었다.

“피, 별로 안 괜찮네 뭐.”

입을 비죽 내민 아린은 그 자리에 걸터앉고, 허물어지는 내 머리를 그녀의 무릎에 올려놨다.

“그림자에…. 숨어있던 거야?”

“네! 이번엔 얌전히 있었어요!”

“그래, 잘했네.”

차가운 눈의 감촉이 기분 좋은 건지, 아린은 양손 가득 눈을 잡은 채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위안을 얻은 것일까, 아니면 보호자가 있다는 사실에 안심한 것일까.

사시나무처럼 떨리던 몸이 점차 진정되고, 두통도 어느 정도 사그라드는 것이 느껴졌다.

“도련님.”

“왜.”

“계속 그렇게 하면, 안 힘들어요?”

눈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아린이 물었다.

아직 자신의 시선이 닿는 모든 것이 낯선 무구한 아이.

그렇지만 그와 동시에 그녀는 가끔 백치를 연기하는 현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내 감정을 꿰뚫어 보니까.

“힘들어. 아주 죽도록 힘들지.”

“그러면 안 하면 되잖아요.”

“그러게….”

후우….

내뱉은 한숨이 마치 연초의 향처럼 허공에 퍼져나갔다.

“그런데, 어쩌겠어.”

흩어지는 연기를 멍하니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다시 태어난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인데, 뭐라도 해야지.”

“으음~”

탄식하듯이 내뱉은 내 말에 아린은 눈가를 좁히며 앓는 소리를 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찰나, 또 다른 발소리가 날 향해 가까워져 왔다.

“몸 복구하는 데에 시간이 좀 걸리셨나 봐?”

그렇게 말하며 몸을 일으키자, 그곳에는 노르드빈트를 쥔 희뿌연 검사가 서 있었다.

- 타고난 약함에도 불구하고, 그대는 가장 어려운 시험을 훌륭히 이겨냈다.

그렇게 운을 뗀 희뿌연 검사는 자신이 뽑은 노르드빈트를 들어 내게로 향했다.

- 이에, 검의 의지에 따라, 그대를 기사단의 일원으로 인정하니.

양쪽 어깨와 정수리를 연달아 오간 노르드빈트가 내 앞에 내밀어졌다.

- 최초의 검이, 그 존재로서 그대의 자격을 보증한다.

시험은 통과.

내게 주어진 검은 놀랍게도, 베르켈 라인란트의 애검이었다.

“이걸…. 내가 가져가라고?”

- 그러하다.

한동안 말없이, 눈앞에 내밀어진 검을 보았다.

내 성벽을 부수고, 내 계획을 부수고, 내 심장을 부순 검.

200년의 세월과 한 인간의 삶을 건너, 베르켈의 유산이 내 눈앞에 놓인 것이다.

- 불복하겠는가?

나지막이 검사의 질문이 들어왔다.

말하는 낌새를 보아하니, 내가 망설이는 이유를 짐작한 것 같았다.

“아니, 받지.”

그렇지만 난 몸을 일으켜, 내 앞에 내밀어진 검을 받아들었다.

스르릉-!

미리 준비된 여분의 검집에 노르드빈트를 갈무리했다.

- 이로써 그대는 라인란트의 기사가 되어, 세상으로 나서게 된다.

검을 내게 건넨 검사의 몸이 연기가 되어 흩어졌다.

-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본질이 아닌 행동일지니.

입버릇처럼 내뱉던 베르켈의 격언.

- 그대의 행동이, 라인란트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축하인지 경고인지 모를 한 마디를 끝으로, 검사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다.

***

콰직-!

땅바닥에 널브러진 동패가 노르드빈트의 검날에 찍혀 두 동강이 났다.

“시험 완료 확인.”

그것을 입회한 두 명의 기사가 고개를 끄덕이고, 한쪽 무릎을 꿇은 날 향해 말했다.

“현 시간부로 공자님을 라인란트의 기사로 임명합니다.”

다른 나라에서 으레 하는 축하연이나 팡파르는 없었다.

견습 기사의 장식인 동패를 바닥에 던져, 영묘에서 가져온 검으로 그것을 내리쳐 깨는 것.

그리고….

뻐억-!

“큭-!”

복부에 가해지는 발길질을 끝으로, 북부 기사의 임명식은 끝을 맞이한다.

“야 너네…. 발차기에 감정이 좀 많이 실렸는데?”

“예? 무슨 말씀이십니까?”

얼얼한 배를 어루만지며 그렇게 말하자, 검은방패 기사는 흐뭇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원래 사랑하는 만큼 때리는 게 저희 기사단 전통입니다.”

“아, 그러셔?”

정말 아름다운 전통이 아닐 수 없다.

‘다음 기수 임명식 때 꼭 찾아가야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나처럼 욱신거리는 배를 부여잡은 이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 만난 기사 생도들, 아니, 이제는 기사들이겠지.

“공자님!”

“왜 이렇게 늦으셨습니까?”

“진짜 불합격하신 줄 알고 데리러 갈 뻔했습니다.”

히죽히죽 웃어대며 그렇게 말하는 신출내기 기사들을 향해 퉁명스레 말했다.

“다들 시끄러!”

“하하하하하!”

홀가분한 저들의 웃음소리를 듣고 있자니, 이제야 시험이 다 끝났다는 것이 새삼 실감이 났다.

“어, 공자님?”

“왜?”

그렇게 시험 중에 있었던 일들을 서로 이야기하던 중.

같이 얘기하던 기사 중 한 명이 내 눈을 가리키며 물었다.

“공자님 눈 색이…. 원래 이렇게 새파란 색이었습니까?”

“뭐? 뭔 소리야?”

내 눈 색이 푸른 빛이 돌기는 하지만, 엄연히 검은색일 텐데.

영문을 모른 채 그렇게 묻자, 고개를 갸웃거리던 기사가 내게 뭔가 더 말하려고 했다.

“크, 클라인 공자님!”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

전서구가 가져온 편지를 든 전령이 다급한 목소리로 날 찾고 있었다.

“쯧, 생각보다 더 빨랐군.”

“예?”

“곧 알게 될 거야.”

내 중얼거림에 의아해하는 기사들을 뒤로하고, 황급히 내게 다려온 전령은 내 눈앞에 쪽지를 내밀었다.

“본가에서 내려온 귀환 명령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전령이 내게 내민 것은 라인란트 공작의 인장이 찍힌 군사명령서.

어지간히도 큰일이 났다는 뜻이었다.

***

클라인 공자님 오셨습니다!

저택 정문에 들어서자, 문지기의 외침과 함께 하인들이 날 맞이했다.

“아버지는?”

“서재에 계십니다.”

“델라인 도련님께서는 이미 접경지대로 떠나셨어요.”

접경지대.

대부분 그것은 폴와이번과 라인란트의 경계를 뜻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두 영지 사이에 위치한 성.

루델 요새.

“아버지. 접니다.”

“들어오거라.”

문을 열고 들어가자, 집사장 버크만과 이것저것 얘기를 주고받던 하인켈이 내게로 눈을 돌렸다.

“말없이 저택을 떠난 벌은 달게 받겠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급한 일이 생겼지. 그렇기에 널 불렀고 말이다.”

그렇게 말한 하인켈이었지만, 내 어깨에 달린 정식기사의 증표를 보고 있었다.

“고모님께서 기어코 일을 저질렀군요.”

“반대파를 모조리 숙청했다. 지금 폴와이번 성은 지옥이 되었어.”

역시.

예상한 대로, 상실감에 미친 헬리안은 폭주했다.

이젠 제국도, 같은 방계도 그녀를 멈출 수 없겠지.

“짐작하고 있었느냐?”

“직접 만나기까지 했으니까요.”

정확히 말하자면, 신경을 좀 많이 긁어줬지.

아들도 죽였고.

“그래. 그렇다면 얘기가 빠르겠군.”

그렇게 말한 하인켈은 탁자 앞에 놓인 서류를 내밀었다.

“열어 보거라.”

다른 문서들과는 달리, 두툼한 종이뭉치.

그것을 열자, 그곳엔 종이가 아닌, 기괴한 물체가 들어있었다.

혈관 같기도 하고, 종양 같기도 한 이것은….

“쯧.”

거칠게 혀를 차는 날 보며, 하인켈이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폴와이번 측의 정보를 보내주던 네 소식통이 보내온 것이다.”

라이아 렌 폴와이번.

그 이름을 떠올리는 사이, 하인켈은 계속해서 내게 말했다.

“헬리안의 기사를 죽였을 때, 시체에서 이것이 자라났다고 말이다.”

그 말을 끝으로 잠시 뜸을 들이던 하인켈은, 이윽고 결심한 듯 내게 물었다.

“이것은… 사령술로 만들어낸 것이냐?”

질문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단순한 확인작업.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을 믿기 위한 통과의례였다.

“예. 맞습니다.”

망설임 없이 진실을 입에 담았다.

“제국의 네크로맨서들이 사용하는 형태이고, 그 재료는….”

“사람… 이란 말이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헬리안의 무도회에서 날 습격한 낙엽.

그들이 들고 있던 ‘성혈’이라는 물건에 대한 정보는, 이미 하인켈에게 전해둔 뒤였다.

“하아….”

이전에 루델이 그러했듯, 깊은 탄식이 하인켈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힘과 권력을 갈구한 말로가, 이런 추악한 꼴이었더냐. 헬리안…!”

탐욕에 미쳐 괴물이 되어버린 자가, 자신의 피붙이라니.

가족이 없었던 나로선, 그 마음이 어떨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버크만.”

“예, 전하.”

“라인란트의 모든 영지에 전하게.”

한참 만에 입을 연 하인켈은 집사장 버크만을 향해 말했다.

“현 시간부로 라인란트 공작가는 헬리안 라인란트를 가문명부에서 제명하고, 그녀를 북부의 공적으로 선포한다고.”

씹어뱉듯이 내뱉은 한 마디.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버크만은 짧은 대답과 함께, 서재를 나섰다.

“그리고, 클라인.”

“예, 아버지.”

둘만이 남은 고요한 서재.

“델라인이 접경지대로 향한 것은 들었지?”

“예.”

“네게도 비슷하게 해야 할 일이 있다.”

날 부른 하인켈은 내게 쪽지 한 장을 내밀었다.

“네 소식통이 네게 보낸 편지다.”

“…….”

“설마 폴와이번의 공녀를 포섭했을 줄은, 꿈에도 몰랐구나.”

하인켈의 말을 들으며 편지를 뜯어 내용을 확인했다.

“이건….”

“정식 기사로서 받는 첫 임무가 되겠구나.”

라이아가 내게 보낸 편지.

그곳에 적힌 내용을 읽는 내게 하인켈이 말했다.

“내전 중재를 위해, 폴와이번 영지에 제국군이 주둔해있다.”

내전이 일어난 지 이틀도 채 되지 않았는데 제국군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빠르게 움직였다.

“헬리안이 중앙을 차지했고, 라이아 공녀는 자택에서 은거…. 사실상 연금되었지.”

서류에 적힌 진형을 보아하니, 라이아의 파벌은 폴와이번 성 외곽에서 헬리안과 대치.

이 두 세력 사이를 제국군이 막고 있는 형국이었다.

“위치를 보아하니, 라이아 공녀의 신변은 제국군이 보호하고 있겠군요.”

“네 말대로다.”

손가락으로 턱 끝을 두드리며, 하인켈은 계속해서 말했다.

“그리고 라이아 공녀는 자신의 경호원으로 널 보내 달라 요청했다.”

“경호… 말이지요.”

반 헬리안 진영의 구심점인 그녀가 제국의 감시하에 있는 이상, 공녀파에 승산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표면적으로는 외부인인 날 지명했다는 건….

‘제국군 몰래 뭔가를 꾸미고 있군.’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하인켈은 걱정스럽다는 듯 내게 말했다.

“적진 한복판으로 가는 위험한 임무다. 네가 거부한다면 다른 이를….”

“거부라니, 섭한 말씀을.”

그렇지만 난 하인켈의 말을 끊고, 서류를 품 안에 넣었다.

이날을 위해 여태껏 준비해 온 것인데.

이걸 남에게 맡길 수는 없지.

“하겠습니다.”

“…그래, 알겠다.”

군말 없이 임무를 받아들었지만, 하인켈은 어딘가 답답한 듯 책상을 두드리고 있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내가 그렇게 묻자 하인켈이 마지못해 말했다.

“동행이… 한 명 붙을 예정이다.”

“동행이요?”

하인켈이 거기까지 말했을 무렵.

똑똑.

정중한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거구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클라인 라인란트 공자님.”

너무나도 익숙한 그 목소리에, 잠시 말을 잃었다.

검은 신부복 차림의 신부.

이를 드러낸 채 날 보며 웃고 있는 것은, 교단의 세 대행자 중 한 명.

“개리슨…. 비어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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