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58화 (58/209)

058. 검의 영묘(3)

검의 강함만을 평가하는 제국 기사시험과는 달리, 북부 기사시험은 존재의 강함을 평가한다.

단순한 검술뿐만이 아닌, 야전에서의 생존능력, 험지 주파, 전투 지속능력에 은밀 기동까지.

그렇기에 제국 기사와 북부 기사의 1대1 결투상황을 가정한다면.

제국 기사는 압도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다.

그렇지만 만약에, 그곳이 전장이라면?

만약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야간이라면?

만약에, 수개월 동안 굶주린 상태에서의 이뤄지는 전투라면?

이 만약이라는 수식어가 들어가는 순간, 난 장담할 수 있다.

제국 기사는 북부의 기사를 절대로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같은 기사임에도 이렇게까지 성질이 다른 가장 큰 이유.

그것은 그들이 주로 파견되는 곳이 어디냐에 따른 것이다.

결투와 전쟁을 주된 업으로 삼는 제국의 기사와는 달리, 북부 기사는 수많은 장소에서 수많은 적과 싸운다.

산속에 숨은 도적 떼를 정벌하고자 며칠간 산속을 뒤지고.

역병이 창궐한 도시의 언데드를 척결하기 위해, 복잡한 건물 사이사이를 누빈다.

산짐승의 위협에 맞서 몇 날 며칠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 때도 있고.

전쟁터에 나선 뒤 일주일 동안 계속해서 싸우는 기사들 또한 적지 않다.

그렇기에 북부 기사들은 전쟁의 전문가라고 불린다.

라인란트는 그런 북부 기사들의 정점이었기에, 나 아키몬드를 쓰러트릴 수 있었던 것이다.

“후우~!”

장장 이틀에 걸친 대장정이 드디어 막을 내렸다.

베르켈 대삼림 정중앙에 위치한 영산, 검의 영묘.

정상에 있는 고원에 오르자, 피로감으로 후들거리는 다리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른 녀석들은…. 이미 끝내고 내려갔군.”

곳곳에 눈이 쓸려나간 흔적을 보며 내심 안심했다.

싸움의 흔적을 보아하니, 낙오된 인원은 없는 듯했으니까.

그렇지만 동시에,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별 탈 없이 도달한 게 다행이긴 하지만…. 정말로 내가 꼴등일 줄이야.”

아무리 신체를 단련한다 한들, 내 본질은 기사가 아닌 네크로맨서.

마력을 생성하려 몸 곳곳에 순환시키는 기사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격차가 있다.

‘죽자고 맞붙으면 평기사 네다섯 정도는 죽일 수 있지만…. 그 정도로는 모자라.’

검사로서의 내 재능은 한계가 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마력.

그것이 없는 한, 내게 있어 검술은 비상기 몸을 지키기 위한 수단일 뿐.

전력으로 몰두해야 할 무예는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마기는 순조롭게 성장하고 있으니까.”

이미 내 몸속으로 파고든 흑요석 반지.

거기에 담겨 있던 전생의 내 마력은 이미 내 몸 곳곳에 정착한 상태였다.

‘이 성장 속도라면, 가능성이 있어. 남은 건 기사 작위와 적절한 시기에 헬리안이….’

그렇게 턱을 감싸 쥔 채 향후 있을 일을 생각하던 때였다.

휘오오오오-!

“어우, 추워!”

차디찬 북풍이 방한복으로 감싸지 못한 얼굴을 때리고, 그로 인해 난 상념에서 벗어났다.

‘전생도 지금도 북부 태생인데, 왜 이놈의 추위는 도통 익숙해지지를 않는 건지….’

버틸 수 있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

찬 바람이 좋다며 한겨울에 웃통을 까고 나다니던 델라인을 떠올리자 안 그래도 추운 몸에 한층 더 한기가 돋았다.

“그나저나….”

실없는 생각을 걷어내고, 목전에 닥친 시험에 집중하기로 했다.

아니면 생각만으로 감기에 걸릴 판이다.

“감독관이 말하길, ‘영묘에 도착하면 저절로 알 것’이라고 했는데.”

주위의 풍경을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연무장 하나 크기의 평평한 고원.

눈 덮인 고원 곳곳에는 주인 잃은 검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여기서 아무 검이나 뽑아가면 되는 건가?”

어떤 것은 녹이 슬어 부러지기 직전의 오래된 검이었고, 어떤 것은 방금 꽂아놓은 듯 빛이 나는 새것이었다.

‘영묘에 검이 안치되는 것은 전사(戰死)한 기사들뿐…. 최근에도 목숨을 잃은 이들이 꽤 되는군.’

빛이 나는 검의 개수를 세며 그렇게 생각했다.

라인란트는 제국 최강의 기사가문.

그 명성을 지켜내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대륙 어딘가에선 라인란트의 기사가 싸우고 있을 터였다.

그리고….

“음?”

차가운 바람에 의해 돌아간 내 시선.

그 끝에 존재하는 익숙한 형상의 검이, 내 눈길을 잡아끌었다.

“잠깐만…. 저건?”

그것은, 마치 이곳에 꽂힌 수많은 기사들을 인도하듯, 높은 둔덕에 홀연히 서 있었다.

가드, 손잡이, 폼멜.

모든 부분이 검은색으로 칠해져, 장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무미건조한 철검.

“하.”

그렇지만 난 저 검의 모습이 너무나도 익숙했다.

아니,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설마, 이렇게 다시 볼 줄이야.”

뜻 모를 그리움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저것이야말로 이 장소를 ‘검의 영묘’라 부르게 된 가장 큰 이유였으니까.

“노르드빈트.”

몸속을 꽉 채운 열기와 함께, 그 검의 이름을 토해냈다.

초대 라인란트 공작, 베르켈 라인란트의 애검.

“수백 년의 시간이 흘렀을 텐데, 녹슬지도, 날이 바래지도 않았구나.”

시간을 거스르는 기괴한 광경이었지만, 내가 느낀 감정은 안도감에 가까웠다.

저것은 아키몬드의 군세를 모두 넘을 때까지 부러지지 않은 세기의 명검.

그리고 끝내 그의 심장을.

타락한 네크로맨서, 아키몬드의 심장을 꿰뚫은, 기념비적인 검이었으니까.

“한 인간의 삶을 넘어,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었어.”

저 검의 모습을 담을 때마다, 그때의 감각이 뇌리에 떠오른다.

모든 힘을 쏟아부었던 장렬한 전투.

그리고 그 끝에, 심장을 꿰뚫리는 서슬 퍼런 감촉과 고통.

그리고 내 죽음의 순간까지.

“후우….”

내 실패의 상징임과 동시에, 내 존재의 상징이기도 한 검.

애증을 가득 담은 채 그 검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을 때, 그 검 주위에 무엇인가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저건…?”

눈덩이가 뭉친 듯, 바람이 뭉친 듯.

희끄무레한 사람의 형상이, 노르드빈트의 손잡이를 잡은 채, 날 응시하고 있었다.

무형의 존재에게 눈이 있을 리 만무하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검을 뽑은 난, 그 희미한 존재의 시선을 느끼며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한데 모인 령(靈)의 파편인가, 잔류사념의 군집인가.”

근원을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를 보며 온갖 가설이 떠올랐지만, 깊이 생각하지는 않기로 했다.

저것을 보는 나도, 노르드빈트의 손잡이를 잡은 저 정체 모를 검사도.

그런 사소한 것을 신경 쓰는 눈치는 아니었으니까.

“그래, 이제야 시험관이 왜 그렇게 말했는지 알 것 같군.”

검을 가져와라.

어떤 검을 가져와야 할지는, 그곳에 도착하면 알게 될 것이다.

그 말 그대로였다.

카각-!

쇳소리와 함께 영묘의 꼭대기에서 노르드빈트가 뽑혀 나왔다.

그 오랜 세월을 머금었음에도, 영웅의 애검은 내 심장을 꿰뚫었을 때의 예기를 잃지 않고 있었다.

- 이곳에 잠든 검의 의지를 대표하여, 그대의 자질을 논할지니.

“…….”

검의 의지라.

정말로 그런 것이 있는지, 아니면 저 사념체가 멋대로 그리 생각하는 건지는 몰랐다.

카앙-!

존재에 의문을 품는 순간 날아온 검격.

그곳에 담긴 투기는 한낮 사념체의 것이 아니었다.

- 버텨내라.

무기질적인 목소리와 함께 노르트빈트가 내 목을 노렸다.

마치, 그때의 대결을 연상케 하는 검로.

그때와 지금을 겹쳐보고 있었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은 변하지 않았다.

저 검을 마주 보고, 맞서 싸우는 것.

최르륵-!

연속해서 여섯 번의 검격이 정면의 모든 검로를 차례대로 장악해갔다.

‘환영검? 아니, 달라. 모방품이다.’

가짜는 가짜를 알아보는 법.

그 기괴한 검술에 의문을 품으면서도, 난 그것을 파훼하기 위해 검을 돌렸다.

키이이이-!

눈속임 속에 숨에 측면을 노리던 검이 돌아간 내 검의 가드에 얽혀 기괴한 파열음을 냈다.

마치 화난 뱀의 울음소리와 같은 소리.

이 소리에 착안한 남부 전사들의 검술, 흉사(凶巳)였다.

- ……!

“왜, 잔뜩 폼잡더니 꼴에 좀 놀라셨나?”

의지가 있는지조차 불분명한 몸을 향해 이죽거린 뒤, 곧바로 공세로 전환했다.

정면을 파고들기 위해 구사한 것은 세검술, 트라이던트(Triadent).

검을 수직으로 세워 눈과 목, 아랫배를 차례로 찔러 들어가자 그 사념체의 자세가 흐트러졌다.

그렇지만 그 순간.

키이이이-!

방금 전 들었던 뱀의 울음소리와 함께, 찔러 들어간 검이 위로 튕겨 나와 정면을 노출했다.

‘흉사?! 이 새끼 ,내 검술을…!’

당황하는 것과 동시에 위로 올라간 검을 내리쳐 이어지는 연계를 끊었다.

찔러오던 노르드빈트의 검로가 아래로 비틀리자, 검사는 곧바로 거리를 벌렸다.

‘연계하려던 기술은 트라이던트. 전부 내가 사용했던 기술이다.’

준비 자세와 첫 일격의 검로를 본 난 확신할 수 있었다.

처음 본 기술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능력이라니, 처음 상대하는 유형이었다.

이건 마치….

“나와 싸우는 것 같은 느낌이군.”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기술을 재현해냈다는 것은 파훼법 또한 알아냈다는 뜻.

같은 기술을 사용한 순간, 역으로 공격을 허용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 그걸 아냐고?

내가 그렇거든.

‘나랑 푸닥거리하던 그 노친네, 이런 기분이었구만?’

이안과의 대련을 떠올리며 그렇게 말했다.

하나의 수를 사용하여 끝내지 못한다면, 그 수는 막힌다.

말인즉,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새로운 기술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력 없이 완벽하게 재현 가능한 기술은 서른 개 남짓….’

마력이 없는 몸이 처음으로 아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렇지만 서둘러야 해.’

전투가 지속될수록 체력이 고갈되는 나와는 달리, ,저 녀석은 체력에 제한이 없다.

단기간에 승부를 보지 않는다면, 패배는 거의 확정된 상황.

‘사령술을 쓰려고 해도, 이 간격에서는 불가능하니….’

이를 악물며 곧바로 검을 치켜든 채 달려들었다.

“흐아압!”

찔러 들어가는 내 사영격을 흉사가 막아냈다.

환영검을 사용해 제압한 검로에 서로 다른 방향으로 트라이던트가 찔러 들어오고.

검을 쥔 팔을 노리고 사용한 피안화는 환영검이 만들어낸 허상이었다.

그렇게 사용한 기술이 열아홉.

마지막으로 내보인 유성검이 가로막히는 순간, 난 수중에 쥔 모든 패를 내보였음을 직감했다.

“허억…! 허억…!”

높은 고도에서 이뤄진 격전.

부족한 공기 때문에 숨은 더욱 가쁘게 차올랐다.

카앙-!

이제 형세는 완전히 역전된 상황.

순식간에 공세로 전환한 검사의 공격을 막아내기에 급급해졌다.

“콜록-! 씨발!”

설상가상으로 가쁘게 들이마신 찬 공기가 기침을 일으켜, 계속해서 정신을 갉아먹는 상황.

솔직히 말해,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씨발, 하필이면 이런 시험이었을 줄이야…!”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니, 참으로 그럴듯한 시험이었다.

문제는, 이 시험이 나와는 완전히 상극이라는 것이었다.

마력량으로 승부수를 띄우는 다른 검사들과는 달리, 난 기술을 극한으로 활용하는 검사.

마력으로 찍어누를 수 있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난 가진 밑천이 다 떨어지면 대응할 수가 없다.

“자, 이제 어떻게 한다….”

검을 세운 채 공격 자세를 취하는 검사.

자세를 보아하니 유성검.

막을 엄두도 못 낼 만큼, 마력을 가득 눌러 담고 있었다.

“뭔가…. 뭔가 방법이….”

마른침을 삼치며,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순간.

“아…?”

장벽에서의 대련을 상기한 순간, 이안의 목소리가 불현듯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두 개의 기술을 하나의 검로에 담아 내는거다. 할 수 있겠지?’

장벽에서 이뤄진 훈련.

그곳에서 내게 주어진 과제.

그걸 해낼 수만 있다면….

파앗-!

“크윽?!”

판단을 마친 검사가 곧바로 날 향해 달려들었다.

마력을 가득 머금은 유성검.

알고 있다 한들 피할 수도, 막아낼 수도 없는 일격이다.

“이렇게 된 거…!”

이렇게까지 몰린 이상, 이판사판이었다.

내게로 내리쳐지는 유성검을 향해 검을 뻗으며, 필사적으로 머릿속에 들어찬 정보를 규합했다.

머릿속에 가득 들어찬 수많은 검술.

그 검로와 마력 배분을 역순으로 분해한 뒤, 최적의 선택지를 찾아 결합.

재조립된다.

치이이익-!

눈동자가 불붙은 듯 뜨겁게 달아오르고, 검을 쥔 손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우우우웅-!

루델의 비기, 환영검을 구사하기 위한 검로를 역순으로 펼쳐 한 지점에 집중.

힘의 작용점을 바꿔, 그곳에 하인켈의 기술, 유성검의 정수를 녹여낸다.

그렇게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검에 마력을 담을 수 없다면.

상대의 마력을 받아들여, 그대로 돌려보내면 될 일!

키이이이이이잉-!

위로 올려친 내 검에서 찬연한 마력광이 빛났다.

내 것이 아닌, 노르드빈트에 담겨 있는 검사의 마력.

텅 빈 검을 맞대어 그 마력의 흐름을 가로채고, 그것을 역으로 뿜어냈다.

한 점에 집중시킨 뒤, 중심부로 쏘아져 폭발할 수 있도록.

그 결과.

쿠콰아아아앙-!

노르드빈트를 쥔 검사의 몸이, 완전히 산산조각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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