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4. 인생의 무덤
“어서 오시오, 프리실라.”
그녀를 맞이하는 하인켈의 목소리가 날 구해냈다.
“연락도 없이 돌아오다니, 의외인데.”
“그만큼 급한 일이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말끝을 흐린 프리실라가 시선을 돌리자 주변에 있던 하인들이 흠칫 몸을 떨었다.
“한 번쯤은 이렇게 불시검문도 해 줘야지요. 안 그래요 다들?”
서슬 퍼런 그 말에 하인 하녀들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쟤들이 일을 못하냐 하면 그건 아니지만….’
라인란트는 골수까지 꽉 들어찬 무인 집단이다.
밥 잘 나오고 옷 깨끗하면 뭐든 다 좋은 근육뇌들.
그런 그들을 그나마 귀족의 행색으로 만들어 놓는 것이, 제국 수도에서 생활하는 프리실라의 역할이다.
“자, 다들 주목!”
손뼉을 쳐 하인들을 집중시킨 프리실라는 이미 저택의 곳곳을 살펴본 듯, 하녀장을 불러 지시사항을 수없이 쏟아내기 시작했다.
정원 모양부터 벽지의 색, 각 지역별 손님 대응법이 어떻게 바뀌었는지까지.
순식간에 쏟아지는 최신 정보에 하인들과 하녀들은 넋이 나가버린 듯했다.
“버크만. 이번 주 내로 준비 가능하겠죠?”
유일하게 평정을 유지한 집사장, 버크만은 익숙한 일인 듯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공후 마마.”
제국에서 본가에 도착한 지 5분도 되지 않아 저택을 휘어잡는 패기.
…보는 내가 다 속이 거북하다.
“오는 길에 듣자 하니, 아일라시스 공작가의 공녀께서 찾아오셨다고요?”
뒤이어 그녀의 목소리가 날 향했다.
곧바로 목을 가다듬은 난 침착하게 그녀의 질문에 답했다.
“함께 라인란트 시내를 돌아보다가 방금 귀환했습니다.”
딱딱하게 경직된 목소리.
그 말을 들은 프리실라는 잠시 미간을 좁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죽을 맛이로구만.’
라인란트 공작의 정실, 프리실라 엘크라이어 공후.
제국의 다섯 재상 중 하나, 라인란트를 지키는 철의 여인.
그 외에도 수많은 수식어와 명성들이 있었지만, 내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나와 그녀의 관계.
공작의 정실과 첩의 아들이라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관계 때문이다.
“습격이 있었다고도 하는데, 무슨 일이 있었죠?”
“아일라시스 공작가에서 파견한 마법사들이었습니다. 화염 마법 사용을 확인했고, 현재 검거한 뒤 구금한 상태입니다.”
대답이 들려온 것은 내 뒤에 선 듄켈에게서였다.
“북부 도시 한가운데에서 화염 마법이라니, 간이 부었군.”
하인켈의 목소리에 노기가 어렸다.
프리실라 역시 분노를 감추려는 기색은 아니었다.
“북부 한복판에서 일을 벌였는데 무사히 보낼 수는 없지. 프리실라?”
하인켈이 그녀를 부르자 곧바로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전하가 직접 나설 필요는 없겠죠. 제 명의로 아일라시스에 항의서한을 보낼게요.”
제국 재상의 공식 항의 서한.
3대 공작이라 한들 섣불리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죄인들은 우리가 직접 처리하겠다 전해주시오.”
“부서진 도시 기물에 대한 비용도 청구해야죠.”
“부탁하지.”
공작의 권위와 재상의 실리.
호흡이 척척 맞아떨어지는 부부의 모습을 보던 도중, 프리실라의 시선이 다시 내게로 옮겨졌다.
‘아니, 왜 이렇게 쳐다보는 건데?’
내 얼굴을 뚫어져라 보는 프리실라를 보니 속이 절로 더부룩해졌다.
‘생각해보면, 이 사람은 이 집안에서 날 가장 싫어할 만한 인물이니….’
딱히 그녀로부터 박해나 불이익을 받은 것은 없다.
설령 그럴 마음이 있다 한들, 하인켈은 그런 것을 용인할 성격이 아니니까.
그럼에도 답답함이 가시지 않는 이유는, 내가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태어났을 때 그녀는 제국에 있었고, 그녀가 돌아왔을 때 난 교화소로 보내졌다.
돌아온 뒤로도 내 쪽에서 이리저리 피해 다녔으니, 지금처럼 마주한 상황 자체가 거의 처음일 정도.
‘어느 정도는 의도한 거긴 했지만….’
정실 부인과 첩의 아들.
섣불리 만나 봤자 좋을 것이 없다는 정치적 판단이었고, 만나봤자 좋은 소리가 나올 리 없다는 지레짐작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내가 알고 있는 정보는 단편적인 것들뿐이다.
그녀가 제국 내에서 라인란트의 목소리를 내는 창구 역할을 한다는 것.
그리고 제국의 재상인 그녀가 있었기에, 본가의 이권을 빼앗으려는 제국에 맞서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는 것 정도.
“확실히, 똑 닮았네.”
“……?”
집중하지 않았다면 듣지 못할 정도로 작은, 그렇지만 부드러운 목소리.
무슨 말인지 채 되묻기도 전에, 프리실라가 날 향해 입을 열었다.
“그동안 많은 일을 했더군요. 클라인 공자.”
“아, 예.”
내가 대답하자 그녀의 뒤에 도열해 있던 문관들 중 하나가 그녀에게 서류를 내밀었다.
“콘웰 백작, 헥토르, 그리고 장벽까지.”
그동안의 내 행적을 정리한 문서.
그것을 다시 한 번 읽으며 프리실라가 계속해서 말했다.
“방계 세력의 일익을 무너트리고 후계 구도를 교란하기까지…. 그 짧은 시간에 했다고는 믿겨지지 않는 성과에요.”
이 가문을 다시 일으키자 결심한 지 어언 수개월.
가문의 최대 골칫거리인 방계를 척결할 계획은 차근차근 진행되는 중이었다.
‘그나저나, 소식이 빠르군. 장벽에서의 일도 이미 알고 있다니.’
상상 이상으로 빠른 그녀의 정보력에 새삼 놀라며 대답을 골랐다.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입니….”
“그렇지만.”
은은한 노기가 서린 프리실라의 한 마디에, 방금 전까지 하던 말이 멈췄다.
“갑작스레 광인이 된 콘웰 백작 때문에 그의 영지에서는 대혼란이 일었었죠.”
“엑?”
뜻밖의 쓴소리에 얼빠진 소리가 절로 나왔다.
“덕분에 우리 측 행정관들이 고생을 좀 많이 했어요.”
바꿔 말하자면, 그들을 지휘하는 자신 역시 노고가 많았다는 뜻.
그녀의 뒤에 늘어선 문관들의 눈초리가 사납기 그지없다.
‘야, 너냐?’
‘너 때문에 그렇게 야근을 했단 말이지?’
‘너구나?’
…라며, 눈으로 날 욕하는 행정관들의 시선을 애써 받아넘겼다.
‘와아, 눈빛으로 사람 잡겠는데.’
나와 행정관들이 그러고 있는 사이, 프리실라의 신랄한 평가는 계속되었다.
“헥토르 공자의 죽음 덕분에 폴와이번 영지와의 접경지역에 부담도 늘어났구요.”
“윽.”
“장벽으로 간 공자의 변호를 위해 쓰인 재원도 상당했죠?”
“으으….”
내가 벌여놓은 일의 뒤처리를 한 것이니, 뭐라 반박할 수도 없었다.
“결과적으로 실보다는 득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다음부터는 그로 인해 일어날 혼란도 생각하도록 하세요.”
“알겠, 습니다….”
어쭙잖은 정치력으로 발버둥 치는 나와는 다른 정확한 계산과 평가.
현장에서 구르고 구른 노련한 정치가의 안목에 절로 기가 질렸다.
“…설교는 여기까지 하고.”
할 말이 없어 어깨를 늘어트린 날 보던 프리실라가 잠시 뜸을 들인 뒤 입을 열었다.
“가문을 위해 두 팔 벌려 나서준 것. 그리고 이렇게 훌륭하게 자라준 것.”
“……?”
처음 그녀의 입이 열렸을 때 나온 작은 한 마디.
그때와 같은 부드러운 목소리가 날 향했다.
“라인란트의 공후로써, 자랑스럽습니다. 클라인.”
고개를 들자, 옅은 웃음을 지어 보이는 프리실라 공후가 보였다.
“감사, 합니다….”
흡족한 듯, 아련한 듯.
미소를 짓는 프리실라 공후에게 애써 대답하자, 그녀는 내 어깨를 두드린 아들인 델라인에게로 다가갔다.
‘…이건 뭐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아니고.’
어느새 밝은 얼굴로 담소를 나누는 델라인과 프리실라.
두 모자를 보며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그러고 보니, 클라인?”
뒤이어 생각났다는 듯 프리실라가 날 보며 물었다.
“시엘 공녀는 지금 별실에 기거하고 있다고 했나요?”
“아, 예….”
갑작스러운 그녀의 질문.
그곳에서 느껴지는 불안감에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최대한 빨리 만나봐야겠군요.”
“…만나다니요?”
시엘은 명목상 내 손님으로 되어있는데, 공후가 굳이? 왜?
어리둥절한 채 되묻는 날 향해, 프리실라가 말했다.
“결혼식 날짜나 식순에 대해서, 얘기나 나눠볼까 해서요.”
….
…….
………뭐?
“잠깐만요. 그게, 무슨…?”
“무슨 말이냐니, 설마 시엘 공녀에게 못 들었나요?”
못 들었냐니?
뭐를?
아니, 잠깐만. 그럼 프리실라 공후가 예정에 없이 찾아온 이유도…?
그렇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던 때.
쐐기를 박듯, 프리실라 공후가 날 보며 말했다.
“곧 한 가족이 될 분을 만나기 위해 제국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자세한 얘기를 나눠봐야 하지 않겠어요?”
그렇게 말하며 입을 가리는 프리실라 공후.
그런 그녀의 모습을, 이미 손익계산을 모두 끝마친 정치가의 모습을 본 나는 확신했다.
예고 없이 찾아온 시엘, 그리고 본인의 방문.
분주한 하인하녀들의 손에 지금도 시시각각 바뀌고 있는 저택의 풍경까지.
‘이미 시엘과 입을 맞춰놓은 상태에서, 판을 다 짜 놓았…?’
거기까지 생각한 찰나,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만면에 웃음을 띤 채 드레스 자락을 들어올리는 시엘의 모습.
그 모습을 보니, 정말로 정신이 아찔해졌다.
***
“결혼이라니, 언제 그런 일을 논의한 것이오?”
시엘과 프리실라의 문답은 클라인의 예상보다는 짧았다.
간단한 문안 인사와 안부를 묻는 것뿐.
나눌 말이 얼마 없다는 뜻이기도 했고, 사전에 그만큼 많은 대화를 나눴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연락이 온 건 한 달쯤 전이었어요. 급한 일이라면서 예고도 없이 찾아왔죠.”
푸념하듯 그렇게 말하며, 입가에 손을 가져간 프리실라가 입가를 두어 번 두드렸다.
“…….”
이것은 하인켈과 프리실라 사이의 신호.
제국에서 입수한 극비 정보를 얘기할 테니, 사람을 물리라는 신호였다.
‘역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군.’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인 하인켈은 프리실라와 함께 서재로 들어갔다.
“무슨 일이오?”
공작 부부가 함께 들어간 이상, 이곳은 집사장 버크만조차 들어갈 수 없는 금단의 영역.
마법적인 장치가 없다는 것을 수차례 확인한 프리실라는 그제서야 안심한 듯, 입을 열었다.
“폴와이번이 항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 알고 있죠?”
프리실라의 말에 하인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접경지역에 기사들이 배치되었고, 전략까지 수립된 상태.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프리실라의 표정은 편치 않았다.
“제국이 그곳에 대규모 네크로맨서 부대를 파견했어요.”
“흠.”
제국의 네크로맨서.
죽은 이의 시체를 사용해 병력을 늘리는, 제국군의 전쟁 병기들.
“새 전술을 수립해야겠군. 단장들에게 연락을….”
“그게 아니에요.”
하인켈의 말을 멈춘 프리실라가 입을 열었다.
“그들의 임무는 전투가 아니라 무언가에게 마력과 피를 공급하는 것이에요.”
“마력과…. 피?”
“네.”
그 많은 네크로맨서들이 합작이라도 한다는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던 하인켈은, 프리실라가 말한 한마디에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마력과 피를 공급할 ‘무언가’의 이름은…. 헬리안.”
“……!”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하인켈이 한참만에 프리실라에게 되물었다.
“그렇다면, 누님은 이미…?”
목이 잠긴 채 그렇게 묻는 하인켈에게, 선고와도 같은 프리실라의 한 마디가 들려왔다.
“죽었거나, 혹은 사람이라 부를 수 없는 괴물이 되었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