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 약혼자(3)
“고, 공간이동을! 어서!”
온몸을 지그시 누르는 압력에 익숙해질 무렵,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파아앗-!
마법사들의 발밑에 푸른 마법진이 생겨났다.
‘술식에 새겨진 좌표를 보아하니, 아일라시스 영지로 도망갈 심산인가?’
영지 한복판에서 이 난리를 쳐놓고 도망이라니.
대기 중인 스켈레톤에게 사격을 명령하려던 그때였다.
“어딜 가시나요?”
하늘에 떠오른 압축된 송곳이 날아가, 공간이동 마법을 시전 중인 마법사의 미간을 꿰뚫었다.
퍼억-!
꿰뚫었다는 수사로는 모자라다.
머리가 통째로 터져버렸으니까.
“젠장, 시엘 공녀님!”
“정녕 본가와 척을 지겠다는 겁니까!?”
짐짓 큰소리치고 있는 세 명이었지만, 그 모습이 퍽 우스웠다.
‘손발을 떨어대면서 큰소리라니, 겁먹은 개가 짖는 것도 아니고.’
돌발상황이긴 했지만, 이대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법.
“전 병력, 사격 준비.”
손을 든 채 그렇게 말하자 지붕 곳곳에 소환된 스켈레톤들이 일제히 석궁을 겨눴다.
“크…!”
“틀렸다. 후퇴! 후퇴한다!”
도망갈 구멍이 보이지 않는 상황.
그렇지만 남은 세 마법사의 판단은 빨랐다.
우우웅-!
두 명의 마법사가 앞으로 나서 같은 방어마법을 동시에 펼쳤다.
“밀라! 어서!”
“알고 있어!”
그러는 사이, 처음 나와 입씨름을 하던 마법사가 단체 이동 마법을 영창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
“어, 어어?!”
“뭐야, 왜 뒤로 밀려나는 거야?!”
방어마법을 펼친 두 마법사가 급히 뒷걸음질 쳤다.
마치 무언가에 밀려나는 것 같은 모양이었다.
“방어마법 절대 풀지 마세요. 알았죠?”
그 말과 함께 시엘이 앞으로 몇 걸음 걸어 나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주문을 영창중이던 마법사들 역시 뒤로, 더욱 뒤로 밀려났다.
‘…실드째로 짓뭉갤 생각이야?’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마법사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들 역시 시엘의 의도를 알아챈 듯했다.
“고, 공녀님?! 멈춰주십시오!”
“자기 마법에 깔려 죽는다니, 이건, 이, 이건…!”
“재밌지 않나요?”
두 손을 가지런히 앞으로 모은 시엘의 목소리는 온화하기 짝이 없었다.
“실드를 펼치면 실드째 짓눌려 죽고, 실드를 거두면 압축 송곳에 머리가 꿰뚫려 죽는다니.”
빠드득-!
가장 뒤에 있던 여자의 턱뼈가 압력을 이기지 못해 으스러졌다.
“으으으-! 으으-!!”
고통에 점철된 그녀의 비명을 듣자, 시엘은 흡족한 듯 말을 이어나갔다.
“저와 클라인의 추억 여행을 망친 벌 치고는, 꽤 재미있는 놀이지요?”
그런 시엘의 말이 들려오는 와중에도 그들을 짓누르는 압력은 계속해서 강해졌다.
빠각! 빠각-!
“읍-! 으으읍-!”
이젠 입을 열어 마법을 영창할 수조차 없었다.
코앞까지 다가온 실드에 밀려 벌레처럼 짜부라지길 기다릴 뿐.
“안돼…! 안…!”
자신들이 펼친 실드에 짓눌리는 아이러니.
‘그래, 이 이상 가면 곤란하지.’
그것을 지켜보던 난, 손을 뻗어 시엘의 눈앞을 가로막았다.
“거기까지 하세요, 시엘.”
내 말에 그들을 짓누르던 실드가 멈췄다.
“…?”
끔찍한 고통이 멈추자, 마법사들은 떨리는 눈으로 나와 시엘을 올려다보았다.
방금 전까지 보이던 기고만장한 태도는 진작에 사라진 뒤였다.
“다 죽여버리면 심문할 수가 없잖아요.”
내가 한 마디를 덧붙이고 나서야 주변을 짓누르던 압력이 완전히 사라졌다.
“허억…! 허어…!”
“씨발…. 이게, 이게 무슨…!”
압박에서 풀려난 마법사들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마치 도살장에서 풀려난 돼지들처럼 안도의 눈물을 쏟는 이들.
그걸 보던 시엘은 흥미가 다한 듯, 얼음장 같은 눈으로 그들을 보며 내게 말했다.
“저렇게 두면 또 도망칠 수도 있을 텐데요.”
“아뇨, 못합니다.”
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며 시엘의 물음에 답했다.
“우리 기사들이 그 정도로 무능하지는 않아서요.”
내가 그렇게 말하는 것과 동시에.
“이쪽이다!”
“포위해!”
듄켈의 목소리와 함께, 사방에서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들이닥쳤다.
“라인란트…?”
“어, 어떻게 이렇게 빨리!”
공간이동 마법이 발현되는 것과 동시에 저택을 나선 기사들.
하늘에 띄워놓은 내 밴시는 이미 그들을 감시망에 넣어둔 상태였다.
원초 계획상 내가 할 일은, 저들이 올 때까지 시간을 버는 것뿐.
‘설마 그 짧은 시간에 이 사달을 낼 줄은 몰랐지만 말이지….’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한 표정으로 돌아온 시엘.
그녀가 보인 기괴한 마법을 되새기는 사이, 포위를 마친 듄켈이 내게로 다가왔다.
“공자님, 괜찮으십니까?”
“문제없어. 저쪽이나 먼저 구속해.”
마법사들을 가리키자 그들이 흠칫 몸을 떨었다.
이미 기사들의 검이 자신들의 목을 노리는 상황.
주문을 외우려고 한다면, 그 순간 목젖을 도려낼 수 있는 거리였다.
“도시 한복판에서, 그것도 화염 마법을 질러댄 무뢰한들이다.”
라인란트 공자인 내 증언에 기사들의 눈에 일제히 불똥이 튀었다.
“화염?”
“저 개자식들이…!”
마법.
그중에서도 화염 마법은 북부인들의 역린과도 같다.
사시사철 건조한 기후에 건축물의 태반은 목재.
그런 이 지역에서 가장 위험한 재해는, 다름 아닌 화마(火魔)였으니까.
‘이런 기본적인 것조차 모르는 것들을 북부에 들이다니.’
그만큼 급한 것일지도 몰랐고, 신경 쓸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기가 차는 것은 다를 바 없지만.
“우, 우린 아일라시스의 마법사입니다! 면책권이…!”
뻐억!
뭔가 더 항변하려던 마법사의 말을 끊고, 그의 턱을 차올렸다.
“꺼어…!”
“북부 도시 한복판에서 화염 마법을 사용해놓고, 면책권?”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목소리에 노기가 서렸다.
아마 다른 기사들의 심정도 나와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지하 감옥에서 실컷 떠들어 봐.”
그 한마디를 신호로 기사들이 달려들어, 그들의 몸에 구속구를 채웠다.
“자, 잠깐만…!”
“이건 폭거요! 본가에 정식으로 서신을…! 아악?!”
제대로 항변할 틈조차 없었다.
집사장 버크만의 안배인지, 미리 준비되어있던 호송마차가 그들을 태우고, 곧바로 저택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하아….”
시엘이 만들어낸 사각 핏덩이와 곳곳에 낭자한 핏자국.
그것을 보던 난 낮게 한숨 쉬었다.
“할 일이 산더미인데, 산 넘어 산이군.”
아일라시스 공작가의 일원이 공작 영애에게 살해당한 사건이라니.
하인켈에게 어떻게 보고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다.
***
“너무 아쉬워요. 처음으로 하는 데이트였는데.”
“…….”
저택으로 돌아가는 마차 안.
마주 앉은 시엘은 멀어지는 라인란트 시와 내 얼굴을 보며 안타까운 듯 어깨를 늘어트리고 있었다.
붉어진 눈가가 촉촉해진 것이, 어지간히도 속이 상한 모양이다.
“…오늘만 날이 아니니까요. 기회가 되면 또 오죠.”
“저, 정말요?”
“예.”
무심하게 내뱉은 내 한 마디에 시엘의 표정이 단번에 밝아졌다.
겉보기에는 참 이쁜 영애였지만, 시엘을 보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었다.
‘저 얼굴로 방금 전 마법사들을 그 꼴로 만들었다 이거지….’
사람을 짓눌러 만든 네모반듯한 핏덩이.
저 순수해 보이는 얼굴과 그 광경을 동시에 떠올리니, 등줄기에 절로 소름이 돋았다.
‘파혼하자. 최대한 빨리.’
처음 만났을 때 내린 결정이 점점 더 확고해져갔다.
평범한 귀족 집안 영애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는 마당에, 미래의 배우자가 이런 미친 여자라고?
심지어 지금의 나보다 강한 마법사?
사양이다.
절대 사양이다!
차라리 날 때려죽여라!
“죽일까요?”
“쿨럭-!?”
마치 내 마음속 외침에 답하는 듯한 시엘의 말에 헛기침이 절로 나왔다.
“괜찮아요. 클라인?”
“괜찮…! 괜찮습니다. 그보다, 방금 그건 무슨 말씀이신지….”
애써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그렇게 묻자, 곧이어 시엘의 대답이 들려왔다.
“호송된 마법사들이요. 역시 그냥 없애버리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요.”
자기 가문 사람을 죽이겠단 말을 저리 태연하게 한다니.
‘역시 제정신이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난 고개를 저으며 시엘의 말에 답했다.
“그 자리에서 전부 죽였다면, 그걸 빌미로 가문 간 항쟁이 벌어졌을 겁니다.”
“항쟁이요?”
“예. 어느 정도는 그걸 염두하고 보낸 이들일 테고요.”
일부러 가문의 일원을 사지로 보낸 뒤, 그것을 빌미로 영지를 빼앗는 수법.
귀족들이 흔히들 사용하는 각본 중 하나다.
“그렇지만 반대로 저들을 살려둔다면?”
“아…!”
거기까지 말하자 시엘 또한 알겠다는 듯 내 대답을 대신했다.
“저들의 입을 빌어 가문의 결백을 증명할 수도 있고, 아일라시스 측에 책임을 물을 수도 있겠군요?”
“정확합니다.”
자기 가문을 엿 먹인다는데도 뭐가 그리 좋은지, 시엘의 입에서는 연신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하긴, 그 가문이 자길 죽이려 들었으니.’
그렇게 생각하며 몇 가지 이야기를 더 나누던 때.
“공자님. 도착했습니다.”
마부의 목소리와 함께 마차의 문이 열렸다.
“후우-!”
바람 잘 날이 없는 이놈의 집구석.
그래도 내 몸 하나 희생해 시간을 번 보람이 있었는지, 반나절만에 돌아온 저택은 한층 더 깔끔해져 있었다.
“폴, 나 왔어. 문 좀 열어줘.”
손님인 시엘을 개인실로 안내한 뒤, 저택 대문을 지키는 문지기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는 별 감흥 없이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크, 클라인 라인란트 제 2공자님-! 지금 막 돌아오셨습니다-!”
“어우, 깜짝이야?!”
평소 같았으면 노곤한 인사와 함께 스리슬쩍 문을 열었을 텐데.
이번엔 웬일인지 군기가 바짝 든 채 우렁찬 함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야, 너 왜 그래? 뭐 잘못 먹었어?”
“아닙니다-!”
“아니, 평소처럼 그냥 열면 되지, 왜 갑자기 소리를….”
“아닙니다-!”
안 그래도 시엘 때문에 머리가 아픈데, 이건 또 무슨 상황인지.
고개를 내저으며 저택 안으로 들어간 난,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 인간들이 단체로 약을 먹었나?”
저택 안에서 운동복 차림으로 근육을 과시하던 기사들은 전부 깔끔한 정복을 차려입었다.
경비병도, 하녀들도.
심지어는 저 델라인마저 무슨 연극이라도 하는 듯 정갈한 모습을 한 채 2층 계단에서 날 내려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어, 크, 클라인! 와, 왔어?”
“……?”
어색하기 짝이 없는 델라인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갔다.
그에게 얼굴을 가까이 한 뒤 서슬 퍼런 목소리로 물었다.
“뭔데.”
협박에 가까운 어조.
그렇지만 델라인은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뭐, 뭐냐니? 평소대로의 우리 저택이잖….”
“봉창 두드리는 소리 그만하고. 도대체 뭔 일이길래 다들 이 난리야? 뭐 황제라도 온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내 시선을 피하는 델라인.
계속해서 눈짓으로 그를 추궁하는 사이,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전히 사이가 좋아 보여서 다행이네요, 클라인.”
“!!!”
낯선, 그렇지만 익숙한 목소리에 절로 허리에 힘이 들어갔다.
“이, 이 목소리….”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온몸을 겨우 부여잡은 채, 천천히 등을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했다.
“설마, 이 어미의 목소리를 잊은 건 아니겠지요?”
고풍스러운 드레스를 차려입은 중년의 여사, 프리실라 공후가 날 보며 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