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8. 직업병.
“야, 야! 저기! 앞에!”
탐사한계선에 걸쳐있는 671번 감시초소.
예정된 사흘의 시간이 지나도 소식이 없는 클라인을 찾아 나서기 위해 장비를 손질 중이던 무렵.
동료 감시자의 목소리에 그 역시 밖으로 나와 그림자에 뒤덮인 빙원을 바라보았다.
“허, 진짜로 살아 돌아왔네.”
“내가 지금 헛것을 보는 게 아니지?”
탐사한계선 너머로 펼쳐진 미지의 땅.
그들이 그곳으로 향한다는 것은, 사실상 자살 선언과 진배없었다.
실수로라도 그곳에 발을 들이는 순간, 온갖 환각에 시달리는 마굴.
수십 년 전 보고서에 따르면, 같이 들어간 동료를 잡아먹었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돌 정도였으니까.
그렇지만 그들의 예상과는 달리, 클라인 공자는 한 치 흐트러짐 없이 빙원을 일직선으로 주파했다.
게다가 이제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돌아오기까지 했으니, 감시자들이 경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정말, 정말로 살아 돌아오신 겁니까?
“유령이나 언데드, 뭐 그런 거 아니죠?”
거기에 클라인은 갈 때와는 달리, 등에 뭔가를 짊어진 채였다.
그 미지의 땅에서 무언가를 가져오다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자, 감시자들의 눈에는 호기심에 앞서 공포감이 먼저 깃들었을 것이다.
“내가 언데드? 귀족 모독죄로 어디 잡혀갈 생각이냐?”
결국 감시자들은 그 특유의 퉁명스러운 말투를 듣고 나서야 클라인 공자가 돌아왔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한다.
한 가지 특이사항이라고 한다면, 그곳에서 가져온 것이 무엇인지, 그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것.
같이 동행한 감시자들에 의하면, 거대한 돌덩이 같은 질감과 강도였지만 무게감은 느껴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
“…보고하실 내용은 이게 전부입니까?”
“어. 전부야.”
파이가 내준 홍차를 홀짝이며 코락스의 추궁을 받아넘겼다.
초소에 돌아와서 감시자들에게 보고.
돌아오는 길에 부단장 보란에게 보고.
그리고 도착한 뒤 기사단장 코락스에게 보고.
도대체 라인란트 인간들은 왜 이렇게 보고서를 좋아하는지.
장벽으로 돌아온 후 적어도 반나절은 이놈의 보고서에 파묻혀 지냈으니, 넌더리가 나는 것도 당연하다.
“이런 식으로 허위보고하실 것 없이, 그냥 비밀이라고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내 보고서를 흔들며 그렇게 말했지만, 난 모르는 일이라는 듯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비밀이라니, 난 그런 거 없는데?”
“그럼 그렇게 알고 있도록 하죠.”
짧은 한숨과 함께 코락스가 내 보고서에 불을 붙였다.
“뭐야, 다시 써오라고?”
“아뇨.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아닌 밤중에 집무실에서 불장난하는 기사단장이라.
책상 위에서 불타 사라지는 내 보고서를 보며 그렇게 말하자, 코락스는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공자님께서는 전투 이후 장벽에서 두문불출하셨고, 특이사항은 없었다.’ 본가에는 이렇게 보고드리죠.”
“괜찮겠어? 허위 보고가 될 텐데.”
내가 그렇게 되묻자 코락스는 잠시 생각하더니 어깨를 으쓱였습니다.
“라인란트 공자를 탐사한계선 너머로 보냈다고 보고하느니, 차라리 허위보고가 나을 겁니다.”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네.
딱히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한 난 그런가보다,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폐쇄성으로는 북부 제일가는 큰까마귀가 내 행적을 은폐해준다니, 고마워서 몸둘 바를 모를 정도지 뭐.
그렇게 생각하며 찻잔에 남은 홍차를 비웠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언제나 변함없는 북부 설원의 전경.
그리고 그곳에서 조금 시선을 내리면, 침울한 얼굴로 뭔가를 옮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뭐 하는 거지? 장벽 수리는 마무리됐다고 하지 않았나?”
“장벽 수리는 마무리됐습니다. 이제 가장 중요한 공사가 남았죠.”
“…가장 중요한 공사라.”
장벽을 지키는 큰까마귀 기사단에게, 장벽 수리보다 중요한 것.
무슨 말인지 알아챈 난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망자들 시신. 지금 어디에 있어?”
장벽을 수리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가족을 잃은 자들을 치유하는 것.
나와 비슷하게 침울한 얼굴을 한 코락스가 문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보란을 불렀다.
“…이곳이 영안실입니다.”
장벽 지하에 마련된 공동.
영안실이라는 말과는 달리, 그곳에 놓인 시체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평온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기사가 둘, 감시자가 다섯. 경계병이 여덟….”
혹한의 추위에 얼어붙은 그들은, 생명을 다하는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긴박한 표정이나 고통스러운 표정.
혹은 끝까지 싸우겠다는 듯 분노에 찬 표정까지.
그것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온전한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짓이겨진 채였다.
“시신은 이대로 불태우는 건가?”
얼굴을 찌푸린 채 그렇게 묻자 보란이 이를 악물었다.
“예를 갖추고 싶습니다만, 여의치가 않습니다.”
“그렇겠지.”
이곳은 외부의 출입이 금지된 장소.
장례를 주관할 신부도, 시체를 다뤄줄 장의사도 없는 외진 곳이었다.
“오래 봐서 좋을 것이 없습니다. 이제 돌아가심이….”
“장례식. 정확히 언제지?”
“…예?”
보란의 말이 끝나기 전에 묻자, 잠시 얼을 타던 그가 재차 물었다.
“장례식 언제냐고.”
“예, 일주일 뒤에….”
“일주일. 확실해?”
그들의 시신을 지켜보며 그렇게 묻자 보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주일…. 일주일이라….”
그들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고민을 거듭하던 것도 잠시.
“좋아. 일정에 맞출 수 있겠네.”
생각을 마친 난 보란을 향해 말했다.
“이 시신들. 장례식 날까지 내가 염해놓을게.”
“…….”
내 말이 끝나고, 한동안 이어진 침묵.
“물론, 가족들 허락은 받고 할 거야. 그래서 말인데, 이 사람들한테 편지 좀….”
“무, 무슨 말도 안되는…!”
사족을 덧붙이자, 그제서야 멍하니 내 말을 곱씹던 보란이 반응했다.
“말도 안된다니? 나 뭐 하는 사람인지 까먹었어?”
“압니다, 네크로맨서! 그렇지만 공자님은 라인란트 공자 아니십니까?!”
못 들을 말을 들었다는 듯 호들갑을 떠는 보란을 보며 되물었다.
“공작가 아들이면 뭐, 시체 만지지 말래?”
“아니, 그 말이 아니라, 전례가 없는 일 아닙니까…!”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가는 것은 아니다.
공작가 자제가 시체를 염한다니, 대륙 귀족사 전체를 찾아봐도 전례가 없을 테니.
그렇지만 코락스의 집무실에서 이들에 대해 들었을 때부터, 난 꼭 이 일을 할 작정이었다.
‘따지고 보면 이들은, 나 때문에 죽은 것이기도 하니까.’
언데드 군집을 만들어 장벽을 습격한 아키몬드 교단.
그 이름처럼, 그들이 신으로서 숭배하는 대상은 다름 아닌 나다.
심지어 그들이 노리는 것은, 내 머릿속에 들어있는 사령술에 대한 지식.
이들에게 닥친 죽음의 원인을 타고 올라가면, 그 모든 인과에 내가 껴 있는 셈이었다.
‘지나친 확대해석일 수도 있지. 어쩌면 그냥 직업병일 수도 있고.’
내심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미 마음속으로 내린 결정을 번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난 보란을 향해 입을 열었다.
“동료들 마지막 가는 길인데, 전례니 뭐니 그런 게 중요하겠어?”
내 한 마디에 말문이 막힌 것인지, 보란이 급히 고개를 숙였다.
“다, 단장님께 보고드린 뒤…. 아, 알려드리겠습니다!”
이후로도 한참 말을 더듬던 그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황급히 코락스의 집무실을 향해 달려왔다.
몇 분 정도가 더 지났을 때, 보란의 입을 통해 코락스가 전한 것은 ‘뜻대로 하라’는 말이었다.
***
클라인 공자가 장벽 지하에서 두문불출한지 일주일.
장례식 당일, 화장터에 모인 유가족들은 초조한 마음으로 클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기, 온다.”
누군가가 먼저 발견한 듯, 조용히 그의 등장을 알렸다.
오늘 장례를 진행하는 열다섯 명의 시신.
운구를 맡은 망자의 가족, 친구들과 함께, 장례를 주관하는 클라인 공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
“….”
화려한 귀족들의 옷이 아닌, 검은 로브 차림.
일주일 만에 장벽 밖으로 나온 클라인 공자는 평소에 보여주던 가벼운 미소는 간데없이, 시종일관 무겁게 가라앉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소중한 가족의 몸을 믿고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예, 예에….”
“라인란트께서 직접 아들을 살펴주시니, 영광일 뿐입니다….”
운구된 시신을 기다리는 유가족들에게 클라인 공자가 먼저 나서 예를 표하고, 그들에게 먼저 시신을 보였다.
“아아…!”
새하얀 수의 차림에, 잠든 듯 평온한 표정.
두 손을 맞잡은 채 누워있는 그들의 모습은, 죽은 것이 아니라 잠에 빠져 있다고 해도 될 정도였다.
“고, 공자님…!”
시신을 확인한 유족들을 돌아보는 사이, 한 무리의 기사들이 떨리는 목소리로 클라인을 불렀다.
“무슨 일이야? 시신에 문제라도….”
“아니, 그게 아닙니다.”
클라인의 물음에 답한 기사들은 정복 차림을 한 채 누워있는 동료의 시신을 다시 한 번 보았다.
분명, 언데드의 강완에 머리를 맞은 동료였다.
차마 손댈 수 초자 없을 정도로, 찌그러진 머리를, 그 눈으로 직접 봤는데….
“이걸 전부…. 손으로 수습하신 겁니까?”
살아있을 때와 아무런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된 동료의 얼굴.
그제서야 그들의 눈에는, 오랜 작업으로 부르튼 클라인의 손이 비쳤다.
“큽…!”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참지 못한 몇몇 기사들이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감…. 감사합니다…!”
몇몇 기사들은 결국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눈물을 흘리며 클라인의 손을 잡았다.
오랜 충성의 대상인 라인란트가 직접 시신을 수습하고, 마지막을 배웅한다.
기사 된 자로써, 장벽을 지켜 온 자로써.
이 이상 가는 찬사가 어디에 있겠는가.
화륵-!
마지막 인사를 마친 시신은 이윽고 가족들의 손으로 쌓아 올린 장작더미에 누워, 하늘로 올라가게 된다.
감시자들의 손에 옮겨진 열다섯 명의 시신이 장작 위에 나란히 눕고, 혼의 환원을 관장하는 네크로맨서가 그들의 시신에 안식의 룬을 새겼다.
[안내자, 클라인 라인란트가 떠나는 이들의 앞날을 밝힙니다.]
짧은 수인과 함께 그들의 시신에 푸른 빛이 내려앉았다.
[온 힘을 다해 살아간 그들의 삶은 남겨진 이들의 버팀이 되고, 남은 이들의 배웅은 떠나는 이들의 날개가 되니.]
그 말을 신호로, 횃불을 든 기사들이 장작에 불을 놓았다.
[하늘을 향하는 그대들의 여행이 평안하기를, 혼과 염을 다해 기원합니다.]
자그마한 불씨에서 시작해, 점점 크기를 키워가는 불꽃.
뒤늦게 이별을 실감한 듯, 남은 이들의 울음소리가 장벽을 한가득 메우고 있었다.
“후우…!”
떠나는 이의 육신을 실은 불꽃이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모두가 슬픔에 잠겨 고개를 숙일 때.
유일하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 클라인은, 맑은 얼굴로 하늘을 향하는 열다섯 혼을 보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클라인의 옆에서 들려온 것은 기사단장 코락스의 목소리였다.
“고맙기는.”
일주일간 쉬지 못한 듯 피곤을 감추지 못한 클라인이 하늘을 보며 답했다.
“이게 원래 우리들 일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