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44화 (44/209)

044. 얼음성, 그리운 내 집(3)

“실패라니?! 실패라니! 그게 지금 무슨 말인가-!”

시야가 몽롱하게 흐려지는 것도 잠시.

황망하게 울려 퍼지는 비명에 가까운 절규가 내 정신을 바로잡았다.

‘좋아. 제대로 보이는군.’

저절로 움직이는 시야와 긴박한 분위기.

술식이 제대로 작동한 것을 확인한 난 곧바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벼, 별동대와의 연락이 전부 끊겼습니다. 정황상, 통로에서 모두….”

“그러니까 그 통로를 어떻게 알아냈느냔 말이냐! 그 통로는…!”

“아키몬드 님께서 직접 만드신 것들이지.”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가 남자의 말을 도중에 끊었다.

“교, 교주님!”

방금 전까지 어수선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교주…. 저자가 이 교단의 수장쯤 괴는 인물인가 보지?’

바닥을 바라보는 네크로맨서의 시야에 답답해하면서도, 빠르게 상황을 파악한다.

“며, 면목 없습니다. 완벽한 작전이라 생각했는데….”

“완벽이란 말을 그리 함부로 쓰면 안되지, 질.”

질.

네크로맨서의 기억을 헤집자 그가 이 작전을 계획한 장본인이라는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이 녀석이 이 웃기지도 않는 침공을….’

그의 얼굴을 머릿속에 새기며 분을 삭이고 있을 때였다.

“억?! 커억…!”

질이라고 불린 남자의 신음 소리가 들려오고, 고개를 숙인 네크로맨서들이 술렁거리고 있었다.

‘뭐야, 작전에 실패했으니 죽인 건가?’

그렇게 생각하는 찰나, 네크로맨서의 시야가 위로 올라가고, 질이라 불린 네크로맨서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소, 송구스럽습니다…! 제발, 기회를…!”

“기회…. 기회라….”

한 손을 든 채 생각에 잠긴 교주.

저녁 메뉴를 생각하는 듯 가벼운 표정과는 달리, 공중에 떠오른 질은 당장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 헐떡거리고 있었다.

“질이 임무를 실패한 것이 이번이 처음인가?”

“예, 그렇습니다.”

평이한 어도로 붇는 것과 거의 동시에 대답이 들려왔다.

교주 뒤에 도열한 깡마른 체격의 남자.

‘이것 좀 보게?’

음울한 그의 얼굴을 보자 교주보다도 그에게 더 흥미가 돋았다.

다른 네크로맨서들과는 달리, 어느 정도 체계가 잡힌 마기.

페일의 언데드와 싸워본 난 직감할 수 있었다.

저 남자는, 제국의 네크로맨서라는 것을.

‘탈영? 아니, 그렇다면 기사단이 출동했겠지. 그렇다면….’

그 광경을 보는 사이,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교단의 네크로맨서와 제국이 사용하는 사령술은 전부 반혼술을 발전시킨 형태라는 것.

‘제국이 어떤 형태로든, 교단의 사령술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말이다.’

고민거리가 하나 더 늘어난 상황이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교단과 제국의 연결고리.

제국이 아키몬드 교단 같은 살인집단과 연루되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제국을 공격할 재료가 될 테니까.

‘기억 속 광경이라는 게 아깝지만, 어쩔 수 없지. 증거는 나중에….’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던 때였다.

털썩!

질이라고 불린 남자를 속박한 검은 기운이 거둬지고, 그의 몸이 땅바닥을 굴렀다.

“허억…! 꺼억! 우, 우워엑?!”

질식하기 직전에 풀려난 듯, 가쁘게 숨을 쉬던 질이 헛구역질을 시작했다.

“허허허, 그렇다면 한 번 정도는 지켜봐야겠지.”

겁에 질린 네크로맨서의 시선이 교주의 안색을 살폈다.

느긋한 노인의 너털웃음.

그렇지만 그 눈 속에 담긴 음습한 기운이 그의 오금을 저리게 했다.

“작전이 실패한 이상 이 설원에 머무를 이유는 없지.”

야영지 곳곳에서 대기 중인 네크로맨서들이 교주의 한 마디에 몸을 일으켰다.

“우선 플리시안으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시체를 찾아, 후일을 기약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교주의 명령을 받은 네크로맨서들이 곧바로 짐을 챙겨 행렬을 이루기 시작했다.

아직 남아있는 언데드들과 검은 로브가 뒤섞인 기괴한 행렬.

그렇지만 바닥에 엎드린 질과 몇몇 네크로맨서들은 그 행렬을 멀리서 지켜볼 뿐, 그들과 합류하지 않았다.

“질.”

“예, 예…!”

교주의 부름에 곧바로 몸을 일으킨 그가 답했다.

“남은 뒷정리는 자네와 부하들에게 부탁하지. 그래 줄 수 있겠나?”

인자한 노인과도 같은 목소리.

그렇지만, 그것을 듣는 질의 얼굴은 창백하기 그지없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허허, 고맙네. 고생해주게.”

그의 어깨를 두드린 교주가 뒤늦게 행렬에 합류했다.

그리고 그의 모습이 설원의 풍경 속에 묻혀 희미해질 때쯤.

“질. 이렇게 되면 우리는…!”

겨우 호흡을 진정시킨 질에게 한 무리의 검은 로브들이 몰려왔다.

“그래. 이제 더 이상 뒤가 없어.”

굳은 표정으로 그렇게 말한 질이 교주가 사라진 방향을 보며 오만상을 찌푸렸다.

“교단 최대규모의 작전이 실패한 이상, 더 이상 우리 계파가 있을 곳은 없다.”

“그, 그러면 우린…?”

“늦든 빠르든, 언젠가는 숙청되겠지.”

그 말에 내 시야의 주인을 포함한 네크로맨서들이 이를 악물었다.

“제길! 어쩐지 별동대에 포함 시킨 것이 죄다…!”

“신성한 성전 와중에 권력 놀음을 해대다니!”

“그만!”

분개한 동료들의 주의를 환기한 질이 일갈했다.

분을 삭이는 듯 하지만, 그 역시도 주먹 쥔 손이 떨리고 있었다.

“성역으로 간다.”

“?!”

성역.

얼음성을 가리키는 그 낯간지러운 말에 실소가 절로 나왔다.

“그, 그렇지만 그곳은?!”

“그럼 이대로 얌전히 저들 손에 죽을 생각인가!”

“……!”

질의 외침에 더 할 말을 찾지 못한 네크로맨서들이 주먹을 쥐었다.

“애당초, 저 교주의 힘도 성역에서 온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라고 그것을 얻지 못할 이유가 없지!”

그의 설득이 계속되자 마음이 동한 듯, 몇몇 네크로맨서들이 몸을 일으켰다.

“성역으로 가서, 아키몬드 님의 성물을 찾아내자! 그것을 가지고 돌아간다면 우린 다시 일어설 수 있어!”

결의인지 광기인지 모를 발악.

그 외침을 듣는 것과 동시에 시야가 암전되었다.

제압한 영혼의 기억을 읽는 술식, 주마등(走馬燈)이 모두 끝난 것이다.

***

파스스스…!

비쩍 마른 네크로맨서의 몸이 눈 덮힌 빙원에 헌신짝처럼 버려졌다.

“금방 꺼져버릴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오래 버텨줬군.”

혼의 존재를 깎아 기억을 엿보는 반혼술, 주마등.

혼이 완전히 소모될 때까지 기억을 재생한 결과, 그것을 버티지 못한 몸이 재가 되어 흩날리는 것이다.

퍽-!

잿더미로 변한 그의 시신을 차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녀석의 기억에 따르면, 이미 교단의 대부분은 이곳을 떠났다는 말이군.’

그리고 이 자와 같이 빙원으로 향한 이들의 수는 약 오십 명 정도.

그렇지만 추정컨대, 얼음성에 도착한 인원은 절반이 채 되지 않을 것이다.

“멍청한 것들.”

내가 서 있는 이곳, 빙원은 침입자에게 온갖 환각과 착란 등 정신적인 이상증세를 보이게 하는 마굴이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빙원 중심부에 우뚝 솟아 있는 얼음성.

그곳에 새겨진 북부인들의 잔류사념이 침입자의 정신을 잠식해나가는 것이다.

예외가 있다면, 그들의 일원으로 인정받은 혼의 소유자.

그들 모두에게 영체를 부여하고, 대륙을 휩쓸 힘을 제공한 얼음성의 주인, 아키몬드.

혹은 그들의 원혼을 정면으로 받아내며 얼음성을 공략한 기사.

베르켈 라인란트 정도겠지.

‘그런 이점을 가지고도 내 요새에서 목이 잘렸으니, 웃기는 일이지.’

쓴웃음과 함께 회상을 털어내고, 눈앞에 닥친 상황에 집중했다.

역량을 가늠했을 때, 얼음성의 기운에 저항할 수 있는 이는 잘 쳐줘 봐야 스물.

나머지 네크로맨서들은 먼저 만난 그 자처럼 미쳤을 터였다.

“적이 얼마나 있는지는 파악했고, 남은 건 위치로군.”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의 시신, 정확히는 그와 이어진 발자국을 보았다.

그동안 눈이 내리지 않았는지, 발자국 일부가 지워지지 않은 채 남아있는 상태.

“이 정도면 충분하지.”

정보와 혼을 제공한 것도 모자라, 적의 위치까지 알려주다니.

참 아낌없이 주는 버러지가 아닐 수 없다.

방금 차올린 잿더미를 떠올리면서 계약문 하나를 작동시켰다.

- 키이이이이-!

하늘거리는 반투명한 여인의 형상.

하늘의 떠오른 밴시를 향해 수인을 긋자,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어느 한 방향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잠시 후.

- 아아아아-!

멀리서 들려오는 밴시의 신호.

그것을 따라 한 시간 정도를 걷자, 멀찍이서 한 무리의 네크로맨서들이 보였다.

생각했던 대로, 그 수는 스무 명 정도.

그들을 호위하는 언데드 역시 백 구 정도로, 수가 한참 줄어있었다.

“질 주교가 들어간 지 벌써 사흘째야! 왜 연락이 없지?!”

“동료들은 미쳐버리고, 식량도….”

“지, 지금이라도 도망가야 하는 거 아니야?”

“도망가서 어디로 간단 말이야!”

장벽을 습격했을 때와는 달리, 잔뜩 위축된 모습.

그 모습을 확인한 뒤, 곧바로 눈 속에 몸을 파묻었다.

“역시, 다 복구하지 못했어.”

내가 주목한 것은 난민 같은 그들의 몰골이 아닌 언데드였다.

그들이 사용하는 반혼술.

시체를 이용해 만들어내는 언데드는 만들기 쉽고, 강력하다.

이미 있는 시체에 혼을 불어넣기만 하면 되니 나처럼 언데드의 몸을 설계할 필요도 없고, 그만큼 빠르게 만들어지니 술자의 부담도 적으니까.

‘그러니 제국도 반혼술을 발달시킬 수밖에 없었겠지. 전투에서 써먹어야 하니까.’

그렇지만 반혼술은 그 장점만큼 단점도 명확한 계파다.

그들의 가장 큰 강점이자 약점은 시체.

더우면 썩고, 추우면 얼어붙는 시체다.

쩌적!

그들을 호위하는 언데드들은 이미 혹한을 견디지 못한 채 곳곳이 얼어붙고, 갈라지고, 깨지고 있었다.

“수적으로는 한참 불리하지만, 밤이면 해 볼 만 하겠군.”

네크로맨서들은 머릿속을 울리는 하운팅에 저항하는 것만으로도 벅찰 터.

생각을 마친 난 곧바로 몸을 숨겨, 눈 속을 파고 들어갔다.

***

“이봐, 교대시간이야.”

“으으…. 버, 벌써?”

동료의 호출에 네크로맨서 댄은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제길, 머리가….”

아키몬드의 성역, 얼음성.

그중에서도 이곳은 얼음성을 유지하는 다섯 기둥 중 하나, ‘통곡의 창’이다.

그 장엄한 모습에 가슴 벅차하던 것도 잠시.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길 잃은 영혼들의 울음소리와 환각, 환청.

그리고 그로 인해 미쳐버린 동료들의 변절이었다.

“후우…!”

마지막 남은 건량을 입에 넣은 댄이 자신들을 지키는 언데드들을 바라보았다.

“씨발, 또 갈라지고 있잖아…!”

장벽의 혹독한 추위도 견뎌내던 자신의 걸작.

그렇지만 그 설원지대를 넘어 도달한 이곳의 한파는 상상을 초월했다.

“역시, 이 이상은 무리야.”

사흘.

이 말도 안되는 추위에서 질 주교를 기다린 시간이다.

그동안 계속된 압박감과 환청은 그의 이성을 날려버리기에 충분했으니.

“나머지는 전부 자고 있으니, 이 틈에…!”

자신들을 지키는 언데드들 외에 깨어있는 네크로맨서는 없는 상황.

기회를 포착한 댄이 자신의 언데드를 한 곳으로 불러모은 그 순간이었다.

콰직-!

좀비의 몸을 뚫고 쇄도한 검은 물체.

가슴에서 느껴지는 화끈한 감각에 눈을 크게 뜬 댄이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이, 이게 뭐야….”

자신의 가슴팍을 꿰뚫은 검은 막대.

석궁에서 발사된 쿼렐이었다.

“꺼, 꺼어…?!”

심장이 꿰뚫린 채 쓰러진 댄의 몸.

멀찍이서 그것을 지켜보던 클라인은 입맛을 다시며 입을 열었다.

“어째 이놈의 석궁은 가면 갈수록 인연이 깊어지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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