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40화 (40/209)

040. 오! 나의 신이시여(5)

“하하하! 하하하하하하-!”

웃었다.

지금 내 눈앞에 닥친 상황도, 적들의 존재조차도 잊은 채 웃었다.

저들의 면면을 보며 한번 더 웃었다.

“기쁜가? 그래, 기쁘겠지! 그대 또한 드디어 자신이 있어 마땅한 곳을 찾은 것일 테니!”

내 웃음을 본 다른 남자가 한층 더 기고만장해하며 내게 말했다.

“교주님은 그대의 뇌를 적출하라 명하셨네만, 우리들의 생각은 다르네! 그대는 우리와 함께 할 자격이 있어!”

그렇게 말한 남자가 내게 손을 뻗자, 처음 말을 건 남자가 그의 말을 거들었다.

“우리와 함께하십시오 클라인 공자! 함께 위대하신 아키몬드 님의 부활을…!”

“위, 위대하대! 아키몬드가! 흐하하하하?!”

내 이름을 대며 숭고하다는 등 난리를 치는 저 몰골을 보며 한번 더 웃었다.

“하하, 하하!? 하하하하!!!”

웃고, 웃고 또 웃는다.

웃지 않으면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웃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 자리에 서 있기가 힘들었다.

‘그래, 왜 이런 것들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다시 생각해보면 이상할 것이 없었다.

온 대륙을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간 한 남자.

그 이야기가 와전된다면, 이런 것들이 튀어나올 수도 있지.

아키몬드를 동경하며 태어난 종교집단.

신이 아닌 사람을 모시는 사이비.

내 인생, 내 업적, 내 비극.

그것들을 구실삼아, 제 잇속을 챙기려 드는 구더기들이.

하나쯤 나와도 이상할 것이 없지!

“뭐지?”

“미친 것인가? 갑자기 왜….”

내가 웃는 모습이 퍽 기괴했는지, 뒤쪽에 선 다른 네크로맨서들이 웅성거렸다.

그와 비슷하게 이상한 눈으로 날 쳐다보던 남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고, 공포 때문에 이성이 마비된 것인가? 아니면 우리들의 숭고한 뜻에 감동….”

“하하하?! 감동, 그래! 감동했다! 이 미친놈들아! 하하하하하-!”

저 구더기가 방금 뭐라고 말한 거지?

아, 모르겠다.

너무 웃겨서, 진짜 너무 우스워서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하하…. 하하하…!”

너무 웃다보니 이제는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

만일 이 녀석들의 목적이 내 목숨이라면, 아마 날 웃겨 죽이려는 속셈이 분명할 거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런 것이 아니고서야, 저딴 몰골을 하고 내 후계자니, 내 신도니 지껄일 수 있을 리가 없을 테니까!

“…….”

“……….”

우레와 같던 환호 소리가 내 웃음소리에 묻혀 힘을 잃었다.

황홀감에 찬 남자의 표정도, 그것에 동조하던 다른 이들의 얼굴도.

끝을 모르며 계속된 내 광소에 힘을 잃고, 점차 입을 다물었다.

“하……!”

겨우 웃음을 멈춘 뒤, 고개를 들어 마른 숨을 내뱉었다.

비참했다.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내 심장에 검을 박아넣은 영웅은, 몰락했는지는 몰라도 올곧은 이들을 남겼다.

답답할지언정, 영웅의 후예를 칭하기에 부족한 것이 없는 이들을 남겼단 말이다.

그런데 반해, 내가 남긴 것은 어찌 이 모양 이 꼴이란 말인가.

“결국 이렇게 다시 확인하는구나.”

한탄하고, 탄식하며, 비탄한다.

역병으로 죽어간 북부인들의 원을 풀고자 일어났는데.

외면 속에 죽어간 이들을 온 세상에 알리기 위해, 그 보잘것없는 생을 전부 바쳤건만.

그 결과가, 내 눈앞에 선 저것들이라니.

내 탄식은 이해하지도 못한 채.

내가 대륙을 휩쓴 이유는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그때 나타난 힘과 결과에만 눈이 멀어, 자기 뱃속을 챙길 궁리뿐인 구더기들이라니…!

“뒤틀린 원이 남기는 것은, 결국 이런 오물들뿐이었어.”

내 삶이 남긴 것은, 결국 이런 것밖에 없다.

비참한 복수자의 말로는, 결국 똑같은 쓰레기만을 세상에 흩뿌렸다.

그러니 어찌 웃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찌 비웃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토록 혐오해 마지않던 저 무지렁이들을 낳은 것이, 다름 아닌 내 삶인데.

“그….”

“저, 저…….”

눈앞에 선 이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내 웃음이 멎고, 내 표정이 멎고, 내 감정이 멎는 그 순간까지.

날 마주 본 네크로맨서…. 아니, 네크로맨서 흉내를 내는 무지렁이들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쿠우우우우…!

내가 그들의 앞에 나타났을 때부터 풍기고 있던 짙은 마기.

망자를 부르고, 그들의 원을 빌어, 산 자의 세상과 죽은 자를 매개(媒介)하는 검은 힘.

이번 생을 살아오면서, 이토록 짙은 마기를 뿜어본 적이 없었다.

“얼마나 더 있나?”

성대를 타고 망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산 자의 영혼을 울리는 스산한 음성.

흠칫한 남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내 말에 대답했다.

“다, 당연히 우리의 동지들은 대륙 전체에 퍼져있다! 이번 습격으로 장벽을 장악하기만 하면…!”

“닥쳐.”

짧은 말 한마디에 남자의 입이 닫혔다.

“크…?!”

사령술의 근원은 마기.

같은 네크로맨서들끼리의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마기의 농도이다.

그리고 지금 내 앞에 선 저들의 마기는, 마기라고 부를 수조차 없는 미천한 수준.

내가 내뿜는 기운에 범접하는 것은 결코 불가능하다.

“내가 물은 건 네놈들 자기소개가 아니야. 대륙에 퍼진 너희 교단의 수, 위치, 조직구성. 이런 정보를 물은 거다.”

그렇게 말하자 한 걸음 뒤로 물러선 남자가 이를 악물었다.

“오, 오만하군요 공자! 그런 걸 쉽사리 알려줄 것 같습니까?”

“그래? 그럼 됐어.”

쿠우우-!

지하 통로를 뒤덮은 내 마기가 그들의 심장을 옥죄어 들어갔다.

“장벽 너머에 있는 네 동료들에게서 들으면 될 테니까.”

명백한 적의.

그것을 감지한 무지렁이들이 일제히 전투태세를 갖췄다.

크르르르르…!

멀리서부터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는 언데드들.

야생동물들과 몬스터의 사체를 기워 만들어낸 누더기들이었다.

“유감입니다. 더러운 귀족들 사이에서 네크로맨서로 살아온 그대라면, 우리의 대업을 이해…!”

선두에 선 남자가 그렇게 말한 순간.

푸욱-!

더 참지 못한 난 그의 정수리에 화살을 박아넣었다.

“어……?”

짧은 단말마조차 내지르지 못한 채, 남자의 몸이 통로 바닥에 널브러졌다.

“젠장, 어느 새?!”

“다들 전투준비! 클라인 공자를 붙잠아라!”

저들이 예상밖의 기습에 당황하는 사이, 난 동굴 전체에 뿌려놓은 마기를 제어하며 입을 열었다.

[부르니, 답하라. 산자의 혼을 모욕한 자들을 단죄하라.]

마기에 의지를 실어 소환문을 작동시켰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내는 서른 구의 스켈레톤.

이전과는 달리, 중장갑으로 보강한 새로운 형태였다.

촤르르륵!

전열의 장비는 거대한 워 실드와 짧은 글라디우스.

후열은 장창과 궁병.

일사불란하게 진형을 갖춘 스켈레톤의 방벽 사이에서, 검은 갑옷을 두른 기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스켈레톤에 어떻게 저런 무장을?”

“게다가 저건…. 데스나이트가 아닌가?!”

곳곳에서 동요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지만 그에 굴하지 않으려는지, 그들이 몰고 온 수많은 언데드들이 이를 드러내며 날 위협하고 있었다.

‘한 명당 다룰 수 있는 언데드는 많아야 열 구…. 제국 놈들과 비교해도 격이 떨어지는군.’

조직원 전부가 이따위인지, 아니면 말단들을 화살받이로 내보낸 건지는 몰랐다.

사실,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았으니까.

"곱게 죽이진 않을 테지만, 그래도 너희들은 행운이라 여겨라."

선전포고를 하듯, 그들을 마주 본 채 입을 열었다.

"네놈들을 보낸 대가리는, 죽여달라고 애원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실제로 제국의 네크로맨서 한 명은 그렇게 됐고 말이지.

그렇게 첨언하며, 난 그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전진.”

짧은 내 명령과 함께 스켈레톤 군단이 일제히 앞으로 나섰다.

쿵-! 쿵-! 쿵-!

한 몸처럼 움직이는 스켈레톤들의 발소리에 움찔한 그들이었지만, 이윽고 몇몇 무지렁이들이 평정을 되찾았다.

“좁은 지형이니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건방지기 짝이 없군. 쳐라!”

그들의 누더기들 또한 방벽을 향해 돌진해갔다.

- 크아아아아-!

“키이이이이-!”

망자의 함성과 괴물의 괴성이 뒤섞인 그 순간.

투콰앙-!

그림자에 뒤덮인 무기와 살덩이들이 부딫혀, 피와 육편을 사방에 흩뿌리기 시작했다.

- 크아아아!

진형의 전면을 감싼 워실드가 육중한 그들의 몸을 막아내고, 후열에 도열한 장창이 일제히 그들의 몸을 꿰뚫었다.

후두두두둑-!

자신들의 심복을 내보낸 네크로맨서들에겐, 이따금씩 궁수들의 화살 세례가 쏟아졌다.

“크아악?!”

“제길, 남은 것들도 꺼내라! 술자를 죽여!”

동료가 두어 명 정도 주검으로 변하자 뒤늦게 위험을 느꼈는지, 수십 구의 좀비들이 추가로 생겨났다.

“크르르르르…!”

이번에는 동물이나 몬스터가 아닌 사람으로 만든 좀비.

그들 중 몇몇은 장벽을 지키는 경계병의 갑옷을 입고 있었다.

콰직! 콰직!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장창이 선두에 선 괴물들의 몸을 꿰뚫었다.

방패벽을 건너온 몇몇 언데드들이 내게로 쇄도했지만, 그것을 막는 것은 데스나이트, 헥토르의 몫이었다.

촤악-!

기사의 검이 좀비의 몸을 가르자, 더 재생할 새도 없이 절단면이 타들어갔다.

치이이익-!

“젠장, 틈이 없어…!”

“뭐야, 사령술이라는 게, 저런 것도 가능했단 말이야?!”

누군가는 경악하고, 누군가는 공포에 질렸다.

내가 사용하는 사령술은 저들이 바라마지않던 아키몬드의 사령술.

대충 기워낸 지식으로 빚어낸 것들과는 차원이 다른 위력을 보여준다.

콰직!

선두에 선 가장 큰 괴물의 머리에 세 개의 창이 동시에 꽂혔다.

곰과 호랑이의 얼굴을 달아놓은 저들의 최고 전력.

그렇지만 그것으로도, 이 언데드 군단의 결속을 끊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 아아…!”

마지막 누더기가 쓰러지자, 비로소 그들의 눈에 공포가 서렷다.

“좀비! 좀비들을 돌진시켜라! 어서!”

그렇지만 그 와중에도 사태를 파악한 몇몇이 곳곳에 선 좀비들에게 명령했다.

“키이이?!”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

“뭐, 뭐야?”

명령을 내렸음에도 좀비들이 움직이지 않자, 그들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뭐, 뭐 하는 거야! 어서 공격해! 넌 내가 만들어낸 좀비잖아…!”

“내 지식으로 만들어낸 좀비이기도 하지.”

다급한 목소리에 대신 답하자, 그들 중 하나가 말을 잃더니, 날 보며 입을 열었다.

“‘내 지식’이라니…. 설마…?”

물론, 그 예상에 응답해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청하니, 응하라.]

스켈레톤과 데스나이트가 저들을 정리하는 사이, 난 바닥에 술식을 그리고 있었다.

키이이이-!

그렇게 완성해낸 것은 계약문.

계약 대상은, 좀비의 죽은 육신에 갇혀있는 영혼들이었다.

[그대를 속박한 사슬을 끊고, 혼의 안식을 부여하니.]

제작자가 억지로 걸어 놓은 계약을 내 마기로 끊어내고, 그곳에 새로운 계약을 덧씌웠다.

[그대들을 나락으로 떨어트린 자들에게, 응분의 대가를 부여하라!]

영창을 마치는 것과 동시에, 계약문에 수많은 룬어들이 추가되었다.

계약에 응한 망자들의 이름.

그 중앙에 안내자, 클라인 라인란트의 이름을 적는 것으로 계약이 성립된다.

파츳!

짧은 파공음과 함께 좀비들의 몸이 떨렸다.

내 망자의 목소리가 좀비들의 의지를 되살렸다.

“크르르!?”

본래의 의지를 되찾은 언데드들이 자신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던 자들을 바라봤다.

억지로 부여한 야생의 포악함이 아닌, 명백한 살의가 그들을 향했다.

“어, 어…?”

“잠깐만, 지금…! 언데드의 제어권이…?”

이때까지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것일까.

눈을 크게 뜬 이전 술자들이 뭐라 더 말을 꺼내기도 전.

“크아아아아-!!!”

울분과 원망에 찬 좀비들의 울음소리가, 지하 통로를 가득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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