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38화 (38/209)

038. 오! 나의 신이시여(3)

“이게…. 무슨…?”

클라인 공자를 별실에 연금한 지 일주일.

수비병력과 훈련을 감독한 코락스 기사단장의 책상에는, 믿을 수 없는 내용의 보고서가 놓여져 있었다.

“여기에 쓰인 내용이, 한 치 틀림없는 사실인가?”

스산한 코락스의 목소리에 움찔한 기사가 맹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예! 이미 일선 기사들은 물론이고, 감시자들도 몇 명….”

기사의 설명이 다 끝나기도 전에 코락스의 몸이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클라인 공자, 끝까지 이런 장난질을 걸다니-!”

***

“보자~ 이름이 뭐라고 했지?”

“리, 릴튼입니다. 아버지 이름은 갈보어였고요.”

그 말을 들은 난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일주러 앓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잠시 후.

“조부 대에 중부지방에서 건너왔지? 이전에 있던 곳은 중서부 평원이었고.”

그러자 곧바로 깜짝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맞습니다! 그걸 어떻게…!”

“우와…!”

이름만으로 할아버지의 출생지와 이전 정착지까지.

뜻밖의 정보가 내 입에서 튀어나오자, 상담을 받는 기사뿐만이 아니라, 곳곳에서도 탄성이 흘러나왔다.

“어떻게 저걸 다 아는 거야?”

“진짜 용하다, 용해….”

이미 내가 갇힌 감옥 앞에는 수많은 기사들이 줄을 선 채 기다리고 있는 상황.

놀란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기사를 향해 툭 던지듯이 물었다.

“궁금한 것은 검이 늘지 않는 이유, 아니면 고향에 있는 가족이고. 맞지?”

“어! 오오! 으어어?!”

내가 그렇게 말하자 이제 기사는 사색이 된 채 뭔지도 모를 소리만을 내뱉을 뿐이었다.

“저런 것까지 다 아는 거야?”

“우리가 잡아 족치던 네크로맨서들이 다 저런 능력이 있어?”

“아니, 공자님만 특별하다던데….”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그렇게 추측을 주고받는 큰까마귀 기사들.

그런 그들을 본 내 감상은 간단했다.

‘진짜 순진해 빠져선.’

아니, 솔직히 금방 들통날 줄 알았다.

유령들을 시켜 장난을 거는 것도 한두 번이고, 나머지는 그냥 되는대로 지껄였을 뿐이다.

가족들 출생정보를 안다?

그냥 쟤네 할아버지 이름이 제국 중남부에서 쓰던 이름이라 그런 거다.

고민거리가 뭔지 안다?

반평생을 장벽에 처박혀 있는 게 큰까마귀 기사들인데, 그럼 고민거리가 검술이랑 가족 말고 뭐가 있겠냐?

“그, 그럼 공자님. 전 어떻게 해야….”

“그거야 간단하지.”

그렇게 말하며 난 빈 책의 양피지 한 장을 부욱 찢어 대충 룬어를 휘갈겨 건네주었다.

“잘 때 머리맡에 이걸 붙여두고 자면 될 거야. 사흘 지나면 불태우고.”

네크로맨서의 확답과 뭔가 있어 보이는 룬어가 적힌 양피지.

뭣 모르는 기사들을 현혹하기에는 안성맞춤인 재료들이다.

“감사합니다. 클라인 공자님!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

감격에 찬 기사가 날 향해 그렇게 말하던 순간이었다.

“여기서 지금 뭣들하고 있는 건가-!”

우렁찬 호통 소리에 기사들의 어깨가 일제히 떨렸다.

‘오, 대장님 행차하시는구만.’

그렇게 생각하며 소리가 울린 방향을 흘겨보자, 큰까마귀 기사단장인 코락스가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어우, 얼굴 좀 보게.”

당장이라도 사람 한두 명은 잡아먹을 듯한 무시무시한 눈빛.

“다, 단장님…!”

“그게, 그, 저희는…!”

방금 전까지 앉아있던 기사들도 좆됐다는 걸 감지한 것인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부동자세를 취했다.

“휴식을 취하라고 했더니, 이런 곳에서 이 따위 해괴한 미신에 사로잡혀있었나!”

“아닙니다-!”

“아닙니다-!”

처음 화살이 돌아간 곳은 내가 아닌 기사들.

잔뜩 화가 난 코락스가 그렇게 일갈하자 기사들이 일제히 악을 썼다.

“적의 침공이 코앞에 온 상황에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을 벌이다니!”

코락스는 그렇게 말하며 기사들의 면면을 눈에 새겼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머릿속에 넣어둔 뒤, 직접 조질 생각인 듯 했다.

“지금 당장 부단장을 불러와라! 이번 기회에 제대로 기강을…!”

거기까지 말한 코락스의 시선이 어느 한 곳에 닿았다.

익숙한 검은 머리의 기사.

“…….”

그것을 본 코락스가 나라 잃은 표정을 지었다.

“보란, 너마저…?”

그의 눈에 비친 것은, 내가 건넨 엉터리 부적을 두 손에 꼭 쥐고 있는 부단장, 보란의 모습이었다.

“다, 단장님. 그게 그러니까….”

배신감에 치를 떨고 있는 상관을 향해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는 보란.

보다 못한 내가 특별히 변호를 해 주기로 했다.

“너랑 똑같은 말을 하면서 쳐들어왔어.”

일부러 능글맞게 웃으며 그렇게 운을 떼자, 부단장 보란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근데 한 세 번 설득하더니 홀짝 빠지더라고.”

“고, 공자님…!”

내 내부고발에 화들짝 놀란 보란이 날 향해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처음 만났을 때 서로 으르렁거리던 앙금이 남아있냐고?

서얼마!

천하의 아키몬드가 그런 사소한 일에 며칠 동안 꿍해 있을 사람으로 보이나?

정답이다!

“에이이!”

쿵-!

더 참지 못한 코락스의 검이 바닥을 크게 울렸다.

“큰까마귀 기사단, 전원 완전무장을 갖추고 연무장에 모여라!”

이 층 전체에 울려 퍼지는 단장의 목소리.

선고와도 같은 그의 목소리에 기사들의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정신머리를 처음부터 다시 뜯어고쳐주마! 해산!”

“해, 해산!”

“해사아아안-!”

비명에 가까운 기사들의 복명복창과 함께 복도를 가득 메운 기사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후우…!”

어느새 적막이 맴돌게 된 복도.

이제 남은 것은 철문을 사이에 둔 나와 코락스.

그리고 저 구석에서 술에 꼴아 잠들어있는 이안 노친네 뿐이다.

“지금 이게 무슨 짓입니까? 클라인 공자.”

“뭐냐니, 하란 대로 얌전히 방에 틀어박혀 있었잖아?”

양손을 펼치며 그렇게 말하는 내 얼굴을 보자 코락스의 표정이 더욱 험악해졌다.

“얌전히? 비번 중인 기사들을 전부 다 현혹시켜 놓고는, 그것이 얌전하다구요?”

“현혹은 무슨, 고민 상담이잖아?”

특유의 위압감으로 날 압도해가려는 코락스였지만, 200년 묵은 네크로맨서의 입장에선 가소롭기 짝이 없다.

빙글빙글 웃어대며 그의 추궁을 넘겨대자 코락스가 다시 내게 말했다.

“네크로맨서의 침공이 임박할 때에, 하필이면 사령술로 기사들을 흔들어놓으면 어떡한단 말입니까!”

“나 같은 인간이 흔들면 흔들릴 정도로, 여기 기사들이 만만했었나?”

“……!”

그렇게 말하며 동시에, 코락스를 향하는 내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기사들은 단단히 단속하겠습니다. 그러니.”

“그러니?”

못마땅한 듯 등을 돌린 코락스가 날 보며 말했다.

“그러니, 두 번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해 주십시오.”

“올 때마다 규제가 늘어나는 기분인데?”

그렇게 이죽대는 내 목소리를 뒤로하고, 코락스는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아 근데 말이야.”

“뭡니까.”

뒤늦게 떠올랐다는 듯 운을 떼자, 코락스의 눈이 날 바라보았다.

“이왕 온 김에, 너도 한 번 받아보지 그래?”

내가 그렇게 말하자, 코락스의 얼굴이 전에 없을 정토로 팍 구겨졌다.

“필요 없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그 말을 끝으로, 코락스는 완전히 등을 돌려 사라졌다.

"하긴, 붙어있는 면면을 보니 그럴 것같기도 하다."

떠나는 그의 등을 바라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내 눈에 비친 그의 등에는, 그를 감싸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

땡-! 땡-! 땡-!

급히 울리는 종소리에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녘.

내가 일어나는 것을 시작으로, 경계초소와 막사 곳곳에 불이 들어오고 있었다.

“언데드다-! 언데드가 쳐들어오고 있다!”

악에 받친 경비병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과 동시에, 바닥에 떠올라있는 감시술식을 가동시켰다.

우우웅-!

“역시, 오늘이었나.”

성벽을 향해 진을 치고 있는 수많은 붉은 점들.

마치 전쟁을 방불케 하는 숫자의 언데드들을 보며 혀를 찼다.

“감시자들은 외곽 초소로! 기사단은 각 구역에 집결하라!”

“경계병 1중대는 비전투원을 대피시켜라! 주변 마을 주민들도 전부!”

곳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병사들.

장벽은 그동안의 나른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요새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봐라. 여기 기사 녀석들도 만만히 볼 수는 없지?”

내가 띄워둔 감시술식을 보던 이안이 흡족한 듯 첨언 했다.

5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기사들과 감시자, 그리고 경계병들은 이미 각자의 위치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크워어어어어-!

뒤틀린 짐승의 울음소리가 장벽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꺄악?!”

“이게…. 이게 무슨?!”

내가 서 있는 방의 아래쪽에서 공포에 찬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전투를 피해 장벽 내부로 피신한 민간인들이겠지.

말인즉, 내가 서 있는 곳은, 이 장벽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라는 뜻이다.

“금이야 옥이야 아끼는 건 좋다지만….”

그렇게 중얼거리며 적들의 병력배치도를 보았다.

체계적으로 배치된 장벽의 인원들과는 달리, 규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엉성한 배치.

“이런 대규모 교전은 경험이 없다는 뜻이군. 하지만….”

상대는 전술에 대해서는 문외한.

언데드들의 배치를 본 내가 대린 결론이었지만, 그럼에도 내 표정은 편치 않았다.

“이 녀석들은 뭐야.”

불규칙하게 산개한 언데드들과는 달리, 한곳으로 모여 접근 중인 한 무리.

붉은빛 일색인 다른 곳과는 달리, 곳곳에 하얀빛이 섞인 기묘한 집단이었다.

“생령이 섞여 있다. 말인즉, 네크로맨서들이야.”

결론을 냈지만, 미심쩍은 부분은 더 있었다.

장벽을 침공할 계획이라면 병력 하나하나가 중요한 찰나에, 저런 별동대가 움직인다니?

“게다가 저 경로는…. 설마?”

한 가지 요소에 생각이 닿은 난 곧바로 밴시에게 의지를 보냈다.

하늘 위에서 전장을 바라보던 밴시는 내 명에 따라 고도를 낮춰, 내가 지시한 장소의 풍경을 세세하게 담아냈다.

그렇게 밴시가 그들의, 적 네크로맨서의 위치를 확인한 순간.

“이런 개새끼들이!”

난 곧바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야, 무슨 일이냐?”

이전과는 달리 내가 심각한 얼굴을 한 채 이안이 그렇게 물었지만, 난 거기에 답할 상황이 아니었다.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내가 만들어놓은 그 루트들을…!’

지형과 장애물에 구애받지 않고, 일직선으로 장벽을 향해 접근 중인 네크로맨서들.

저들이 사용하고 있는 통로.

그 끝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난,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었다.

“이봐, 거기! 당장 이 문 열어!”

통로를 지키고 있던 기사들에게 그렇게 외치자, 기사들 중 한 명이 창살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죄송하지만, 불가능합니다. 단장님의 명령이….”

“명령이고 지랄이고!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야!”

거친 욕설을 내뱉으며 그들을 향해 외쳤다.

“잘 들어. 지금 장벽을 치고 있는 언데드들은 연막이야!”

“무슨, 말씀이십니까?”

상황파악을 하지 못한 기사들을 보며 답답한 마음을 억눌렀다.

지금 이 사태의 심각성을 아는 건 나뿐이니까.

“당장 코락스 단장한테 말해! 진짜 목적은 장벽으로 쳐들어오는 언데드가 아니야!”

그렇게 말한 난 쐐기를 박듯 그들의 얼굴을 보며 외쳤다.

“지금 저들의 진짜 목표는, 후방으로 대피한 민간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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