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37화 (37/209)

037. 오! 나의 신이시여(2)

“하여튼 가만히 있을 줄을 몰라요.”

코락스가 나와 이안을 별실에 연금시킨 뒤 이틀이 지났다.

뒤통수를 때리는 이안의 불평을 흘려넘기며, 난 별실 바닥에 그려놓은 술식을 다시 한 번 검토하고 있었다.

“그냥 알았다고 한 다음에 나설 것이지, 거기서 왜 또 대립각을 세워?”

“설마 진짜로 연금시킬 줄은 몰랐죠.”

“자랑이다 자랑!”

그렇게 외친 이안은 잠시 후 다시 한 번 억울하다는 듯 외쳤다.

“아니, 그러면 너 혼자 연금되면 되잖아? 가만히 있는 나는 왜 같이 끌려온 건데?!”

이안의 울분에 답한 것은 내가 아닌 벽 너머에서였다.

“단장님의 명령입니다. 보호자 신분이니, 같은 공간에 둬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라는 데요?”

철문 너머에서 우릴 경계하는 기사들을 가리키며 맞장구치자 이안은 뭐라 더 할 말이 없는 듯했다.

“도망갈걸…. 진작에 도망갈걸…. 내가 뭔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시끄럽습니다. 백부님.”

내 말에도 아랑곳 않고 더 투덜대던 이안은 이내 등을 돌려 찬장에 놓인 술병을 집었다.

‘편의는 다 제공하겠다는 게 빈말은 아니니 다행이다만.’

정갈하게 정돈된 방을 둘러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투박하기 짝이 없는 철문을 제외한다면 여느 객실이나 다를 바 없는 별실.

하루 간격으로 찾아오는 파이는 필요하다고 한 대부분의 물건을 가져다주었고,

‘얌전히 주는 밥이나 먹다가 본가로 돌아가라. 나쁜 일은 아니지 않느냐.’

마치 코락스가 내게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이대로 여기 틀어박혀 있을 순 없지.’

장벽 외부에서 흘러온 언데드의 모습을 떠올렸다.

사령술이라고도 할 수 없는 혐오스러운 누더기.

그렇지만 그 형태를 유지하는 마기의 흐름은 너무나도 익숙한 구조였다.

‘반혼술에 억지로 접목시켜 변질되긴 했지만, 저 구축식은 내가 제창한 거다.’

200년 전, 날 따르는 500만 원혼을 무장시키기 위해 직접 연구한 영체 구축식.

역병으로 죽어간 북부 사람들을 위해 만들었던 것이 이제는 북부인들을 죽이고 있다니.

결코 용납할 수 없다.

“그래서, 연금되자마자 거기 죽치고 뭐 하는 거야?”

“보면 몰라요? 사령술 쓰잖아요.”

이안의 말에 답하는 사이, 바닥에는 이틀에 걸쳐 그려둔 탐지술식이 완성되어 있었다.

“사령술? 보기에는 마법과 별 차이가 안보인다만.”

“실제로 별 차이 없어요. 마력을 쓰냐, 마기를 쓰냐, 그 차이뿐이니까.”

말은 그렇게 해도, 마력과 마기는 그 근원이 다르다.

의지 없는 무형의 힘을 사용하는 것과, 명확한 의지를 가진 존재를 다루는 것.

그렇기에 네크로맨서들은 자신들을 마법사보다는 주로 정령사, 소환사에 비유하고는 한다.

‘이젠 그렇게 접근하는 네크로맨서도 나뿐이겠지만.’

제국의 네크로맨서들을 떠올리자 한숨은 더욱 깊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마지막으로 술식을 점검한 뒤, 심장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기운을 술식에 집어넣었다.

[그대의 안내자가 청하니, 등불이 되어 밝혀라.]

우우웅-!

수식과 도형이 푸르게 빛나며 내 의지에 따라 움직였다.

내가 간단한 영창으로 불러낸 것은 하늘을 누비는 령, 밴시.

그녀의 룬을 술식 중앙에 새긴 뒤, 그것을 토대로 감지망을 만들어낸 것이다.

“호오, 이건…!”

푸른 빛을 내던 술식은 이제 완전히 일그러져 전혀 새로운 형태를 피워냈다.

이윽고 나타난 것은 장벽과 그 주변 지역을 나타낸 지형도.

입체적으로 구현된 지도 곳곳에 수많은 푸른 빛들이 점멸하고 있었다.

“대규모 정찰이라! 사령술로 이런 것도 가능한 거냐?”

“밴시의 눈으로 본 영상을 술식을 통해 출력한 겁니다. 기초적인 사령술이에요.”

“그럼 저 빛무리들은?”

“혼이죠.”

그렇게 말하며 난 각기 다른 색으로 빛나는 빛무리들을 가리켰다.

“파란 것은 영체, 붉은 것은 시체에 씌인 것. 흰색은 생령입니다.”

“…그걸 지금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말이냐? 일대에 존재하는 생명체와 언데드들을 전부?”

“그렇죠.”

별 감흥 없이 이어진 내 말에 이안은 잠시 할 말을 잃어버린 듯했다.

“…제국 놈들이 사령술에 죽자고 달려드는 게 이유가 있었군.”

“그렇게 보입니까?”

놀란 듯한 이안의 모습에 의아해하며 되묻자, 곧바로 대답이 나왔다.

“주변 전장 상황을 한눈에 나타내는 대규모 감지 술식. 전쟁에서는 필수불가결이지.”

“아, 확실히….”

한창 대륙을 뒤집고 다니던 때를 생각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적군의 병력배치.

거기에 대응해 언데드들의 배치를 바꾸기만 해도, 당시 연합군들은 바람 앞에 등불처럼 쓸려나갔지.

“마법으로 이걸 구현하려면 마탑의 교수 정도는 와야 할 거다.”

“정령사나 소환사라면 더 쉽게 하지 않습니까?”

“그쪽은 논외야. 체계적인 육성이 불가능하잖아.”

‘네크로맨서는 뭐 다른 줄 아나.’

제국에서 키워내는 초짜들에 지금 우리들을 위협하는 정체 모를 멍청이들.

그런 것들이 나와 같은 네크로맨서라 불린다는 사실 자체가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200년 전에는 좀 더….

“쯧.”

거칠게 혀를 차 상념을 끊어냈다.

이미 기록은커녕 구전조차 되지 않는 내 동료들.

이제 와서 한탄해 봐야 얻는 것이 없었으니까.

‘그것보다도….’

밴시와 연결된 영혼 지도.

그곳에 표시된 붉은 점들을 보며 내 근심은 한층 더 깊어졌다.

‘지금도 수가 늘어나고 있어.’

하나둘씩 늘어나는 붉은 점들.

그리고 그에 비례하듯, 숲 곳곳에 있는 생령들의 반응이 사라지고 있었다.

다시 말해, 저들은 숲속의 몬스터들을 잡아, 그것을 언데드로 만들고 있다는 뜻이었다.

‘수를 보아하니 조만간 쳐들어오겠군. 짧으면 일주일 뒤에라도….’

언데드가 증식하는 속도, 외부에서 들어오는 다른 붉은 점들.

장벽 수비군과 저들의 수를 비교하니 어느 정도 견적이 잡혔다.

‘그럼 어떻게든 그 시간 안에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건데….’

난 그렇게 생각하며 굳게 닫힌 철문을 보았다.

“….”

“…….”

내 방 문을 지키고 있는 두 명의 기사.

이틀 정도를 군말 없이 지냈으니, 슬슬 경계도 풀어졌을 터.

‘슬슬 밑밥을 깔아볼까?’

여느 네크로맨서처럼 사악하게 웃은 난 그대로 철문을 향해 바짝 다가갔다.

“거기 기사들!”

“?!”

“크, 클라인 공자님.”

등 뒤에서 갑자기 목소리가 들려오자 당황한 듯, 기사들이 움찔거렸다.

이틀 동안 아무 말도 없다가 불쑥 튀어나온 격이니, 당황할 만도 하지.

“나 하나 때문에 고생이 많네?”

그렇게 말을 꺼내자 잠시 후 대답이 들려왔다.

“신경쓰실 필요 없습니다.”

“그래도 심심할 거 아니야. 교대시간까지 좀 남았지?”

“그…. 렇습니다만.”

“그럼 나도 슬슬 좀이 쑤시는데, 노가리나 까자고. 어때?”

그 말에 기사들은 잠시 벙찐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라인란트 공자가 얘기하재.

공작가 아들이? 우리를? 왜?

해도 되나?

하면 안된다는 명령은 없지 않았나?

‘바로 거절은 안하는군.’

당황한 듯 했으나 내키지 않는 기색은 아니다.

그것을 감지한 난 곧바로 그들을 부른 뒤 은근한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나 같은 네크로맨서를 만나는 건 처음이잖아. 안그래?”

그렇게 말하자 대답이 빠르게 돌아왔다.

“만나본 적은 많습니다.”

“죽여본 적은 더더욱 많지요.”

네크로맨서에 대한 장벽 기사들의 거부감.

그렇지만 그 원인은 사령술 그 자체가 아닌, 네크로맨서의 전투방식에 있다.

죽은 자의 시체를 되살려 무기로 삼는 반혼술.

그것을 주 무기로 하는 현시대의 네크로맨서는, 그렇기에 더욱 괄시당하고, 음지로 파고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 같은 원조라면 얘기가 다르지.

“좀비나 구울 같은 수준 낮은 거로 싸우는 것들 말고, 진짜 네크로맨서를 말하는 거야.”

“…그 말인즉, 공자님께서는 시체를 다루지 않으신다?”

“안다뤄. 내 명예에 맹세코.”

명예.

기사들을 설득시키는 특효약을 꺼내 들자 기사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진짜 이해가 안된다니까.’

명예라는 말에 죽고 사는 그 정신구조를 신기해하면서도, 내 입은 계속해서 그들을 현혹해댔다.

“난 그런 것들과는 달리, 영혼을 다루지.”

그렇게 말하자 기사 중 한 명의 표정이 움찔했다.

“영…. 혼 말입니까?”

“죽은 사람의 영혼을 다룬다고요?”

뒤이어 다른 기사도 그렇게 되묻자 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어. 예를 들면….”

그렇게 말한 뒤, 난 왼쪽에 서 있는 기사를 가리키며 말했다.

“네 어깨에 붙어있는 것처럼.”

평이하게 이어진 한 마디.

그렇지만 그 순간, 두 기사 사이에는 정적이 돌았다.

그리고 잠시 후.

“저, 저흴 가지고 장난을 치시려는 거 같은데, 안 넘어갑니다.”

“마, 맞습니다! 네크로맨서의 말을…!”

“사흘 전부터 어깨가 좀 뻐근했지?”

다른 동료 기사의 말을 끊고 그렇게 말하자, 방금 전보다도 더 긴 침묵이 찾아왔다.

‘야, 뭐야! 빨리 아니라고 말해!’

‘아니, 근데….’

‘뭐야, 설마 진짜 뻐근했어?!’

창살 위로 빼꼼 내밀어진 내 머리를 사이에 두고, 두 기사는 쉴 새 없이 눈빛을 주고받았다.

“자기 몸 상태는 누구보다 더 민감한 게 기사들인데, 아니라고는 말 못 하지?”

정론을 들이대자 흠칫한 기사는 이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정…. 은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건…!”

“피곤해서다?”

그가 할 말을 가로챈 뒤 만면에 웃음을 띄웠다.

그렇게 말없이 웃는 얼굴을 들이댄 뒤.

“정말로?”

그 말에, 방금 전보다도 더 긴 침묵이 찾아왔다.

‘미신에 저렇게 휘둘리는 걸 보니, 북부 토박이들 맞네.’

혹독한 추위, 끝이 보이지 않는 임무, 계속되는 전투.

생명의 위협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그만큼 미신이나 전설 같은 초자연적 현상을 두려워하기 마련.

유령이나 혼 같은 영적인 요소에 쉽게 감화된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것들은 네크로맨서인 내 전문분야다.

“떼어내고 싶지?”

내 말을 들은 기사는 한참 만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그의 얼굴은 완전히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자기 전에 촛불 켜고, 엄지로 명치 부근 누르면서 심호흡 크게 해봐. 그럼 답답한 게 좀 누그러질 거다.”

그렇게 말하자 기사가 내 얼굴을 보았다.

“그런 걸로…. 가능한 겁니까?”

조심스럽게 되묻는 기사의 표정을 살폈다.

얼굴만 보면 무슨 점술사 찾아다니는 아줌마들이 따로 없었다.

‘한창 활동할 때는 이런 짓 좀 그만하라고 말했었는데.’

풋풋했던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면서도, 내 만면에 뜬 미소는 지워질 줄을 몰랐다.

“간단한 위령 의식이야. 밑져야 본전이라고, 한번 해 봐.”

그렇게 말하는 사이, 교대를 위해 다른 두 기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교대를 위한 인수인계가 한창인 사이, 난 창밖을 향해 슬며시 엄지를 치켜세웠다.

- 히히!

기사에 어깨에 앉아있는 어린아이가 그런 내 인사에 화답하며 엄지를 세웠다.

“그래서, 유령이 있다는 건 진짜냐?”

방 안쪽으로 돌아오자마자 건네온 이안의 질문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동토지대에서 제일 많이 죽어나가는 건 애들 아닙니까.”

"그럼 뭐야, 허언이 아니라 진짜였어? 기사들에게 유령이 씌였다고?"

“유령이라기보단…. 수호령에 가깝겠죠.”

어이가 없다는 듯 되묻는 이안에게 얼버무리며, 다시 한 번 멀어지는 기사의 뒷모습을 보았다.

“뭐지? 왠지 좀 가벼워진 것 같기도 하고….”

“그런 말 하지 마! 진짜 소름 돋잖아…!”

뻐근한 오른쪽 어깨를 이리저리 흔드는 와중에 비어있는 왼손.

- 히히!

기사의 어깨에 앉아있던 꼬마 유령은, 그 빈손을 꼭 잡은 채 기사의 뒤를 졸래졸래 따라가고 있었다.

“먼저 떠나보낸 아들이, 장벽을 지키는 아버지를 지키고 있는 겁니다.”

“…저 기사들도 이곳 토박이일 테니, 그런 사연들이 없지는 않겠군.”

내 설명에 납득한 이안의 목소리를 들으며, 걸어가는 두 사람을 보았다.

계속 갸웃거리며 걸어가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의 등을 지키는 아이들.

정말이지, 여기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는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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