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6. 오! 나의 신이시여(1)
키리릭?!
이안과 내 검이 얽히며 공중에 든 눈송이를 몰아냈다.
카카카캉-!
마력을 쓰지 않는 순수한 기량 승부.
이안이 선보였던 기술을 조합하여 사용하는 나와는 달리, 이안의 검술은 대련을 할 때마다 처음 보는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도대체 머릿속에 검술을 얼마나 처박아 놓은 거야?!’
검로는 보인다.
재현 또한 불가능하지는 않다.
하지만 저 검술의 수가 문제다.
“어딜 한눈을 팔고 있느냐!”
카캉-!
낯선 경로로 파고든 이안의 검이 그대로 내 손을 잡아당겼다.
남동부 사막지대의 무기 탈취 기술을 접목한 기형적인 검술.
손등으로 전해지는 시큰한 감각에 들고 있던 검을 놓았다.
“자, 이번에도 실패했지?”
짓궂은 이안의 얼굴이 날 보았다.
그가 대련에서 낸 과제는 서로 다른 두 검술을 하나처럼 사용하는 것.
머리를 쥐어짜내 한 수를 펼쳐봤지만, 보시다시피 결과는 참패였다.
“허…!”
“말이 안 나오는군. 대련 하나에서 검술이 몇 개가 나온 거야?”
나와 이안의 대결을 지켜보던 기사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나와 이안이 선 연무장에 꽂혀있는 온갖 모양의 검들.
브로드 소드, 바스타드, 세이버, 투핸더, 시미터.
심지어는 검이 아닌 방패와 창들도 숱하게 꽂혀있었다.
“내일은 단창 두 개로 해봐야겠다. 넌 레이피어 써볼래?”
“미쳤다고 세검으로 창이랑 싸워요? 방패 들 겁니다.”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이안의 장난을 받아쳤다.
피온의 치료를 받아 병상에서 일어난 지 사흘.
죽다 살아나서인지, 몸 상태는 이전보다 훨씬 더 좋아진 듯했다.
‘체력도 꾸준히 붙고 있고, 몸도 훨씬 가벼워졌어.’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안의 교수법은 내게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상대의 검술을 보는 순간, 그것을 완벽히 재현하는 능력.
덕분에 이안이 매일같이 선보이는 수많은 검술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고 있었으니까.
‘마력만 있었으면 정말 대륙을 제패했을지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럴 리 없지.’
그렇게 생각하는 내 머릿속에는, 200년 전 그날의 광경이 떠오르고 있었다.
베르켈 라인란트.
그리고 그를 따르는 열두 명의 기사들.
내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전쟁 병기들을 파죽지세로 뚫고 들어오는 그들의 검.
그 열세 명의 검술만은, 아무리 떠올리고 재현하려 해도 흉내조차 낼 수 없었다.
‘마력을 쓸 수 없기 때문인가? 아니면 뭔가 다른….’
기억을 더듬으며 그렇게 생각에 몰두하고 있을 때 즈음이었다.
“이봐! 저기, 32번 초소에!”
“이런 미친, 저게 뭐야?!”
웅성거리는 병사들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까마득히 뻗어있는 철의 장벽.
그곳에 설치된 초소에서 경악에 찬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뭐야, 언데드라도 들어온 건가?”
“그런 것 치고는 반응이 좀 다른데요?”
창백해진 병사들의 면면을 보며 그들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큰까마귀 기사단은 이전에 있었던 사건 이후 날 피하는 상황.
덕분에 난 비교적 적은 눈총을 받으며 그들 사이를 누비고 다닐 수 있었다.
쿠르르르르…!
장벽과 외부를 연결하는 철문이 열리고, 병사들을 경악시킨 원흉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이건….”
몰려든 병사들을 헤집고 나가 수레에 실려 나온 그것을 보았다.
끄륵?! 끄르르…!
엉망진창으로 뒤엉킨 두 남자의 몸.
시체를 조각내 이어붙인 다음, 그것을 언데드로 되살린 것이었다.
“우, 우욱?!”
참담한 광경을 보고 버티지 못했는지, 병사들 몇몇이 급히 자리를 비웠다.
‘박음질한 흔적이 역력하군.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언데드다.’
그렇게 생각하며 난 임시병동에서 들었던 기사들의 대화를 기억해냈다.
이질적인 형태, 다섯 배가 넘는 수.
그들의 고민은 장벽을 습격하는 언데드가 증식했다는 것이었다.
“밀러, 바리드!”
언데드가 된 그들의 모습을 살피는 사이, 경악과 울분에 찬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아아, 아아아…!”
검은 망토와 석궁, 그리고 단검으로 무장한 장벽의 정예병.
장벽 외부로 나가 위협을 찾는 자들, 감시자였다.
“누가…. 누가 이런 짓을!”
축 늘어진 언데드의 잔해를 끌어안은 남자가 목 놓아 울부짖었다.
같이 한솥밥을 먹던 동료가, 이런 꼴로 돌아왔다니.
그 충격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테지.
“제국 놈들은 아니야.”
“어떻게 확신하시죠?”
언데드의 형태를 본 이안의 말에 내가 되묻자, 눈살을 찌푸린 이안이 입을 열었다.
“같은 시체를 사용하지만, 제국의 네크로맨서는 군인이다. 이런 식으로 시체를 낭비하지 않아.”
“…확실히.”
이안의 말을 들으며 언데드의 잔해를 향해 마기를 뿜었다.
산 자는 느낄 수 없는 검은 기운이 뒤틀린 망자의 몸을 훑었다.
재구축한 시체의 구조, 가공 부위, 그리고 골격의 변화까지.
‘술식이나 마력으로 구축한 게 아니라, 시체를 손으로 꿰매 결합시켰군.’
구역질이 절로 나왔다.
이것은 억지로 숨만 붙여 움직이게 만들어놓은 고깃덩이.
언데드라고 부를 수조차 없는, 살인자의 악취미였다.
뿌득!
치밀어오르는 탁한 감정을 틀어막았다.
망자에 대한 모욕, 그리고 사령술에 대한 모독.
그 이상으로 내 분노를 자극한 것은, 저들이 이걸 장벽으로 보낸 의도였으니까.
‘굳이 감시자의 시신을 언데드로 만들어, 장벽으로 보냈다.’
절로 입이 비틀렸다.
이 감시자들은 그들의 본거지에 닿았고, 붙잡혔을 테지.
그리고 이 언데드를 제작한 자들은, 경고를 보낸 것이다.
자신들의 일에 참견한다면, 똑같이 될 것이라고.
그리고 동시에….
“무슨 소란인가!”
그러고 있는 사이, 모여든 이들을 헤치며 뒤늦게 기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건…!”
전에 봤던 부단장은 아니었다.
기골은 훨씬 컸고, 들고 있는 검은 라인란트가 직접 수여한 군도였다.
“코락스 단장님!”
병사들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코락스.
큰까마귀 기사단의 단장이자, 이 대장벽을 수호하는 총책임자.
“감시자가…. 언데드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장벽 밖에는 도대체 뭐가…!”
감시자는 설원을 제집처럼 누비는 북부 최고의 정예병.
그런 그들이 이런 처참한 모습으로 돌아오자, 다른 병사들은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싹튼 공포는 이윽고 점점 크기를 키워, 종국에는 장벽 전체를 감쌀 터.
그렇게 된다면 끝이다.
무기 없는 병사는 싸울 수 있지만, 의지가 없는 병사는 싸울 수 없을 테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 장벽 전체를 뒤흔드는 거대한 목소리가 그들을 공포에서 끄집어냈다.
“동료의 시체를 보고 두려움을 느낀다면, 그것이야말로 저들이 원하는 바일 터!”
그렇게 외친 코락스가 주변에 모인 병사들을 향해 외쳤다.
“그대들이 느껴야 할 것은 공포가 아니다! 분노다!”
혼란스러운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 그리고 한 치 흔들림도 없는 투기.
그의 목소리를 들은 병사들의 떨림이 멎어가고, 무기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쿵-!
코락스가 들고 있는 검이 땅을 내려찍었다.
그는 수십 년에 걸쳐 이 벽을 지켜온 기사들의 장.
장벽의 수호자였다.
“전 병력은 침공에 대비하라! 수천 년이 지난다 해도 이 장벽이 건재할 것임을, 온 대륙에 알려라-!”
그의 고함에 답하듯, 우레와 같은 함성 소리가 장벽을 뒤덮었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병사들과 기사들.
그것을 보며 내심 감탄하고 있을 때, 그의 발소리가 내게로 가까워져 왔다.
“클라인 라인란트 제 2 공자님.”
내 이름을 부르는 코락스의 목소리.
고개를 들어 그와 얼굴을 맞대자, 거신상과도 같은 그의 눈이 날 내려다보았다.
‘뭐야, 뭔데?’
얼떨떨한 기분으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전에 있었던 사건 때문에, 저 쪽이 먼저 다가올 줄은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잠시.
“큰까마귀 기사단 단장 코락스. 명하신 대로 대령했습니다.”
“……명하신 대로?”
“예.”
전혀 뜻밖의 말을 꺼낸 코락스가 그 강철 같은 팔로 자신의 등 뒤를 가리켰다.
“……!”
잔뜩 군기가 들어간 채 어쩔 줄 몰라하는 부단장, 보란의 모습이 보였다.
‘아니, 잠깐. 설마…?’
부동자세로 서 있는 보란의 모습.
그것을 보고 나서야 뒤늦게 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흘 전.
보란과의 기싸움에서 무심코 내뱉었던 그 한마디.
‘지금 당장 니 위, 내 밑으로 다 불러와 이 새끼야.’
“…….”
“…….”
방심했다.
말도 잘하고, 분위기도 진중하니, 좀 제대로 된 기사가 나올 줄 알았더니, 내 큰 착각이었다.
‘예외가 있을 거라 믿은 내가 병신이었지….’
가문에 내려오는 격언을 떠올리며 이마를 짚었다.
조상님들 말씀대로, 라인란트 기사단장들은….
정상인이 없다.
***
“부하인 보란이 큰 결례를 저질렀습니다. 부디 용서하소서.”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먼저 굽히고 들어온 것은 코락스였다.
거대한 몸집과 걸맞지 않은 절도있는 동작.
흠잡을 데가 없는 기사의 귀감이었다.
‘좋은 소리는 안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지.’
내심 그렇게 생각하며 손을 내저었다.
“제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탓입니다. 단장님께서 크게 신경 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공자님의 아량에 감사드립니다.”
일개 기사단의 단장이라면, 듄켈과 같은 지위의 인물.
그렇지만 그가 장벽 전체를 총괄하는 자라면, 나 또한 그에 걸맞은 예를 보여야 했다.
‘안 그래도 싸운 것 때문에 켕기는데, 여기서 핏대 세워봐야 좋을 것도 없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코락스가 입을 열었다.
“그렇지만, 클라인 공자님. 저로서도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무기질적인 한 마디.
거기에 뭐라 대꾸하기도 전에, 코락스의 군도가 바닥을 횡으로 그었다.
카가가가각-!
차가운 돌바닥이 움푹 파이며, 나와 코락스 사이에 선이 그어졌다.
이 선을 넘지 말라.
악에 받친 부단장보다는 부드러웠지만, 분명한 거절의 표시였다.
“…저와 기사단 사이의 앙금은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만.”
“끝났습니다. 제 부하들 중 누구도, 이 일을 문제 삼지는 않을 테지요.”
그렇게 말한 코락스가 날 보며 말했다.
“이전과 같은 강압적인 처사는 없을 것입니다.”
“그럼 다행이군요.”
“이곳에서 지내시는 두 달 동안 가능한 모든 편의도 제공할 것입니다.”
“그것도 고맙습니다. 연구공간이 절실했거든요.”
“그러니.”
“그러니?”
잠시 말을 끊은 코락스에게 재촉하듯 되묻자, 목석과 같던 그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앞으로 있을 전투나 임무에는, 절대 개입하지 말아주십시오.”
“…….”
그의 말을 들으며 말없이 서 있자, 쐐기를 박듯 코락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장벽은, 당신 같은 네크로맨서가 놀이터처럼 돌아다녀도 되는 곳이 아닙니다.”
그 말을 들은 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대답을 재촉하듯 내 얼굴을 바라보는 코락스를 향해, 난 웃는 얼굴로 또박또박 말했다.
“싫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