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33화 (33/209)

033. 재회(3)

“하아…! 하아…!”

교단의 대행자를 쓰러트린 쾌거.

그렇지만 클라인은 그것을 기뻐할 겨를조차 없었다.

치이이이익-!

주변의 눈이 녹아내리고, 온 몸에서 연기가 뿜어져나왔다.

이질적인 마력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온 몸에 돌려 방출시킨 부작용.

“쿨럭-!”

온몸의 혈관을 뒤덮은 격통과 함께, 그의 입이 죽은 피를 토해냈다.

“용감하다고 해야 할지, 무모하다고 해야 할지.”

질렸다는 듯 고개를 내저은 이안이 클라인을 보며 중얼거렸다.

“끄으?!”

온 몸을 바늘로 찌르는 고통이 밀려왔다.

중풍에라도 걸린 듯 엄청난 고통이었다.

“이 정도로 끝난 것만으로도 다행인 줄 알아라. 이 무모한 녀석아.”

“알고, 있습니…!”

털썩-!

말을 다 끝내지 못한 채, 클라인의 몸이 균형을 잃었다.

안그래도 낮은 체력에 몸을 극한가지 혹사시켰으니, 그 자리에서 의식을 잃어버린 것이다.

“온 몸의 혈도가 끓어오르는 와중에, 잘도 서있었구만 그래.”

바닥에 대자로 누운 그를 보며 짧게 한숨쉬었다.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

등 뒤로 느껴지는 살기에 이안이 개리슨이 날아간 자리를 돌아보았다.

쿠르르르르…!

충격의 여파로 균형을 잃은 나무 몇 그루가 추가로 무너졌다.

“역시.”

그렇지만 그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도, 이안은 그를 향해 걸어오는 발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천하의 대행자가 이런 기술 하나에 죽었을 리 없지.”

성법기의 방어를 꿰뚫은 클라인과 이안의 합격기.

그림처럼 매끄러운 연계였지만, 그것 만으로 대행자를 이길 수는 없다.

“…….”

말없이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개리슨을 보며 이안이 입을 열었다.

“더 해볼 생각인가?”

천천히 걸어오던 개리슨이 그 자리에 멈춰섰다.

쿵-!

빛나는 망치가 빈 바닥을 내리찍었다.

자신을 마주보며 서 있는 이안에게서 느껴지는 투기.

장난기 가득한 방금 전과는 차원이 다른, 서슬퍼런 기백이었다.

“하인켈 녀석에게 들었네. 갓난쟁이였을 때부터 이 아이를 맡아왔다고.”

그렇지만 이안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진정 이 아이가 아키몬드의 환생이라면, 왜 진작에 죽이지 않았나?”

그 말에 개리슨이 답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확신이 없었을 뿐이다. 사령술을 익힌 지금은….”

“천하의 대행자가 확신? 지랄하지 말게.”

이안의 이죽거림이 변명과도 같은 개리슨의 말을 끊어냈다.

“지금 이 아이를 죽이려 하는 건 그대의 의지가 아닐 테지. 내 말이 틀린가?”

“……!”

정곡을 찔린 것인지, 개리슨이 얼굴을 구겼다.

그는 교단 소속의 대행자.

본래였다면, 인퀴지터와 합세해 클라인을 죽여야 했을 터였다.

‘인퀴지터들과 합류하지 않은 채 단독행동을 했다. 이것만으로도 알 수 있지.’

짧은 시간동안 이어진 그들의 대결.

한 치 물러섬이 없는 접전 속에서도, 이안은 그의 감정을 읽어낼 수 있었다.

집착과 광기, 그리고 한 편에 쌓여있는 망설임까지.

이것은 검사의 감이 아닌 노인의 연륜.

세월이 빚어낸 지혜가 분노로 가득찬 짐승의 마음을 꿰뚫었다.

“물러서게, 대행자. 자네는 이 아이를 죽일 수 없어.”

단호한 이안의 한 마디에 개리슨은 침묵을 유지했다.

그리고 잠시 후.

파츳-!

한 순간 밝게 빛난 개리슨의 성법기가 모습을 감추고, 온 숲을 압도한 살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해가 가지 않는군.”

잔뜩 구겨진 얼굴을 한 채, 개리슨이 이안을 향해 말했다.

“당신에겐 라인란트에 대한 충성도 없을뿐더러, 클라인과의 인연은 더더욱 없을텐데.”

“자네 말대로일세.”

개리슨의 말에 답하는 이안이 옅게 웃었다.

이안 라인란트는 통제할 수 없는 야인.

기사 학살자라는 악명과 함께 대륙에서 자취를 감춘 라인란트의 유령.

그런 이가 안면도 없는 조카를 위해 모습을 드러내고, 자신과 맞선다니.

개리슨으로써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 당신이, 왜 이렇게까지 클라인을 옹호하는 거지?”

개리슨의 질문을 받은 이안이 잠시 고개를 숙인 채 말을 골랐다.

“이 아이를 보진 않았어도, 가문의 소식은 계속 듣고 있었지.”

그렇게 말하는 이안이 바닥에 누운 클라인을 보았다.

“그리고 직접 만난 뒤 결론을 내렸네.”

의식을 잃은 채 쓰러진 소년의 몸이 옅은 입김을 내뱉고 있었다.

“이 아이가 아키몬드의 환생이라 한들, 아무 상관없다고.”

그렇게 말하자 개리슨이 곧바로 핏대를 세웠다.

“그런 무책임한 이유로, 저 폭탄을 살려두자는 것인가!”

“어미의 죽음, 가문의 외면,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악마의 환생이라는 멍에까지.”

“……!”

클라인이 거쳐왔던 인생을 입에 담자 개리슨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갓난아이였을 때부터, 어엿한 청년으로 성장해가는 지금까지.

그는 클라인의 인생을, 그를 둘러싼 비극을 가장 가까이에서 봐 왔던 이였으니까.

“그 모든 짐을 전부 짊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 녀석은 거기에 짓눌리지 않았다네.”

“…….”

“자신의 길을 찾아 성장하고, 자기 사람들을 위해 일어섰지.”

이것이 그가 클라인을 찾아온 가장 큰 이유였다.

수재와 천재.

그렇게 불리는 이들은 대륙에 산처럼 쌓여있다.

그렇지만 그들 중 누구도 이안을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

어떤 이는 자만하고, 어떤 이는 재능없는 자를 업신여긴다.

델라인 같이 올곧게 자라는 이들도 더러 있지만, 그뿐.

자신을 둘러싼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다.

그가 찾아 헤맨 가능성. 그의 갈증을 채운 클라인의 자질.

그것은 자신을 둘러싼 벽을 넘어 홀로 고고히 설 수 있는 힘.

초대 라인란트 공작, 베르켈 라인란트가 보인 영웅의 자질이다.

“이 아이의 전생이 뭐였던, 어떤 힘을 사용하건.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이안의 말을 곱씹던 개리슨에게 쐐기를 박듯, 이안의 목소리가 숲을 맴돌았다.

“중요한 것은 단 하나. 내가 이 아이에게서, 베르켈 라인란트의 모습을 봤다는 것일세.”

설원에 부는 찬바람이 바닥에 쌓인 만년설을 들춰내, 희뿌연 연기를 만들어냈다.

그것이 클라인의 몸을 뒤덮은 연기를 식힐 때 즈음, 개리슨이 입을 열었다.

“라인란트의 피를 이은 자가, 네크로맨서를 받아들이겠다는 말인가?”

이안의 대답은 그보다는 조금 더 빨랐다.

“동생 녀석이 그 네크로맨서 덕을 좀 봐서 말이야.”

망령으로 전락할 처지였던 루델을 구원하고, 가주인 하인켈의 마음의 짐을 벗겨냈다.

검사라는 한계를 벗지 못한 라인란트의 기사들로서는 결코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한 존재를 정의하는 것은 그 본질이 아닌 행동일지니.”

여기저기에 실금이 간 검을 회수한 이안이 입을 열었다.

대륙을 구한 영웅, 베르켈이 입에 담은 한 마디.

라인란트의 검을 쥔 모든 이들에게 새겨진 문구였다.

“이 아이의 행동은, 라인란트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네.”

그 한마디를 들은 개리슨은 계속해서 생각하는 눈치였다.

아니,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더듬는 것이겠지.

“……내 결정에 변함은 없다.”

한참 뒤에 입을 연 개리슨의 말에 이안이 표정을 굳혔다.

“난 교단의 대행자. 교단의 적을 쳐부수는 철퇴요, 신성의 말뚝이다.”

그 말을 들은 이안이 섬을 쥔 손에 힘을 주는 순간.

“그러니, 지켜보도록 하지.”

클라인을 보며 그렇게 말한 개리슨이 곧바로 등을 돌렸다.

“저것이 네 말처럼 영웅이 될지, 아니면 다시 태어난 악마가 될지.”

“…어휴, 쓸데없이 긴장하게 하기는.”

푸념하듯 답한 이안이 경계를 풀고 클라인의 몸을 한쪽 어깨에 짊어졌다.

“그럼 좀 도와주게. 기혈만 진정시키면 장벽까지는 문제 없….”

그렇게 말하던 이안이 개리슨이 있던 장소를 다시 보았다.

“저 망할 신부새끼. 지켜본다더니, 다 죽어가는걸 설원에 버려두고 가?!”

짜증 가득한 이안의 외침이 설원 한복판에 울려퍼졌다.

방금 전까지 그들을 위협하던 거구의 신부는, 이미 모습을 감춘 뒤였다.

***

“헬리안 그 망할 년이!”

콰앙-!

어두운 지하실.

분노로 가득한 한 남자가 책상을 치자, 주변에 있던 다른 부하들이 식은땀을 흘렸다.

자신들의 대장은 무료하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죽여대는 살인귀.

이 상황에 눈에 띄인다면, 어떤 꼴을 당할지 몰랐으니까.

“실패한 건 그 애새끼들인데 왜 나한테 지랄이야 지랄이!”

콰직-!

분이 다 풀리지 않았는지, 그가 걷어찬 책상이 벽으로 날아가 산산히 부서졌다.

완전히 박살난 책상의 파편이 자신들에게 튀는데도, 양옆에 도열한 이들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제 아들이 그리 됐으니, 저리 날뛰는 것도 당연하지 않나.”

분기탱천한 그의 옆으로 음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깡마른 체격의 노인.

검은 로브 속에 가려진 손가락에는 인골로 만들어진 장신구가 끼워져 있었다.

“좋은 말 할때 돌아가서 시체나 닦아라 영감. 죽여버리기 전에.”

노기어린 목소리가 노인을 향했지만 노인의 웃음은 가실 줄을 몰랐다.

“감히 누구에게 으름장을 놓는 것이냐, 글렉.”

노인의 양 옆으로 나타난 한 무리의 검은 로브들.

그들이 풍기는 서슬퍼런 기운에 암살자들이 일제히 무기를 꺼냈다.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

“몇 안되는 동업자인데, 이런 사소한 일에 얼굴 붉히면 쓰나.”

자기 부하를 말리는 노인의 말에 로브들이 곧바로 물러났다.

“송구스럽습니다. 주교님.”

“허허허.”

그런 그들을 보며 글렉이 팔짱을 꼈다.

“그래서, 이번엔 너희 사이비 새끼들이 자원봉사를 해 주시겠다?”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그렇게 묻자, 노인의 입꼬리가 위로 솟았다.

“그래. 클라인 공자의 목을 준다면, 헬리안도 더 이상 자네를 쫒지 않을테지.”

“그래서, 그 대가로 그쪽이 요구하는 건 뭐지?”

“대가는 필요 없다네.”

노인의 그 말에 글렉이 눈살을 찌푸렸지만, 노인은 그림자 속에서 웃음소리를 낼 뿐이었다.

“‘낙엽’이 우리에게 제공한 편의가 있으니, 나름대로의 보답이라고 생각하게.”

그렇게 말하는사이, 등불이 기울며 노인의 얼굴을 드러냈다.

미라처럼 말라 비틀어진 몸.

그림자에 가려진 노인의 눈은, 흰자위 하나 없는 마안(魔眼)이었다.

‘기분 나쁜 새끼.’

저 눈의 근원을 알고 있는 글렌은 끓어오르는 혐오감을 누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임무에 실패한 반동으로, 폴와이번의 정보원들이 자신들을 쫓는 상황.

끊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주요 고객을 잃는 것은 큰 손실이었다.

관계를 더 악화시키느니, 저들을 이용해 실패를 만회하는 것이 이득일 터.

‘게다가 장벽 외부는 저 새끼들의 영역이니, 안성맞춤이기도 하고 말이지….’

그렇게 계산을 마친 글렉이 알았다는 듯 두손을 펴보였다.

“좋아. ‘낙엽’은 장벽에서 손을 뗀다. 그 대신에.”

“클라인 공자의 목은 확실히 보내주겠네.”

다른 이도 아닌 주교의 확답.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인 글렌이 등을 돌려 자리를 벗어났다.

글렌이 문을 닫는 그 순간, 방을 가득 채우던 암살자들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잘도 나는군. 쥐새끼들.”

베니스라는 남자의 입에서 폭언이 쏟아졌다.

그러는 사이, 손에 낀 해골반지를 어루만지던 노인이 양 손을 뻗었다.

“모두 듣거라.”

그의 한 마디에, 곧바로 모든 이들의 눈이 노인에게 집중되었다.

“200년의 기다림 끝에, 우리들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클라인 공자가 사용한 사령술.

암살현장에서 그 흔적을 발견한 뒤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그 옛날, 가증스러운 배신자에게 도둑맞은 지식이 그곳에 있다!”

검은 로브를 입은 이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장벽으로 가라. 그곳을 지키는 허수아비들을 유린하고, 클라인 공자를 내 앞에 데려와라.”

우우우우우…!

그의 말과 함께 섬찟한 목소리가 지하실을 울렸다.

노인의 마기에 붙잡힌 원혼들의 비명소리였다.

“그의 피를 통해, 우린 그분을 영접하게 될 것이다!”

시커멓게 물든 노인의 눈이 하늘로 향했다.

“망자의 왕! 우리들의 신!”

희열감에 도취 된 눈이 황홀하게 빛나며, 그의 평생을 바쳐 섬겨오던 이름이 흘러나왔다.

“아키몬드 님을, 우리의 손으로 부활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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