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32화 (32/209)

032. 재회(2)

개리슨의 강권이 눈앞까지 치달았다.

이안의 발차기가 경로를 비틀고, 개리슨의 주먹은 내 얼굴 옆을 스쳐 지나갔다.

쿠콰쾅-!

열두 차례의 폭음이 설원을 뒤흔들었다.

날 노리고 날아온 개리슨의 연타를 이안이 전부 상쇄해낸 것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이뤄진 두 사람의 접전.

이것이 끝날 때까지, 난 공격이 오는 것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탐색전이나 간보기가 아니야. 처음부터 죽일 생각으로 들어온 거다…!’

쌓여있던 눈들이 사방팔방으로 흩날릴 때가 되어서야 그들의 움직임을 잡아냈다.

이안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형체도 남지 않은 채 사라졌겠지.

“허허, 인사가 좀 과하지 않은가? 젊은이.”

“비켜라 늙은이. 난 저 네크로맨서를 죽여야 한다.”

감정없는 개리슨의 목소리가 들려오는데도 불구하고, 이안의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눈앞에서 조카가 죽을 뻔 했는데 쉽게 비켜줄 수는 없지. 안그런가?”

“조카…?”

이안의 말을 듣고 잠시 표정을 찌그러트린 개리슨이 알았다는 듯 주먹을 쥐었다.

“제국 4대 공적 중 하나. 기사 학살자, 이안 라인란트.”

기사 학살자.

제국에서 그를 부르는 말이 나오자 이안이 넌더리를 냈다.

“그 닭살돋는 호칭은 언제쯤 잊혀질지 모르겠구만.”

그가 제국 기사였던 시절, 이안의 기사단이었던 하늘날개 기사단.

250명의 단장급 기사로 구성된 제국 최강의 기사단을 궤멸시킨 그에게 주어진 악명이었다.

“웃기는군. 라인란트의 일원이 가문의 원수를 지키는 꼴이라니.”

“미안하지만 난 출가외인일세. 라인란트와는 무관한 인간이야.”

“궤변을 지껄이는군.”

그 말과 함께 개리슨이 손을 뻗었다.

쿠르릉-!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그곳에서 들려온 천둥소리가 설산을 한번 더 흔들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콰릉-!

빛나는 벼락과 함께 그의 눈앞에 무엇인가가 떨어졌다.

은색으로 빛나는 거대한 망치.

개리슨 정도의 거구가 아니면 들 수 조차 없을 정도로 무거운 둔기였다.

‘씨발, 저건!’

마기를 끌어올리려던 것을 당장 중지했다.

혼의 존재를 지우는 신성력은 언데드에게는 천적과도 같은 힘.

그리고 하늘에서 내려온 저 망치는 거대한 신성력 덩어리였다.

‘교회 하나를 통째로 옮겨오기라도 한 건가? 뭔 놈의 농도가…!’

저릿한 감각을 온 몸으로 느끼며 이를 악물었다.

저 망치가 뿜어내는 짙은 농도의 신성력.

스켈레톤 같은 하급 언데드는 가까이하는 것만으로도 녹아 없어질 정도였다.

“성법기! 아주 단단히 준비를 하고 왔군!”

성법기(聖法機).

현 신성교단의 시조, 성자 가울이 남긴 세 개의 무기를 뜻하는 말.

그 하나하나가 대성당에 버금가는 신성력을 머금은, 교단의 성물이다.

촤륵-!

“이 꼬맹이 하나 잡자고 저런 무지막지한 걸 들고왔나?”

망치를 손에 쥐는 개리슨에게 그렇게 말하며, 이안 역시 검을 바로쥐었다.

찬연히 빛나는 개리슨의 망치에 비하면 볼품없어 보이는 철검.

그렇지만 이안은 전혀 주눅 든 기색이 아니었다.

“네 놈의 기량이 날 앞서는 것은 인정하지.”

망치를 든 개리슨이 이안을 향해 말했다.

“그렇지만 이 무기를 쥔 이상, 넌 날 이길 수 없다.”

개리슨의 말은 사실이었다.

저 망치, 성법기가 품고 있는 것은 신관 수백 명 분에 달하는 신성력.

개리슨은 지금, 마르지 않는 마력의 샘을 얻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 평소 같았으면 진작에 도망갔을거야.”

“그렇게 생각한다면 비켜라. 내 목적은 네가 아니라….”

“그런데 말일세.”

이안의 목소리가 개리슨의 말을 도중에 끊은 그 순간.

촤아악-!

“?!”

그의 신형이 곧바로 개리슨의 뒤에 나타났다.

“이래 봬도 난 저 녀석 보호자거든.”

쿠콰아아앙-!

땅이 부서지며 파편이 위로 치솟았다.

하늘 위로 올려친 이안의 검격.

망치를 뒤로 돌린 개리슨이 그걸 막아내는 것과 동시에 그의 발이 공기를 갈랐다.

카앙-!

검과 발이 부딪혔는데 쇳소리가 난다니.

정신이 아득해지는 두 괴물의 싸움을 눈으로 쫓고 있던 때였다.

“클라인!”

한창 개리슨과 전투중이던 이안이 날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이놈은 내가 막겠다. 최대한 거리를 벌려!”

그렇게 말하는 이안에게 개리슨의 망치가 다가왔다.

쿠콰앙-!

“뭘 하고 있어! 어서 가!”

이안의 목소리가 내 귀를 때렸다.

싸우는 도중 라인란트의 거점인 장벽으로 날 대피시킬 생각이겠지.

“아뇨. 안갑니다.”

“뭣…!”

그렇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개리슨의 목적은 이안이 아닌 나. 섣불리 전장을 이탈해봤자, 살아남을 가능성은 적다.’

그리고 이안이 버텨낸다 하더라도 개리슨은 언제고 날 노릴 터.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도망치는 것은 악수다.

추격의 고리를 끊어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

“도망치는 건 불가능해요. 여기서 저 신부와 승부를 봐야 합니다.”

내가 이안을 향해 그렇게 말한 순간이었다.

“치잇!”

카앙-!

마력을 끌어올린 이안이 개리슨의 망치를 후려쳐 그를 밀어냈다.

“……!”

성벽을 통째로 짓이기는 개리슨의 완력과, 거대한 신성력 덩어리인 성법기.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저 볼품없는 검이 그것을 힘으로 압도한 것이었다.

“하여튼, 고집 쎈 것 하나만큼은 지 애비랑 판박이지!”

허공을 향해 그렇게 쏘아붙인 이안이 그의 가슴팍을 발로 차며 거리를 벌렸다.

촤아아악-!

발차기의 반동으로 튀어 오른 이안이 내 옆으로 주욱 미끄러졌다.

“방법이 있으니 그런 말을 한 거겠지?”

이안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백부님과 개리슨의 역량은 호각. 그렇지만 저쪽에는 성법기가 있죠.”

내 말에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마력을 사용하는 이안과 달리, 개리슨이 사용하는 것은 저 성법기의 신성력.

“도망쳐봤자 백중세를 유지하며 마력을 고갈시킨 뒤, 절 쫓을 겁니다.”

“호오, 그래서?”

개리슨이 노리는 바를 유추해내자 이안의 눈에 흥미가 일었다.

“그걸 어떻게 타파할 생각이냐?”

이안의 말에 입꼬리를 슬며시 올렸다.

외부에서 제공받는 마력원을 이용한 소모전.

이 전술을 가장 애용한 것이 나, 아키몬드였으니까.

‘그 철옹성 같은 진형을, 베르켈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뚫고 들어왔지.’

전생의 기억을 떠올렸다.

베르켈과 그를 따르는 열두 명의 기사.

단 열 셋 만으로 수만 구의 데스나이트를 뚫어낸 방법.

“합격기(合撃技).”

그 말에 이안의 눈에 크게 뜨였다.

“동시에 같은 기술을 사용해서 위력을 극대화한다면 가능합니다.”

“말은 쉽지.”

이안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내 말을 끊었다.

“두 검사의 검로와 마력 파장을 완전히 동조시켜야지만 가능한 것이 합격기다.”

꾸짖음에 가까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재능으로 내 검술을 완벽하게 재현한다 치자. 마력은 어쩔 테냐?”

내 약점을 꼬집는 이안의 말에 곧바로 답했다.

“그건 백부님께서 더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허…!”

내 되물음에 이안이 말을 멈췄다.

“방금 전에 보여주셨던 기술들은 전부 익혔습니다. 원리부터 마력의 운용까지, 전부.”

“…….”

할 말을 잃은 채 날 보는 이안을 향해, 쐐기를 박듯 내뱉었다.

“남은 건 백부님의 마력을, 제 몸에 집어넣는 것 뿐. 아닙니까?”

혈도에 억지로 마력을 순환시켜 그것을 운용한다.

성공한다면, 마력이 없는 나라고 할지라도 5분 정도는 평기사에 필적한 힘을 낼 수 있을 터였다.

‘거기에 내 것이 아닌 이안의 마력은 운용하는 거니까, 마력동조는 애초에 필요하지 않지.’

그렇게 생각하던 때였다.

“그래. 가능은 하겠구나.”

장난스럽던 이안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마력은 한 사람의 피, 장기와도 같은 것.

억지로 다른 이의 몸에 흘려보낸다면, 어마어마한 거부반응이 찾아온다.

“그렇지만, 실패하는 순간 온 몸의 혈도가 터져나간다. 설령 성공한다 해도….”

“하지 않는다면.”

그의 경고를 끊고 눈을 마주보았다.

지금 이 대화를 나누는 순간조차도, 언제 개리슨이 다시 들이닥칠지 모르는 상황이었으니까.

“전 지금 죽습니다.”

그 말에 이안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역시….”

날 향하는 이안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짧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돌려, 그의 표정을 살폈다.

“내가 사람을 아주 제대로 본 모양이야.”

희열이 넘치는 이안의 한 마디.

날 보고있는 이안의 얼굴에는, 즐거워 죽겠다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턱.

이안의 손이 내 어깨를 잡았다.

“끄윽?!”

몸 안으로 침투해오는 기운.

혈관을 타고 흐르는 이질적인 감각에 순간 침음성을 냈다.

“네 번째로 썼던 찌르기로 간다. 진입경로는 측면. 타이밍은 네가 잡아.”

“알겠…. 습니다…!”

애써 목소리를 쥐어짜내 이안의 말에 답했다.

온 몸의 피부를 벗겨내고 싶은 충동.

다른 이의 마력이 들어오자, 온 몸이 거부반응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렇지만 난 네크로맨서 아키몬드.

‘이까짓 고통, 이까짓 자살충동 따위…!’

제국과 대륙이, 연합이라는 가증스러운 것들이 내게 해왔던 그 고문들에 비하면.

이까짓 고통 따위, 아무렇지도 않다.

우우웅-!

고통이 심해질수록, 이안의 마력은 내 의지를 충실히 수행한다.

이미 내 눈은 그의 검로와 마력의 움직임을 전부 잡아낸 상황.

“지금이라면!”

단 5분이라는 이 짧은 시간동안, 난 마력을 지닌 기사로써 힘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파앗-!

마력으로 강화한 신체가 곧바로 개리슨을 향해 돌진했다.

이안 역시 다른 방향으로 개리슨에게 접근하는 상황.

“종국에는 스스로 기어들어오는구나.”

마지막 발악을 하는 내게 그렇게 말한 개리슨이 망치를 들었다.

부우웅-!

공기를 가르는 압도적인 폭력.

마치 성벽이 내게 통째로 돌진하고 있는 어마어마한 압박감이었다.

“이걸로 끝이다.”

그렇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진 상황.

도망칠 수도, 숨을 수도 없었다.

“지금입니다!”

“크하하하!”

내 옆으로 다가온 이안에게 신호를 보내며 검을 내질렀다.

오른쪽으로 회전하는 이안의 마력에, 내 파장을 맞물렸다.

일점집중한 마력을 회전시켜 상대의 방어를 꿰뚫는 제국검술의 정수 중 하나.

나선격(螺旋撃).

키이이이이!!!

두 개의 나선이 서로 곂쳐 동조하기 시작했다.

맞물린 두 마력이 회전력을 더해가며, 그 밀도를 극한으로 올렸다.

마치 온 세상이 비명을 지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마력동조, 그 몸에 억지로 마력을 받아들인 건가…!”

“너 같은 괴물을 잡는데, 내 목숨 하나정도면 걸어볼 만 하지!”

개리슨의 망치를 향해 검을 내지르며 소리쳤다.

이질적인 마력이 몸 속에서 끓어올라, 온 몸을 유린하고 있었다.

“작작 좀 하고 꺼져 이 망할 신부새끼야아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지른 검을 물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찰나의 순간 머무르는 이 마력을, 모든 힘을 다해 뿜어내 회전력을 더해갔다.

그렇게 응집된 마력이 정점에 다다른 그 순간.

쿠콰아아아앙-!

거대한 폭발과 함께 개리슨의 몸이 포탄처럼 튕겨나갔다.

급하게 온 몸을 신성력으로 감쌌지만, 충격을 상쇄하지는 못했을 터.

“끄으으?!”

개리슨의 몸이 아름드리 나무 수십개를 박살내며 숲 한구석에 쳐박혔다.

콰직-!

균열이 가는 소리와 함께 들고있던 검이 산산히 부서졌다.

더 이상의전투는 불가능했지만, 그 만큼의 성과는 있었다.

한순간이었지만, 저 괴물 같은 대행자를 압도한 것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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