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30화 (30/209)

030. 부자상봉.

“다른 침입자들은?”

“처리했습니다. 그 때문에 조금 지체되었구요.”

진득한 피가 묻어있는 하인켈의 검을 보자 이안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시신 수습과 사후처리를 위해 기사들은 저택 밖으로 향한 상황.

연무장에 있는 사람은 나와 하인켈, 이안 뿐이었다.

언데드인 루델까지 포함하면 넷이 되겠지만.

“아버지. 어떻게 당신이….”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 하인켈에게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현세의 한을 풀지 못해 영묘에 묶여계셨습니다. 그대로 시간이 지났다면 망령이 되었을 겁니다.”

“망령…?”

“예.”

하인켈의 되물음에 그렇게 말한 뒤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선조의 묘를 흙발로 더럽힌 건 사실이죠. 벌은 얼마든지 달게 받겠습니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예측이나 계산은 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하고, 내 소신을 밝힐 뿐.

이것은 내가 맡은 혼의 유족에 대한 예의였으며, 망자에 대한 예의였다.

“그렇지만 전 혼을 다루는 자로서, 선조의 혼이 망령이 되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었습니다.”

검사들에게 명예가 있듯, 네크로맨서에겐 책임이 있다.

내 말을 들은 하인켈이 주먹을 쥐었다.

‘혼란스럽겠지. 고정관념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걸 테니.’

하인켈의 뇌리에 박힌 사령술과 내가 사용하는 사령술은 그 궤가 다르다.

혼을 복속해 권속으로 삼는 반혼(返魂)과는 달리, 내가 주로 사용하는 사령술은 진혼(鎭魂).

영혼이 지닌 한을 짊어지고, 그들을 달래며 이끄는 목동의 힘이다.

“제국에서 연구하는 사령술이 아니라, 잊혀진 옛 신관들이 쓰던 것이군.”

내 설명을 들은 이안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옛 신관을 입에 담았을 때는 무심코 헛숨을 들이켰다.

‘그걸 알고 있다고?’

국가 단위로 사령술을 연구하는 제국조차도 옛 신관들에 대한 정보는 희박하다.

그런 정보를 알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식견이 넓다는 뜻.

‘제국에게서 도망 다닌다더니,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던 건 아니었군.’

내심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이안의 말을 들은 하인켈이 한숨을 쉬었다.

“무슨 연유로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는 알겠다. 하지만….”

“쉽사리 납득하실 수 없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아직 혼란이 가시지 않은 듯, 말을 고르지 못하는 하인켈을 보며 입을 열었다.

“망자와 계약한 네크로맨서는, 그 혼의 원한을 풀어야 하죠.”

내 말과 동시에 앞으로 나선 루델.

데스나이트의 모습이었지만, 난 그의 혼과 마력 파장을 지우지 않았다.

하인켈 정도 되는 검사라면, 능히 알아챌 수 있을 터.

“그리고 제가 계약한 망자의 청은, 당신을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에 흠칫한 하인켈이 데스나이트가 된 루델을 보았다.

- 쓸데없이 격식 차리기는, 그냥 오랜만에 얼굴이나 보려 한 거다.

고개를 내저으며 루델이 그렇게 말하자, 하인켈의 평정이 한순간 무너졌다.

가장 화려한 검.

그의 동료 기사들이 칭하길, 가장 가벼운 검.

그 별명에 걸맞은 장난기 가득한 루델의 목소리.

하인켈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루델의 모습 그대로일 것이다.

- 하고픈 말은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주어진 시간은 이리도 짧으니.

중년이 된 아들을 바라보며 루델이 어깨를 으쓱였다.

- 뽑거라, 하인켈.

“……!”

그의 손에 형성된 그림자 검이 하인켈을 겨눴다.

“이번 라인란트가 어느 정도인지, 시험이나 해 보자꾸나.”

***

카카카캉-!

서로 다른 두 검이 한순간 다섯 번 격돌했다.

유성검의 창시자와 환영검의 창시자.

‘가장 빠른 검’이라 불리는 하인켈 라인란트와, ‘가장 화려한 검’이라 불리는 루델 라인란트.

젊은 시절의 모습을 한 아버지와 늙은 아들이 검을 나누고 있었다.

“마력량은 평기사 수준이지만, 정말로 아버지의 검술이 맞군.”

서로 죽일 듯 검을 나누는 두 사람을 보던 이안이 말했다.

데스나이트로 현계한 루델을 고려해, 하인켈 역시 자신의 마력을 제한한 상황.

그렇지만 지구전에 특화된 북부의 검사답게, 그들의 대결은 끝을 모른 채 계속되고 있었다.

- 대단하구나.

검을 털어내 만들어진 소강상태.

성장한 하인켈의 모습을 본 루델이 흡족한 듯 표정을 풀었다.

- 청석 깨기가 뜻대로 되지 않는다며 칭얼거리던 어린아이가, 이젠 내 검을 제압하는 검사가 되었다니.

“이젠 당신보다 오래 살았습니다. 이 정도도 하지 못한다면, 공작위는 내려놔야죠.”

잠시 숨을 고른 하인켈이 계속 말했다.

“이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당신을 따라갈 수 있게 된 겁니다.”

“…….”

그 말에 대련을 보고 있던 이안이 미간을 좁혔다.

이유를 묻는 내 시선을 알아챈 듯, 그가 입을 열었다.

“범재라 부르기엔 빛이 과하나, 천재라 무르기엔 빛이 부족하다.”

그렇게 말한 이안의 얼굴에는 짧은 탄식이 걸려있었다.

“나와 저 녀석을 번갈아 시험한 교관이 내린 평가였지.”

괄목(刮目)한 모든 기술을 재현하는 것이 내 재능.

끝을 모르는 마력과 굳건한 신체가 델라인의 재능.

그런 나와 델라인에 비해, 하인켈의 손에 쥐어진 재능은 단 하나였다.

노력.

“그렇지만 저 녀석은, 동세대의 수많은 천재들을 꺾고 제국 최강의 기사가 되었다.”

카앙-!

이안이 그렇게 얘기하는 사이, 한순간에 거리를 좁힌 루델이 하인켈을 압박해왔다.

지금까지의 대련이 몸풀이였다고 말하려는 듯, 차원이 다른 압박감이었다.

- 이게 전력일 리가 없지. 끝까지 내보여라, 하인켈!

동시에 네 방향을 제압하는 루델의 환영검.

그렇지만 하인켈의 고속검은 빠르게 그것을 쳐내고 새로운 검로를 만들어낸다.

키리릭?!

검을 맞댄 채 얼굴을 가까이 한 루델이 입을 열었다.

- 네가 지금껏 쌓아온 검, 네 삶, 그 전부를!

“……!”

이제 하인켈의 얼굴은 완전히 일그러져 있었다.

대련이 길어질수록, 싸움이 계속될수록 그의 마음속 둑이 무너지고 그 안에 든 것이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크으-!”

캉-! 카앙-!

처음에는 소극적이었던 하인켈의 검이 점점 루델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고속을 넘어 광속.

방금 전까지 하인켈을 압박하던 루델이 점점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련이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촤르륵!

정면으로 쇄도하는 하인켈이 그대로 몸을 틀어 루델의 뒤를 잡았다.

- 하하하!

내 눈으로도 한순간 쫓을 수 없을 정도의 속도.

하인켈의 신형이 루델의 등 뒤에 나타난 뒤, 시간이 지나서야 폭음이 연무장을 메꿨다.

콰아아앙-!

한 곳으로 집중한 압도적인 추진력과, 그것을 제어하는 마력 제어능력.

선천적인 재능이 아닌, 수백 수천 번의 반복을 통해 연마한 노력의 산물이었다.

“흐아아압!”

정면으로 내리치는 하인켈의 검.

그것을 본 루델이 검을 세우는 순간, 기괴한 일이 벌어졌다.

“봐라. 페이크를 걸려면 시선부터 속이라는 거.”

방금 전까지 정면을 바라보고 있던 하인켈의 검이, 그대로 루델을 횡으로 후려쳤다.

카앙-!

급하게 막아내긴 했으나, 한 박자 늦은 방어.

그림자로 이루어진 루델의 검이 하늘을 날아 연무장 바닥에 꽂혀 사라졌다.

“이겼군.”

대련의 결과는 하인켈의 승리.

범재와 천재의 경계에 서 있던 회색 원석이, 당대 최고의 천재를 이겨낸 순간이었다.

“이것이 제 삶. 그리고 제 한계입니다.”

그렇지만 그가 짓고 있는 표정은 승자의 것이 아니었다.

“항상 생각했습니다.”

뒤늦게 말문이 터진 듯 하인켈의 속마음이 흘러나왔다.

“지금의 날 보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할까. 가문을 짊어진 채 걷는 이 길이 과연…. 올바른 길인가.”

회한, 후회, 자책, 체념.

세월의 풍파에 깎여나간 하인켈의 속마음이 루델을 향했다.

“가문도, 제 혈육도, 절 사랑해준 여인조차 구하지 못했습니다.”

고개 숙인 하인켈의 눈이 날 향했다.

둘째 공자인 나, 그리고 내 어머니인 클레어 공후.

잠시 눈이 마주치는가 싶더니, 하인켈은 고개를 돌려 내 시선을 피했다.

“그럼에도 전, 라인란트의 이름을 짊어질 자격이 있는 겁니까?”

그의 어깨를 짓누른 의문이 흘러나왔다.

“한평생 실패만을 반복한 제가, 이들을 이끌 자격이 있는 겁니까?”

루델의 앞에 선 하인켈의 모습은 라인란트 공작이 아니었다.

그저 상처 입은 채 고뇌하는, 나이든 아버지일 뿐이었다.

- 많은 실패를 겪었구나. 많은 상처를 받았고.

“…….”

하인켈의 말을 받은 루델이 그렇게 말하자, 그의 표정이 더 일그러졌다.

- 그렇지만, 네가 겪은 것이 실패뿐이었느냐?

그렇지만 다음에 이어진 한마디에, 하인켈이 고개를 들어 루델을 보았다.

- 네 등 뒤를 봐라, 하인켈.

맑은 목소리가 이제 중년이 된 아들을 꾸짖었다.

- 널 따르는 기사들, 네가 지켜온 가문, 네가 길러낸 씨앗들.

“……!”

- 네자 지키고 가구어낸 저것들이 전부 실패더냐? 네 과오더냐?

하인켈의 대답이 들려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니오. 아닙니다.”

- 그렇지?

그의 대답을 듣자 고개를 끄덕인 루델이 계속해서 말했다.

- 실패를 후회하면서 그 뒤에 가려진 성공을 외면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 실패한 것이다.

그렇게 말한 루델이 하인켈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 그러니 전대 라인란트 공작으로써, 네게 이 말을 남기마.

그렇게 말한 루델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 잘 커 줬다. 라인란트 공작.

그 말에, 긴장으로 굳었던 하인켈의 어깨가 내려갔다.

자신을 인정하는 전대 공작의, 아버지의 한 마디.

의문으로 가득했던 하인켈에게 주는 최고의 찬사였다.

스르르르….

중천에 떠오른 해가 노을로 기우는 만큼, 그의 몸 또한 서서히 기울었다.

- 때가 되었군.

망자의 원한이 풀려, 그를 묶은 영체가 흩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아버지…!”

사라져가는 루델의 을 본 하인켈이 급히 그를 불렀다.

- 영지 일을 챙기다 보니, 이안 녀석을 제외하면 제대로 된 아버지 노릇을 해본 기억이 없지 뭐냐?

‘나한테도 별로 안했소만’ 이라고 이죽거리는 이안에게 웃어 보이며 루델은 말을 이어갔다.

- 특히 하인켈. 막내인 너에게는 더욱 그랬었지.

젊은 날의 모습을 한 루델이 노년을 바라보는 하인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마지막 가는 길에, 너희들을 볼 수 있어 기뻤다.

부모에게 있어 자식이란, 나이를 먹어도 어린아이인 법.

- 이안, 하인켈.

어린 아들을 달래듯 다정한 미소를 지은 루델이 하인켈을 보며 말했다.

- 너희들은 언제나 나의 자랑이었고, 내 긍지였다.

“……!”

루델의 그 한마디에 하인켈이 주먹을 쥐었다.

제국 최강의 기사.

라인란트 공작.

아버지의 앞에 서자, 그 모든 수식어들은 힘을 잃었다.

그를 둘러싼 두꺼운 세월이 벗겨지고, 순수했던 어린아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 너희들에게 한번이라도…. 이 말 한마디를 해주고 싶었다.

루델의 한마디를 들은 하인켈이 눈을 감았다.

“어으, 닭살 돋는 소리.”

퉁명스럽게 말한 이안 역시, 내게 보이지 않도록 뒤돌아 앉은 상태였다.

“백부님.”

은근한 목소리로 이안을 부르자, 곧바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끄럽다. 눈에 뭐가 들어간 것뿐이야.”

‘…당신, 눈 안보이잖아.’

마지막으로 한 생각은 속으로 묻어둔 채, 앞으로 나서서 루델을 향해 수인을 맺었다.

파스스스스…!

그의 혼을 두르던 검은 갑주가 떨어져 나가고, 기사의 몸을 이루던 검은 기운이 흩어져갔다.

[계약자, 클라인 라인란트가 망자, 루델 라인란트에게 고합니다.]

하인켈과 이안이 있는 만큼 가명을 썼다.

당사자인 루델도 신경 쓰는 눈치는 아니었다.

[계약문의 내용이 전부 완수됨에 따라, 계약을 종료합니다.]

- 망자, 루델 라인란트. 그대의 인도에 감사한다.

망자의 승인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손등에 새겨진 계약의 룬이 사라졌다.

그림자가 완전히 걷힌 루델의 혼은 빛나는 구체의 형태.

원래의 모습을 되찾은 그가 흡족한 듯 깜빡였다.

[이제 길잡이로서, 그대의 혼을 환원합니다. 망자의 안식과 평온을 빕니다.]

루델의 눈과 귀, 입은 네크로맨서인 나를 통한 것.

나와의 연결이 끊긴 지금, 그는 들을 수도, 볼 수도, 말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그의 혼은 내 말에 화답하듯 빛을 낸 뒤, 계약문의 인도에 따라 사라졌다.

두 아들이 보는 앞에서 이뤄진 환원.

라인란트 공작가의 6대 공작 루델 라인란트는, 그렇게 죽음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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