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29화 (29/209)

029. 이안 라인란트(3)

“이것들은 또 뭐냐?”

검은 옷, 흰자와 눈동자의 구분 없이 시커먼 눈.

그리고 정수리에 박힌 태양 십자까지.

‘인퀴지터가 찾아올 줄이야. 생각보다 정보가 빠른데.’

아니, 개리슨과 부딪힌 걸 생각하면 오히려 늦었다고 해도 될 터였다.

‘교단의 손아귀에서 풀려난지 어언 8년이 되어가건만, 저 역겨운 몰골은 잊혀지지가 않는군.’

속으로 그렇게 되뇌이는 와중이었지만, 내 얼굴에선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종교권유 같은데, 일 없다고 말해볼까요?”

“딱 봐도 순순히 물러날 것 같진 않은데 말이다.”

내가 건넨 농담을 받으며 이안이 킥킥거렸다.

자신들을 욕보이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는지, 날 둘러싼 인퀴지터들은 일제히 무기를 들어 올렸다.

“신성력이 깃든 망치에 말뚝이라. 아주 단단히 벼르고 온 모양이야?”

그들을 바라보며 이죽거린 이안이 검을 바로 쥐었다.

“같이 있는 자는 누구지?”

“이안 라인란트.”

“제국에서 수배 중인 탈주기사다.”

이안을 본 인퀴지터들이 저들끼리 신호를 주고받았다.

“20년 전 일인데, 슬슬 잊어버릴 때도 되지 않았나?”

그렇게 말한 이안이 이빨을 드러냈다.

‘그나마 이 인간과 같이 있던 게 다행이군.’

살심을 품은 이안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제국 기사를 살해한 중죄인.

그것도 듄켈과 비슷한 경지의 단장급 기사 수백 명을 한 번에 살해한 위험인물이다.

본래 얼굴조차 드러내선 안될 텐데, 교단이 정보를 물었으니.

“위험요소가 늘었다.”

“계획은?”

“변경은 없다. 아키몬드의 씨앗을 죽여라.”

이안의 서슬 퍼런 살기가 그들을 덮쳤지만 인퀴지터들은 아무런 동요도 없었다.

그 어떤 명령이든 완벽히 해결하고, 아무런 감정 없이 처리하는 전투기계들.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도, 고문으로 몸을 산산조각내도 그들은 임무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뇌의 일부분을 잘라내 감정을 거세한 자들. 산 사람의 몸으로 만든 좀비나 다를 바 없지.’

그렇게 생각하며 주변 상황을 살폈다.

‘소리를 들어보니, 저택에 침입한 인퀴지터는 저들뿐만이 아닐 터. 하인켈도 누군가가 틀어막고 있군.’

예상외로 빠르고, 또 대담한 행동.

교단은 이미 마음을 단단히 먹고 라인란트를 급습한 것이다.

“클라인.”

날 부르는 이안의 목소리에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 녀석들은 이안이 처리할 테니, 외곽에 있는 다른 녀석들을….’

그의 다음 말을 예상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때였다.

“난 귀찮으니, 네가 처리해라.”

….

…….

이 씨발 뭐라고?

예상을 벗어난 그의 한 마디에 황급히 옆을 돌아보았다.

“지금 뭐, 라고…?”

“새파랗게 어린놈이 벌써부터 귀먹었냐? 귀찮으니까 너 알아서 하라고.”

그렇게 말한 이안은 들고 있던 검을 내던져버렸다.

“백부님. 지금 장난칠 때가…!”

“온다.”

예상외의 상황에 얼이 빠진 순간, 그의 한마디에 곧바로 측면으로 검을 그었다.

카가가각-!

그 사이에 내게로 달려든 인퀴지터.

갑옷을 통째로 부수는 전쟁망치가 흉흉하게 빛나고 있었다.

“반응이 좋아졌군. 뒤로 한 명 더.”

“크으!”

투콰앙-!

등 뒤로 검을 세워 인퀴지터의 강격을 막아냈다.

곧바로 빈 검로를 제압해 연계를 차단한 뒤, 뒤로 간격을 벌렸다.

“음. 전장 판단은 흠잡을 데 없군.”

교단이 가문을 습격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관심사는 내 전투뿐.

‘이안 저 새끼, 진짜로 전투에 개입할 생각이 없군.’

내게 시선이 집중된 사이, 이안은 연무장 구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저들의 주 목표는 그가 아닌 나.

이안은 마치 관람석에서 구경하듯, 자리에 걸터앉아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망할 노친네, 끝나고 봅시다.”

“일단 살아남아 보거라. 내가 다 생각이 있어서 이러는 거니까.”

내게 그렇게 말하는 이안의 얼굴을 살폈다.

- 아무래도 들킨 것 같지?

내 심중을 알아챈 듯, 머릿속으로 루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안은 이미 대련을 통해 내 검술 대부분을 파악했을 터.

“뭐, 언젠가는 매듭지어야 할 일이니까.”

다짐하듯 그렇게 말한 뒤 마기를 뿜어 소환문을 영창했다.

[부르니, 답하라. 그대들의 안내자가 청한다.]

바닥을 향해 쏘아진 검은 연기가 만들어낸 소환진.

곧이어 그곳에서 시커먼 뼈들이 하나하나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키이이이…!

감정없는 기계는 감정없는 기계로 상대해야 하는 법.

새로 불러낸 서른 구의 스켈레톤이 그들을 역으로 포위했다.

촤르르륵-!

그들에게 구현시킨 무기는 장창과 활.

리치가 짧은 저들의 무기를 확인한 뒤 내린 결정이었다.

“언데드, 확인했다.”

“아키몬드의 환생이 씨앗을 틔웠다.”

“꽃피기 전에 제거하라. 교단의 적을 축출하라.”

자신들이 받은 명령을 기계적으로 내뱉은 인퀴지터들이 자신의 무기를 하늘로 치켜들었다.

파아앗-!

그들이 들고 있는 워 해머에 밝은 빛이 깃들었다.

신성력.

주신 케르시아스가 부여하는 힘.

망자의 혼을 다루는 나 같은 네크로맨서에게는 천적이나 다름없는 힘이다.

‘수는 여덟. 힘 자체는 평기사와 차이가 없지만….’

언데드를 상대로 사용한다면, 신성력의 효율은 같은 마력의 두 배 이상.

네크로맨서인 내 기준으로 따지면, 기사 열여섯을 상대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창병 전진. 사격 개시.”

내 명령을 들은 열 구의 스켈레톤이 화살을 발사하는 것과 동시에 창을 든 언데드들이 달려들었다.

크아아아-!

언데드를 죽이는 데에 특화된 인퀴지터들과 최하급 언데드의 싸움.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쿠콰앙-!

콰앙-!

파공음, 폭음.

눈 깜짝할 사이에 스켈레톤 스무 구를 날려버린 인퀴지터들이 내게로 달려들었다.

“뼛조각들 따위가….”

“찰나의 시간은 벌었지. 안그래?”

그렇지만 그들이 스켈레톤들을 박살 내는 그 짧은 틈.

바닥에 닿은 내 손은 땅에 계약문을 그리고 있었다.

“헥토르!”

내 명령을 들은 데스나이트가 다가오는 인퀴지터의 망치를 쳐냈다.

카앙-!

계약상, 루델을 현계시킬 수 있는 건 앞으로 단 한번.

하인켈이 오기 전에 섣불리 꺼낸다면 최악의 상황이 도래한다.

‘말인즉, 이 녀석만으로 최대한 버텨야 한다는 뜻.’

생각을 마친 뒤 곧바로 인퀴지터 한 놈에게 파고들었다.

키리릭?!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뒤 뒤를 잡는 라인란트의 보법.

인퀴지터가 대응하는 것보다 한 템포 빠르게 유성검을 그었다.

키이이이이-!

사선으로 내지른 검이 인퀴지터의 척추를 끊어냈다.

털썩!

하반신을 움직일 수 없게 된 인퀴지터를 뒤로하고, 곧바로 헥토르를 이용해 등 뒤를 막아냈다.

쿠콰앙-!

멀찍이 날아가는 헥토르의 몸체.

두 명의 인퀴지터가 동시에 망치를 휘두른 까닭이었다.

서걱!

사영격을 찔러 들어가 목젖을 도려낸 뒤, 곧바로 간격을 벌렸다.

“죽여라, 죽여라, 죽….”

같은 말만을 반복한 채 비척거리는 인퀴지터.

피가 빠져 둔해진 그의 등으로, 남은 스켈레톤을의 화살이 내리꽂혔다.

후두두둑-!

“이걸로 두 마리 째…!”

의지와 감정을 잃어버린 저들은 인간이 아니다.

가빠진 숨을 고르며 몸을 복구시킨 스켈레톤을 다시금 돌진시켰다.

‘8대 20이 30초. 6대 20이라면 5초는 더 벌겠지.’

수적 우위를 벌릴수록 승률은 올라가는 법.

집단전술의 기본원칙을 상기하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하여튼, 체력이 제 형의 반만 따라가도 좋을 것을.”

특유의 저질 체력을 꼬집는 이안의 말을 들으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러는 사이, 인퀴지터들은 하나둘 내 스켈레톤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언데드가 재생한다.”

“신성력을 끌어모아라. 영혼째 도려내 으깨버려라.”

놀라는 기색 하나 없이 인퀴지터들의 망치가 솟아올랐다.

전쟁망치가 스켈레톤의 몸을 뭉텅이째 날려버렸다.

쿠콰앙-!

그리고 그들은 거기에 추가로, 신성력을 머금은 말뚝을 들어 재생 중인 스켈레톤의 잔해에 그것을 꽂아 넣었다.

치이이이이익-!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소리와 함께 스켈레톤의 잔해가 경련하기 시작했다.

쿠웅-!

재생을 마친 헥토르가 달려드는 두 인퀴지터를 막아섰다.

뿌득! 뿌드득!

신성력에 거부반응을 일으킨 갑주에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쯧, 역시 교단 놈들 아니랄까 봐. 대응이 좋은데.’

비척거리는 스켈레톤들을 보며 혀를 찼다.

저것이 박혀버린 이상, 더 이상의 재생은 불가능.

손을 들어 주변을 둘러싼 궁수들에게 사격을 명령한 뒤, 홀로 떨어진 한 놈에게 다가갔다.

“같은 수법에 당할 것 같으냐.”

감정 없는 목소리가 날 조롱했다.

내가 방금 전 사용한 기술, 유성검과 사영검.

그 검로를 파악한 인퀴지터가 곧바로 방어 자세를 잡았다.

“미안한데, 같은 수법 아니야.”

그렇지만 난 방금, 이안과 대련을 마친 상태.

검을 역수로 쥔 채 방어 자세를 잡은 인퀴지터에게 새 기술을 쏟아냈다.

쫘아악-!

검로를 곡선으로 비틀어 혈관을 도려내는 검술, 피안화(彼岸花).

“……!”

그 이름처럼, 갈갈이 찢긴 인퀴지터의 팔이 꽃잎처럼 여러 갈래로 갈라졌다,

“뭐야, 통각은 아직 좀 남아있나 보지?”

움직임이 둔해진 인퀴지터에게 이죽거리며 그의 목을 쳐냈다.

스걱-!

하늘을 나는 인퀴지터의 목.

궁병과 데스나이트의 연계로 진형을 교란시켜 얻어낸 전과였다.

“세 명. 제국 기사로 치면 다섯 명 정도인가.”

등 뒤에서 들려오는 이안의 평가에 반응할 겨를조차 없었다.

“후우…! 후우…!”

신물이 올라오고, 시야가 까맣게 물들어갔다.

‘씨발, 아직도 다섯 놈이나…!’

내가 지닌 최대의 약점.

그것은 검을 처음 잡은 지 두 달조차 되지 않은 이 몸뚱이다.

길어지는 전투와 파상공세에 체력은 진작에 고갈된 상황.

검을 쥐고 서 있는 것조차 고역인 상태였다.

콰득! 콰드득!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인퀴지터들을 틀어막고 있던 헥토르의 몸 또한 한계에 다다랐다.

빠각-!

머리에 말뚝이 박힌 헥토르의 몸이 균형을 잃고 무너졌다.

재생은 불가능.

한번 소멸시킨 뒤, 처음부터 재구축해야 한다.

“거기까지다. 클라인 라인란트.”

인퀴지터 다섯이 지근거리에서 날 에워쌌다.

남은 수단은 원거리에서 대기 중인 스켈레톤 열 구뿐.

“이걸로.”

“임무는 완수되었다.”

망설임 없는 인퀴지터의 망치가 내 머리를 향했다.

“…백부님.”

“뭐냐.”

날 에워싼 인퀴지터들을 너머, 그것을 구경 중인 이안에게 말을 걸었다.

“제 혼에 맹세코, 악의로써 저지른 일은 아닙니다.”

마지막 변명과 함께, 바닥에 새긴 계약문을 작동시켰다.

“루델.”

전대 공작, 루델 라인란트의 이름.

그 이름을 부르는 것과 동시에, 날 공격하던 인퀴지터 다섯의 머리가 동시에 하늘을 날았다.

“…!”

“……!”

소리도, 전조도 없이 이뤄진 검격.

의문조차 가지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한 인퀴지터의 머리가 땅으로 떨어졌다.

후두두둑!

순식간에 정리된 인퀴지터들.

그렇지만 그것을 해낸 내 표정은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그래, 정말이었구나.”

한순간에 인퀴지터 다섯을 벤 데스나이트.

그의 모습을 확인한 이안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라인란트의 후손이 전대 라인란트 공작을…. 내 아버지를 데스나이트로 만들었어.”

딱딱하게 굳은 이안의 목소리가 날 향하자, 검은 갑옷 차림의 루델이 내 옆에 섰다.

“잘 설명해야 할 거다, 클라인. 그렇지 않으면 내가…!”

내내 웃고만 있던 그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분노가 깃들었을 때.

- 이것 봐라, 꼴에 나이 좀 먹었다고 이제 와서 효자 행세냐?

장난기 가득한 루델의 목소리가 좌중을 압도한 이안의 살기를 끊어냈다.

“……아버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얼굴을 찌푸린 이안이 그렇게 되물었을 때.

- 그래도 이 애비 목소리를 잊어버리진 않았구나.

살기가 거둬지는 것을 느끼며 마른 숨을 몰아쉬었다.

이것이 내가 그 불리한 계약을 감수하고서라도, 그의 의지를 남긴 진짜 이유.

쓰고 있던 검은 투구를 벗자, 초상화 속에서 본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 오랜만이구나, 이안. 그리고 하인켈.

선명한 루델의 목소리가 연무장에 울려 퍼졌을 때.

“정말로, 당신입니까?”

현 공작, 하인켈 라인란트가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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