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28화 (28/209)

028. 이안 라인란트(2)

땅! 땅! 땅!

저녁노을이 지평선에 걸려 오색찬란한 색을 하늘에 뿌리던 때.

라인란트 저택 2층 벽에서는 망치질 소리가 청명하게 울려 퍼졌다.

“아악!”

…못 대신 자기 손가락을 찍어버린 이안의 비명소리 또한 함께였다.

“아니, 대체 어느 미친놈이 맹인한테 공사를 시켜?!”

“그럼 처음부터 부수지를 마셨어야죠.”

“그럼 이 나이에 계단으로 내려가리?! 천하의 이안 라인란트 가오가 있지!”

“수배범한테 가오가 어디 있습니까?”

이른 아침부터 아옹다옹하는 저 형제들을 보고 있자니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 저 녀석들은 나이를 50 넘게 먹어대도 변한 게 없구만.

이제는 데스나이트가 된 두 형제의 아버지, 루델이었다.

‘하인켈이 스무 살이 되던 때 요절했다고 했지.’

그의 생몰년도를 떠올리며 차를 한 모금 머금었다.

“하인켈은 몰라도, 이안은 자주 봤을 텐데?”

- 저러고 노는 걸 보는 건 처음이지. 자네가 아니었으면 영영 못 볼 광경이야.

지천명을 넘어 예순을 바라보는 두 아이를 보던 루델이 소리 내어 웃었다.

황망한 듯, 허한 듯.

그럼에도 그 둘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시선에는 뿌듯함이 깃들어 있었다.

- 정말이지…. 어릴 때와 다를 게 없어.

“…그러냐.”

그의 말을 받으며 차를 한 모금 더 머금었다.

현계에 남아있는 혼 모두가 자의식을 가진 것이 아니다.

혼에게 남은 것은 개체로서의 정체성과 생전에 남은 한의 편린.

그 혼에 자아를 부여하고, 욕망을 구체화하는 것은 네크로맨서의 역할이다.

‘네크로맨서는 혼을 이용해 힘을 행사하고, 혼은 그 대가로 네크로맨서의 눈과 귀로 세상을 느끼고 생각한다.’

영혼의 힘과 산 자의 존재를 맞바꾸는 것이 망자와 산 자의 거래.

내가 보고 있는 풍경과 듣고 있는 소리는 루델에게도 똑같이 들린다는 소리였다.

“원망하지는 않나?”

- 원망이라니, 뭘?

루델과 시선을 맞추지 않은 채 말했다.

“네 외손자를 잡아 언데드로 만들었는데.”

타락했다고 해서, 괴물이 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자식이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닐 터.

헬리안과 그의 아들 헥토르를 거론하자 창가에 기댄 루델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 지금 폴와이번 성 꼭대기에 앉아있는 건, 이미 헬리안이 아니다.

“…….”

- 네크로맨서인 네가 가장 잘 알 것 아니냐.

한참만에 들려온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밴시가 내게 건넨 나뭇조각.

정확히는 그 나뭇조각을 물들인 붉은 액체.

“산 자가 그것을 복용했다면, 그건 더 이상 인간이라고 부를 수 없다.”

그렇게 말하자 루델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 정도(定道)를 벗어난다면, 그것은 라인란트가 아니다. 난 그렇게 매듭지었어.

“….”

- 그러니 네가 거기에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아키몬드.

루델의 그 한마디에 헛웃음이 나왔다.

“하! 신경?”

과장된 몸짓으로 어깨를 으쓱이며 계속 말했다.

“천하의 아키몬드가, 내 심장에 칼을 박은 숙적의 후손을 신경 써? 웃기는 소리!”

행여나 폭주하지 않을까 싶어 물은 것뿐이다.

다른 의미는 없다.

그렇게 말하며 찻잔에 다시 입을 가져갔다.

- 그래, 그렇게 생각한다면 다행이군.

내 큰소리에 그렇게 답한 루델이 모습을 감췄다.

이윽고 그의 기운이 완전히 사그라들었을 때.

“도련님! 책 들고 왔어요!”

발랄한 목소리와 함께 아린이 내 방으로 들이닥쳤다.

‘노크 좀 하고 들어오라니까, 하여튼 말은 지지리도 안들어요.’

그렇게 생각하며 책상 한편을 가리켰다.

“거기 책상 앞에다 놔. 쿠키 받아왔으니까 가져가고.”

“네에~!”

자기 키만큼 높이 쌓아 올린 책들을 책상 한구석에 놓은 아린이 과자봉지를 집으며 날 보았다.

“도련님. 도련님.”

“왜?”

“빈 찻잔 들고 뭐 하세요?”

그 말에 잠깐 멈칫한 난 들고 있던 찻잔을 보았다.

“……하아.”

짧은 한숨.

그 뒤에는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있는 저녁노을을 한번 더 눈에 담았다.

“그러게, 내가 지금 뭐하는 걸까.”

***

“그만! 거기까지!”

이른 아침, 연무장.

30분 내내 대련에 몰두하고 있는 이들은 이안, 그리고 장벽에서 돌아온 델라인이었다.

“하아…! 하아…!”

호흡 한 줌도 흐트러지지 않은 이안과는 달리, 델라인은 온몸이 땀범벅이 된 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훌륭한 재능이다.”

델라인을 향해 그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이안의 권태로운 눈빛은 변치 않은 채였다.

“마력량, 골격, 그리고 올곧은 검로. 기사 가문의 후계자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재능이야.”

“후우, 감사합니다. 백부님!”

이안의 칭찬이 나오자, 델라인은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한 모습으로 몸을 일으켰다.

‘와, 그 새 다 회복됐어?’

화수분처럼 마르지 않는 체력과 마력.

검을 갈무리하고 이안에게 다가오는 그의 모습은 라인란트 기사의 표상이라 불릴만했다.

“놀라운 검술이었습니다. 분명 상대는 한 명인데, 마치 수많은 검사들이 연계하는 것처럼….”

“허허, 이 버릇없는 녀석과는 달리 좀 싹싹한 놈이구만?”

날 가리키며 그렇게 말한 이안은 델라인과 한 대련을 복기하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첫 돌격에서 측면으로 페인트를 걸었었지. 왜 간파당했는지 아나?”

“그건….”

말문이 막힌 채 고민에 빠진 델라인을 보던 이안이 입을 열었다.

“시선이다.”

“시선이요?”

“그래.”

그의 말에 답하며 이안이 검을 들어 천천히 검로를 그었다.

“동작은 이런 식으로 측면을 향하는데, 시선은 정면을 향했으니 간파당하는 거지.”

그렇게 말하던 순간.

툭.

이안의 검집이 델라인의 왼다리를 건드렸다.

“어…!”

미처 눈치채지 못한 듯, 델라인이 황급히 몸을 뺐다.

“이것 봐라. 맹인이라고 해도 시선으로 신호를 주니 몸이 절로 따라가지?”

“윽.”

뒤늦게 그 사실을 알아챈 델라인이 앓는 소리를 냈다.

‘내가 당한 거랑 똑같네.’

하인켈이 평하길, 델라인은 이미 단장급 기사에 가까운 경지에 다다랐다.

그런 델라인을 어린아이처럼 가지고 노는 검사라니.

그 모습을 보니 그가 어떻게 자신의 기사단을, 그것도 단장급 기사로만 이뤄진 금빛 날개를 홀로 몰살시켰는지 알 수 있었다.

“한번 겪었으니 다음엔 주의하거라. 넌 하인켈보다 높이 올라갈 것 같으니, 이대로만 하면 된다.”

“가, 감사합니다!”

하인켈과 동급, 혹은 그 이상이라고 여겨지는 자와의 대련.

그동안 한정된 환경에서만 수련해오던 델라인에게는 좋은 자극이 될 터였다.

“보아하니, 다음 대 라인란트 공작은 별문제 없겠구만.”

델라인이 돌아간 걸 확인한 이안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말이랑 표정이 따로 노시던데요.”

“티 났냐?”

“델라인은 눈치 못챘습니다.”

그렇게 말하자 이안은 ‘그럼 됐지 뭐’라며 어깨를 으쓱였다.

“허언은 아니다. 하인켈 녀석이 붙잡고 지도한다면 나나 하인켈 이상가는 기사가 될거다.”

“그럼 저보단 델라인을 가르치는 게 더 나은 거 아닙니까?”

그렇게 되묻자 이안은 고개를 내저었다.

“저런 녀석은 나와는 상극이야. 대련이라면 몰라도, 가르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리고?”

말을 흐리는 그에게 되묻자 씨익 웃어 보인 이안이 내게 말했다.

“좋은 재능인 건 맞는데, 재미가 없잖아.”

“…재미요?”

“그래. 재미.”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이안이 검을 뽑았다.

“델라인의 재능은 우수하지만, 특별하지는 않지. 너와는 정 반대라고 해도 될 정도다.”

다시 말해, 내가 지닌 재능은 특별하되 우수하지는 않다는 뜻이다.

‘맞는 말이지. 기술을 모두 익힌다고 해도, 정작 중요한 마력이 없으니.’

검의 정확도를 높이는 것이 기술이라면, 마력은 검의 위력을 높인다.

갑옷을 두부처럼 자르고, 성문을 통째로 베어내는 압도적인 위력.

그것이 없는 이상, 내 재능의 효율은 극감하게 될 테니.

“그렇지만 네 재능은, 내게 있어서는 보물과도 같은 재능이지.”

그렇게 말한 이안이 날 보며 검을 겨눴다.

“방금까지 내가 썼던 기술. 전부 다 익혔겠지?”

델라인에게 보이던 인자한 선생같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새 장난감을 발견한 듯 장난기 가득한 얼굴.

“처음부터 그럴 생각으로 델라인과 대련하신 겁니까? 제게 기술을 보여주기 위해?”

연무장을 향해 걸으며 그렇게 묻자 킥킥거리며 웃은 이안이 내게 말했다.

“역시 눈치 하나는 빠르단 말이야.”

그의 대답이 들려오는 것과 동시에 달려들었다.

카앙-!

“좋아, 한 치 오차도 없구만!”

흡족한 듯 이안의 목소리가 커졌다.

적어도 이번엔, 저 뻔뻔한 면상에 생채기 하나라도 내 볼 심산이었다.

***

“흠….”

하인켈의 서재.

클라인이 가져온 자료를 훑어보고 있는 하인켈이 천천히 눈을 찌푸렸다.

“잘못된 정보는 아니겠지?”

서류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그렇게 묻자, 집사 버크만의 대답이 들려왔다.

“헬리안 공후가 폴와이번 본성으로 복귀하는 것과 동시에, 각 국경지대에 흩어졌던 공자들이 복귀하고 있습니다.”

“권력구도에서 밀려난 아들들을 다시 중앙으로 복귀시킨다는 건….”

“헥토르 공자의 신변에 문제가 생겼다는 말이지요.”

버크만의 말을 들은 하인켈이 턱을 괴었다.

클라인이 헬리안의 별장에서 돌아오는 것과 동시에 들어온 정보.

‘헬리안의 아들들이 폴와이번에 집결하고 있다.’

“설마 클라인 도련님께서….”

“자네 생각이 맞을 걸세.”

버크만의 말에 답한 하인켈이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내밀었다.

헬리안의 초대를 받은 클라인이 준 보고서였다.

“이건….”

“현재 폴와이번 공작력의 파벌 구도와 병력 배치, 그리고 자금의 유통구조가 적혀있네.”

그 말에 버크만의 눈이 커졌다.

그 말인즉, 상대측에 대한 거의 대부분의 정보가 라인란트에 넘어왔다는 말이었으니까.

“전하. 그렇다면 이걸 클라인 도련님이…?”

“아니. 그건 아니야.”

고개를 저은 하인켈이 서류를 보며 말했다.

“일주일 사이에 이렇게 상세한 정보를 수집하고, 정리할 수는 없어. 최소 반년 이상은 축적한 정보일세.”

“그런 정보가 우리에게 들어왔다는 것은….”

“내부자를 포섭했다는 것이지. 이런 고급 정보를 빼돌릴 수 있는 내부자를.”

기가 질렸다.

열다섯 살 공자가 적대 가문의 심층부에 들어가서 살아온 것만으로도 기적에 가까울 터.

그렇지만 클라인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향후 주도권 싸움에 필수적인 정보와 아군을 만들어서 돌아온 것이다.

“설마 그럼, 헥토르 공자의 죽음도…!”

“확실하진 않지만, 가능성은 있지.”

생각을 마친 하인켈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헬리안에 의해 방계와 본가가 분열하고, 제국의 농간에 놀아난 것이 어언 30년.

그동안 라인란트의 그 누구도, 이런 성과를 낸 적은 없었다.

그들은 책사가 아닌 기사였으니까.

검 말고는 가진 것이 없는 외골수 집단이었으니까.

“얘기를 해 봐야겠군. 클라인은 지금 어디에 있지?”

버크만에게 그렇게 묻자 곧바로 대답이 들려왔다.

“이안 님과 함께 연무장에 계십니다. 한창 대련 중이실 겁니다.”

“그래. 형님이….”

이안에게 생각이 닿은 하인켈이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이안과 클라인의 첫 격돌.

그곳에서 클라인이 사용한 기술은 틀림없이, 루델 라인란트의 환영검.

죽은 아버지의 기술이었다.

‘나조차도 익히지 못해 잊혀진 기술을 사용했다. 그렇다면, 클라인이 설마 아버지를…?’

생각이 닿는 것과 동시에 당혹감, 불쾌감이 밀려왔다.

그의 상식에 각인된 사령술은 세상의 이치를 거스르는 사술.

그것이 다른 자신의 아버지를 향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아들이라 할지라도 용납할 수는 없었다.

‘형님도 아마 같은 생각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버크만이 건넨 코트를 받았을 때였다.

파창-!

굉음이 오후의 나른한 침묵을 깨트렸다.

유리가 깨지는 소리, 그리고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

이전부터 들리던 이안과 클라인의 것이 아닌, 낯선 이의 것이었다.

“침입자다! 기사들은 모두 공자님을 보호하라!”

저택 안쪽에서 소리가 들렸다는 것은, 바깥을 경계하던 기사들이 당했다는 뜻.

곧바로 검을 챙겨 밖으로 나오자, 지붕을 타고 달리는 인영이 보였다.

“저들은…?”

완전히 삭발한 머리 한가운데에 박힌 태양 십자의 문양.

그것을 본 하인켈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어린 클라인에게 아키몬드의 환생이란 죄목을 씌워 그 인생을 망가트린 장본인들.

감정 없는 교단의 살인기계.

인퀴지터(Inquisitor)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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